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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쏘울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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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쏘울
작품등록일 :
2023.05.14 20:21
최근연재일 :
2023.09.09 13:34
연재수 :
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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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
글자수 :
332,534

작성
23.05.15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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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스물 한번째 회사에 들어가다

DUMMY

다음 날 아침.


늘 그렇듯 만보기 앱을 켜고 집을 나섰다.


‘하, 어제는 자제했어야 했는데···’


걷는 내내 어제 일을 떠올렸다. 독한 술 때문에 간만에 필름이 끊겼다.

처음엔 녀석이 또 무슨 부탁이 있길래 굳이 그런 곳까지 가서 대접할까 하는 생각에 조금 긴장했다.


하지만 다행이다. 기껏해야 주식계좌 하나 터 준 게 다였으니.

친구 놈 실적 하나 올려주는 셈 치고 들어줬다. 어차피 내 계좌는 줄곧 빈 계좌로 있을 게 분명하다. 그러니 내가 더 미안할 뿐.


아, 그리고 그 와인바 서버.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소주 마시듯 코냑을 들이키고 있었을 때, 그녀가 다시 다가왔다.

그리고 내게 술잔 잡는 법과 코냑 마시는 법 등을 알려주며 제법 친해진 거 같은데···.


잠깐 그녀와 사귀는 상상을 해봤다. 헛웃음만 나왔다.


“미친 놈···”


정신 차려라. 술집 여자라고 깐봤다간 상처만 받는다.

그녀는 그곳을 출입하는 레벨 높으신 자들에게 이미 잔뜩 눈이 높아져 있을 게 분명하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 근데 씨발 그 솔잎조차 내겐 왜 안 오는 거냐!


오늘이 벌써 21번째 회사. 정규직 한 번 못하고 3년 동안 임시직만 스무 군데가 넘는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다. 아마 최단기간 경험한 회사 수로는 기네스북 기록일 거다.


참 이상하기도 하지. 하나가 막히면 하나가 뚫리고, 또 하나가 막히면 하나가 뚫리고···

그러다 보면 늘 제자리.



***



“파인전자, 주아유통, 와우케미칼, 다움미디어, HM건설, 베타식품, 천둥···”

“헉···정우진씨 같은 분은 처음 봅니다. 정말 이렇게 많은 곳에서 일하셨다구요?”

“네.”


두 명의 면접관이 내 서류를 보더니 감탄(?)했다.

어떻게 보면 대견하기도 하다. 그렇게 많은 곳에 합격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니. 모두 임시직이라 그렇지.


이상하게 직종마저 각양각색이다. IT, 반도체, 화학, 전기, 전자, 건설, 유통은 물론 서비스업까지···.


이번에 지원한 이 바이오기업까지 들어가게 되면 이제 웬만한 업종은 거의 다 돌아다니게 되는 셈이 된다.


“그럼 파인전자에선 무슨 일을 하셨죠?”

“기술연구소 총무과에서 재물조사 등 사무보조로 일했습니다.”

“와우케미칼에서는요?”

“거기도 총무과에서···.”

“그런데 이 모든 곳에서 임시직이나 계약직으로만 계셨다구요?”

“네.”

“그럼 결국 정규직에서 다 떨어지신 거네요?”

“···그렇죠.”

“허, 참···”


너희도 어이가 없냐? 나도 어이없다. 이상하게도 일 잘한다고 할 땐 언제고 항상 나를 떨어트렸다. 물론 생각해 보면 나에게도 잘못이 있었다.


꼭 회사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내가 몸이 아프거나 집안에 일이 생겼다. 그게 아직도 미스터리다.


이상하게 아무 긴장도 되지 않았다. 이런 면접에는 이제 신물이 났기 때문이다. 어차피 임시직인데 서류심사에 면접까지 봐야 하는 게 짜증이 날 뿐.


“알겠습니다. 경험은 풍부하시겠네요. 그럼 다음 분···”


취업난이 심각하긴 한가 보다. 1명 뽑는 임시직에 내 뒤로 10명 가까이가 더 대기 중이라니.


잠시 꺼 놓았던 핸드폰을 켜자, 문자가 와있었다.


[종목추천 무료혜택 고수익보장! 주식이 답이다!]


뭐지? 종목추천, 주식··· 이거 혹시 한결이 놈이 보냈나? 하지만 녀석의 번호는 아니다.

그동안 심심찮게 돈 빌리라는 대출 문자는 받아봤어도 주식 문자는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서 동네 한 바퀴를 돌며 만보기의 남은 걸음을 채웠다. 그런 다음, 라면 하나 끓여 먹고 TV를 보는데 다시 문자가 왔다.


이번에는 기다리던 문자였다.


-안녕하세요. ㈜솔수바이오입니다. 정우진씨의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내일부터 출근 바랍니다.


휴!


임시직이라 역시 결과가 빨리 나왔다. 이로써 21번째 임시직 합격이다.


'당분간 공사판은 안 나가도 되겠군!'



***



- 정우진씨인가요?

“예, 그런데요.”

- 여기는 즐투 인베스트먼트인데요,

“어디라구요? 즐···뭐요?”

- 즐투 인베스트먼트라구요. 선생님 다름이 아니라 주식 하시죠?


뚝!


주식이라는 말에 바로 전화기를 끊어버렸다.


하아, 또···


회사에서 일하다가 무심코 이런 전화를 받으면 화가 치밀어올랐다.

최근에 이런 광고 문자와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결국 한결이에게 전화를 하고서야 알았다.


-아 그거? 우진아, 미안하다. 계좌 틀 때 광고 수신 금지를 깜박하고 안 눌렀나 보다. 지금이라도 네가 함 바꿔볼래?

“얌마, 난 몰라. 아디랑 비번 다 까먹었다고. 귀찮으니까 네가 알아서 바꿔놔!”

-알았다. 확인할게.


지난번 한결이 놈에게 가입한 내 인생 최초의 주식계좌. 바로 그게 범인이었다.

내가 아이디랑 비번을 모르는 건 당연했다. 애초에 사용할 생각으로 만든 게 아니었으니까.



***



새로 들어간 회사에서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신입치고는 일 처리가 굉장히 빠르더군요.”

“별말씀을요.”


내 업무는 전부터 익숙하던 총무과 따까리였다.

원래 작은 회사의 총무과라 함은 거의 반 사무직, 반 잡부가 되는 것이거나 영업직을 사기로 뽑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대신 회사 돌아가는 사정은 밝았다. 회사 매출과 영업이익 등은 물론 어떤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지 눈대중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갖는다는 술자리 회식 날.


술이 얼근하게 들어가자 이들에게서 또 내가 싫어하는 이야기가 들렸다. 내 앞에 앉은 박 과장과 김 대리를 통해서였다.


“김 대리 요즘 주식 좀 올랐나 보네? 맨날 깨지고도 그렇게 싱글벙글인 걸 보면.”

“맞습니다. 과장님. 제가 그나마 이놈 땜에 삽니다.”

“**하이텍?”

“네.”

“얼마나 올랐는데?”

“오르락 내리락 하더니 오늘은 7% 올랐더라구요.”

“아니, 그래서 누적이 얼마냐고?”

“작년에 500 넣었는데 지금은 800 좀 넘었습니다. 제가 올해 안으로 1,000만 찍는 거 보고 싶었는데, 고지가 멀지 않았습니다. 과장님. 후훗.”


뭐? 500 넣었는데 800? 나도 모르게 계산하고 있었다. 그럼 60% 수익. 정말일까? 정말 1년 만에 60% 수익이 난다고?

은행에 넣어둔 내 돈의 이자율을 생각하니 갑자기 배가 아파왔다.


평소 한결이가 주식 이야기를 할 때는 귀담아듣지 않았었다. 녀석이 워낙 허세를 잘 부리기도 하지만 그는 증권사 직원이었다.


그런데 김 대리는 달랐다. 나보다 두 살 어린데다, 평소 회사에서 지켜본바, 그는 상사라고 하기엔 일 처리 능력이 한참 부족해 보였다.

저런 자도 주식으로 돈을 번다고?


“그래 잘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비전이 있지. 회사 월급 가지고는 절대 집 못 산다, 너.”

“명심하겠습니다. 과장님!”


옆에 앉은 여직원들도 이들의 주식 얘기에 끼어들었다.


“근데, 과장님은 얼마나 버셨어요?”

“박 과장님은 1년 만에 따블 버셨잖아요. 그럼 회사 연봉보다 더 버신 거 아니에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박 과장이 뿌듯해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나야 뭐 주식 공부 많이 했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이젠 웬만한 에널리스트 놈들보다 내 수익률이 더 좋더라고, 허허.”

“햐아! 대단하쉽니다. 과장님.”


김 대리가 아부를 떨었다. 주식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왠지 회사 상사와 부하직원의 대화라기엔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 대리. 주식에서 안 망하는 방법이 뭔 줄 아나?”

“그게 뭔데요?”

“첫 번째! 주식을 안 하는 거야.”

“에이, 과장님도 참···”

“두 번째! 안 망할 회사에 투자하는 거다, 이거야.”

“······.”

“우리나라 주식 그래프는 늘 여러 개의 능선을 그려왔어. 언젠가는 수익을 준단 말이지. 종목에 따라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아···”

“그럼 빨리 돈 버는 방법은 뭔 줄 아나?”

“그, 그건 뭔데요?”


어느새 나도 박 과장의 말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건 바로 세력이란 놈들에 빌붙는 거야.”

“세력?”

“그래. 그 세력을 이기려단 좆되는 거고”

“역시 과장님은 제 주식의 멘토쉽니다.”


박 과장이 술잔을 들어 올리다 말고 나를 바라봤다.


“자 우진씨도 짠 하지!”

“아, 네.”


짠!!


“근데 우진씨는 주식 안 해?”

“저는······”


머뭇거리자, 김 대리가 끼어들며 주접을 떨었다.


“아, 과장님, 주식은 아무나 합니까? 과장님처럼 명석한 두뇌가 있던가, 저처럼 훌륭한 스승이 계시던가···. 앙그럽니까? 수숭님. 후하하.”


김 대리의 혀가 점점 꼬여가고 있었다. 내 기분도 같이 꼬여갔다. 이놈은 술자리에서까지 반말하며 나를 또 무시하는구나!


“아까 과장님한테 들었지 우쥔씨. 주쉭으로 안 망하는 방법 첫 번째··· 절대 우진씨는 주쉭하지 말아라. 내가 선배라서 하는 소리야. 개나 소나 다 쥬쉭하는 거 아니다 너···.”


평소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였다. 바로 내 엄마에게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자주 듣던 소리.

지금껏 그 소리를 삶의 교훈처럼 믿고 살아왔던 나인데, 이놈에게서 들으니 갑자기 기분이 더러워진다.


하지만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김 대리 말은 무시하고 박 과장을 향해 물었다.


“근데 과장님. 우리 회사 주식은 안 사시나요?”


순간, 그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대신 김 대리가 덥석 큰소리로 대답했다.


“미촸냐? 너 같으면 이 좆같은 회사 주식 사고 싶겠냐?”

“······.”


순간, 주위에 있던 여직원들 시선이 일제히 이쪽을 향했다.

앞에 앉은 박 과장의 미간도 확 찌푸려졌다.


- 지이이잉 지이이잉


김한결. 놈의 전화가 이렇게 반갑기는 처음이다.

전화를 받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응 한결아.”

-우진아 너 계좌 좀 열어봐!

“뭔데? 나는 계좌 아이디랑 비번도 모른다니까.”

-그건 내가 문자로 알려줄 테니까 글쎄 한번 열어봐.


녀석의 지시대로 증권사 어플을 열고 들어갔다.


"헉! 뭐야 이건?"


잔고를 확인한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총매수금액: 1억 원]

[총평가금액: 2억 1천만 원]

[평가손익: 1억 1천만 원]


당연히 0일 거라고 생각했던 내 계좌에는 무려 2억 원이 넘는 돈이 찍혀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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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물 한번째 회사에 들어가다 +2 23.05.15 281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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