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ndemonium. Mammon's Tower(236)
지옥의 발걸음
영혼 수집은 생각보다 간단하게 이루어졌다. 호문쿨러스의 조각은 파니의 몸을 이루는 근간이며 108명의 인간 신체로 만들어졌다.
즉 108명의 빈 껍질을 권능으로 이어 놓았는데 영혼이 없는 빈 조각은 인간의 영혼을 담는 그릇으로 그만이다.
거기다 파니의 주술이 더해지자 훌륭한 그릇이 만들어졌다. 파니의 육편 조각을 붙이기만 하면 손쉽게 영혼을 득할 수 있었다.
어차피 죽어야 하는 운명의 사람들. 그라운드 제로 영역 안의 사람으로 선택했다.
파니가 원하는 대로 다섯 명의 영혼을 수확했다.
"에? 결정 난 건가?"
나선 것은 케빈과 레오다. 오웬이 꾸린 팀 외에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두 사람 케빈과 레오다. 이들과 대화한 적이 거의 없을 만큼 존재감이 희박한 친구들이었다. 케빈은 정형적인 회사원 출신. 레오는 영국 시골 마을의 경찰 출신이라고 했다.
"잘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었습니까?"
"저희는 항상 유령 같은 존재였습니다. 다른 사람에 비해 전투 경험도 얕고 이곳에 파견 지원을 하게 된 것도 유럽의 전장이 싫어서였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 너무 싫었습니다. 지금 세상에 자손도 볼 수 없고 더욱이 우리 같은 사람에게 여성은 솔직히 무리죠. 차라리 나치와 대등하게 아니 압도적으로 싸울수 있는 이 신체를 선택하겠습니다."
오웬은 고개를 흔들었다. 강제성이 없는 본인 스스로 선택임은 말할 것도 없다.
하긴 불멸이라는 것은 큰 유혹이다. 먹고 마시고 잘 필요도 없는 무한 동력에 총탄에도 끄떡없는 신체. 이 아포칼립스 같은 세상에 어쩌면 가장 걸맞은 신체일지도 모른다.
약자는 강해지고 싶어 한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기본 욕구다. 밟히는 자보다 밟는 자가 되고 싶을 거다. 지금 세상에서 약자는 바로 도태된다. 이 세상에는 약자를 위한 안식처는 없다.
마지막 의존 단계인 가족이라는 테두리도 없다. 살벌한 이 세계에서는 최소한 옆 사람 방해는 하지 않아야 한다. 케빈과 레오의 심정은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들도 이 짧은 시간에 수많은 고민과 번뇌를 되새겼을 테니까.
나는 이들의 선택에 대해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니다.
파니는 조던과 다니엘에 해당하는 영혼을 펜타클을 통해 흘려보냈고 케빈과 레오는 긴 심호흡을 끝으로 자신의 생체 조직을 포기하고 기계의 몸을 얻었다.
확실히 개개인의 특징이 그대로 살려진 상태로 인조인간이 되었다. 완전한 기계라고 보는 것도 문제가 있는 것이 사고나 생각은 인간일 때의 그대로다.
샘플을 가지지 위해 스켈레톤의 권능을 해제하고 빈 바디를 itb에 넣었다. 지금으로서는 어떻게 인간의 영혼을 담고 있는지 아니면 인간의 뇌에서 기억을 카피해 내는 건지 알수 없다.
영혼이라는 것에 어떤 과학적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단순한 인간의 기억과 사고? 아니면 지성체? 인간 이외의 생명체는 영혼이 없는 걸까? 현재의 나로서는 풀 수 없는 난제다.
네 명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원하는 결과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다섯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하나만 남았군. 이게 아니라면 골치 아파져."
"아뇨, 저희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무미건조한 기계음이다. 텁텁하고 먼지 낀 오래된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 같다. 희한하게도 각자 목소리가 다 달랐다.
목소리만으로 누구인지 충분히 구분 가능할 정도이니.
"장담해?"
나는 파니에 물었다.
"아마도요."
케빈과 레오는 새로 생긴 신체에 적응하느라 달리고 점프도 해 보며 이리저리 움직여 댔다.
"느낌이 어때?"
"감각을 느낄 수 있나?"
이미 조던과 다니엘이 먼저 불멸의 신체를 얻었지만 긴가민가하다가 케빈과 레오까지 불멸을 받았으니 슬슬 궁금증이 늘어나는 모양이었다.
나는 지원자를 받고 싶었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결정권은 오롯이 이그조틱 본인의 몫이다.
"이 층을 디자인 놈은 어떤 의도였을까? 단순히 인간 영혼을 모으기 위해서라고 보기에는 뭔가 찜찜해."
"악마는 장난을 즐깁니다. 아마 이것도 일종의 유흥이겠죠."
"불멸로 인간 영혼을? 그냥 영혼을 쉽게 가져갈 수도 있는데 굳이 이런 등가교환의 방법을 사용해야 하나?"
"달라요. 강제의 힘으로 인간의 영혼을 강탈하면 효율이 극히 떨어지죠. 인간은 영혼은 감정에 의해 컨트롤 되는데 빼앗긴 것과 대가로 지급한 것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어요. 대가로 지급된 것에는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죠. 대가로 지급한 영혼은 훌륭한 권능의 그릇이 되지만 강탈한 영혼은 자신의 권능에 합이 될 뿐이죠."
"복잡하구먼."
"인간도 인간만의 법도가 있고 나아가 이 행성의 나름의 법칙도 있겠죠.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우주의 진리에 적용받는 것이죠."
"저도 시술이랄까? 이 몸을 가지고 싶습니다."
결정을 내린 사람은 바트였다.
"분위기 휩쓸려 한 순간적인 선택은 후회를 가져와 시간을 충분히 줄 테니 신중히 생각···."
"결정했습니다. 제가 아니면 이 층을 벗어나기 힘들 거잖습니까?"
파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부디 다섯으로 끝이 나기를 바랄 수밖에."
"그럴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파니는 바트를 사이보그로 만들었다.
불멸의 신체가 완성될 때 입술이 말랐는데 속에서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바라던 게이트가 열린 것이다.
"만약에 말이야. 네가 영혼을 붙잡지 않았다면 포식 된 영혼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건 이 층을 만든 악마 마음이죠. 무엇으로든 활용할 수 있어요."
"육백 층 대는 살벌하군. 따지고 보면 다섯 명을 인신 공양해야 게이트가 열린다는 소리잖아."
"그렇긴 하죠."
"그들이 불멸의 신체를 얻는 것은 순전히 네가 있어서군. 이제야 일다운 일은 한 거네."
"칭찬이에요? 핀잔이에요?"
"글쎄, 처음으로 도움이 됐다고 느꼈으니까 셈 셈으로 치자."
파니는 입술을 실쭉 내밀었다.
'악마라. 분명 이놈들도 다 감정을 가진 지성체지? 악마는 좀 더 사악하고 인간다운 미가 없어야 정석인데. 나를 속이는 걸까? 아니면 본심에서 하는 소리일까?'
도통 헷갈린다. 네르갈도 마찬가지고 은근히 나를 도와주기도 한다. 네르갈은 파니의 존재도 분명히 알고 있을 거다. 자신이 감시용으로 붙여 놓은 떨거지를 파니가 다 처리 했으니. 더군다나 반대파인 피의 교단 소속이 아닌가? 아무리 이해관계에 따른 개인 이익을 중요시하는 악마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이들은 이해하기 힘들다.
"이번 층은 거저먹는군."
올라오자마자 저 멀리 눈앞에 게이트가 보인다.
거저먹는다는 소리는 했지만 여긴 함정이 가득한 곳이다. 한 발짝만 잘못 디뎌도 지옥의 수렁으로 끌려 들어간다.
바닥은 정 사각형의 돌덩이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권능으로 보면 함정 카드가 확실히 보였다. 밟아서는 안 되는 곳을 밟으면 바닥이 무너지는 구조다.
"지옥으로 가는 길이구나. 잘못 밟으면 무너져 버립니다."
"쩝. 새로 얻은 몸의 전투력을 느껴보고 싶은데 몬스터가 하나도 없네."
바트의 말을 뒤로 흘리고 바닥의 이미지를 촬영하여 이미지로 변환 그 이미지 위에 함정과 올바른 길을 표시했다.
"바닥의 이미지를 전송할 테니 실수해서는 안 됩니다."
"그럴 필요 없이 제가 이동시키면 간단하지 않습니까?"
"안 될걸? 미션은 풀어야 하는 거지."
윌리엄은 순간 이동으로 반대편 게이트가 열린 곳으로 갔다.
그 순간 내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게이트가 꺼졌다.
"이런."
"거봐, 뻔히 보이는걸. 왜 이해 못 해."
윌리엄 때문에 리셋 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자투리 시간에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도대체 어디서 그 많은 물건이 나오는 겁니까?"
"그냥 내 능력이야."
"아라곤의 능력은 얼마나 됩니까? 그 이상한 반달같이 생긴 무기도 그렇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신발도 그렇고."
"여기저기 여행하면서 끌어모은 거야."
"이전 세상의 물건은 아니라는 것은 알겠네요."
가끔 이 녀석의 호기심은 귀찮을 때가 있다. 녀석은 호기심의 끝을 항상 확인하려 한다. 얼버무려 넘겨도 녀석의 머릿속에 꼬박꼬박 저장되고 있다.
사이보그가 되어 버린 다섯 명은 할 일이 없어져 버렸다. 파니는 그들의 감정이 점점 메말라 갈 것이라고 충고했지만 그날이 오려면 아직 한 참 멀었다.
가끔 파니는 악마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을 혼동해서 말하곤 한다. 오랫동안 게헤나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투덜댄다. 마지막 때를 물으니 마녀사냥으로 가장 피치를 올릴 때 교황청에서 파견된 퇴치단에 발각되어 불행히도 퇴치당했다고 한다.
저번 일도 그렇고 파니는 우리가 모르는 정보를 꽤 가지고 있다. 그동안 악마라고 업무적인 이야기 외에는 나누지 않았지만, 파니의 지식은 상당하다. 주종 관계인 터라 내 질문에는 거짓 없이 답해야 하는 것도 마음에 들고 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파니는 망설임 없이 답해 주었다.
"너 정도면 인간 따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말도 마세요. 퇴치단에 간혹 천사의 은총을 받은 자가 섞여 있는데 하필 그자가 끼어 있었지 멉니다? 은총은 주술 따위 가볍게 튕겨 내 버리거든요. 정말 귀찮은 것들이죠. 마녀의 주술과는 아주 상극이에요. 그리고 화약이 발견되고부터는 죽을 쑤고 있어요. 은탄에 맞으면 머리가 핑 돌 정도거든요."
"결국 총에 맞아 죽었다는 거잖아?"
"뭐 그렇죠. 자칭 성스러운 성수에 담근 무기로 은탄까지 사용하는 데 별수 있나요?"
"이해가 안 돼. 네가 가진 권능은 엄청날 텐데 고작 총 가진 인간에게 퇴치를 당할 수 있나?"
"모르는 소리 마세요. 저희가 활동하면 저쪽 애들은 구경만 하고 가만히 있겠어요? 서로서로 암묵 된 조항에 따라 인간의 역사에 직접적인 개입은 금하고 있죠. 그리고 천사들은 악마에게 독극물이나 마찬가지인 은총을 대지에 살포해 놓았죠. 아무리 권능이 뛰어나도 이 세계에 오면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어요. 그저 인간 하나 타락시켜 영혼을 수집하는 정도죠. 진짜 권능을 인간계에 휘두르면 이는 곧 전쟁입니다. 그런 미련한 짓을 할 악마는 없죠.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균형이니까요."
"한 번도 저쪽을 침략할 생각은 하지 않고?"
"승산 없는 싸움은 하지 않는 편이죠. 악마는 실리 주위를 표방해요. 이익이 없는 곳에는 나서는 놈이 없는 거죠."
"아래층에서 했던 말 말이야. 에덴 어쩌고저쩌고한 거 그거 진실이야?"
"네, 누구 앞이라 거짓말을 하겠어요. 다만 깊숙이 이야기하면 꽤 복잡해요. 특별 보호 구역은 차원 속에 존재하고 천사들이 지키고 있죠. 개조된 흔히 말해 아담과 이브라는 인간은 에덴의 차원에서 추방된 거고 이 행성에서 진화한 인류에 섞여 살아간 거예요. 그들은 당시 인류에 비해 월등한 신체 조건과 수명을 가졌고 지금의 이그조틱처럼 힐링 팩터에 질병 면역이었습니다. 에덴에 있을 때는 은총이 가득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지만 추방당할 때 원죄를 뒤집어쓰면서 은총이 권능으로 바뀌었죠."
"그러니까 지금 이그조틱은 그때 신이 개조한 신체라는 말이냐?"
"네, 정확히요. 평균 900살에 이르는 수명. 질병 면역. 상처에 힐링 팩터까지 모두 완벽한 신의 선물이죠."
"신은 은총이 아닌 권능으로 인간을 만든 이유가 뭐야? 그리고 에덴에서는 왜 은총을 가지고 있었지?"
"효율성. 천사는 워낙 수동적이라 신은 자신의 모습과 감정을 가진 능동적인 생명체이기를 원했어요. 오직 명령에 움직이는 것이 아닌 스스로 사고해 지혜를 얻길 바랐죠. 그래서 축복을 내린 것인데 은총은 축복으로 깃들게 되는 거죠. 둘이 신의 명령이 아닌 부탁을 어겼기에 신은 둘에게 주어진 많은 혜택을 빼앗아요. 가장 큰 것이 불멸을 빼앗긴 것. 그리고 고통을 얻게 되었다는 것 정도일까요."
"차원이라. 이 차원과 다른 차원이겠네. 에덴은?"
"그렇죠. 신이 만든 차원이에요. 아쉽게도 그곳은 봉인됐어요. 불의 천사들이 지키고 있으니 악마의 왕 벨제붑조차 근접하지 못하는 곳입니다."
파니의 이야기 속에 푹 빠져 날이 저무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이곳은 낮과 밤이 없는 곳이라 시계를 확인하지 않으면 시간을 구분하기 힘든 곳이다.
"곧입니다. 준비하세요."
리셋이 되고 모두 출발 준비를 했다.
"잠깐만! 모두 멈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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