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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벗 - Be, But...

사회생활 잘하는 조던 남작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비벗
작품등록일 :
2022.09.15 03:52
최근연재일 :
2022.10.30 23:00
연재수 :
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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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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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18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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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Chapter 1 – 튀링겐의 군주 (3.)

DUMMY

“우선······ 백작 전하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하여, 다른 기사들을 통해 어디까지 들으셨는지를 여쭙고 싶습니다.”


대화는 후수필승이라는 관점에서,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슬쩍 떠본 질문.

백작은 그렇게 서두를 뗀 나를 이상하게 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라.

그리고 내 입장에서는 꽤 무서운 말로 화답했다.


“그래. 그대는 아마 내 속내를 떠보고 싶겠지.”

“······감히 제가 어찌-”

“아, 쓸데없는 예 차릴 것 없네. 그런 거 싫어한다고 말했잖나. 난 예법 그런 거 모른다네.”


떠보는 걸 알면서도 웃어넘기네.

그 얘기가 이것저것 의외더라.

자기 말마따나 전사 타입이라 그러는 거라면 말은 된다만, 백작이란 게 예법을 모르면 절대 안 되는 자리일 거라서.


물론 나는 이쪽 세계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은 입장.

백작이라는 호칭조차 머릿속에서 자동적으로 번역된 결과물일 뿐이라, 이 세계의 작위 체계가 내가 알던 오등작과 정확히 매치될 거라고는 볼 수 없는 일이다.

애초에 지구의 백작이 어떤 건지도 잘 모르고.

대충 다섯 개의 작위가 있고 그들이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의 서열을 가진다는 것 정도가 내 지식의 한계였다.


다만 ‘조던 남작’의 입에 익은 말들을 통해서 유추는 가능했던 거지.

중세 영화의 Your Highness 느낌을 주는 ‘전하’란 호칭이 자연스럽게 붙는 건, 직계 왕족과 공작과 백작뿐이더라.

즉, 이곳의 백작은 왕족과 동급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언어란 사회상을 반영하는 법.

박정희 대통령 시대만 해도 통수권자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서 장성을 ‘각하’라고 부르던 관습을 금지했다고 전해진다.

근현대의 대통령도 그랬을진대 세습 왕가에서 자기 가족과 동등한 호칭을 아무에게나 허락해줄 리 있겠냐고.

왕족과 같은 호칭을 듣는 작위라는 건, 당연히 왕족만큼이나 권세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 될 터였다.


그런 뢰프 백작이 예법을 정말 모를 리는 없고······

그냥 내게 호감이 있어서 배려해주고 있다고 보면 되려나?

그 호기심의 와중에 백작의 설명이 시작됐다.


“내 후계자는······ 큰 영지를 다스리기에 적합한 녀석은 아니지. 아, 그렇게 놀란 표정 지을 것 없네. 누구나가 아는 사실을 내 어찌 모르겠나. 그대도 들었을 것 아닌가? 이 튀링겐령의 모든 이들이 둘째가 장자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탄하고 있음을 말이야. 허나······ 그렇다고는 하나, 왕가의 신하로서 적장자 승계의 원칙을 무시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라네. 그러니 아쉬운 대로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고.”

“예, 전하. 영명하신 판단이라 생각합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하는데, 오늘 일은 좀 과했더군. 소녀 남작에게 가문의 검을 들이대다니 말이야.”


이 백작은 몰락한 남작이라 해도 어린 소녀에게 그런 대접을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걸까?

그런 기대감을 품고 바라봤지만, 딱히 그렇지는 않더라.


“망신도 유분수지, 어떻게 그 많은 민초들이 보는 앞에서 그토록 내 체면을 구겨놓은 것인지······ 참 답답한 노릇이야. 그 이야기가 퍼진다면 다른 영주들이 튀링겐을 어떻게 생각하겠나? 뜻을 펼치러 찾아온 몰락귀족들을 괄시하는 야만인들의 땅으로 알 게 아닌가? 내 그런 점을 염려해 자주 불러서 주의를 줬건만······ 아직도 교육이 모자란 게지.”


내 눈은, 사람을 보는 데는 이골이 났다.

덤펜처럼 철저하게 표정을 숨기지만 않는다면 몇 마디 대화만으로도 교우관계와 생활패턴까지 맞힐 수 있을 정도.

그런 직업병 덕에 백작의 속내를 금세 읽어낼 수 있었다.


칼에 맞을 뻔한 피해자가 아니라 지켜보고 있던 대중을 먼저 언급하는 건, 피동보다 능동에 몰입하는 성격의 방증.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나’가 아니라 ‘튀링겐을 어떻게 생각하겠나’라고 말하는 태도에선 전체주의적인 면모가 엿보인다.

자식의 엇나감을 염려해 자주 주의를 줬다는 얘기에선 감성보다 이성을 중시하는 성향도 들여다보이고.

더불어 ‘야만인의 땅’을 언급하며 슬쩍 보였던 미소는, 개인적으로는 야만적인 성향에 대해서 썩 나쁘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을 드러내줬다.


그에 더해 한 영지의 군주임에도 기사단의 복장으로 산책을 했던 점까지 생각해보면······

그는 호쾌한 야수성을 내포한 실천가적 리더.

그렇다고 하면, 나와는 꽤 괜찮은 궁합일 듯했다.


심 차장이 딱 그런 인물이었단 말이지.

그분 역시 양복 속에 발톱을 숨긴 맹수.

그렇기에 지나치게 생각이 많던 사회초년생 시절의 내게 종종 혀를 차기도 했었지만, 그 다른 부분이 오히려 우리의 호흡을 부부처럼 만들어줬다.

상대로부터 자신에게 없는 면을 배우는 상생이 가능했기에.


그 관계가 백작과 내게도 적용될 것 같다.

기사들 중에서야 아마 자신과 유사한 터프가이들을 더 총애하겠지만, 지금 내 신분은 동방에서 온 유망한 행정가.

그의 기대 이상으로 섬세한 관점을 드러내 배울 게 있는 인물이라는 인상을 준다면, 그때는 참모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법도 했다.


“전하께서는 그 교육의 역할을 제게 맡겨주셨습니다. 바로 그렇기에 오늘 루디어 공을 보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분은······ 마치 무엇에 쫓기고 있는 것 같더군요.”

“쫓기고 있다? 그거 흥미로운 이야기로군. 튀링겐의 군주인 이 나의 장남이 대체 무엇에 쫓긴다는 얘기인가?”

“물론 밀림에서 새끼 사자를 몰아붙일 만한 존재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천하의 뢰프 백작이 지극히 아끼는 후계자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겠지요. 하지만 원론적으로 생각해보면 답은 자명합니다. 다 큰 사자에게는, 새끼 사자를 몰아붙이는 일 따위 어렵지도 않으니까요.”

“흐음. 그 말은······”

“예. 제가 본 루디어 공은, 세간에 알려진 바와는 달리, 바로 그 튀링겐의 군주께 쫓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덤펜은 루디어가 ‘어떤 일’을 겪고 나서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가 어째서 변했는지 잘 안다는 투로.

그렇지만 나는 그 일에 대해 굳이 묻지 않았다.

그 말을 꺼낸 것만으로도 창백해졌던 기사의 얼굴에서, 질문 하나 없이 저간의 사정을 짐작해낼 수 있었기에.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가난하던 사람이 로또를 맞는다거나, 갑부였던 사람이 쫄딱 망해 노숙자가 된다거나, 그 정도의 사건을 겪어야 그나마 조금 변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

20년 전부터 이미 왕국의 실력자였다는 뢰프 백작의 장남이 그런 평지풍파를 겪었을 리는 만무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바꿨을까.

따뜻하게 신민을 보살필 줄 알았다던 아이가, 고작 자기 발에 치마가 밟혔다고 해서 칼을 뽑아드는 소년으로 변한 과정.

충복에게 칼침 몇 방 맞았다 해도 그만큼 달라질 수는 없었으리라.

그 순간은 충격에 휩싸여 ‘다시는 남에게 잘해주지 않겠어’ 다짐했을지 몰라도, 그래봤자 호의호식하는 일상으로 돌아온 뒤로는 몇 달 안 가 원래의 모습이 복구됐을 터였다.


그런 측면에서, 일본의 한 경제학자는 인간을 바꾸는 압력이 오직 세 가지뿐이라고 말했다.

첫째는 거주지의 영향, 둘째는 스케줄의 영향, 셋째는 주로 만나는 지인의 영향.

루디어가 그중 첫째와 둘째 압력을 겪었다고 보기는 힘드니, 결국 마지막 셋째의 압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백작의 후계자에게 영향을 줄 만한 지인은 한 명뿐.

바로 내 눈앞의 뢰프 백작이었다.


백작은 가타부타 대답이 없다.

그저 잠자코 내 말을 기다리는 중.

그 눈가에 잠깐 스쳐 지난 묘한 떨림이, 내 추측이 사실임을 입증해주고 있었다.


“감히 추측해보자면, 전하께선 지금 제게 의혹을 품으신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를 읊고 있다고 보신 걸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덤펜 경이 ‘어떤 일을 겪고 달라지셨다’는 이야기를 하기는 했습니다만, 그에 대해선 캐묻지 않았습니다. 결코 말해주지 않을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요.”

“흐음. 그래. 그 충직한 기사가 함부로 그런 이야기를 떠들지는 않았겠지. 허나 그런 것치고는 확신이 가득해 보여서 당혹스럽군. 어쩌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가?”

“전하께서 방금 해주신 말씀 때문입니다. 루디어 공이 큰 영지를 다스리기에 적합한 인물은 아니라고 하셨지요? 그 말씀이······ 원래는 적합했는데 그렇지 않게 되었다고 평하신 게 아니라, 애초에 영지의 통치에 어울리지 않았던 그의 본성에 대해 지적하시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니 여쭙는 것입니다. 그 판단을 내리신 시점은, ‘어떤 일’보다 먼저였던 게 아닙니까?”


덤펜은 과거의 착한 백작영식을 그리워하는 듯 보였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을 리는 없는 노릇.

리더란 상냥함이 미덕인 자리가 못 된다.

때로는 열을 살리기 위해 하나를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하기에, 따뜻하기만 한 사람은 팀장직조차 수행해내지 못하는 법.

과거의 루디어는 야수성 넘치는 부친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장남이었을 터였다.


그렇기에 생각해보게 되는 거다.

그가 왜 무덤덤한 덤펜마저 아쉬움을 표할 정도로 급격하게 변했을지를.

신조어로 ‘흑화’라고 표현하면 잘 어울릴 그 과정은, 결코 백작영식 개인의 문제였을 리 없었다.


“하핫. 재밌군. 그래, 그랬네. 그렇다면 그 ‘어떤 일’에 대해서도 짐작할 수 있겠나?”


백작은 기대치도 못한 말을 들었다는 듯 미소를 머금고 있다.

이 정도면 이제 안심해도 되겠지.

뭐 하나 확신할 수 없어서 혼란만 가득했던 빙의 후의 하루에서, 처음으로 한숨 돌릴 만한 상황이 온 느낌이다.


다만 그 질문에는 좀 다른 고민을 하게 됐다.

이걸 정답을 맞혀도 되는 걸까 하고.

사람이 원래 드라마 속 셜록 홈즈는 좋아해도 내 옆집에 사는 탐정은 좋아할 수가 없는 종이란 말이지.

몇 안 되는 단서에서 너무 명확하게 치부를 끄집어내버린다면, 그때는 오히려 비호감이 돼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 사람을 상대로는 그렇게 해야만 해.

그가 정말 심 차장 같은 타입이라면, 여기서 내빼는 인물에게서는 아예 관심을 끊어버릴 게 분명했다.


“혹시, 죽이려 드셨습니까?”

“······하핫! 그게 무슨 망발인가? 아비 된 자로서, 어찌 내 자식을 죽이려 들 수가 있겠어? 그것도 장자일세. 장차 이 영지를 맡아 다스려야 할 아이야. 그러니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아닌가? 터무니없어서 웃음만 나오는구만!”

“예, 전하. 터무니없는 일이지요. 그렇지만 터무니없는 일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낼 때도 있는 법입니다. 전하께서는 ‘왕가의 신하로서 적장자 승계의 원칙을 무시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연히, 이 백작령은 적장자가 물려받게 되겠지요. 그가 살아있을 경우에는 말입니다.”

“하핫······! 더 말해보게.”

“태어난 날은 정해져 있어도 떠나는 날은 사람 하기 나름인 법. 장남이 죽게 되면 그 뒤의 적장자는 차남입니다. 지금 튀링겐의 신민들이 못내 바라는 일이 바로 그것이겠지요. 백작께서도 그것을 바라셨던 것이 아닙니까? 유순하고 조심스러워 군주의 자질이 안 보이는 루디어 공을, 아무도 모르게 승계 서열에서 제거하고자 하셨던 것이 아닙니까?”


현대의 소시민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패륜.

하지만 기업을 상대로 일해왔던 나는 잘 안다.

현대에도 재벌 집안에서는 그런 일들이 허다함을.


물론 물리적인 살해는 아니고 정신적인 살해지.

대한민국은 장남이 가업을 물려받아야 한다는 통념이 여전히 강한 나라고, 그래서 재벌 총수가 차남에게 힘을 실어주려 하면 은연중 파벌이 생겨 후계 갈등이 빚어질 확률이 높다.

그렇기에 차남이 장남보다 재능이 클 경우엔 총수에 의한 후계자 살해가 자행되는 거다.

이민을 보내거나 사업과 무관한 예술 쪽으로 장래를 강제하는 등, 그룹 내의 연결을 끊어 입지를 고사시키는 식으로.


평생을 일궈온 가업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리라.

열 손가락 중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내면의 야수성을 감춘 사내들은 그 아픔마저도 감내할 줄 아는 법.

현대사회에서도 그럴 정도인데 중세의 백작가에서라면 말 다 한 거지 뭐.


그런 내 확신이 백작의 표정을 통해 입증된다.

여전히 환하게 웃는 얼굴이지만······

그 눈빛만큼은, 어느샌가 용광로처럼 뜨거워져 있었다.


“참······ 그대는 대단하이. 아주 대단해. 설마 직책을 맡은 지 하루 만에 거기까지 알아챌 줄은 몰랐어. 맞아, 그랬네. 내가 그 아이를 죽이고자 했지. 해야 할 결단이었네. 특산품도 변변치 않고 생산력 또한 대수롭지 않았던 튀링겐령은, 나 이전까지만 해도 변방의 한미한 백작령에 불과했어. 게다가 100년의 동맹이자 군사력도 약한 공국과의 경계에 있어 중앙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했음이야. 그랬던 영지를 무수한 도전으로 이만큼 키워냈네. 앞으로 백년 천년 왕국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영화를 꿈꾸며. 그런 튀링겐령의 통치자가 될 가주의 자리를······ 루디어에게 물려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네.”

“그러셨는데, 어찌 살려두셨습니까?”

“죽였어. 내 딴에는, 정말로 죽이려 했어. 하지만 천운이 그 아이를 돕더군. 칼질도 제대로 못 하던 유약한 아이가, 수백의 몬스터들에게 들키지 않은 채 산 하나를 넘어왔다네. 그러고 나니 차마 손을 쓰지 못하겠더군. 어쩌면 신께서 그 아이야말로 내 후계자라고 계시해준 일일지도 모름이니 말이야.”


중세다운 사고방식이네.

뭐 마법이 있는 세계면 신이라고 없으란 법 없겠다만······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어깨의 짐이 더 무거워진 기분이더라.


“그런 후계자의 스승 역을 제게 맡기신 거로군요.”

“사실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었다네. 그대가 영지의 통치에 일가견을 보였다고는 하나, 그래봐야 남작령 아닌가. 여러 남작령을 품고 있는 이 백작령의 정무를 이해하기에는 충분치 못하지. 그러나 랄 자작이 도저히 루디어를 가르칠 자신이 없다고 하소연하기에 밑져야 본전이란 심정으로 붙이게 되었는데······ 이제는 그것까지도 신의 인도가 아닐까 싶어지는구만.”


이러니까 말이지.

죽겠다 진짜.

‘그래봐야 남작령’조차 다스려본 적 없는 내가, 그래서 고작 20명짜리 팀을 이끌던 심 차장 정도나 생각하면서 있어 보이는 척 말하는 내가, 신의 인도 소리를 듣고 있으니 원.

뭐 그건 그거고 할 말은 마저 해야겠지만.


“그런 측면에서 드릴 말씀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오늘 루디어 공의 심기를 상하게 했던 소녀를 제 양녀로 들일까 합니다.”

“······양녀라. 어쩌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됐나?”

“루디어 공의 내면은 지금 내외의 갈등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합니다. 본성은 유약한데, 약해 보이면 죽는다는 생각에 애써 강해 보이려 애쓰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여린 마음으로 거센 태도를 지어내려 하니 오히려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을 벌이곤 하는 거겠지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튀링겐의 군주가 지녀야 할 진짜 덕목을 감도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게요.”

“진짜 덕목이라. 그대는 그것이 무어라 생각하는가?”

“신념입니다. 태도가 여리고 굳세고를 떠나, 꼿꼿한 신념을 가진 자가 아니라면 작은 남작령도 제대로 다스릴 수 없는 법. 그의 심기를 상하게 했던 아이를 제 밑에 들임은 그런 까닭입니다. 저는 루디어 공에게 신념을 가르쳐줄 셈입니다.”

“······신념. 신념이라.”


백작은 오묘한 무표정으로 칼자루를 어루만졌다.

본능적인 불안감에 어깨를 슬쩍 올려 목을 가릴 뻔했던 찰나,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재밌군. 허나, 양녀로는 나이가 영 맞지 않겠구만.”


······나 혹시 나이가 썩 안 많은 걸까?

올던령에서 풍요의 노래를 부르고 어쩌고 했던 건 10년전쟁 이전일 거라, 당연히 마흔은 족히 넘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설마 10대 후반 무렵의 성과였던 걸까?


“가신으로 들이게나. 이제 스물둘인 그대가 열두어 살의 소녀를 양녀로 들인다면 그림이 좋지 않을 테니.”


스물둘?

아니, 스물둘인데, 10년 전에 풍요의 노래?

이놈의 조던 조던 남작은 대체 얼마나 천재였던 거야?

그렇게 황망해진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차분한 척 목례를 건넸다.


“감읍할 따름입니다, 전하.”

“하핫. 몸짓만 당차면 뭐 하나? 말투가 딱 책상물림인 것을. 전에도 말했다시피 뢰프 가문의 기원은 북방이야. 허례허식보다는 행동을 통해 증명하는 전사들의 땅을, 내 피가 기억하고 있다네. 풍요로운 중앙의 어중이떠중이들이 좋아하는 예법에는 관심 없으이. 그러니 내게는 그 과례를 접어두게. 그대라면······ 나이 차이는 좀 있으나, 내 친구로 생각함세.”


튀링겐의 군주에게서 친구라는 말을 듣고 난 뒤.

나는 비로소 내가 권력의 길에 들어섰음을 확신했다.

결코 쉽지 않을 길이지만, 그래도 나아가야만 할 길 위에.


작가의말

과거 <같은 꿈을 꾸다 in 삼국지>라는 소설을 무척 즐겨 읽었습니다.

‘인생작’이라는 평을 단 하나의 글에만 붙일 수 있다면 아마도 그 소설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지요.

이 <조던 남작>은 바로 그 작품을 읽던 무렵에 구상했던 글입니다.

모티프라고 하기에는 세부적인 방향성이 전혀 다르지만...

단 하나, 소설을 읽고 나서 느끼실 충족감은 그 작품과 비슷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다만 그 소설을 읽지 않은 지도 꽤 오래돼서, 어쩌면 <은하영웅전설>의 감상에 더 가까워질 것도 같네요.

어느 쪽이건 늘 그랬듯 제가 읽고 싶은 글을 한번 쭉 써보겠습니다.

저와 취향이 맞으시는 분들께는 아마 제법 기억에 남는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단히 노력해서 꼭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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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 잘하는 조던 남작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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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Chapter 15 – 암살자의 신조 (1) +2 22.10.30 907 44 16쪽
44 Chapter 14 – 권리를 수복하는 법 (3.) +2 22.10.30 1,067 46 18쪽
43 Chapter 14 – 권리를 수복하는 법 (2) +2 22.10.28 1,206 56 16쪽
42 Chapter 14 – 권리를 수복하는 법 (1) +1 22.10.27 1,322 70 17쪽
41 Chapter 13 – 사농공상 (3.) +14 22.10.26 1,401 91 16쪽
40 Chapter 13 – 사농공상 (2) +2 22.10.25 1,531 70 19쪽
39 Chapter 13 – 사농공상 (1) +4 22.10.25 1,713 83 16쪽
38 Chapter 12 – 스승을 설득하는 법 (3.) +9 22.10.23 1,834 94 16쪽
37 Chapter 12 – 스승을 설득하는 법 (2) +21 22.10.22 1,926 83 17쪽
36 Chapter 12 – 스승을 설득하는 법 (1) +8 22.10.22 2,097 88 15쪽
35 Chapter 11 – 왕국의 몽상가 (3.) +21 22.10.20 2,360 111 18쪽
34 Chapter 11 – 왕국의 몽상가 (2) +16 22.10.19 2,465 122 17쪽
33 Chapter 11 – 왕국의 몽상가 (1) +15 22.10.19 2,598 123 17쪽
32 Chapter 10 –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3.) +12 22.10.18 2,766 144 19쪽
31 Chapter 10 –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2) +9 22.10.17 2,837 126 16쪽
30 Chapter 10 –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1) +10 22.10.16 3,027 146 16쪽
29 Chapter 9 – 갈등 조정 (3.) +15 22.10.15 3,169 159 18쪽
28 Chapter 9 – 갈등 조정 (2) +4 22.10.14 3,173 159 16쪽
27 Chapter 9 – 갈등 조정 (1) +14 22.10.13 3,440 164 16쪽
26 Intermission – 반상을 뒤엎는 법 +21 22.10.12 3,438 192 16쪽
25 Chapter 8 – 마술사와 마법사 (3.) +13 22.10.11 3,326 174 16쪽
24 Chapter 8 – 마술사와 마법사 (2) +10 22.10.10 3,336 142 17쪽
23 Chapter 8 – 마술사와 마법사 (1) +3 22.10.09 3,354 144 16쪽
22 Chapter 7 – 이벤트 알림 (3.) +4 22.10.08 3,358 135 16쪽
21 Chapter 7 – 이벤트 알림 (2) +2 22.10.06 3,475 133 14쪽
20 Chapter 7 – 이벤트 알림 (1) +4 22.10.05 3,745 137 15쪽
19 Chapter 6 – 마음을 확인하는 법 (3.) +3 22.10.03 3,812 147 16쪽
18 Chapter 6 – 마음을 확인하는 법 (2) +1 22.10.02 3,982 144 15쪽
17 Chapter 6 – 마음을 확인하는 법 (1) +2 22.10.01 4,211 162 15쪽
16 Chapter 5 – 조던 남작을 찾아서 (3.) +5 22.09.30 4,463 146 16쪽
15 Chapter 5 – 조던 남작을 찾아서 (2) +6 22.09.29 4,550 170 17쪽
14 Chapter 5 – 조던 남작을 찾아서 (1) +10 22.09.28 4,670 187 15쪽
13 Chapter 4 – 핑크 프린세스 (3.) +11 22.09.28 4,702 222 17쪽
12 Chapter 4 – 핑크 프린세스 (2) +15 22.09.26 4,772 200 16쪽
11 Chapter 4 – 핑크 프린세스 (1) +10 22.09.25 5,002 207 18쪽
10 Chapter 3 – 중간관리자의 역할 (3.) +5 22.09.24 4,995 206 18쪽
9 Chapter 3 – 중간관리자의 역할 (2) +7 22.09.23 5,074 194 16쪽
8 Chapter 3 – 중간관리자의 역할 (1) +17 22.09.22 5,073 202 16쪽
7 Chapter 2 – 몰락귀족이 살아가는 법 (3.) +12 22.09.21 5,649 206 17쪽
6 Chapter 2 – 몰락귀족이 살아가는 법 (2) +14 22.09.20 5,638 211 18쪽
5 Chapter 2 – 몰락귀족이 살아가는 법 (1) +8 22.09.18 6,046 215 15쪽
» Chapter 1 – 튀링겐의 군주 (3.) +13 22.09.18 6,262 256 17쪽
3 Chapter 1 – 튀링겐의 군주 (2) +10 22.09.16 7,197 232 16쪽
2 Chapter 1 – 튀링겐의 군주 (1) +11 22.09.15 8,938 255 15쪽
1 Prologue – 상사를 설득하는 법 +21 22.09.15 11,720 276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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