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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쏘울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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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쏘울
작품등록일 :
2023.05.14 20:21
최근연재일 :
2023.09.09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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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7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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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위 아래 위 위 아래

DUMMY

[남대문 투자클럽]


외진 곳에 위치한 허름한 상가 5층.


회사는 40평짜리 공간을 둘로 쪼개서 하나는 사무실. 하나는 트레이딩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사무실 안에는 검정 가죽 소파와 나무 탁자. 그리고 강 대표가 몇몇 연예인과 어깨동무하고 찍은 사진이 걸려있었다.


트레이딩실은 마치 PC방을 연상케 할 정도로 많은 컴퓨터들이 있었는데, 트레이딩 도중 전원이 나가는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한 거라며 발전기까지 구비중이었다.


“순간의 실수로 몇십억이 그냥 날아갈 수 있어.”


큰 증권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결이는 이곳에서 얼굴마담 역할을 했다.


가끔 회사를 홍보하는 SNS나 유튜브 영상에 등장할 때면, ‘전 굿모닝증권사 애널리스트’란 이력을 강조하는 자막을 내보냈다.

그나마 녀석의 세련된 얼굴과 이력이 투박해 보이는 회사 이미지에 신뢰감을 심어 주는 듯 보였다.


직원은 한 20여 명쯤 됐는데 모두 남자였고, 풍기는 이미지가 두 부류로 갈리었다.

동네 PC방을 드나드는 양아치이거나, 덩치 좋은 어깨이거나.


사무실 직원은 하나같이 어깨였고, 트레이딩실에 있는 소위 ‘꾼들’이라는 사람들은 그나마 순한 양아치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 양아치 무리 속 한 마리 순한 양이었다.


그들에게 한동안 ‘전문가가 데려온 똘마니’ 쯤으로 여겨지며, 꿔다 논 보릿자루마냥 한쪽 구석에서 트레이딩 교육을 받아야 했다.


“주식 처음 해봐?”

“네.”


나를 처음 가르치던 남자가 휴~ 한숨을 내쉬었다.


“하, 졸라···그럼 HTS가 뭔지는 아냐?”

“홈 트레이딩 시스템 약자 아닌가요?”

“염병할! 누가 대학 나온 놈 아니랄까 봐···.”


누군가 HTS를 켜라는 소리를 내가 몰라서 사전을 찾아본 거였다.


“꼬부랑 글씨 말고, 그게 뭐 하는 건지 아느냐고.”

“해석해보면 집에서 하는 거래시스템 같은데요···.”

“여기 보이는 화면 이게 HTS여. 잘 봐! 이걸 누르면 매수고 이걸 누르면 매도여···”


말이 트레이딩 교육이지, 기껏해야 컴퓨터의 HTS(PC용 주식거래창)나 핸드폰의 MTS(모바일용 주식거래창)에서 버튼 클릭하는 거에 익숙해지는 거였다.


이제 갓 들어온 군대 훈련병 같은 느낌. 사실 내 모습이 딱 그랬다. 1주일 동안 트레이딩을 배우느라 구석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그들의 회의에도 끼지 못했다.


내가 이제 좀 회사 분위기에 익숙할 때 즈음 게임중독자처럼 생긴 트레이더가 다가와서 말했다.


“이젠 여기에 싸인할 차례야.”


그가 준 서류에는 내가 유의해야 할 의무사항이 적혀있었다.


- 회사에서 제공한 작업용 계좌는 물론 본인의 계좌라도 회사에서 입금한 돈은 절대 함부로 건들지 말 것.

- 회사가 지시한 것 이외의 거래를 절대 하지 말 것.

- 회사에서 얻은 정보를 절대 누설하지 말 것.

- 만일 이를 어길 시, 본인이 얻은 모든 수익 및 회사 피해액의 10배를 배상해야 한다.


단순하군. 근데 10배 배상은 너무 오바 아닌가? 전 회사들에서도 비슷한 걸 써본 기억이 있지만.


내가 싸인하는 모습을 보며 트레이더가 말했다.


“조만간 직접 거래하게 될 거야. 아, 그리고 오늘은 대표님 방송하는 날이니까 직관해 보고.”


그리고 이날 나는 정말 인상 깊은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



오전 8시.

사무실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VIP 리딩방 무료 공개 방송을 준비 중이었다.

본래 비싼 회비를 내야 들어올 수 있는 방인데, 한 달에 한 번은 아무나 들어올 수 있도록 방을 오픈했다.

회원 유치의 목적도 있지만, 잠시 후 그것보다 더 큰 다른 목적이 숨어있다는 걸 알았다.


여러 대의 PC가 벽 쪽을 향해 붙여져 있고, 그 앞에 HTS가 켜진 모니터를 보며 줄지어 앉아있는 10여명의 꾼들이 보였다.


강희성이 기분 좋을 때는 우리 ‘정예부대’라며 추켜세우다가도, 뭐가 틀어지면 ‘일꾼 놈’들이 일을 똑바로 안 한다고 윽박질렀다.


강희성이 사무실에서 가장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내를 불렀다. 다른 이들은 장 실장이라고 부르는 사내다.


“짱구야, 작업 끝낸 놈들 가져 온나.”

“네. 형님.”


잠시 후 짱구로부터 서류 한 장을 받아 든 강 대표. 시선을 서류에 둔 채 다시 누군가를 불렀다.


“어이, 전문가!”

“네. 대표님.”


큰 소리로 대답하며 뛰어간 사람은 바로 김한결.


“얘네들 오늘 악재 없지?”

“기업분석을 해보니 일부는 적자가···.”

“아이 씨팔 또 그런다. 그딴 거 다 필요 없고, 오늘 터질만한 악재가 있냐 말야?”


강 대표는 곧 치러질 전쟁을 지휘하는 사령관처럼 예민해져 있었다. 무언가 만반의 준비를 하려는 듯 보였다.


“아, 예. 경제지랑 찌라시 모두 다 확인해 봤는데, 딱히 오늘 중으로 터질만한 뉴스는 없었습니다.”

“터지만 죽는다.”

“예.”


김한결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녀석은 책상 위에 개인 노트북을 펼쳐놓고 누군가와 통화하며 부지런히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오전 8시 30분.


-딸칵, 딸칵...


동시호가 시간이 되자 여기저기서 간헐적으로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희성 대표가 잠시 목을 가다듬더니 1인 방송용 카메라 장비 앞에 섰다.


“스텐바이··· 큐!”


곧이어 카메라맨이 손가락으로 오케이 싸인을 내자, 사무실 안을 울려 퍼지는 그의 걸쭉한 목소리.


“자, 승률 100% 남대문 투자클럽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자막엔 [남대문 투자클럽 VIP 리딩방 무료 공개 방송]


“남대문 투자클럽 VIP 회원님들 안녕하세요. 강한 남자, 강희성입니다. 오늘은 남대문 활짝 열고 다른 많은 여러분들을 초대했습니다. ···바로 종목추천 나갑니다. 여기 모니터를 보세요!!”


그의 뒤 벽으로 6대의 모니터. 그중 4대의 모니터에 떠 있는 추천종목들을 강 대표가 쭉 읽어 나갔다.


(1)**홀딩스

(2)**테크

(3)**Q

(4)**산업


앞의 두 종목은 전날 추천 종목이고, 뒤의 두 종목은 오늘 추천 종목이라는 설명과 함께.


“어제 추천 종목 아직 못 사신 분들은 따라가지 마시고, 오늘 추천한 종목 사시면 됩니다. 시초가 근처에 잡으세요!”


신규 추천 종목에 대해서는 대략적인 회사 설명을 덧붙인 다음 벽에 걸린 시계를 수시로 쳐다보고 있는 강희성 대표.


시간은 어느덧 오전 8시 50분. 장 시작 10분 전이다.

화면 하단에는 남대문 투자클럽 상담번호와 회비 입금 계좌를 자막으로 내보냈다.


[1개월 120만 원, 3개월 300만 원, 6개월 500만 원···]


그가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을 펼쳤다.


“자, 오늘 처음 오신 여러분들, 제가 이 손꾸락 걸고 약속합니다. 이 회비는 여러분이 앞으로 벌어갈 돈에 비하면 정말 새 발의 피! 껌값입니다. 껌값!”


자신감이 넘치는 강 대표의 멘트가 이어지는 가운데 사무실 감도는 전운.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트레이더들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묻어나왔다.


이와 대조적으로 사뭇 여유로운 표정의 강 대표.

장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오전 9시 정각.


- 장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자 모니터의 HTS 화면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니터마다 추천종목의 그래프와 호가창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는 가운데,


화면에 맨 처음으로 보였던 1번 종목 **홀딩스.


[**홀딩스 ↑10%]


장 시작하자마자 갭상승 출발이었다.

안내 멘트와 함께 쩌렁쩌렁 울리는 강 대표의 걸쭉한 목소리.


“자, 1번 타자 **홀딩스 가즈아!!”


동시에 트레이딩실에서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와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딸칵, 딸칵, 다닥, 딸칵, 다다닥······


“올라간다. 올라간다. **홀딩스 올라간다···.”


[**홀딩스 ↑23%]


다시 시초가보다 10% 이상 더 올라서 VI(변동성 완화 장치)가 걸려 버렸다.


동시에 실시간 댓글 창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 오우 대박!

- 벌써 VI라니···

- 난 아직 못 샀는데 지금 사도 돼요? ㅜ.ㅜ


그리고나서 2분 후, VI가 풀리더니 누군가 매수할 기회도 주지 않고 다시 순식간에 빨간 불기둥을 그리며 올라가는 주가.


더욱 흥분하는 강 대표 목소리.


“그려, 넌 미사일이다아아아············!!!”


정말 미사일처럼 수직 상승을 그리며 호가창 최상단에 멈춰버렸다. 상한가였다.


[**홀딩스 ↑ 29.99% 상한가.]


그 아래 실시간 댓글들은 난리가 났다.


- 대박!

- 역쉬~~~남대문!

- 와, 대단하십니다.

- 강 대표님 짱~!

- 이거 팔아야 하나요?

- 누가 쏜겨 미사일

······

···

..


일일이 읽기도 힘들 정도로 쏟아지는 댓글들.

하지만 이를 능숙하게 캐치하고 답변하는 강 대표.


“누가 팔으래유? 아따 쫌 시키는 대로만 하쇼이, 누님은 고작 커피값 벌라고 허벌라게 이 짓 하는 교?”


기세등등해진 장 대표가 갑자기 여러 지방 사투리를 섞어가며 쇼맨십을 부렸다.


- 강 대표님 마, 사투리 허벌라게 구수하시네유.

- 어디 사투리지?

- 서울 사람 아니었어?


그사이 다른 종목들도 조금씩 들썩이며 5%~10% 상승 중.

종목마다 호가창의 매수, 매도가 줄다리기를 하듯 위, 아래로 빠르게 출렁였다.


그러자, 강 대표가 이번에는 노래까지 불러대며 흥을 돋우었다.


“위, 아래, 위, 위, 아래··· 씨팔 xx 졸라 치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정말 모니터에 나타나는 호가창을 보니 위, 아래로 빠르게 들썩이는 모습이 마치 남자 성기의 xx 행위를 연상시켰다.


댓글 창 또한 덩달아 출렁였다.


- 아잉~~부끄러워라!

- 오빠 나 쌀 거 같애!

- 형님 나도 싸게 해주세요.


그때, 빠르게 20%를 돌파하는 2번 **테크.


“영차, 영차, 올라가자! **테크 어제 사신 회원분들은 이제 슬슬 남대문 여실 준비 하시구요.”


20% 근처에서 위, 아래로 매우 빠르게 들썩이는 호가창.


“그래 쳐라, 쳐! xx 존나 쳐라!···”


20%···23%···25%···28%···그러다가 30% 상한가를 목전에 두고 바로 스르륵 다시 20%로 미끄러지는 주가.


“하···지랄한다. 씨발 조루여 뭐여?”


- ㅠ.ㅠ 내가 건들면 꼭 죽더라.

- 오빠, 내가 대신 쳐줄까?

- 졸라 웃기네···


“아직 실망하긴 이르고, 쫌만 기다려 보쇼.”


강 대표가 지금 리딩방에 들어와 있는 인원을 확인했다.

순식간에 불어나 어느새 2,000명 남짓이 되어있었다.


얼굴에 미소를 띠더니 잠시 5분간 휴식 시간을 갖기로 하고 카메라를 벗어나는 장 대표. 짱구를 불렀다.


“짱구야, 안 되겠다. 외인부대 연락해서 약 좀 치라고 해라!”

“네?”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으라고.”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짱구가 다급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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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외인부대 23.05.18 247 7 11쪽
» 위 아래 위 위 아래 23.05.17 253 8 11쪽
6 남대문 투자클럽 23.05.17 257 7 10쪽
5 돈 버는 비밀 +1 23.05.16 271 7 11쪽
4 스물 한번째 회사에 들어가다 +2 23.05.15 280 5 11쪽
3 라면이 주식인 놈 +1 23.05.14 302 9 11쪽
2 패가망신 +2 23.05.14 391 10 12쪽
1 Prologue. 주식으로 안 망하는 세 가지 방법 +11 23.05.14 573 1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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