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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쏘울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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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쏘울
작품등록일 :
2023.05.14 20:21
최근연재일 :
2023.09.09 13:34
연재수 :
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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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22
추천수 :
362
글자수 :
33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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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0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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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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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0쪽

아침마다 오는 암호

DUMMY

동네 포장마차로 자리를 옮긴 후, 하던 얘기를 마저 나눴다.


“양아치 세력이 돈을 더 잘 번다는 거야, 나 같은 좃문가들 보다. 씨발.”

“······.”

“맨날 기업분석하고 리포트가 어떠니, 저떠니 하면서 존나 힘들게 추천한 종목들은 다 꼬라박더라고, 시장이 안 좋으니까. 그런데 뭐가 제일 잘 간 줄 아니?”

“······.”

“씨발, 금방 망할 거 같아서 아무도 관심 없던 종목. 그것도 시총 존나 작은 종목. 그런 게 더 잘 가더라.”


흥분한 김한결의 말투가 어느새 장 대표를 닮아가고 있었다.


“근데 그런 걸 누가 건드는 줄 아니?”

“······?”

“바로 세력이야.”


녀석이 전에 했던 말이 생각났다. 돈 버는 비밀이 많은 곳이라 다닌다고 했던 말.


“여긴 없는 것도 만들어내는 곳이야.”

“······없는 것도 만들어낸다고?”

“그럼 그 많은 돈을 처넣는데 그 정도도 안 하겠니? 업체랑도 짜고, 기레기들한테 약도 치고, 종토방 찌라시도 뿌리고 하는 거지.”

“···업체랑도?”


-풋


순진하다는 듯 다시 눈을 내려까는 김한결.


“이유 없이 상한가 보내는 놈들은 없어.”

“······.”

“자금 존나 들여서 올렸다가 팔지도 못하면 좃되니까. 조만간 터질 재료가 있는 놈들이야. 우리는 그때 팔아먹으려고 매집한 거고.”


회사에 드나드는 우락부락한 이들의 정체도 궁금했다.


“그럼 그 많은 돈들은 다 어디서 나는 거니?”

“형님들.”

“설마 그?”


김한결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전에 와인바에서 대표님이 VIP 고객이라고 했던 그분 기억나지?”

“응”

“그분이 지금 작업하는 B101 최대 물주야. 조직 우두머리이기도 하고.”

“······.”

“그래서 더욱 조심하는 거야. 잘못되면 좆되거든.”


그러니까 내 계좌에 있는 돈들도 결국···.

찝찝했다. 그게 조직폭력배들 돈일 줄이야.


“그러니까 결국 네 말은 B101이란 종목은 아직도 그들 돈으로 매집하는 거다?”

“댓츠 롸잇!”

“그건 알겠는데, 그럼 이건 왜 이리 많은 계좌로 작업하는 거냐? 너도 12개나 된다며.”


그러자, 녀석은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야 임마, 더 크게 먹으려고 그러지.”

“······?”

“존나 크게.”


녀석의 얼굴에는 다시 부푼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



집에 돌아온 후 줄곧 병진물산이란 회사에 대해 검색했다.

남성복과 정장 캐주얼을 생산, 판매하는 시총 400억 짜리 회사. 하지만,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적자를 지속 중이었다.


그 외 PBR이니 PER이니 하는 것들은 뭔 말인지 모르겠고, 한결이 녀석도 어차피 세력이 작업 중인 물건은 그딴 기업분석이 필요 없다고 했었으니 패스.


뉴스를 검색하니, 대기업 인수설로 주가가 상승 중이라는 마이너 신문사의 짤막한 뉴스만 올라와 있었다.


‘이게 그 호재란 건가?’


HTS를 열었다.


[병진물산]

[현재가: 7,400원]

[전일대비: + 3.0%]


매일 확인하는 거지만 볼 때마다 떨리기는 마찬가지.

시장이 안 좋은데도 주가는 좀처럼 떨어질 기미를 모르며 꾸준히 우상향 중이었다.


“적은 돈이 들어간 종목은 수익률이 높아야 크게 먹지만, 큰돈이 들어간 종목은 수익률이 낮아도 크게 먹을 수 있어.”


한결이가 한 말을 곱씹었다.

1억이 10배 가봐야 10억이지만, 100억이 두 배만 돼도 200억이란 얘기랑 같았다.


그러니까 남대문에서 더 많은 금액을 충실히 매집했다가 나중에 팔겠다는 얘기군. 그런데 이게 정말로 열 배까지 간다고?


한결이 말에 의하면 처음 작업할 때가 2,000원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2만 원까지 간다는 얘긴데···

그렇다면 지금 가격도 매우 싼 가격이다.


나도 한결이처럼 내 돈을 넣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좀 더 확인해야 한다. 나는 아직 한 번도 거래해 본 적도 없다.


일단 나만의 계좌라도 만들어 놓자는 생각으로 한결이가 만들어준 굿모닝 증권사 대신, 쏘울 증권사 계좌를 하나 더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남대문에서 작업하는 계좌를 확인했다.


[보유주식수: 6만 주]

[총매수금액: 1억 8천만 원]

[총평가금액: 4억 4천만 원]

[평가손익: +2억 6천만 원]


며칠 전부터 주가는 상승하는데 내 계좌에서는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멈춰있는 듯 보였다.


‘뭐지?’


앞으로 더 오를 거라고 가정하면 이왕 매집할 거 가격이 쌀 때 매집해야 수익이 커질 텐데 왜 멈춘 걸까?

가격이 계속 오르는 걸 보면 다른 루트로는 계속 매집을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내가 직접 거래하라고 한 건가?’



***



며칠 후.

나는 아침부터 긴장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당분간 재택근무하라는 지침을 내리며 거래에 사용할 전용 노트북까지 건넨 상태다.무조건 수신받은 문자대로만 거래하라는 말과 함께.


계좌를 확인했다. 오늘 아침 회사로부터 입금된 돈이 보였다.


[매수가능금액: 1억 5백만 원]


오전 8시 30분.

오기로 한 문자도 정확한 시간에 도착했다.


[B101, 9~10, 13, 1만 시장]


나는 이 암호와 같은 문자가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를 전달받았다.


풀이하면 B101란 종목을, 9시~10시 사이에, 호가창에 1313이란 숫자가 연속으로 보일 때, 1만 주 매수하란 얘기였다.


즉, 첫 번째 항목은 종목명, 두 번째는 작전 개시 시간. 세 번째는 호가창 암호, 네 번째는 거래할 양인 셈이다.


특히 주목해서 봐야 하는 게 호가창 암호였다.

호가창은 매수하려는 자들과 매도하려는 자들이 만나 시장가를 형성하는 곳이다.


이때 시장가로 매수, 매도하는 물량이 실시간으로 보여지는데, 이를 이용해서 일정한 물량을 프로그램으로 반복적으로 거래하며 암호를 만들 거라고 했다.


아무튼 이 문자에 나와 있는 암호대로 거래를 해야 했다. 내 인생 첫 주식거래인 것이다.


현재 시각 8시 50분.


- 지이이이잉


이번에는 전화였다.


- B101, 9~10, 13, 1만 시장.

“······네.”


-뚝.


내가 거래 암호를 제대로 받았는지 재차 확인하는 모양이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노트북 HTS 화면 위로 보이는 건 오로지 단 한 종목.


[병진물산]

[현재가 8,000원]


이틀 전보다 더 올라간 가격이었다.

회사에서 보낸 문자를 확인하며 숫자들이 의미하는 바를 다시 한번 속으로 되새겼다.


9시 정각.


- 장이 시작되었습니다.


시선은 호가창에 집중했다.

이 속에서 13이란 숫자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호가창에서는 누군가 매수하면 매수한 만큼의 수량이 빨간색 숫자로, 누군가 매도하면 파란색 숫자로 보여진다.

그 속에서 13이란 숫자를 찾아야 했다. 그 숫자가 보일 때 1만 주를 매수하기 위해서다.


아직은 불규칙적인 숫자만 보였다. 가끔 반복적인 숫자들이 눈에 들어오긴 했지만, 내 거래 암호인 13은 아니었다.


장 시작 후 10분여 동안 그렇게 눈이 빠지게 신호를 기다렸지만, 호가창은 여전히 잠잠했다.


매수하기 위해 아래에 받쳐둔 매수 잔량과 매도하기 위해 위에 받쳐둔 매도 잔량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30분이 지나자, 점점 매도 물량이 더 많이 쌓이기 시작하더니 10만 주 넘게 쌓이고, 매도를 나타내는 파란색 숫자도 점점 더 많아졌다.

팔고 싶은 이들이 더 많은 것이다. 주가가 이미 두 달 넘게 오른 상태였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호가창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방금 누군가 순식간에 큰 매도 물량을 삼키고 지나간 것이다.


금액으로 치면 10억이나 되는 돈을 누가···?


눈앞에서 큰 벽처럼 보이던 매도 잔량이 사라지는 걸 확인한 순간 주가가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다.


7%··· 15%··· 20%··· 23%···


너무 지나치게 오른다 싶더니 잠시 주춤하는 주가.

그러다 이번엔 또 급격히 떨어졌다.


20%··· 15%···12%···10%···


그러다 다시 상승.


15%··· 20%··· 25%··· 28%···


주가가 지난번 리딩방에서 봤을 때처럼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며 롤러코스트를 타고 있었다.

나는 한눈팔새 없이 줄곧 호가창에 수직으로 어지럽게 떨어지는 숫자들만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종목이 28~29%에서 주춤하는 사이 호가창에 수직으로 쏟아지는 빨간 숫자들!


13

13

13

13

13

..

.


매수하라는 신호였다.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병진물산 ↑ 30% 상한가]


[현재가 10,400]


순간 엄청난 거래량이 터졌고, 종목은 어느새 상한가에 도달해 있었다.


체결가격을 보니 상한가인 10,400원.


역시 나는 초보였다. 두 개 아래 호가에서 신호를 봤는데 손이 느렸는지 위에서 체결된 것이다. 그래서 내 계좌의 평균 단가 역시 조금 올라갔다.


내 주문 수량은 10,000주. 총매수금액은 1억 400만 원.

회사가 내 계좌에 입금한 돈이 왜 1억 500만 원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들은 오늘 상한가를 보내기로 이미 작정한 거였다. 그리고 내 계좌는 명의만 내 것일 뿐 그들의 의도대로 쓰였다.


‘후~ 별거 아니군!’


임무를 끝냈다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쓴웃음이 나왔다.


‘그럼 이게 내 인생의 첫 거래인 건가!’


내 돈으로 산 게 아니니까 투자는 아니고, 그럼 뭐라고 해야 하나. 심부름? 대리?···


인정하기 싫지만, 내 첫 주식거래는 누군가를 위한 대리거래였다.


그동안 꾹꾹 참아왔던 욕심이 슬슬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도 한 번 직접 사볼까?’


어차피 회사 계약서에 개인적으로 사지 말라는 말은 없었다.

그리고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분명 오를 것이다.


-드르르르륵~


그때 핸드폰이 책상에 부딪는 소리를 내며 울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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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위 아래 위 위 아래 23.05.17 253 8 11쪽
6 남대문 투자클럽 23.05.17 257 7 10쪽
5 돈 버는 비밀 +1 23.05.16 272 7 11쪽
4 스물 한번째 회사에 들어가다 +2 23.05.15 280 5 11쪽
3 라면이 주식인 놈 +1 23.05.14 302 9 11쪽
2 패가망신 +2 23.05.14 391 10 12쪽
1 Prologue. 주식으로 안 망하는 세 가지 방법 +11 23.05.14 573 1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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