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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 인간, 인간, 사람,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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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작품등록일 :
2022.08.0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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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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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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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DUMMY

-선-



천이 써놓은 편지를 내려놓고 방안을 한번 둘러봤다.


휑한 방안에 덩그러니 있는 내가 불쌍하게 보인다.


왜? 왜 네가 불쌍해?


이 미친년아, 너는 불쌍한 자격도 없는 년이야.


너는···.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내 상념을 깼다.


누구지?


“누구세요?”


“단장님의 부관입니다.”


부관이 왜?


“들어오세요.”


부관이 문을 열고 내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나는 자리에 앉아 있는 채로 고개만 끄덕거려 인사를 받았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지령서를 전해주러 왔습니다.”


아, 단장이 말한 거구나.


“주세요.”


부관이 내어주는 지령서를 받고 그대로 품에 넣었다.


“안 읽어보십니까?”


“부관님이 가면 읽어보려고요. 어차피 단장님에게 대충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이만.”


“가기 전에 특별히 할 말이라도 있나요? 사건에 관련된 거라던가.”


몸을 돌려 방을 나서려는 부관을 괜히 한번 잡아두었다.


천이 떠나버린 이 방에 나 혼자 있기 싫었기 때문이다.


아, 염치없는 년.


네가 왜 천을···.


부관이 무언가를 말할까 말까 고민하는 듯 어깨를 잠깐 들썩인다.


“사람은 당신을 기억할 겁니다. 적어도, 저는. 저는 당신을 기억할 겁니다.

당신은 사람을 구한 영웅입니다.

그리고 기사의 일원인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부관이 내게 몸을 돌려 말했고, 말이 끝나자마자 큰절을 한 뒤 나가버렸다.


씨발··· 영웅 좋아하시네.


기분 잡치게 만드네, 씨발.


짐을 급히 챙기고 한기가 느껴지는 엿 같은 방을 빠져나갔다.



///



“저곳이야?”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는 근처의 산에서 밑으로 딸려 들어온 두 명의 기사에게 물었다.


“네, 선배님. 그렇습니다.”


그중 판금 갑옷을 입은 기사가 말했다.


품에서 지도를 꺼내 맞는지 살펴보려 했지만 익숙한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맞다. 천이 빌려 간다고 했지.


“하루. 더는 안돼. 너희들도 들어서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습니다.”


“간략히 설명해봐.”


“이곳은···.”


나는 기사가 말해주는 여태까지의 경과를 묵묵히 들었다.


“요즘엔 주변 정리를 잘 안 하나 봐?”


“네. 세상이 어수선해진 후부터 양성소에선 최대한 움직임을 자제하고 있는 편입니다.”


“그래서 이런 새끼들이 설치는 거고.”


발치에 있는 썩어버린 짐승의 사체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마을 내에서 자경단을 만들어 대비했지만, 역부족이었던 모양이었습니다.”


판금 갑옷의 기사가 그 옆에 썩어버린 사람의 시신을 살펴보며 말했다.


기사 두, 셋만 파견해줬어도 이런 피해는 없었을 텐데.


반나절도 안 걸리는 거린데 그 정도는 해도 되는 거잖아.


씁쓸함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탁탁 털었다.


“그래서, 이젠 저기에는 사람이 없어?”


“그렇게 추정하고 있습니다. 만에 하나 살려두었다고 해도 탈을 벗길 용도로 두었기에 온전한 상태가 아닐 겁니다.”


“처리해야 한다는 말이네.”


찝찝하게.


없길 바라야 하나?


“갑옷 줘.”


입은 채로 산을 오르기 싫어 맡겨두었던 갑옷을 찾았다.


내 말에 판금 갑옷을 입지 않은 나머지 기사가 앞에 갑옷을 내려놓는다.


근데 얘들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기억이 안 나네.


그냥 남기사와 여기사라고 해야겠다.


“수고했어. 수고하는 김에 내가 입는 것 좀 도와줄래?”


“알겠습니다.”


남기사가 내 말에 이리저리 갑옷을 끼워 맞춰 입는 걸 도와주었다.


30킬로그램이나 되는 쇠갑옷을 입으니 옛날 생각이 새삼스럽게 난다.


졸업하고 이 갑옷과 검을 받았을 땐 진짜 온 세상이 내 것 같았는데.


피식 웃고 여기사가 남기사의 갑옷을 입혀주는 걸 아무 의미 없다 쳐다봤다.


그런 내 시선을 빨리하라는 재촉으로 느꼈는지 속도를 내어 갑옷을 입고 내 앞에 섰다.


“좋아. 작전을 말해주지. 그냥··· 죽여. 짐승이잖아?”


“어디까지 허용하십니까?”


여기사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내게 물었다.


“그중에 계급이 제일 높아 보이는 놈하고 늙어 보이는 놈은 살려둬.”


“알겠습니다.”


“가자.”


철컥철컥 소리를 내며 산에서 내려가는데 짐승 하나가 머리에 바구니를 든 채 나물을 채취하고 있었다.


갑옷 소리에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더니 화들짝 놀라며 바구니를 내팽개치고 달아나려고 했다.


허리에 찬 검을 뽑아 짐승의 종아리에 던졌고 비명과 함께 자리에 쓰러진다.


“오, 오지 마세요! 제발, 제발!”


무시하고 가까이 가니 누가 짐승 아니랄까 봐 손톱을 뽑아 이리저리 허공에 휘둘렀다.


갑옷을 입었으니 개의치 않고 종아리를 꿰뚫고 땅에까지 박힌 검의 손잡이를 손에 쥐어 뽑아냈다.


그러자 짐승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허물어졌다.


“제가 처리할까요?”


고개를 저어 내가 처리하겠다는 표시를 했다.


여기사의 말을 들은 짐승이 움찔했고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고개를 살짝 들어 날 쳐다봤다.


자신을 죽이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인지 눈에 희망이 조금 깃들어 보인다.


“너, 이 산의 밑에 있는 마을에 살고 있어?”


짐승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거기에 사는 무고한 사람을 죽였겠지?”


“아, 아니에요. 저는 상황이 다 끝난 다음에···.”


“그래? 알았다.”


“사, 살려 주시는 건가요?”


“그래.”


“가, 감사···.”


나는 대답을 전부 듣지 않고 짐승의 목을 쳐냈다.


미소를 지은 채 데굴데굴 굴러가는 짐승의 머리를 보니 내가 정말로 자신을 살려둘 거라 판단한 모양이다.


“멍청하긴.”


순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 쳐다보니 짐승 하나가 우릴 쳐다보고 있었다.


이 짐승의 새끼인 모양이다.


“어, 엄마!”


손에 한가득 들고 있던 나물을 던져 버리고 머리가 사라진 제 어미의 곁에 가 눈물을 흘리며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엄마, 엄마, 일어나봐···.”


마음 약해 지지마.


마음 약해 지지마.


이놈은 무고한 사람을 죽였어.


내가 안 죽이면 다른 사람이 죽어.


마음 단단히 먹어.


“우리 엄마 살려내! 이 나쁜 사람들아!”


제 어미가 죽었다는 걸 인지한 것인지 나한테 가까이 붙어 주먹으로 내 허벅지를 쿵쿵 때리며 눈물을 쏟아냈다.


나는 무릎 한쪽을 꿇고 짐승의 머리채를 쥐어 잡아 눈을 마주쳤다.


“엄마 보고 싶어?”


“우리 엄마 살려내라고, 으아앙!”


단검을 꺼내 짐승의 심장에 천천히 박아넣었다.


검에 찔린 짐승이 부르르 떨더니 축 늘어진다.


머리채를 쥔 손에 힘을 풀자 바닥에 툭 하고 쓰러진다.


약해 지지마.


짐승에게 연민을 가지지 마.


내가 이놈들을 죽이지 않으면 사람이 죽을 거야.



///



칼을 빼든 채 마을 입구에 서자 종이 뎅뎅 울리며 조잡한 화살이 하나둘 날아왔다.


약간의 미는 힘만 느껴질 뿐 몸엔 아무런 해를 주지 못했다.


누군가가 제법 쓸만한 창을 던졌지만, 갑옷 앞에선 화살과 같은 존재다.


내 검을 쓰기 싫어 집어놓고 창을 집으니 짐승의 손톱으로 만든 창이었다.


“그만! 더 다가오면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감시탑에 누군가가 나타나 되지도 않는 위협을 했다.


“불화살 날려.”


내 말이 두 명의 기사가 시위를 매겨 감시탑을 향해 불화살을 쐈다.


기름을 먹여 두 발의 화살만으로도 감시탑에 불을 붙여버렸다.


개소리하던 건방진 짐승이 화들짝 놀라 감시탑을 급히 내려간다.


“새끼도 봐주지마. 전부 죽여.”


“알겠습니다.”


두 명의 기사가 마을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불나방 같은 짐승이 손톱을 빼든 채 덤벼들었지만 작은 불꽃만 남길 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


두 기사의 칼질 한번 한번마다 사지와 머리가 하늘로 흩날렸다.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뛰어가는 암컷 짐승과 제 부모를 잃어버리고 주저앉아 악을 쓰며 울어대는 어린 짐승이 혼란을 더욱 부추겼다.


나는 그런 짐승의 곁으로 가 정체 모를 짐승의 손톱으로 만든 창을 머리에 찔러넣었다.


내가 죽인 놈 중 분명히 이 손톱 주인의 부인이나 새끼도 있겠지.


이 창의 주인이 알면 어떻게 반응할까?


오열하며 겁쟁이처럼 숨어있을까?


아니면 내게 살심을 드러내고 저 불나방처럼 달려들까?


생각에 빠진 채로 하나하나 짐승을 죽이다 보니 어느새 주변이 조용해졌다.


이렇게 쉬운걸.


이렇게 쉬운데 왜 양성소는 병력을 보내지 않은 거야?


“눈에 보이는 짐승은 전부 처리했습니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한 두명의 기사가 내가 다가와 보고했다.


“사람은?”


“있습니다.”


빌어먹을.


“상태는?”


“역시 예상한 대로입니다.”


“알았다. 내가 처리할 테니 숨어있는 짐승을 찾아내. 말한 대로 계급이 높아 보이면 광장으로 데려와.”


“알겠습니다.”


두 기사가 내게 고개를 숙이고 집을 하나하나 뒤지기 시작했다.


이따금 비명이 들리는 걸 보니 역시 쥐새끼처럼 숨어있었던 모양이다.


기사가 알려준 곳으로 가니 감옥 안에는 못할 정도로 처참한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이성이 없어진 듯 가죽이 벗겨진 얼굴로 연신 침을 흘리며 나를 멍하게 쳐다보고 있다.


“내 말 들려요?”


아무런 대답이 없다.


“들리면 말 좀 해봐요.”


누가.


누가 말 좀 해봐.


씨발, 내가 너희를 살릴 수 있게 말 좀 해보라고!


눈을 질끈 감고 한동안 감옥 앞에 우두커니 서서 하늘을 쳐다봤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나는 짐승의 손톱으로 만든 창을 던져 버리고 칼을 빼 든 채 감옥 안으로 들어갔다.



///



광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의자를 주워 앉아 투구를 벗고 머리를 쓸어내렸다.


짐승의 것인지 아닌지 모를 피가 내 얼굴을 적셨다.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이라 수색이 끝난 것인지 두 기사가 짐승 세 마리와 도깨비 한 명을 내 앞에 세웠다.


도깨비?


“도깨비는 뭐야?”


“이 짐승의 집에 있는 다락에서 발견했습니다.”


여기사가 한 짐승의 종아리를 걷어차며 말했다.


짐승이 허물어져 피가 고인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이봐요, 괜찮아요?”


분명 눈을 뜨고 날 쳐다보고 있지만, 반응이 없다.


어째 눈이 흐리멍덩한 걸 보니 이 도깨비도 정상이 아닌듯싶다.


“아까부터 불러봤지만, 반응이 전혀 없습니다.”


“일단 빼놔. 저놈도.”


“알겠습니다.”


남기사가 도깨비와 바닥에 처박힌 짐승을 끌고 갔다.


남은 놈을 쳐다보니 늙은 짐승 하나와 주제에 맞지 않게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짐승이다.


“네가 여기 원로야?”


늙은 짐승을 칼로 가리키며 물었다.


“그렇다.”


건방지게 반말을 하는 걸 보니 삶에 미련이 없나 보군.


“너는 뭐야?”


이번엔 다른 짐승을 칼로 가리키며 물었다.


“저, 저, 저는···.”


“저 둘은 한집에 있었습니다.”


여기사가 재빨리 내게 가까이 다가와 귓속말했다.


한 집?


늙은이 새끼군.


“왜 이 마을을 공격한 거지? 양성소와 가까운 곳이란 걸 몰랐나? 멍청하긴.”


“아니, 알았다. 양성소의 턱밑이 우리 짐승에게 당했으니 멍청한 건 너희들이 아닌가?”


원로가 제법 기개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내 말을 받아쳤다.


여기사가 칼을 빼 들어 발꿈치 힘줄을 베어냈다.


하지만 원로는 비명 한번 지르지 않고 천천히 무릎을 꿇기만 했다.


오히려 베이지 않은 짐승이 호들갑을 떨며 난리를 피워댔다.


“너랑 전혀 닮지 않았군.”


늙은 짐승이 대답하지 않고 나를 노려봤다.


내가 저 짐승이 자기 아들이라고 아는 걸 파악한 모양이다.


“네 암컷이 다른 수컷을 씨를 받아들였나 봐.”


그 말에 늙은 짐승이 벌떡 일어나려고 했지만, 여기사가 어깨를 꽉 누르고 있는 덕분에 그러지 못했다.


“원하는 게 뭐냐!?”


“원하는 거? 없어. 너희들이 죽는 것 빼곤.”


“그런데 왜 이런···.”


“그냥 가지고 노는 거지.”


“선배님, 선배님 피하셔야 합니다!”


갑자기 도깨비를 데려갔던 남기사가 나를 부르며 허겁지겁 달려왔다.


“왜 그러는거야?”


“미, 미친 짐승이 도깨비에게 피를 먹였습니다. 어서 빨리···!”


뭐라고?


“크하하하! 이거 혼자 죽지는 않겠어!? 하하하!”


원로의 기분 나쁜 웃음이 내 머리를 강타했다.


작가의말

엌ㅋㅋ 내가 100화를 쓰다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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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외전 23.06.19 2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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