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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뒹또

[개정판] 아라그린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로맨스

데뒹또
작품등록일 :
2024.02.19 10:46
최근연재일 :
2024.06.05 00:20
연재수 :
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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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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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글자수 :
4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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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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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장: 생존] 105호 (3)

DUMMY

<강민엽>


강민엽은 철거업자들의 숙소인 401호 안으로 홀로 걸어 들어왔다. 철거업자들은 경계심 가득한 모습을 한 채 그의 주위를 에워쌌다.


“그래서 용건이 뭐요?”

소파에 앉아있는 구자혁이 강민엽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장비를 빌리러 왔습니다.”

강민엽은 집 한 편에 귀중히 놓인 철거용 장비들을 고갯짓 하며 말했다.

“어이가 없네. 염치가 없어도 유분수지.”

황기엽이 흥분하며 말했다. 그는 강민엽이 이 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공격적인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저건 함부로 빌려주고 그럴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구자혁이 말했다.

“반드시 필요한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필요한 일?”

“바닥을 뚫을 겁니다.”

“염병 떨고 있네.”

황기엽이 또 나섰다.

“바닥은 왜?”

“105호에 주민이 한 명 갇혀 있습니다.”

강민엽은 나지막이 말했다. 이에 구자혁은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고는 한참 동안 말없이 강민엽을 뚫어져라 응시한다. 그리곤 이내 말문을 연다.

“좋아. 빌려드리지.”

“예? 형님 그게 무슨..”

“대신 조건이 세 가지 있소이다.”

구자혁이 손가락을 세 개 피며 말했다.

“일단 숙소를 좀 다른 곳으로 옮겨야겠소. 이 집은 영 마음에 안 들어서.”

구자혁이 중지를 접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둘째. 류석훈, 풀어주쇼.”

이번엔 검지를 접으며 말했다.

“그 자는..”

“규칙을 어기면 감금된다는 얘기를 먼저 해줬어야지. 그래야 이치에 맞는거 아니겠습니까.”

구자혁이 강민엽의 말을 끊고 말했다. 강민엽은 이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그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마지막 조건은 뭡니까.”

“바닥은 우리가 뚫습니다.”

마지막으로 엄지를 접으며 말했다.

“사장님?”

“한두 푼 하는 장비도 아닌데 초짜들 손에 맡겼다가 무슨 꼴을 보려고.”

강민엽은 그런 구자혁을 응시하며 그의 의중을 파악해보려고 한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도무지 읽어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의도가 무엇이든 전문가인 그들이 직접 바닥을 뚫는 작업을 도와준다면 일이 더 수월해지는 것이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이에 구자혁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작업 조끼를 주워 입으며 말한다.

“바로 시작합시다. 안내하쇼.”



















<구자혁>


“아이 뭔 두부여.”

류석훈은 웃으며 말했다. 동료들은 어렵게 구한 두부 한 모를 들고는 감옥에서 돌아온 류석훈을 화기애애하게 맞이해줬다.

“이제 새 인생 살아야죠. 형님.”

“아니 누가 보면 진짜 감옥 갔다 온 줄 알겠어.”

“너 좆됐어. 꿀 다 빨았어. 이제 좆 빠지게 일해야 돼. 우리 바닥 뚫으러 가.”

황기엽이 격하게 어깨동무하며 말했다.

“그게 뭔 소립니까?”


그렇게 구자혁은 부하들과 함께 205호에 들어온다. 일단 pvc장판을 커터칼로 잘라 걷어내 적나라하게 드러난 콘크리트 바닥을 마주한다. 이제부터 여기에 성인 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 크기의 구멍을 뚫어야 한다.


아파트의 바닥은 단순한 구조로 되어있지 않다. 총 합 10cm 내외의 두께로 마감 모르터, 기포 콘크리트, 온돌 배관, 완충재 등의 마감재들이 층층이 쌓여있다. 이것들을 무사히 걷어내고 나면 그때서야 비로소 본 게임이 시작된다. 바로 대망의 슬래브와 조우하게 되기 때문이다. 슬래브는 하중을 견뎌내기 위한 목적으로 철근 묶음을 열십자로 촘촘히 배치한 다음 그 위로 콘크리트를 타설해 만들어내는 구조물이다. 즉 단순히 콘크리트만 부순다고 되는 게 아니고 단단한 철근들까지 모두 잘라내야만 비로소 바닥을 뚫어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라그린 아파트가 지어진지 거의 30년 다되어가는 노후화된 아파트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층간 소음 방지를 위해 슬래브 두께를 최소 21cm 이상으로 해야 하는 건축기준법이 있지만 30년 전엔 그딴 건 없었다. 아라그린과 같이 그 당시 만들어진 아파트의 슬래브 두께는 기껏해야 12cm 내외인 것이다. 그나마 해볼 만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소리를 내지 않고 바닥을 뚫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원래라면 뿌레카로 부숴버리거나 파트너로 잘라내서 몇 시간 만에 간단히 구멍을 뚫어낼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뿌레카나 파트너 같은 장비들은 소음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구자혁에겐 유압 크러셔가 있었다. 유압 크러셔에는 커다란 집게가 달려있는데 이걸 이용해 콘크리트를 압착하여 파괴하는 장비다. 이를 통해 소음은 거의 내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콘크리트를 부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당장 사용할 수는 없었다. 유압 크러셔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집게 부분이 들어갈만한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단 유압 크러셔를 집어넣기 위한 작은 구멍을 먼저 뚫어내야 했다.


“오함마 좀 가져와라.”

그렇게 구자혁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망치와 정을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속도는 느릴지 몰라도 그만큼 소음도 적었다.


본격적으로 작업을 하기 앞서 한 번 테스트를 시작한다. 최대한 소음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창문을 다 걸어 잠그고 커튼까지 친다. 안전을 위해 강민엽과 임지훈 그리고 구자혁과 그를 보조해 줄 윤리도 이 네 명만 남고 다 올라간다. 윤리도가 정망치를 손에 쥐고는 목표 지점에 가져다 댄다. 구자혁이 그 위를 겨냥해 오함마를 힘껏 내려친다.

쾅!

큰 타격음이 크게 울려 퍼진다. 이내 박준의 무전이 들린다.

“[반응합니다.]”

30초 정도 후에 다시 무전이 들린다.

“[멈췄습니다.]”

망치를 내려치는 소리에 감염자들은 크게 반응했고 30초나 지나서야 잠잠해졌다는 뜻이었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을 실험해 봤으나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간헐적으로 한 번씩 내려치는 건 별 영향 없지만 짧은 시간 내에 반복해서 내려쳤다간 근처의 모든 감염자들이 몰려들 수도 있었다. 그렇게 30초에 한 번씩만 내려치라는 군인들의 지시가 내려왔다.


“다 뚫는데 얼마나 걸릴까요?”

임지훈이 다가와서 물었다.

“글쎄. 이런 식이면 구멍 하나 내는데 며칠은 걸리겠는데.”

“그러면 너무 늦습니다.”

“늦다니?”

구자혁은 물었다. 시간제한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었기 때문이다.

“당뇨병 환자인데 지금 인슐린이 다 떨어졌답니다. 하루라도 빨리 구해야 됩니다.”

“환장하네.”

구자혁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온다.

“그래서 뭐, 빨리 꺼내오면, 그 인슐린은 있습니까?”

“예 인슐린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 그래 일단 빨리 해봅시다.”

구자혁은 한숨을 쉬고는 다시 망치를 든다.


작업한 지 세 시간이 지났다. 교대하지 않고 그대로 구자혁과 윤리도가 작업을 하고 있다. 그때 구자혁은 오함마를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뒤에 있는 의자에 가서 털썩하고 앉고는 장갑을 벗어던진다.

“이대로는 안돼.”

“뭐가 문제죠?”

임지훈이 다가와 물었다. 구자혁은 작업화의 끈을 풀어헤치며 말한다.

“속도가 너무 느려. 이대로면 시간 내에 절대 못 뚫어.”

“그럼 어떡하죠?”

구자혁은 말없이 의자 등받이에 푹 기대고는 눈을 감은 채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이내 질문에 답한다.

“몰라.”

그렇다 그게 문제였다. 모른다. 구자혁도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구자혁>


작업의 진행에 차질이 있다는 사실이 모두에게 전달되었고 그렇게 모여서 긴급 대책 회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소리를 내지 않고 시간 내에 바닥을 뚫을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없었다. 그렇게 난관 속에 빠져있는 순간이었다. 송예슬로부터 해결책을 찾았다는 연락이 온다.


“방음벽을 만드는 겁니다.”

유민준의 모두의 앞에서 말했다.

“망치를 내려치는 소리로 발생하는 파동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구조물로 전달되는 고체음은 막아낼 수 없겠지만 충격 그 자체로 발생하는 파동은 방음벽으로 막아낼 수 있습니다.”

“에이, 백번 양보해서 소리를 막는 게 가능하다 치더라도 방음벽을 대체 어떻게 짓습니까?”

윤리도가 물었다.

“아니, 해볼 만하겠는데?”

구자혁이 대신 답했다. 망치질을 하며 발생되는 소음에는 공기전파음과 고체전파음이 있다. 고체전달음은 내부에서만 크게 공명하기 때문에 아래층이나 위층에서는 크게 들리겠지만 외부에서는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니까 방음벽을 세워서 공기전파음만 막아낸다면 어느 정도 승산이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구자혁은 유민준의 말을 듣고는 문득 깨달았다. 이 아파트에는 방음 소재들이 차고 넘친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그는 모두에게 지시를 내려 아파트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일단 차음재로 사용하기 위해 베란다의 강화유리 미닫이문을 잔뜩 떼어왔다. 애초에 아파트에 설치되는 강화유리 미닫이문은 방음을 고려해서 설계되어 만들어진다. 따라서 이 자체가 아주 효과적인 방음 소재인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두꺼운 책장들을 모아 왔다. 두꺼운 책장도 차음효과가 매우 뛰어나다. 애초에 생긴 것 자체가 녹음실 벽에 뾰족하게 촘촘히 붙어있는 차음소재와도 모양이 비슷하다. 또한 흡음재로 사용하기위해 침대의 매트리스를 옮겨왔다. 두껍고 밀도가 높은 소재로 이루어져 있는 매트리스의 특성상 흡음재로 아주 적격이었다. 그리고는 빈 집을 뒤져 각종 두꺼운 이불과 커튼들을 떼어왔으며 에어캡 포장재, 계란판, 배게, 담요 등등과 같은 각종 잡다한 흡음재들까지 다 모아 왔다.


그렇게 모인 재료들로 방음벽을 설치하기 시작한다. 일단 구멍을 뚫을 지점을 주변으로 원형을 그려 두꺼운 책장들을 배치해 벽을 만든다. 그리고 그 책장 바깥쪽으로 매트리스를 세워놓고는 그 뒤에 베란다 강화유리 미닫이문까지 붙여 세워 삼중으로 벽을 만든다. 그리고 테이프와 공구를 이용해 움직이지 않게 단단히 고정시킨다. 그다음 앞뒤로 커튼을 쳐서 한 번 더 흡음을 할 수 있게 만든 다음 두꺼운 이불과 베개, 담요로 빈틈을 채워 넣고 마지막으로 에어캡 포장재와 계란판 등을 붙여 빈 곳을 메꾸었다.


그렇게 분주하게 움직여 마침내 방음벽이 완성되었다. 방음벽 안에는 두 사람 정도만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구자혁은 테스트를 하기 위해 윤리도와 함께 방음벽 안으로 들어간다. 바깥에서 사람들이 입구를 닫아 밀폐된 공간이 만들어진다. 준비가 완료되었다. 구자혁은 오함마로 있는 힘 껏 정을 내려친다.

쾅! 쾅! 쾅! 쾅! 쾅!

과감하게 연속으로 다섯 번까지 내려쳤다. 진행 속도에 문제가 없으려면 이 정도에도 반응이 없어야 한다. 그는 말없이 무전을 기다린다. 이내 무전기가 울린다.

“[이상 없음.]”

성공했다. 방음벽이 효과가 있었다. 연속해서 내려쳐도 감염자들이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이제 작업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알았다. 계속 진행하겠다. 오바.”

구자혁이 무전기에 대고 말하고는 다시 오함마를 들어 올린다.

쾅!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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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2장: 생존] 여명 (2) 24.03.24 25 0 12쪽
40 [2장: 생존] 여명 (1) 24.03.22 23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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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2장: 생존] 108동 (6) 24.03.18 26 0 10쪽
37 [2장: 생존] 108동 (5) 24.03.17 26 0 13쪽
36 [2장: 생존] 108동 (4) 24.03.15 30 0 13쪽
35 [2장: 생존] 108동 (3) 24.03.12 34 0 14쪽
34 [2장: 생존] 108동 (2) 24.03.11 3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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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장: 생존] SOS (1) 24.03.05 37 0 14쪽
27 [2장: 생존] 한가위 (4) 24.03.04 35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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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장: 생존] 한가위 (1) 24.03.02 40 0 12쪽
23 [2장: 생존] 105호 (5) 24.03.02 43 0 15쪽
22 [2장: 생존] 105호 (4) 24.03.01 36 0 9쪽
» [2장: 생존] 105호 (3) 24.03.01 37 0 11쪽
20 [2장: 생존] 105호 (2) 24.02.29 48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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