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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KaHaL 님의 서재입니다.

극랑전(極狼傳)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KaHaL
작품등록일 :
2023.10.09 20:25
최근연재일 :
2024.07.0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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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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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79,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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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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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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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7쪽

77화. 일견 굽은 길이나, 필경 곧은 길이 있다. (2)

DUMMY

“흠···.”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인 득구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감이긴 하지만··· 뭐, 그 입술 할마씨랑 발가락 그치를 어떻게든 도망 보내려고 움직이지 않았겠수? 아까 그 접골원이 그 지경이 된 걸 봐선··· 결과가 어떻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설마, 한 소가주가···?”


득구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건 아닐 거요.”

“한 소가주는 지금 멸혼산에 중독된 상태라 하지 않았던가? 그 일신상의 무위가 아무리 뛰어난들, 독에 중독된 사람이 전력을 발휘할 수는 없는 법일세. 혹여라도, 아까 그 접골원을 습격한 무리 중에 백련교의 대호법이라도 섞여 있었다면···.”


득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잠시 표정을 구긴 채로 끙끙대며 머리를 굴리던 득구는 다시 한번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수.”

“···그 생각에 근거는 있는가?”


도종인의 되물음에, 득구는 잠시 망설이다가 끙, 앓는 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일단은 감! ···이우. 하지만···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도련님은 그렇게 무기력하게 당할 사람은 아니라 이거요. 아니··· 아! 잠깐만!”


득구는 다시 한번 양팔로 머리를 싸매고서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잠시 후, 환한 얼굴로 말했다.


“아까 그 접골원에서는 ‘검흔’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수! 만약 거기에 도련님이 있었고, 거기 쳐들어온 백련교든, 천가방 놈들이든 누군가와 쌈판을 벌였다면, 검흔이 남지 않았을 리가 없수! 안 그렇수?”


도종인은 그 접골원이 심하게 타서 원래 형태가 어땠는지 알 길이 없을 정도였다는 점을 지적하려다가 말았다.


하긴, 만약 설총이 거기에 있어서 대호법 정도의 고수와 결전을 벌였다면, 어떤 형태로든 강렬한 무공의 흔적이 남았어야 정상이다. 특히 백련교의 호법공은 모두 패도적이며, 아주 강렬한 상흔을 남기니까.


하지만, 그 접골원에는 저항의 흔적은 있었을지언정, 그렇게 강력한 무공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오히려 아까 그 비창전(飛槍箭)과 같이, 군에서 사용하는 화기(火器)의 흔적이 더 진하게 남아있었다.


“···생각해보니 자네 말이 맞군. 내 그 생각을 못 했어.”

“하, 하하! 그, 그렇수?”


간만에 듣는 칭찬에, 득구는 입을 헤 벌리고 웃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머리를 써서 얻어낸 칭찬이라 더 값지게 느끼는 모양이었다. 도종인은 순수(?)하기 그지없는 득구를 보며 피식, 웃고는 화제를 돌렸다.


“그렇다면, 한 소가주 일행은 어디 갔을 것 같은가? 그리고, 접골원에 있었을 하오문의 일단은? 특히나 공 향주와 마 소협, 그리고 정 루주의 행방은 우리에게도 매우 중대한 사안일세.”

“으음···.”


득구는 다시 앓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과연,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추리는 자신 없는디.”

“일단, 생각나는 것들을 전부 말해보게나. 그것이 어떠한지는 나도 같이 판단해주겠네. 그리고 굳이 생각만으로 추리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단서가 있다면, 그 단서를 따라서 직접 행방을 추적해보는 것 또한 방법이지. 뭣보다, 이곳 정주 일대는 자네도 잘 아는 곳이 아닌가?”


오, 감탄하며, 득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는 말이다. 공의현 토박이로 살아온 지도 어언 10년이다. 공의현과 정주, 낙양 주변은 나름 빠삭하다.


“우선, 한 소가주와 그 일행은 거기 없었다. 여기부터 시작해보세나.”

“으음!”


나뭇가지를 하나 집어들고서, 의욕적으로 팔을 걷어붙인 득구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바닥에 글자를 적었다.


[도련님 외 1인, 나가다(少爺 外 一人 出).]


“공 향주나, 하오문 패거리들은 백화춘도 그렇게 당한 마당에, 굳이 밖으로 나설 이유가 없을 테고···. 그렇담, 싸울만한 전력이 없는 상태를 노리고 있던 천가방 놈들이 거길 습격···?”

“싸울 사람이 없었다면, 그 접골원을 그렇게까지 파손시킬 이유가 없지 않은가?”


접골원은 기둥과 들보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타버렸다. 왜?


천가방의 목적이 하오문도의 몰살이라면 모를까, 굳이 불까지 지를 이유가 있을까?


“그냥 전부 불 싸질러서, 응? 싸그리 죽일라 그랬던 거 아뇨? 그 개자식들···!”


도종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걸세. 다른 곳도 아니고 하오문의 피신처인데, 불을 지른다고 갇혀서 죽는다는 건 말이 안 되지. 당연히 빠져나갈 다른 문이든, 통로든 있을 텐데. 천가방도 그걸 모르진 않을 것 아닌가?”

“아, 그럼··· 의외로 전부 탈출한 거 아뇨? 천가방 놈들은 하오문 패거리를 놓친 게 분해서 거길 기냥 불 싸지른 거고.”


잠시 고민하던 도종인은 고개를 저었다.


“우선, 천가방이 왜 하오문을 공격했는지를 생각해보세나. 염 문주께서 그리 가신 마당에··· 하오문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다름 아닌 공 향주일세. 그런 인물을 납치라면 모를까, 그냥 살해하려 드는 건 아무래도···.”

“입술 할마씨가 뭐 그렇게 중요하단 거유? 걍 여기 대빵 먹는 할마씨 아뇨?”


음, 거기서부터 설명해야 하나? 약간의 씁쓸함과 함께, 설명할 말을 고르던 도종인이 말했다.


“공 향주는 말하자면 하오문의 2인자일세. 아직 하오문에는 염 문주의 후계라 할 만한 인물이 없으니까···. 대신 공 향주가 문주 대리 역할을 맡고 있었다고 보면 된다네.”

“으흠··· 그 할마씨가 왕초 할배를··· 그렇구만.”

“그런 만큼, 공 향주의 역할과 가치는 더욱 막중해진 셈이지. 사실상 천하에서 ‘백단’을 다룰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고 말일세.”

“아, 그거. 비빔소면.”


···그놈의 비빔소면, 참. 도종인은 그냥 피식, 웃어넘기기로 했다.


“어쨌든 간에, 공 향주는 그야말로 ‘염라왕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사람일세. 만약, 천가방이 하오문이 가진 정보와 그 정보망을 원한다면··· 공 향주를 그냥 죽일 리가 없네. 반드시 산 채로 잡아다가 어떤 방식으로든 그녀의 입을 열게 만들 테지.”

“···그러면, 납치됐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맞수?”

“그렇다네.”


득구는 바닥에 [납치(拉致)]라고 두 글자를 적은 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납치라면··· 어딘가로 끌고 갔다는 건데.”

“천가방의 은신처가 될 만한 곳··· 어디 아는 곳이 있는가?”

“그, 전에 뭐지? 놈들이 지금 패왕성? 거기를 거점으로 잡고 있다지 않았수?”

“음? 아, 그렇지. 그걸 잊고 있었군.”


도종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득구의 기억력에 감탄성을 냈다.


아마도 제갈민이 얼핏, 흘리듯 그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달구 패거리가 패퇴시킨 천가방 놈들의 흔적이 패왕성으로 이어진 것 같다는 이야기 말이다.


당면한 과제가 사독파파와 약왕서였던 만큼, 천가방의 행방을 신경 쓸 상황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걸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니. 확실히 한 소협은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 좋은 머리를 쓰지 않으려는 게으름이 문제가 아닌가 싶다.


“패왕성이라··· 정주의 북문으로 나가면 그야말로 코 닿을 거리에 있는 곳이군.”


득구는 눈을 들어 도종인을 쳐다보았다. 마침,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 두 사람은 앉았던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득구는 바닥에 끄적여놓았던 글자를 발로 슥, 문대어 지워버린 후 발걸음을 옮겼다.



* * *


“잠깐만.”

“뭔가 발견하셨습니까?”


이맛살이 한껏 밀려 올라간 구정삼의 안색을 살피며 심용학이 물었다. 그러나 구정삼은 대답 대신에 질문을 던졌다.


“너, 계묘혈사 때 어디 있었냐?”

“저 말입니까? 그야, 제가 올해로 철혈패도의 식객 노릇을 한 지가 어언 28년째이니, 당시에도 제 속한 곳에 있었지요.”

“팽문 병력은 하북, 산동, 하남 세 곳으로 갔잖아. 그중 어디야.”

“하남입니다. 그때 오며 가며 어르신도 몇 번 뵙고 그랬습니다. 물론 당시 무명소졸이었던 제가 인사를 올릴 틈은 없었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말이죠, 제가 속한 조에서는 저도 나름···.”


구정삼의 두 눈이 슬그머니 가늘어졌다. 구정삼은 계속 떠드는 심용학의 말을 칼같이 자르고 되물었다.


“그럼, 너도 봤겠네?”

“뭘 말입니까?”

“경원문(景原門) 말이야.”

“···!”


담담하다 못해 가벼운 장난기마저 돌던 심용학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봤지요.”


경원문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한현보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문파였다.


하남성에서 무림세가의 자리를 넘보는 신흥 문파. 하남성에서 가장 먼저 ‘군문세가’의 이름을 단 문파기도 했다.


물론, 이 모든 수식어가 과거형인 데는 이유가 있다.


경원문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문파는 지금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원문 멸문지화는 계묘혈사의 종반기, 백련교의 난에서 최종 전국(戰局)을 가름하는 전투였던 ‘여경문대전(麗景門大戰)’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당시는, 말하자면 특별한 별칭 없이 무림연합으로 불리던 강호무문들의 연합이 가장 거대한 위기를 맞이한 때였다.


수많은 무림인과 민간인을 독살하고, 멸혼산이라는 끔찍한 독으로 실혼인을 만들어 낸 사독파파가 괴담이 아닌 실존인물이며 당문의 후예라는 사실이 전파되고부터 상황은 악화 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관에서는 정수불범하수(井水不犯河水)를 운운하며 백련교와의 전쟁에서 슬그머니 발을 뺐고, 사독파파를 두려워한 민가에서는 칼을 찬 무림인은 천하십이본 소속일지라도 쌀 한 톨 내어주지 않았다.


사실상, 양자 모두 백련교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군의 병력도, 민가의 지원도 기대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30만이 넘는 백련교도들이 하남성을 포위하기에 이르렀다.


읍참마속의 일화로 유명한 가정 전투의 고사를 생각해봤을 때, 산─ 그것도 거칠고 험한 오악의 하나로 꼽히는 숭산에 방어진을 펴는 자살행위를 감행할 수 없었던 무림연합은 방어진 구축에 고심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이때 낙양에 방어진을 펴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문파가 바로 경원문이었다. 문주가 직접 나서 낙양의 고관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구조고도(九朝古都)로 일컬어지는 낙양이 최후의 방어진이 되자, 심신이 모두 지쳐 있었던 연합의 사기가 오래간만의 상승세를 탔다.


무엇보다도 오랜만에 먹는 제대로 된 밥이 가장 큰 이유였겠지만, 오랜 갈음 끝에 천혜의 요새로 불리는 낙양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 마치 과거 역사 속의 영웅들이 천운(天運)을 얻은 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낙양의 여경문이 바로 그 운명의 성벽이 되었고, 강호의 운명을 건 결전이 거기서 벌어졌다.


여경문대전은 천하삼절과 천검이 전원 빠짐없이 참여한 최초의 전투이자 이들이 직접 참여한 최후의 전투가 되었고, 건곤일척의 승부 끝에 백련교의 오대호법 중 차크람을 다루는 호법과 삼지창을 다루는 호법이 전사했다.


이로써 무림연합은 끝내 승리를 거머쥔 셈이었다. 더 나아가 이 전투의 승리로 백련교 쪽으로 돌아섰던 천하의 민심을 되돌리는 데 성공했으니, 결국엔 계묘혈사의 종결마저도 이 전투가 있어 가능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전투가 끝나고 말없이 물러나는 광천사자와 백련교도들의 뒷모습에 기뻐하던 연합, 아니 경원문주에게 끔찍한 소식이 찾아왔다.


경원문이 자리 잡았던 서공현 서하지촌이 아예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불바다가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거대한 운석과 더불어 하늘로부터 폭우처럼 쏟아진 불비가 서하지촌을 돌멩이 하나도 남지 않은 폐허로 만들었고, 거기 살던 사람들은 시신조차 찾을 수 없는 잿더미로 화해버린 것이다.


한순간에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딸린 식솔들과 문파를 지키겠다며 남아있던 200여 명의 무사를 검은 불길이 집어삼켰다는 소식에 경원문주는 그만 넋을 놓고 말았다.


그는 여경문대전의 제일 공로자였다. 그를 바탕으로 이제는 낙양제일문을 넘어 천하십이본의 일각으로 우뚝 서겠다며 야심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랬던 경원문주는 한순간에 강건한 무인에서 초로의 늙은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틀 후에는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었고─

결국 사흘째에 스스로 목을 매달았다.


문주가 그렇게 되고 나자, 경원문에 속했던 100여 명의 무사도 하나둘 흩어졌다.


강호의 역사에서 고금에 손꼽힐 위대한 승리의 순간에, 하나의 문파가 먼지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 끔찍한 사건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심용학은 아직도 당시 소식을 듣고 마치 귀신을 본 사람처럼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허공을 멍하니 쳐다보던 경원문주의 얼굴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이틀 후, 그의 머리카락마저 새하얀 백발이 된 모습 또한.


“···그 끔찍한 사건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마치 화상처럼, 흉터마저 지울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광경을 말입니다.”

“지랄, 목소리 깔지 말고. 그때 그 일을 기억하고 있다니 하나만 물어보자.”

“예, 말씀하시지요.”


심용학에게는 목소리 깔지 말라던 구정삼이 도리어 목소리를 깔고 물었다.


“당시, 서하지촌에 살던 사람 중에 생존자가 있었잖냐?”


그야말로 모든 생명체가 멸절해 버린 서하지촌이었지만, 생존자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야 서하지촌은 어촌이었으니, 물고기를 잡으러 서하지촌에서도 조금 떨어진 곳까지 배를 몰고 나갔던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게다.


“있었지요.”

“생존자 중에, 사건이 일어나기 일주일 전부터 크게는 손가락에서부터 작게는 손톱 정도 크기의 돌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걸 본 사람이 있다고 했거든.”


이 정보는 극비 중의 극비에 속하는 정보다. 당시 무림연합에서는 백련교의 대호법 중 하나가 운석을 소환하고 불비를 내리는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가 퍼지지 않도록 정보를 통제했다.


그런 이능을 지닌 존재가 적이라는 정보는 아군의 사기를 박살 내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물론, 경원문의 멸문지화가 있고 나서부터는, 감추려야 감출 수가 없는 이야기가 돼버렸지만.


그러나 의외로 대비책을 마련할 필요는 없었다.


여경문대전 이후로 천검이 삼제진경을 탈취에 성공한 직후 자취를 감추면서 온 강호의 시선은 오직 천검의 행방으로 쏠리게 되었으니까.


“그때 그 소운석들을 천하십이본에서 싹 다 긁어 갔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예··· 뭐 그랬죠.”


심용학은 살짝 떨떠름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야, 운석은 하늘에서 탄생한 것이고, 하늘의 것은 곧 천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구정삼은 그런 것쯤 아무래도 좋다는 태도로 말을 이었다.


“내가 널 무시해서 하는 소리는 아니니까 오해 말고 들어. 니가 지금은 팽문에서 집법당주도 해 먹고, 정천맹에서도 한자리 떡하니 차지하고 있지만, 15년 전에는 짬밥 찌끄레기였잖냐?”


같은 말을 해도 기분 나쁘게 하는 구정삼의 말에도 심용학은 도리어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맞는 말씀이지요.”

“그래서 묻는 건데···.”


여기까지 와서 뜸을 들이다니, 도대체 뭐 얼마나 중요한 질문이기에?


“너, 혹시 그거 본 적 있냐?”

“···예?”

“그 소운석들 실물, 본 적 있냐고.”


심용학은 맥이 다 빠진 얼굴로 피식 웃고 말았다. 아니, 이게 그렇게까지 뜸을 들이면서 할 만한 이야기인가? 과연, 천하삼절 중에서 가장 실없는 양반답구만.


“물론 봤습니다. 어디, 보기뿐이겠습니까? 제가 집법당주가 되던 날, 가주님께서 그 소운석 중의 하나를 기념으로 하사하시기까지 하셨으니까요.”

“지금도 갖고 있냐?”

“물론이지요.”

“꺼내 봐.”

“···음, 뭐, 어려울 것 없지요.”


설마하니, 천하삼절씩이나 된 양반이 그깟 돌멩이 하나가 탐이 나서 이러는 건 아니겠지? 심용학은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품에서 집법당주패를 꺼내 들었다.


청동으로 된 패는, 걸쇠를 열면 두 겹으로 겹쳐 있던 패가 돌아가며, 그 사이의 공간이 드러났다.


“이겁니다.”

“···흐으음···.”


구정삼은 청동패 안에 들어 있는 소운석을 이쪽저쪽 돌아가며 뚫어져라 들여다보았다. 돌에도 구멍이 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구석구석까지 세세하게 들여다보던 구정삼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침을 꿀꺽 삼켰다.


“좋아.”


뭐가 좋다는 건지. 심용학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당주패를 다시 품에 넣는데, 구정삼이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손바닥에는 손톱 크기의 돌멩이가 올라 있었다.


“···어때? 니 눈엔, 똑같아 보이냐?”


작가의말

부처님 오신 날! 잘 쉬셨습니까? 부디 즐거운 휴일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저는 정말 오랜만에 늘어지게 잠도 자고, 아무튼 잘 쉬었네요!ㅎㅎ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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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 77화. 일견 굽은 길이나, 필경 곧은 길이 있다. (1) 24.05.14 136 2 16쪽
254 76화. 견지망월(見指忘月) (4) 24.05.13 132 4 17쪽
253 76화. 견지망월(見指忘月) (3) 24.05.10 159 2 16쪽
252 76화. 견지망월(見指忘月) (2) 24.05.09 134 2 15쪽
251 76화. 견지망월(見指忘月) (1) 24.05.08 146 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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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75화. 하오문 (1) 24.04.26 165 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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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74화. 피 냄새 (1) +2 24.04.24 171 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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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 73화. 세 명의 신산(神算) (2) +2 24.04.22 174 2 15쪽
239 73화. 세 명의 신산(神算) (1) 24.04.19 182 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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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70화. 초화만신(超化萬神) (4) 24.04.12 201 5 16쪽
233 70화. 초화만신(超化萬神) (3) 24.04.11 196 2 15쪽
232 70화. 초화만신(超化萬神) (2) 24.04.10 197 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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