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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쏘울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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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쏘울
작품등록일 :
2023.05.14 20:21
최근연재일 :
2023.09.09 13:34
연재수 :
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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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
글자수 :
332,534

작성
23.05.14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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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패가망신

DUMMY

- 쏴!···


조그만 실개천이 마을을 반으로 가르며 흐르고 있었다.

그 주위로는 기다란 둑길을 사이에 두고 논들이 드넓은 벌판을 이루고 있다.


엄마 치마폭에서만 놀던 내게 가장 먼저 놀이터를 제공한 건 바로 우리 집 옆을 흐르고 있는 개천이었다.

특히 여름이면 동네 아이들이 몰려들어 미역을 감고 물고기도 잡으며 하루를 분주하게 보낼 수 있던 곳.


미끌거리는 제방에 게딱지 마냥 달라붙은 아이들은 떨어지는 물줄기를 한 아름 등으로 받아내면서 종종 내 쪽을 쳐다보았다.

그중 제일 덩치가 큰 놈이 나를 불렀다.


“야, 정우진!”


부르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 있던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물고기를 잡을 때 쓰는 어망이 던져지듯 나를 향했다.


“······?”

“너희 아빠 신이었다며?”

“크크큭···”


일부는 벌써 키득대고 웃고 있었지만,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무슨 신···?”

“패.가.망.신!”

“후하하하···.”


키득대던 아이들이 일제히 참고 있던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예닐곱 살밖에 안 된 나이었기에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리고 거기에는 나 같은 놈들도 끼어 있었다.


“근데 패가망신이 뭐야?”

“몰러, 울 엄마가 그러는디 암튼 디게 무서운 신이랴!”


어느 정도 큰 후에야 엄마로부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주식의 주자도 모르다가 주식으로 패가망신하고 죽은 내 아버지······.


그러나 모욕과 망신을 당하는 건 남은 자들의 몫이었다. 남은 자는 나와 내 엄마.


“니가 그 주식으로 망했다는 서당골 정씨 아들이구나! 쯧쯧쯧.”

“쟤네 아빠 도박하다 쫄딱 망해서 죽었다며?”

“우짠댜~ 우진 엄마는 참 안됐네, 늙은 총각한티 시집와서 저런 꼴까정 당하구···”

“니네 엄마 과부냐?”


아비 없이 자란 어린 철부지에게 들려오는 아비의 흔적이란 게 참으로 서글펐다.


‘패가망신 정씨 아들!’


한동안 내 이름을 대신한 호칭이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난감해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생판 본 적도 없는 아버지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 엄만 단 한 번도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으셨다.

다만 가끔 그녀에게 남아있는 트라우마의 크기로 마음속 고통을 짐작할 수 있었다.


“썩을 놈의 주식! 내 앞에서 주식의 주짜도 꺼내지 말어!”


욕 한번 하신 적 없던 분의 입에서 나오는 가장 거친 소리였다.


그러면서 매년 아버지 제사를 잊지 않고 지내는 엄마를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굳이 죽은 사람을 위해서 그렇게까지 정성껏 제사를 지내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해마다 제사상 위에는 늘 아버지가 좋아하던 음식들로 푸짐했다.


그리고 그 음식들과 함께했던 영정사진······


그 사진 속에 햇볕에 그을린 까만 얼굴의 아저씨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나는 어릴 적 그 사진이 그렇게도 싫었다.


아버지는 충남 공주 한 시골 마을의 가난한 농촌 총각이었다.

친구들은 모두 객지로 나갈 때 혼자만 시골에 남아서 농사를 짓던 남자. 그런 사람에게 여자들이 따를 리 만무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남자를 사랑했다.

중매쟁이의 소개로 만나 12살 나이 차와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했다. 그의 자상함과 성실함에 반했다고 했다.


가끔 사진을 들여다보며 아버지의 구릿빛 잘생긴 얼굴이 생각난다고 하시는 걸 보면, 그의 외모도 한몫한 모양이다.


아버지는 엄마를 끔찍이도 아꼈다고 했다.

하기야, 늙은 농촌 총각을 구제해 준 꽃다운 나이의 아내가 얼마나 예뻤겠는가.

마을에서 가장 금실 좋은 부부로 소문이 날 정도였다.


엄마는 무슨 동화책 이야기하듯 가난했지만, 행복했다고 했다.

다 가난하던 시절이니 그럴 수도 있었다. 지금 내가 그런 소리를 하면 친구들은 아마 나를 병신 취급할 것이다.


시간이 흘러 그 금실 좋은 집에 아이가 생겼다.

아버지는 당연히 뛸 듯이 기뻐했고 아직 태어나지 않았지만, 아들이란걸 알고 이름까지 지어주었다.


“우리 복덩어리, 우진아, 무럭무럭 자라거라!”


아버지는 엄마 배를 그렇게 쓰다듬으며 말했다고 했다.

하지만, 배 속에 있던 나는······

복덩어리가 아니었다.


내가 생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엄마의 배가 불러올수록 그 근심 또한 불거져 갔다.


눈치 빠른 엄마가 물었다.


“여보, 요즘 무슨 걱정 있어요?”

“응? 걱정은 무슨···”


아버지의 성격을 아는 엄마는 그 이유를 동네 사람들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가 몇 달 전부터 주식을 샀다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그는 은행에서 현찰 주고 산 것이니 믿을만하다고 생각했다. 1990년경이니 전산망이 제대로 갖춰지기도 전이다.


“우리 우진이 태어나면 아빠가 부자로 맹그러줄께이?”


석 달 후 태어날 나를 위한 거였다.

누군가가 석 달이면 확실히 두 배가 될 거라는 말에 잘 알지도 못하는 증권을 받아온 것이다.


그 후 아버지는 장이 열릴 때마다 은행에 들렀다. 얼마나 올랐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한 달이 못 가서 주식은 반토막이 나 있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무언가에 홀린 듯 더 많은 증권을 사들였다.


그러다 결국 내가 태어날 무렵이 되자, 그동안 사들였던 증권은 휴지 조각이 되어버렸다. 곧 부도날 회사의 쓰레기 주식을 산 것이다.


그 후로 늘 강인한 줄만 알았던 모습이 급격히 변해갔다.

안 하던 약주까지 하시더니, 어느 날은 엄마의 임신한 배를 어루만지시며 펑펑 우시더란다.

태어날 아가를 볼 면목이 없다면서···.


그리고 정말 내가 태어나던 날······

아버지는 없었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웬 술 취한 사람이 차로에 누워있는 걸 마을 사람이 발견해서 가봤을 땐 아버지가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엄마는 그 충격으로 쓰러진 뒤 다음 날 나를 낳으셨다.


그렇게 해서 내 생일은 늘 아버지 제삿날 다음 날.

그리고 이 일로 인해 우리 집은 마을에서 주식으로 패가망신한 집이 되어버렸다.

그들에게 절대 주식 같은 걸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주는 집으로.


아버지는 그렇게 사랑하던 엄마에게 유언이나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으셨다. 엄마는 그게 못내 서운한지 그것 때문에 또 우셨다.

하지만, 얼마지 않아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 장례식을 치른 뒤 한 보험회사 직원이 집으로 찾아왔다.

언제 가입해 놓았는지 아버지 앞으로 1억 원의 생명보험이 들어있다고 했다.

엄마는 아버지가 자신의 빚더미 대신에 사망보험금이라도 남기고 싶었던 모양이라고 했다.


“우진아, 너는 이런 촌구석에서 이 애비처럼 가난하게 살지 말고 꼭 부자가 돼야 뎌! 알았지?”


그게 그나마 내 아버지가 배 속에 있던 내게 남긴 마지막 유언이었다.



***



내 나이 27세.

대학을 졸업한 지 2년이 지났다.


그 사이 여러 번 직장이 바뀌었다.

자의가 아니었다.

들어간 직장마다 3개월짜리 임시직이었고,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정직원은 꼭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되어있었다.


“아줌마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간만에 친구들이 불러서 들어간 포장마차.

뜨끈한 어묵 국물을 앞에 두고 나는 차가운 소주잔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쓴 알코올 기운이 캬아~ 소리와 함께 입에서 휘발되어 나왔다.


앞에는 오늘 나를 부른 놈들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어느새 벌써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야, 걔 있잖아 김한결. 그 자식 주식으로 돈 좀 벌었다며?”

“그렇다드라, 그 돈으로 밀린 학자금 대출까지 다 갚았다고···”

“헐, 씹새끼 존나 양아치 같던 새끼가 운도 좋아요.”

“야, 그리고 그 뭐냐? 대학 다닐 때 우리 과 킹카였던 박소연. 그 애랑도 사귄다는데!”

“아 그 존나 이쁜 애? 헐, 대박 운 좋은 새끼!”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박소연은 한때 짝사랑하던 경영학과 후배였다.


친구가 주식으로 돈 버는 건 부럽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주식은 부정적인 것으로 세뇌를 당한 상태니까.

그러나 마음을 준 여자를 빼앗긴 건 못내 아쉬웠다.


그동안 억눌렀던 부러움과 열등감이 교차하는 순간.

자못 태연한 표정으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야, 걔네들 어떻게 사귀게 됐냐?”


나랑 같은 부강대 경영학과를 나온 오성택이 재밌다는 듯 박수를 짝, 치며 말했다.


“아, 맞다, 짠돌이 너 소연이 걔 좋아했었지?”

“······.”

“그래? 우진이가? 캬아~ 이 짜아식 이거 속 좀 쓰리겠는 걸, 크크, 한잔해 임마!”


동철이란 놈은 갑자기 내 어깨를 토닥이며 술을 따랐다. 순간 나는 처량한 놈이 되어버렸다.


“장난 말고 자식들아. 김한결하고 박소연 어떻게 사귄 거냐고?”

“어떻게 사귀긴 씨발 돈 많으니까 사귀었겠지. 여자들치고 돈 안 좋아하는 년 봤냐?”


평소에도 입이 거친 동철이 놈이 먼저 대답했다.

사실 이놈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거친 삶의 전선에 뛰어든 놈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대학 나온 나랑 같은 공사판에서 마주치기도 한다.


“대학 나오면 뭐하냐? 고졸이랑 같이 노가다 뛰는디. 시팔 돈이 최고랑께. 앙그냐, 찌질아?”

“이게···확!”


내가 주먹을 불끈 쥐자, 성택이 말리며 입을 열었다.


“그게 아니고, 김한결이가 꼬셨대. 걔 알잖아 여자들 앞에서 아가리 잘 터는 거. 그 자식이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워렌버핏 어쩌구 하면서 말야.”

“······.”

“하루는 소연이가 그러더라, 한결 오빠가 졸라 멋져 보인다구. 그놈 좀 있으면 증권사 애널리스트 된다지 아마?”

“···애널리스트?!”


- 꺼억~


듣고 있던 동철이가 소주 한잔을 꺾더니 다시 촉새처럼 끼어들었다.


“야, 우진아 그만하고 한잔 해! 씨벌 너두 졸라 벌면 되는 거지, 앙그냐?”


허공에 떠 있는 놈의 술잔에 내 술잔을 세게 부딪혔다.


쨍~!


경쾌한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아까와 다르게 쓰디쓴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장 속으로 잘도 들어갔다. 그제야 슬슬 술기운이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근디 우린 뭘 해서 부자된다냐?”

“······.”


순간, 술맛이 확 달아났다.


부자?

나는 아버지의 유언대로 부자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엄마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부자가 된다고 말씀하셨다.


시골에선 그나마 공부 좀 한다는 소리를 듣다가 결국 지방 국립대 수준밖에 안 된다는 걸 깨달았지만, 그래도 엄마는 내가 무안할 만큼 기뻐해 주셨다.


하루아침에 농사꾼의 아내에서 과부로 전락한 우리 엄마.

남자 없이 혼자서 고된 농사일을 하도록 놔둘 수 없다.

희고 고왔던 얼굴이 농사일로 제사상에 놓인 아버지 영정사진처럼 검게 변해가는 모습도 더 이상 보기 싫었다.


“엄마 내가 졸업해서 돈 벌면 꼭 아파트에서 같이 살아요. 농사는 이제 그만하시고···.”


대학 입학식 때 했던 그 말을, 제기랄! 지킬 수 있으려나···.

한숨만 나왔다.


“휴우······.”


그때였다.


딱!


공사판에서 단련된 거친 동철이의 손바닥이 내 뒤통수를 후려쳤다.


“얌마, 땅 꺼지겠다. 젊은 놈이 한숨은··· 소연이가 그렇게 그립더냐? 후하핫.”

“디질래? 그거 아니거든!”

“야, 니들 싸우지 말고 2차 가자, 2차!”

“난 돈 없다.”

“저 찌질이 또 짠돌이 짓 한다. 꺼억!”


몇 달 후 결국 나는 박소연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렇게 내 인생 첫사랑을 마음속에서 떠나보내고 그녀와의 인연은 끝이 났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 첫사랑을 빼앗아 간 친구 놈과의 인연은 이제야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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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외인부대 23.05.18 248 7 11쪽
7 위 아래 위 위 아래 23.05.17 253 8 11쪽
6 남대문 투자클럽 23.05.17 257 7 10쪽
5 돈 버는 비밀 +1 23.05.16 272 7 11쪽
4 스물 한번째 회사에 들어가다 +2 23.05.15 281 5 11쪽
3 라면이 주식인 놈 +1 23.05.14 302 9 11쪽
» 패가망신 +2 23.05.14 392 10 12쪽
1 Prologue. 주식으로 안 망하는 세 가지 방법 +11 23.05.14 573 1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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