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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쏘울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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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쏘울
작품등록일 :
2023.05.14 20:21
최근연재일 :
2023.09.09 13:34
연재수 :
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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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30
추천수 :
362
글자수 :
332,534

작성
23.05.25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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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새로운 시작

DUMMY

1년 만에 찾은 고향마을.


7월의 무더위 속에서도 도심보다는 시원했다.

여전히 마을을 반으로 가르며 흐르는 실개천을 보니 미역감고 놀았던 옛날 생각이 절로 났다.


그러다가 문득 멀리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제방 너머로부터 환청이 들려왔다.


- 패가망신 아들 정우진!


아이들이 어릴 적 많이 놀리던 말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뒤로 하나 더 들려왔다.


-너도 주식으로 패가망신하고 돌아왔냐? 하하하······


환청을 뒤로하고 아버지 산소에 올랐다.

매년 아버지 제삿날이면 엄마와 함께 들르던 산소였는데 오늘은 혼자 오고 싶었다.


한 손에는 마른 가오리 한 마리와 소주 한 병.


“아부지 나 왔어요.”


나도 모르게 어릴 적 사투리가 섞여 나왔다.


“내가 돈 좀 벌면 아부지 좋아하는 진짜 홍어 좀 사올라고 했는디 못 사왔네요.”


나 없는 동안 엄마가 대신 벌초를 하셨지만, 묘에는 듬성듬성 잡초가 자라 있었다.


“하나뿐이 없는 아들놈이 벌초도 못 해드려서 죄송해요.”


문득 주식으로 폭망했을 때 아버지 심정이 궁금했다.


“근데 아부지 어땠어요? 주식 망해서 휴지조각 됐을 때···. 나처럼 힘들었어요?”


내가 평생 원망만 하던 내 아버지. 그런데 이제야 조금 이해되는 것 같았다.


“근데 아부지는 더 힘들었겠다. 이쁜 엄마를 두고 갈 생각을 했으니······ 뱃속에 든 자식도 못 보고······ 얼마나 힘들었을까······얼마나······.”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아부지, 나 부자 맹그러 주면 안 돼요? 나도 부자가 되고 싶단 말여.”


저 아래 개천물처럼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왜 몰랐을까? 아버지의 고통을······ 나는 단돈 몇백만 원을 잃고도 이렇게 힘이 든데······.


산소에 뿌리다 남은 소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동안 나는 똑똑히 봤다. 놈들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 놈들이 어떻게 개미들 피를 빨아 먹고 사는지······.


나는 그들에게 복수할 것이다. 그 개미가 바로 세력에게 당하고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였으니까. 내가 또 당하면 안 되니까.


내가 꼭 우리 집안을 망가트린 이놈의 주식으로 부자가 돼서 돌아오리라!


그리고 보여주리라!


이 동네 사람들에게 당당히 잘 사는 우리 모습을, 그리고 우리 아버지가 결코 본인 잘못으로 패가망신한 게 아니란 것도······.


“아부지, 내가 내년에는 꼭 부자 돼서 올게요.”


그리고 덧붙였다.


“나는 내 돈 떼먹은 놈은 못 참아. 아부지처럼 혼자만 끙끙 앓다가 죽진 않을 거라구······.”


그렇게 다짐하고, 먼 산을 바라보았다.

충혈된 눈에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아들이 태어나기 하루 전 저승으로 간 한 남자의 슬픈 얼굴이······.


그러다가 문득 어디선가 오는 문자 하나.


지이이이잉


- 발신번호 없음


‘······???’


등 뒤에선 들짐승인 듯, 바람 소리인 듯 모를 무언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생일 축하 혀! 근디 왜 이리 얼굴이 핼쑥해졌냐?”


늘 아버지 제사 다음 날 맞이하는 내 생일은 전날 제사상에 올려진 제사 음식과 함께했다.

다른 게 있다면 엄마가 끓여주신 미역국. 나는 그 미역국을 걸신들린 것마냥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하이고, 우리 우진이 이쁘다. 잘 먹어서.”


사실 입맛도 없는 데다 엄마를 똑바로 볼 면목도 없었다.

맛있게 먹는 척이라도 하는 것이 그나마 죄책감을 덜어내는 거라고 생각했다.


*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


내 손에는 고향 내려올 때부터 들고 온 주식 책 한 권이 들려있었다.

차트를 보면서 세력들의 매집을 분석하는 내용.


‘차트에서나 보이는 세력을 나는 직접 경험했던 거구나!’


그동안의 경험이 결코 우연이 아닐 수 있다.

주식으로 부자가 되기 위한 사전 훈련이었다고 생각하자.


세력들을 연구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들의 생리를 역으로 이용해서 이길 수도 있지 않을까?


차창 밖으로 멀어져가는 고향마을을 보며 나도 모르게 아버지 산소에서 했던 다짐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수첩을 꺼내 지금의 마음가짐을 기록했다.


내게 수첩은 일종의 일기장이었다. 그때그때의 마음을 사진처럼 남기는···.

사진은 겉모습을 남긴다면 일기는 마음을 남겼다.


‘이제부터 내 인생과 내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보자!’


그럼 어디에 먼저 투자를 시작할까?


일단 책에서 배운 대로 좋은 종목을 골라야 한다.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는 이젠 정말 쪽박 차고 시골에 내려와서 농사나 지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때 문득 전날 아버지 산소에서 받은 문자가 떠올랐다.


‘또 이놈의 광고 문자!’ 하며 습관적으로 지우려는 찰나 보이는 낯익은 회사명.


[파인전자]


‘내가 다니던 회사네!···’


예전에 잠깐 일한 적이 있던 반도체 부품 회사였다. 잠시 반가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바로 문자를 지웠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니 좀 이상했다.


보통의 주식 광고 문자는 서울 지역번호인 02로 시작하거나, 국제 발신 번호 001- 006-, 핸드폰 번호인 010– 등으로 시작하는 번호가 보통이다.


근데 광고 문자가 왜 전화번호도 없고 연결되는 링크도 없을까?


아무런 말도 없이 딸랑 종목명만 보내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혹시 세력들의 속임수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냥 넘겼지만, 회사 이름만은 머릿속에 잔상이 남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다니던 이 회사의 주가가 지금 어떤지 궁금해졌다. 휴대폰을 열고 주가를 확인했다.

장기간 하향곡선을 그리다가 최근 몇 달간 바닥에서 기고 있는 차트.


‘어? 이럴 회사가 아닌데···’


내가 그동안 임시직으로 몸담은 회사들 중에는 참 괜찮다고 생각되는 회사도 있었고, 미래가 걱정되는 회사도 있었다.

당시 매출이나 영업이익보다 지표로 드러나지 않는 회사 내 분위기라는 게 있다.


그런데 파인전자는 좋게 기억되는 회사 중 하나였다.

일하는 사람들의 면면도 그렇고, 총무과에서 곁눈질로 봤었던 회사의 여러 가지 장기 진행 프로젝트도 그렇고.

잘은 모르지만, 특허 이야기도 자주 나왔던 걸로 봐서 기술력도 있는 회사다.


그리고 회사의 술자리.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솔직했다.

그 술자리에서 주고받는 그들의 대화 속에서도 ‘아, 이 회사에서 근무하고 싶다’라고 생각될 정도로 자신에 찬 그들의 얼굴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 특별한 문제만 없으면 이 회사로 하자!’


휴대폰을 열고 포털사이트에 ‘파인전자’를 검색했다.

다행히 특별히 눈에 띄는 뉴스는 없다.


거래할 계좌를 선택하기 위해 핸드폰 바탕화면을 열었다.

보이는 건 두 개의 주식 MTS 어플.


[굿모닝 증권] [쏘울 증권]


굿모닝 증권을 보자 억눌렀던 화가 다시 치밀어올랐다.

처음에 한결이가 만들어준 내 생애 최초의 주식계좌였다.

이놈의 계좌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했던가!

그날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기 전에 얼른 굿모닝 증권의 어플을 삭제했다.


[삭제되었습니다.]


손가락 하나로 금방 사라지는 걸 보니 너무 허무했다.

과거의 아픈 기억도 이렇게 버튼 하나로 금방 사라졌으면···.


쏘울 증권 MTS 어플을 열었다.

관심 종목 포트에 종목추가 버튼을 눌렀다.


[관심종목]


[파인전자]

[현재가: 2,500원]


그런데 이걸 얼마나 사지?


[계좌잔액: 1,300,000원]


원래 150만 원이었는데, 시골 내려오면서 20만 원을 빼 사용해서 이제 남은 돈은 130만 원뿐.


‘금방 현타가 오는군!’


이 돈으로 무얼 할 수 있을까? 당장, 다음 달 월세도 내야 하는데···.


고민이 되었다.

이 돈을 쪼개 투자하자니 액수가 너무 적고, 모두 투자하자니 내가 쓸 용돈이 없는데···.



***



다음 날 아침.


종목은 어젯밤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던 파인전자.

매수단가는 전일 종가인 2,500원.

주문 수량은 120주. 총매수금액은 30만 원.


[파인전자]

[시장가: 2,500원]

[보유주식 수 : 120주]

[총매수금액: 30만 원]


-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내 인생 첫 투자가 시작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스스로 종목을 결정해서 투자한 본격적인 첫 거래라고 할 수 있다.


전에는 양아치 세력이 시키는 대로 사고팔았지만, 이제는 누가 시키는 대로 매매할 필요가 없었고, 적은 돈이지만 투자금과 수익금도 온전히 내 것이란 생각에 일단 기분이 뿌듯했다.


약간 걱정스런 마음도 있었다. 이제 남은 돈이라야 지갑에 든 단돈 3만 원. 그 돈으로 한 달을 버티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전날 밤 나는 내 나름의 계획을 세웠다. 어찌 보면 참 무모한 계획이었다.


투자한 30만 원으로 수익이 발생하는 날은 용돈을 쓰는 거고, 수익이 나지 않는 날은 용돈을 쓰지 않는 것이다.

즉, 주식에 30만 원은 늘 묻어두고 발생한 수익만큼만 빼서 그날그날 용돈으로 사용하고자 했다.


물론 라면이라도 사 먹으려면 이 주식이 꾸준히 올라 줘야 한다는 가정이 필요했다. 그리고 다행히 이 주식은 나를 굶기지 않았다.


첫날에는 2% 올라서 6천 원을 벌었고,

둘째 날은 4% 올라서 1만 2천 원을 벌었다.


그래서 첫째 날은 컵라면 한 박스를 사 왔고, 둘째 날은 햇반 한 박스를 사 왔다.


물론 주식을 매도하면 출금은 이틀 후에나 할 수 있었으므로, 기존에 남아있는 여분의 용돈을 활용해서 금액을 맞췄다.


그러나 그 후 어떤 날은 마이너스를 가고, 어떤 날은 0%로 제자리걸음을 했다.

그런 날은 굶거나 기존에 사놓은 음식을 먹으며 며칠 오르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 다시 원금 30만 원 이상 오르면 그제야 오른 금액만큼만 파는 걸 반복했다.


주식은 며칠간 잠잠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호가창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지?’


전에 남대문에서 보낸 호가창 암호를 보던 버릇이 남아있었던 거였다.

의미 없이 HTS나 들여다볼 시간에 대신 공부나 해야겠다. 책도 읽고, 유튜브도 보고, 최대한 빨리 주식을 알아야 한다.


유튜브 주식 채널 검색.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단타로 수익 내는 채널에 눈이 갔다.


채널명은 ‘와우개미’, 구독자는 주식 채널치고는 많은 편에 속하는 약 40만 명.


30대 후반의 남자가 하루에 수십, 수백 번씩 분, 초 단위로 거래를 하며 단기 차익을 얻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스캘핑(scalping)이라는 기술.


그가 주로 거래하는 종목은 거래량이 많고 가격 변화가 빠른 종목들이 대부분이었다.

순식간에 들어갔다가 순식간에 1~2% 먹고 빠져나오는 모습이 경이롭다.


1~2%가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란 걸 알았다. 그가 한번 투자하는 금액이 1억이었기 때문에 1%만 먹어도 100만 원. 한 달로 따져보면 2천만 원이나 되는 돈.


‘나는 언제 저렇게 될 수 있을까?’


*


며칠이 지나 문득 계좌를 보고 환호를 질렀다.


[파인전자]

[전일대비: ↑ 30% 상한가]

[총매수금액: 30만 원]

[총평가금액: 39만 원]

[평가손익: + 9만 원]


‘그래, 일단 오늘은 삼겹살이다!’


이게 시작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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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시작 23.05.25 236 6 11쪽
12 손꾸락 잘못 누르면 잘린다 +2 23.05.22 235 6 10쪽
11 주식이 왜 빨간색이어야 돈 버는 줄 알아? +2 23.05.21 239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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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아침마다 오는 암호 23.05.20 243 5 10쪽
8 외인부대 23.05.18 248 7 11쪽
7 위 아래 위 위 아래 23.05.17 253 8 11쪽
6 남대문 투자클럽 23.05.17 257 7 10쪽
5 돈 버는 비밀 +1 23.05.16 272 7 11쪽
4 스물 한번째 회사에 들어가다 +2 23.05.15 281 5 11쪽
3 라면이 주식인 놈 +1 23.05.14 302 9 11쪽
2 패가망신 +2 23.05.14 391 10 12쪽
1 Prologue. 주식으로 안 망하는 세 가지 방법 +11 23.05.14 573 1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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