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ndemonium. Mammon's Tower(216)
데이몬(7) - 작은 소년(1)
자정
깜깜한 어둠 그리고 작게나마
도시의 불빛이 사방에서 빛나고 있었다.
"역시 세계가 구현되었네."
주변을 둘러봤다.
뒤이어 오웬과 파비앙을 선두로 나머지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로 떨어지지 말고 주변 환경을 파악해."
"느낌이 썩 좋지 않습니다. 기분이 묘하네요."
게이트가 열린 곳은 도시 한 가운데였다. 멀찍이 큰 강 하나가 도시를 가로질러 흘러가고 있었다.
"목조건물이군. 어느 시대야? 저기 사람 어?"
파비앙은 어두운 밤거리를 거니는 취객 두 사람을 발견했다. 그들은 우리 곁으로 지나쳤는데 우리를 보고고 놀라거나 다른 의구심을 품지 않는다. 방문자 보정을 받는 것 같았다.
"동양인인데?"
"건물이 꽤 낡았어. 도로도 비포장이고 대충 1900년대 초반 같은데?"
"아시아야. 아시아. 이런 풍의 건물은 재팬이 아닌가? 차이니즈?"
그때 검은 교복인가 눈에 띄는 정복을 입은 남자 한 명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곳의 분위기나 건물을 형태를 봐서는 일본일 거라는 생각에 일본어로 말을 걸어 보았다.
"저기 여기가 어딥니까?"
사내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말했다.
"히로시마 중앙 관청 거리요."
"히로시마? 일본입니까?"
"히로시마는 당연히 일본이지. 일본말로 물어 놓고, 일본입니까라는 말은 무엇이오? 당신들 누구요?"
나야 동양인이라 구분이 안 될지 몰라도 나머지 사람들은 피부색부터 모든 것이 다른 서양인이다. 거기다 무기까지 들고 있었으니 아무리 방문객 보정을 받는다고 하지만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아, 우리는 특수 임무를 받고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특수 임무 그런 정보는 들은 적이 없는데?"
나는 그제야 이 남자가 입고 있는 교복 같은 것이 경찰 제복이라는 것을 알았다. 허리에 권총집을 차고 있었다.
"구분을 못 하는 건가? 생김새가 완전히 달라도 알아보지를 못합니다."
오웬은 정확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경찰은 오웬 일행이 외모가 다른 외국인이라는 것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의 시선은 들고 있는 무기에 고정되어 있었다.
"특수 부대 소속이니 더는 캐묻지 마시오."
경찰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어디서 오신 분들이기에 여기가 어디라고 묻는 겁니까?"
"타국에서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오웬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오늘이 몇 년 몇 월 며칠인지 물어봐 주시겠습니까?"
일본어로 묻자 경찰은 고개를 까닥했다.
"별 이상한 질문을 하시네. 쇼와 19년 8월 5일 아, 막 자정을 넘겼으니 6일이 되는 건가?"
"쇼와가 뭐지?"
"일본의 연호라고 나오는데요?"
리안은 이어링의 자료집에서 일본에 관한 정보를 열람하고 있었다.
"쇼와라면 1926년에서 1989까지 사용된 연호네요."
"쇼와 19년이라면 1945년이네. 8월 6일 역사 기록을 뒤져봐 이날로 검색해 보라고 뭐가 나오나?"
오웬의 말에 리안은 이어링의 자료 검색에 날짜를 기재해 넣었다.
"어, 나옵니다. 히로시마 1945년 8월 6일···. 하! 세계 최초 원자폭탄 투하!"
모두의 몸이 다 굳었다.
"이봐 경찰 여기가 어디라고?"
"중앙 관청 사거리 부근이오."
'"잠깐 저거 무슨 건물입니까?"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 리안이 가리킨 곳을 본 경찰이 말했다.
"저 건물은 산업장려관입니다."
리안의 목소리가 조금 떨려 왔다.
"저거, 그거잖아요. 원폭 기념 건물. 히로시마 원폭돔."
"그럼 우리가 지금 원자폭탄 폭심지 정중앙에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파비앙이 소리 질렀다.
"그거 언제 떨어져?"
"자, 잠깐만요. 그러니까. 오전 8시 15분이요."
"설마 진짜 떨어지진 않겠지?"
"잠시 기다려 보세요."
나는 권능의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권능은 없었다.
"권능이 하나도 잡히지 않는데?"
그때 파니가 걸어 나와 경찰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알수 없는 언어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라틴어라는 것만 알수 있었고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 없었다.
경찰은 움직이지 못하고 온몸이 경직되어 부들부들 떨었다.
"갈 길 가세요."
그 말에 경찰은 경례를 올려붙이더니 가던 길로 걸어갔다.
"무얼 한 거야?"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영혼의 복제죠."
"그럼?"
"네, 실제 그 시대의 차원을 그대로 옮겨 온 겁니다. 실제 원폭이 투하되는 날 그날 하루를 그대로 이곳에 옮겨 왔습니다. 오늘 오전 8시에 15분에 원자폭탄이 투하됩니다."
"도시 외곽으로 빠진다. 서둘러."
"폭심지로부터 최대한 멀어져야 해."
"오웬은 팀을 데리고 외곽으로 빠져요. 파니 넌 팀을 엄호해."
"우린 지금 0.36km2 그라운드 제로 안에 있는 거다."
리안이 고함쳤다.
그라운드 제로 원폭 폭발 최중심지. 모든 물질이 증발하는 지역.
그라운드 제로에 포함된 대지는 태양 표면과 같은 6천 도의 고열에 끓어오른다.
원폭이 터지는 순간 만도의 열기를 담이 빛이 직접 내리쬐는 곳.
그라운드 제로 안의 생명체는 증발이다.
itb에서 풍신화를 꺼내 신고 날아올랐다.
자정이고 도시는 생각보다 어두웠다. 미군의 공습을 대비해 도시의 불빛을 대부분 가렸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 날지 못하고 파니 일행에게 되돌아왔다.
"공간이 아주 협소해. 경계선까지 2km다."
"폭심지로부터 2km가 한계라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피할 수 있는 최대한의 거리는 중심부에 약 2km 정도입니다."
"2km 안인데 어떻게 피할 수 있습니까?"
"급하게 서두르지 마라. 시간은 충분해 8시간이나 남았어."
"시간이 충분하면 뭣합니까? 피할 곳이 없는데?"
"여기 자료를 보면 폭심지로부터 1.2km 안에서 50% 사망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50%면 반 반인데요?"
"무슨 소리야. 그건 즉사한 경우고 2km 안 건물 대부분이 파괴되고 불탔다고 되어 있네."
"그러니까 살아난 사람도 있을 거 아니야? 50%가 즉사했다면 나머지 사람 중에 산 사람도 있겠지."
리안의 말을 크리스가 받아쳤다.
"최소 5km 안에는 약 1만 라드의 방사선이 몸을 투과할 거다. 2km 안이면 핵폭풍에서 살아남았다고 해도 방사선은 피할 수 없어. 이삼일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을 거다."
"그건 보통 사람 이야기고 우리는 다르지 않을까요?"
제임스의 말에 크리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우리는 어쩌면 방사선 정도는 이겨 낼 수 있는 신체를 가졌을지도."
"그럼 살아날 확률은 있는 거네요."
"2km 정도면 서두를 필요도 없겠는데?"
"전체 지도를 띄워 보자. 2km 안이라도 가장 적합한 세이프티 지역이 있겠지. 당시 피해 규모를 알수 있는 사진은 없나?"
이어링이 모든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어링에 일본 자료가 있는 것도 내가 일본으로 넘어갈 당시 역사 공부 겸해서 자료를 담아 놓은 것이 전부다. 내 이어링을 계속 카피너로 복사해서 돌렸기 때문에 같은 자료가 있는 것일 뿐이지 상세한 내용은 없다.
"이번 미션은 뭡니까? 혹시 원폭을 막는 것은 아닐 테지요?"
"역사적으로 이미 일어난 일이다. 그걸 막는다는 따위의 미션을 만들 이유가 없지."
"이대로 오전에 원폭을 당하는 겁니까? 살아났다 하더라도 낙진은요? 우리가 견딜 수 있을지?"
"먼저 피할 곳부터 마련합시다."
"2km 안이면 후폭풍도 견디지 못할 건데?"
"제길 지하 벙커라도 있었으면···."
"2km? 설마 소멸 하는 것은 아니겠죠?"
"그라운드 제로만 벗어나면 증발하지는 않아. 1.5km 이상 벗어나면 그나마 견딜 만 할 거야."
"방사선은요? 아까 1만 라드라고 했습니까?"
"그래 납이지. 1만 라드라도 납은 뚫지 못해."
"당장 어디서 납을 구하나?"
"아니면 콘크리트 1m 두께라면 어느 정도 커버는 돼."
"강이 있는데 강으로 뛰어들면?"
"안 돼! 펄펄 끓어 올라 삶겨 죽을 거다. 그리고 우리는 헬오어 무기류와 장구류를 장비하고 있어. 강에 들어가려면 알몸으로 들어가야 한다. 더 말이 안 되지."
서로 말이 많다. 답이 보이지 않으니 오웬도 혹시나 그럴싸한 아이디어가 나올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통제하지 않았다.
"역시 지하로 숨는 것이 가장 나을 거야. 시간은 충분해. 우리 힘으로 지하로 파고 들어가면 어느 정도 핵폭풍은 커버 가능할 거야."
"지금 당장은 그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지하로 파고 내려가는 수밖에요."
"그것도 무리수다. 2km 안이면 엄청난 진동이 대지를 두드릴 건데 굴을 파고 들어갔다가 무너지면 그곳이 우리 무덤이 될 거야."
나도 혼란스러웠다. 이곳에서 데이몬을 소환해 잡아야 하는데 그건 포기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이런 혼란스러움에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방법이 없으면 귀환석을 사용하는 수밖에요."
조던의 말에 갑자기 조용해졌다.
"어이 다들 저기 봐."
퍼시벌에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돌렸다.
군인과 기모노를 입은 여인이 서로 포옹하고 있었다. 곧 포옹을 푼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키스를 나누기 시작했다.
"잘 어울리는 한 쌍이네."
잠시 잊고 두 사람의 열정적인 키스를 바라봤다.
"여기 구현된 사람은 당시 핵폭발로 희생된 사람들 뿐이에요."
파니는 살짝 피워 오르는 감정을 뿌리째 뽑아 버렸다.
"지금 이 도시에서 움직이는 모든 사람은 내일 8시 15분 이후로 죽을 운명의 사람들이라는 거죠."
"이거 그때 일을 가상으로 꾸며 놓은 것은 아닙니까?"
"아뇨, 실제 그 당시 차원을 그대로 카피해 놓은 겁니다. 당시 일어날 일이 완전히 똑같이 재현될 거예요. 조금 전 그 경찰 그 시절 그때의 사람과 같은 영혼이었어요."
"권능이 아예 없는 것이 그 때문인 건가? 미션도 감이 잡히질 않아."
"잠시만요. 만약에 아라곤이 없어서 이 정보를 알지 못했다면 우리 머리 위로 핵폭탄이 떨어질 수도 있는 거네요. 이 탑은 이그조틱을 죽이기 위해 디자인된 곳이 아니라면서요? 어떻게 하든 활로는 만들어 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데이비드의 말에 파니가 미소를 지었다.
"그건 아래층 이야기고 이곳은 벌써 601층. 이제 슬슬 신경 쓰이는 단계에 올라섰다는 거다. 이제부터 난도가 확 바뀔 거야. 아차 실수하면 언제 죽어도 이상치 않을 만큼이지. 맘몬도 이 정도까지 올라오리라고는 상상 못 했을 거다. 골치 아파지기 전에 없애 버리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할 거야."
파니의 말이 맞다. 이곳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면 어쩌면 원폭을 정면으로 맞았을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장난은 그 정도만 하라는 이야기로군."
"여러분 이렇게 노닥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결정해서 안 되면 귀환석 탑시다. 시간은 넘쳐납니다. 다시 층을 오르면서 천천히 생각해 보는 것도 나름 한 방법이지 않습니까? 지금 내려가면 501층이고 다 경험해 본 층이니 무리 없이 진행도 가능할 것이고. 괜히 이곳에 있다가 핵폭탄 맞고 사망자라도 나오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아라곤 님도 악마 사냥을 계획 중이신데 굳이 이곳에서 하실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501층도 게헤나와 연결된 곳이니 그곳에서 악마를 소환하더라도 아무 문제가 안 될 겁니다."
조던의 말에 다른 사람도 술렁댔다.
"경험해 봐야 실마리를 잡을 수 있어 조던.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직접 경험해 봐야 해. 실제 사망자가 나오더라도. 그 정도 각오를 다지지 않으면 앞으로 위층은 더할 거다. 이건 이제 시작을 알리는 축포 정도일 거란 말이지."
파비앙은 조던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자신의 목숨이 그렇게 걱정되면 귀환석을 눌러. 그걸 누른다고 뭐라고 할 사람 여기 아무도 없어."
"제 목숨이 중요해서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확실한 방법을 찾아 보자는 이야기였을 뿐입니다."
"뭐라고 해도 내일 그 일이 일어나는지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를 그냥 통과할 수 없습니다. 악마는 분명히 미션을 부여 했을 것이고 우리는 그걸 풀 용기만 있으면 됩니다."
"보세요들. 프라피트가 있는데 무얼 그리 걱정합니까?"
"일단 제가 방금 촬영한 곳을 지도로 변환했습니다. 자료 넘길 테니 확인해 보세요."
"2km 내 건물은 모두 파고 됐다고 나올 정도니까. 핵폭풍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강이 제법 많네요. 하지만 역시 강은 피해야 할 듯 보입니다."
"1.2km 내 있던 사람 중 즉사자 50%라고 하지만 기록상 보면 1km 이내에서도 상처 없이 살아났던 사람도 있다고 들었어. 물론 그들은 폭풍은 피했지만, 방사선은 피할 수 없었어. 방사선을 맞은 사람은 길어봐야 5일 이내 사망입니다."
크리스는 현역 시절 핵폭탄 관련 임무를 두 차례 수행한 적이 있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이해의 폭을 넓힙시다. 후폭풍 정도는 피할 수 있을 거라고 보면 방사선을 막을 방법은 납이 없으니 콘크리트뿐이군요. 크리스 어느 정도의 두께의 콘크리트가 있어야 하죠?"
"최소 1m 이상이어야 합니다. 밀집도 좋은 콘크리트일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주면 건물 대부분이 목조건물이었다.
"당시 핵폭팔을 견딘 건물은 몇 안 됩니다. 조금 전 경찰이 말했던 산업장려관이라는 건물이 피복을 견딘 건물이죠. 하지만 그곳에 있었던 인간은 증발했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콘크리트일 뿐입니다."
오웬이 입을 열었다.
"지도를 분석하기 위해 당시 자료를 다 긁어모았지만, 핵폭발 이후 도시의 전체 구도는 나오지 않습니다. 단순히 말하면 지형이 높은 쪽으로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북쪽 라인을 선택하는 것이 나을 겁니다."
"그럼 북쪽으로 올라갑시다."
"폭심지에서 북쪽으로 1km 지점에 있는 요코가와역에서 콘크리트를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오웬 가장 두꺼운 부분을 운반할 크기만큼 잘라 낼 수 있겠죠?"
"물론입니다."
"여러분 핵방공호를 만들 시간은 충분합니다. 전 먼저 가서 북쪽 2km 지점에 방공호를 지을 구덩이를 만들어 놓겠습니다. 나머지 분들은 요코가와역으로 가서 콘크리트를 부탁합니다. 양질의 콘크리트 벽이면 가장 이상적이겠지요. 제가 중력을 제어하여 운반하면 되니까 크기는 상관없습니다."
"그런 작업을 하면 이곳 인간들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요."
"파니 말대로 그들은 모두 죽을 운명의 인간들입니다. 몇 시간 먼저 죽는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요. 일을 방해하면 폭력을 동원해도 상관없습니다."
말을 마친 나는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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