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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뒹또

[개정판] 아라그린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로맨스

완결

데뒹또
작품등록일 :
2024.02.19 10:46
최근연재일 :
2024.06.10 23:40
연재수 :
81 회
조회수 :
4,168
추천수 :
124
글자수 :
456,600

작성
24.03.01 20:10
조회
56
추천
1
글자
9쪽

[2장: 생존] 105호 (4)

DUMMY

<구자혁>


구자혁은 잠시 작업을 멈추고 휴식하고 있다. 그러다 문득 진열장에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꺼내든다. 그것은 오래되어 빛바랜 DVD였다.


[황야의 7인]


아주 오래된 영화다. 주인공이 위기에 처한 마을을 돕기 위해 6명의 동료를 모아 악독한 무법자들과 맞서 싸운다는 내용이다. 꽤 볼만한 영화였다. 정의로운 주인공들이 약자들을 지키기 위해 숫적 열세임에도 포기하지 않고 거대한 악의 무리와 싸워 결국 이겨낸다는 가슴이 뛰는 이야기. 재미없을 수가 없다.


하지만 비현실적이다. 고작 6명의 동료와 나약한 농부들을 데리고는 수십 명에 달하는 무법자들을 이겨낼 수 없다. 아무리 주인공이 날고 기는 실력의 총잡이라 해도 말이다. 만약 현실이었다면 저항하는 자들은 가차 없이 사살되고 마을은 그대로 유린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의로운 총잡이 주인공은 죽어가는 내내 처절하게 후회했을 것이다. 괜한 짓을 했다고. 목숨을 바칠 것까진 아니었다고 말이다.


그러다 문득 반대편에 등을 지고 서있는 강민엽이 눈에 들어온다.

“그만하지 그래?”

구자혁이 그에게 말했다.

“마지막까지 가면 결국은 새어나가는 소리를 막을 수 없어.”

콘크리트를 부수는 작업은 시행착오 끝에 어느 정도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결국 다 부숴낸다고 해도 두꺼운 철근은 그대로 남아있다. 이 철근마저 잘라내야만 105호 주민을 구해낼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파트너, 즉 대형 톱날이 달린 커팅 기계를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이 커팅 기계의 소음은 망치 따위와는 비교도 안되게 크다. 또한 그때가 되면 바닥이 뚫려 105호와 직접적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기에 205호에 설치되어 있는 방음벽은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된다. 결국은 굉음이 울려 퍼질 것이고 사방에서 감염자들이 몰려들 것이다.


“마무리는 저희가 할 겁니다.”

강민엽은 의연하게 말했다.

“자살 행위야.”

구자혁의 말에도 강민엽은 흔들림이 없다. 여전히 결의에 찬 모습이다. 그러다 이내 구자혁은 웃음 짓는다. 문득 자신이 이 영화에 나오는 겁에 질린 마을주민 같은 대사를 내뱉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구자혁은 돌아서서 DVD를 다시 진열장 안에 넣어놓는다.

“다 쉬었다. 시작합시다.”


이후로 밤낮없이 교대로 망치질을 했다. 그 결과 마침내 작은 구멍을 뚫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 구멍을 통해 인슐린을 전달하여 급한 불도 끈다. 그 뒤로 구멍을 넓히는 작업을 시작한다. 유압 크러셔를 사용할 공간이 필요했기에 이제 쓸모없어진 방음벽을 철거했다. 집게 부분을 구멍에 욱여넣고는 원형으로 돌려가며 조금씩 콘크리트를 부쉈다. 그런 식으로 반복해 점점 구멍의 크기를 넓혀갔다. 그렇게 마침내 사람 하나가 지나다닐 수 있을 만큼의 크기가 되었다.


구자혁은 구멍 앞에 서서 철근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모습을 내려다본다. 여러 겹으로 뭉친 두꺼운 철근들이 여전히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참 아낌없이도 박았네.’




















<강민엽>


콘크리트를 모두 부숴내고 이제 마지막으로 철근만 남았다. 철근을 잘라내는 작업은 소음이 어마어마하고 그걸 따로 막아낼 방도가 없었기에 일단 차선책으로 비가 오는 날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이미 인슐린은 전달했기 때문에 당장 급한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약 없는 상황이 이어지나 했지만 뜻밖에도 바로 다음 날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세차게. 기회였다.


그렇게 모두를 올려 보내고 205호엔 강민엽만이 남았다. 모든 준비를 마친 뒤 커팅 기계를 들어 올린다.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 집안으로 들어온다. 그것은 구자혁이었다.

“뭐 하십니까.”

“작업해야지.”

구자혁은 목장갑을 끼며 무심히 말했다.

“올라가십쇼.”

“이거 보기보다 비싸. 몇백은 해. 자네라면 그런 귀한걸 생짜한테 맡길 수 있겠나?”

“올라가십쇼. 위험합니다.”

“내가 하는 게 훨씬 나아.”

구자혁이 커팅 기계를 잡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말이 맞다. 아무리 강민엽이 커팅 기계의 사용법을 익히고 연습했다 한들 구자혁을 능가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강민엽은 이내 커팅 기계에서 손을 뗀다.


“준비되는 대로 시작하시면 됩니다.”

구자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동을 건다. 그렇게 커팅기계는 우렁찬 소리를 내며 작동하기 시작한다. 구자혁은 구멍 가장자리에 양발을 디뎌 몸을 지탱하고는 커팅기계를 밀어 넣어 철근을 절단하기 시작한다. 노란 불꽃이 튀어 오른다. 큰 소음이 사방으로 울려 퍼진다.


이내 송예슬의 무전이 들린다.

“[반응하는 것 같아요. 조심하세요.]”

“확인.”

강민엽이 베란다 창문을 통해 조심스럽게 밖을 내다본다. 빗소리 덕분에 소음이 많이 분산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마어마한 커팅기계의 굉음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다. 감염자들이 슬슬 모여드는 게 눈으로 보인다. 강민엽은 구자혁에게 다가가 구멍을 확인한다. 구자혁은 능숙한 솜씨로 철근을 빠르게 잘라내고 있다.


“[올라오는 것 같아요! 올라와요!]”

철근을 절반쯤 정도 잘라냈을 때 송예슬로부터 다급한 무전이 왔다. 강민엽은 다시 베란다를 쳐다본다. 그리고 이내 창문 아래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오는 감염자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들은 이전처럼 서로가 서로를 밟으며 기어오르고 있었고 벌써 2층까지 도달한 것이다. 시간이 없다.




















<박준>


강민엽은 철근 제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구체적인 작전을 세우기 시작했다. 분명 저번 헬리콥터 때처럼 소음을 듣고 사방에서 감염자들이 몰려들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와 다른 점은 이번엔 소음의 진원지가 옥상이 아닌 2층이라는 것이었다. 즉 감염자들은 3층 이상으로는 올라갈 일이 없었다. 따라서 2층에서만 막으면 됐다.


또한 베란다 쪽으로 몰리는 감염자들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베란다 창문은 단단한 강화유리로 되어있기에 잠가만 둔다면 감염자들이 그걸 뚫고 들어오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복도 쪽이었다. 복도는 탈출구인 중앙계단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퇴로다. 이 복도의 안전을 확보해 놔야 김옥순을 구출한 뒤 안전하게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그 복도의 안전을 확보하는 역할은 박준이 맡았다. 그는 감염보호복을 착용한 채 홀로 205호 현관문 밖에서 굳건하게 서있다. 그의 손에는 구르카 나이프가 아닌 알루미늄 배트가 들려있다. 이번에는 감염자들을 살상하는 그 자체보다는 못 올라오게 막아내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집 안에서 커팅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내 감염자들이 그 소음에 반응해 점점 모여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수는 갈수록 점점 많아져 아파트 단지는 이내 감염자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바닥이 안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감염자들은 또다시 탑을 쌓고 아파트를 기어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 순간 마침내 2층에 도달한 감염자 하나가 난간에 손을 올린다. 박준은 알루미늄 배트를 들어 올린다. 난간 위로 올라오는 그 감염자의 머리를 향해 힘차게 휘두른다. 그 감염자는 그대로 날아가 감염자들의 바닷속으로 빠진다.


그렇게 슬슬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려 한다. 김옥순을 구조하기 전까지 이 자리를 사수하지 못하면 205호에 있는 사람들은 그대로 갇히게 된다. 어떻게든 지켜내야한다.


박준은 결연한 표정으로 배트를 꽉 움켜쥔다.





















<구자혁>


이제 철근을 거의 다 잘라냈다. 커팅 기계의 날이 닳아나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온다. 쉬지 않고 커팅 기계를 힘껏 눌러댄 탓에 구자혁의 양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고통스럽다. 하지만 참아낸다. 이제 거의 다 왔다. 구자혁은 남아있는 힘을 모두 쥐어짜내 커팅 기계를 밀어 누른다. 그렇게 마지막 철근이 잘려나간다.


“끝!”

구자혁이 큰소리로 외치며 커팅기를 옆에다 집어던진다. 그리고 구멍 속 철근을 발로 세게 여러 차례 내려 찬다. 그렇게 잘린 철근 뭉치가 분리되어 105호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리오쇼!”

구자혁은 상체를 구멍으로 밀어 넣어 김옥순에게 다가오라고 손짓을 한다. 그녀는 그 모습을 보고는 조심히 다가와 손을 뻗는다. 구자혁은 그녀의 팔을 잡고는 끌어올리기 시작한다. 강민엽도 다가와 같이 끌어올린다. 그렇게 드디어 김옥순을 105호로부터 꺼내오는 데 성공한다.


구자혁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숨을 몰아쉰다. 그러나 그 순간 구자혁은 문득 베란다 쪽에서 인기척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려 바라본다. 그리고 그는 베란다 창문 밖으로 몰려든 무수히 많은 감염자들을 목격한다. 그동안 철근을 자르는데 집중해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성공의 기쁨도 잠시, 구자혁은 아직 모든 게 끝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기억해 낸다. 이제 저것들을 뚫어내고 탈출해야 한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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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3장: 결전] 배신자 (4) 24.04.27 24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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