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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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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작품등록일 :
2022.08.0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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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0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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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DUMMY

-연-



손님방.


나는 대장 앞에 앉아 대족장님을 알현하기 전에 갖춰야 할 예의범절을 가르치고 있다.


전에도 내가 가르쳐줬는데.


대장은 다 잊어버렸겠지?


예의범절도, 나와의 추억도.


“다 이해했어요?”


“했소.”


“좋아요. 대장이 제게 해준 말을 대족장님에게 해드렸더니 흔쾌히 보시겠다고 하셨어요. 뭐, 그러니까 이런 걸 가르쳤지만. 그런데 원하는 건 없어요?”


“있소.”


“있으면 저한테 말하세요. 제가 대족장님께 전달해 드릴게요.”


“당신이 전해주면 곤란할 수 있으니 내가 직접 말하겠소.”


“네? 혹시 이상한 걸 원하는 건 아니죠? 막, 딸을 구해주면 사위로 삼아달라거나.”


대장이 아무 말 없이 날 빤히 쳐다본다.


대장은 이런 재미없는 농담을 해도 웃어줬는데.


“아, 아니 뭐.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잖아요?”


말도 안 된다.


“큼, 뭐. 직접 말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세요. 더 필요한 건 없어요?”


“음. 그런데 당신은 이곳에 소속된 사람이었소?”


“어, 네. 맞아요.”


“그런데 어떻게 그 숲에서 만났으며, 왜 곰무덤으로 오겠다고 한 거요?”


“아··· 그게 그러니까요. 조금 복잡해요. 완전히 속해있는 건 아니고요. 일종의 계약 관계라고 해야 하나요? 제가 이곳의 단장 노릇을 하고 있지만, 제가 원할 때 언제든지 끝날 수 있는 관계예요. 그리고 그 숲에서 만난 건 정말 우연이에요. 다님을 낫게 하려는 방법을 찾다 보니···.”


“그렇소?”


“네.”


대장이 무심한 눈으로 날 쳐다본다.


나도 모르게 눈을 피해버렸다.


“그럼 곰무덤에 오겠다는 말은?”


“그, 그건 그냥 그때 분위기에 휩쓸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대, 대장이 원하면 같이 갈게요.”


“굳이 당신이 올 필요는 없지만··· 둘보단 셋이 낫겠지.”


“네?”


“족장 딸의 일이 마무리되면 같이 움직이자는 소리요.”


“아, 고마워요.”


“뭘, 내가 더 고맙지.”



///



집무실 안.


똑똑.


“들어와.”


“단장님. 단장님을 뵙고 싶다는 놈이 있습니다.”


놈?


“누군데?”


“그게 저기···.”


부관이 우물쭈물하기만 할 뿐 대답하지 못한다.


“왜?”


“짐승입니다. 천이라는 자와 같이 온 짐승이 단장님을 뵙길 원합니다. 제가 말도 안 되는 헛소리 하지 말라고 되돌려 보내려고 했지만, 워낙 완강하게 나오는지라. 그렇다고 몸에 손을 대기도 그렇고···.”


짐승이 날 왜 보려는 거지?


“짐승이 혼자 왔다는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들여보내.”


부관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짐승이 들어온다.


행색이 엉망인 걸 보니 부관이 수색을 탈탈 털다시피 한 모양이다.


“안, 녕하세요?”


짐승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고개를 숙인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짐승을 빤히 쳐다본다.


짐승이 내 시선에 안절부절못한다.


“너, 내가 입 닫고 있으라고 했는데.”


“네, 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 숲에서 일어난 건 절대···!”


짐승이 과도하게 몸짓하며 자신을 변호한다.


“목소리 높이지마.”


“죄송합니다···.”


“왜?”


“저기···.”


또 우물쭈물하며 내 눈치를 본다.


“빨리 말해. 너 같은 놈 만날 시간 없으니까.”


“주, 주인님의 부탁을 들어 주시면 안 돼요.”


“내가 들어주는 게 아니라 대족장님이 들어주시는 거야.”


“네. 알고 있어요. 그저 연님이 대족장님에게 안 된다고 의견만 말씀해 주시면···.”


“왜 안 된다는 거야? 그건 그렇고 대장이 원하는 조건이 뭔데?”


“주, 주인님은 살인 면책 특권을 원하고 계세요.”


“뭐라고?”


“살인 면책 특권이요.”


믿기지 않는 마음에 재차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도대체 그런 걸 왜?


“이유가 있으니까 원하는 거겠지.”


“주인님은 분노를 표출할 대상을 찾는 거예요. 그리고 그 대상을 찾으면 죽여버릴 목적으로 특권을 원하시는 거예요.”


말도 안 돼.


“개소리하지 마. 대장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내재한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을 죽일 사람이 아니라고.”


“그게 무고한 사람이 아니라면요?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면요?”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면 죽어야지.”


“네? 전혀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판단은 누가 하는 건데요? 주인님이 판단하는 건가요? 아니면 연님이 판단하는 건가요? 정당한 절차를 거쳐 판단해야 하는 거잖아요.”


나는 아무런 대답 없이 몸을 뒤로 젖혀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래서 막아야 한다?”


“네. 절대···.”


“네가 다님을 치료할 거야?”


“네, 네?”


“네가 다님을 치료할 거냐고.”


“저는···.”


“못하겠지.”


“네···.”


“대안도 없이 그저 반대해야 한다고? 적어도 대안이라도 가져왔어야 하는 건 아니야?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대장이 거절했고 그 때문에 다님이 죽으면 네가 책임질 거야?”


짐승이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다.


“그리고 네 처지에선 한 사람이라도 죽으면 좋은 거 아니야? 네 동족이 사람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개짓거리를 벌이고 있잖아.”



“저는···!”


짐승이 무언가를 말하려다 입을 닫아버린다.


“주인님이 걱정돼서 그런 거예요. 분노에 휩싸여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하실까 봐.”


“내가 한번 물어보자. 대장은 왜 그렇게 분노한 건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짐승이 또다시 무언가를 말하려다 입을 닫아버린다.


“나가.”


짐승의 우물쭈물하는 모습에 나는 축객령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짐승이 내게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갔다.


“괜찮으십니까?”


이윽고 부관이 들어와 내게 말했다.


“어, 괜찮으니까 나가봐.”


살인 면책 특권···.


대장, 도대체 뭘 하려고 그러는 거야?


정말 짐승의 말대로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무차별 살인을 할 속셈이야?



///



알현실.


대족장님이 자리에 앉아 무릎을 꿇고 있는 대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자네가 해결할 수 있다고?”


“그렇소.”


“연에게 들었네. 같은 잠가위에 잠식되었다고. 그래. 내 딸은 어떻던가?”


“잘 지내고 있었소. 자신의 노예기사가 없어졌다며 찾고 있었소.”


“그래···.”


대족장님이 팔걸이를 매만지며 잠깐 침묵하셨다.


내가 미리 말씀드렸지만, 당사자에게 직접 들으니 더더욱 감정이 북받치시는 것 같다.


“조건이 있소.”


“조건? 말해보게. 내 최대한 들어주겠네.”


대장이 수락도 하지 않고 조건부터 내세우는 모습이 자칫 무례하다고 볼 수 있지만 대족장님은 현재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으셨다.


자신의 딸을 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으니 이런 무례쯤은 참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리고 애초에 대족장님은 대장의 행동에 별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시지 않은 것 같다.


대장이 대족장님의 긍정적인 말에 주변을 한번 둘러본다.


대족장님과는 다르게 정작 대신들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대장을 은근히 노려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조건을 붙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은 거겠지.


“살인 면책 특권을 주시오.”


정말이었어.


“저, 저런!”


“이런 방자한 놈이 있나!?”


결국, 대신들이 대 족장님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반응해 버리고 말았다.


“대족장님. 절대 이 자의 조건을 받아들여선 안 되옵니다.”


“그렇습니다! 조건을 붙이는 것도 말이 안 돼 올진대, 살인을 면책해 주는 건 정말 말이 안 되옵니다.”


“절대 받아들여선 안 되옵니다!”


참다못한 대신들이 앞다퉈 대족장의 앞에 나서 간청했다.


“어허!”


대족장님에 팔걸이를 툭툭 치며 소란을 진정시킨다.


표정을 보아하니 대족장님도 내심 대장의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하다.


“일단 이유나 들어보고 말하게나. 그래. 왜 그런 특권을 원하는 건가?”


“세상 모든 문제는 누군가를 죽이면 해결되니까.”


“뭐, 뭐라!?”


대장의 경악스러운 발언에 나를 비롯해 알현실에 있는 모든 사람이 기겁했다.


“저, 저런 미친놈이···.”


얼마나 놀랐던지 앞에 대족장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신 중 하나가 욕설을 내뱉고 말았는데 모두가 들었음에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저 말에 공감했기에.


대족장님마저.


“동의하지 않는다면 나는 돌아가겠소.”


대장님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난다.


“잠깐!”


대족장님의 제지에 대장이 꼿꼿이 선 자세로 쳐다본다.


“정말 그거면 되겠나?”


“대족장님!”


“절대 안 됩니다. 살인 면책이라뇨!”


대신들이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극렬히 반대한다.


“조용히 있게!”


대족장님의 고함에 대신들이 쥐 죽은 듯 조용해진다.


“내가 그거면 되겠냐고 물어봤네.”


“그렇소.”


“좋아. 단 내 가족들에 한해서는 그 부탁을 들어 줄 순 없네.”


“알겠소.”


“또한, 연과 동행하도록 하게. 연. 내 말에 따라줄 수 있겠지?”


대족장님이 날 쳐다보시며 말씀하셨다.


대장이 돌발행동을 할 수 있으니 나보고 막으라는 말씀이겠지.


“알겠습니다.”


“좋아. 둘은 이만 물러가게.”


대장과 함께 알현실을 나섰다.


문이 닫히는 틈으로 대신들의 항의가 들려온다.



///



손님방


“무슨 속셈이에요?”


“아무 속셈 없소.”


“면책 특권 말이에요. 정말 제정신으로 말한 건가요?”


“난 제정신이오.”


“이건 대장이라고 해도··· 정말,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당신의 이해를 바라고 한 행동은 아니오.”


“잠깐만요! 사람이 어찌 그렇게 매정해요!? 난 대장이 걱정돼서 그러는 거잖아요!”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말했던 대로 누군가가 죽어야만 이 일이 해결되기 때문에 대족장에게 특권을 요구한 거요.”


“정말 그 누군가만 죽일 생각인가요?”


대장은 대답 대신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대답 안 할 거예요?”


여전히 대답이 없다.


그리고 그 무응답은 내게 어떠한 대답보다 가슴을 무겁게 만들었다.


똑똑.


“누구세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 내가 물었다.


“연님? 저예요. 분.”


“아, 분님. 잠시만요. 대장. 다님의 노예기산데 들여도 괜찮을까요?”


“괜찮소.”


“들어와요.”


문을 열어 분을 맞이했다.


“고마워요.”


분이 날 쳐다보고 고개를 숙인다.


그리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짐승을 쳐다보고 대장을 쳐다본다


대장 또한, 분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쳐다본다.


“몸과 마음을 아쥔타에게 바치는 분님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대장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아, 몸과 마음을 아쥔타에게 바치는 천님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분 또한 대장과 같이 정중하게 인사했다.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다님의 문제를 해결할 분이 오셨다고 들었는데 그분이 노예기사였을 줄 말입니다.”


대장이 일반적인 노예기사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아무도 몰랐겠지.


그래서 분의 귀에도 들어가지 않았던 거고.


그런데도 보자마자 눈치챈 걸 보면 노예기사 사이에 뭔가가 있기는 한가 봐.


“실례가 안 된다면,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말씀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제가 다님을 한번 뵀으면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괜찮습니다. 제가 안내할 테니 따라오세요.”


그런데, 왜 이렇게 서로 예의를 과도할 정도로 차리는 거야?


둘 다 무례한 사람은 아닌데 그렇다고 해도 너무 과도한데.


분이 문을 열고 나섰고 대장이 뒤따라 움직였다.


“대장, 같이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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