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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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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작품등록일 :
2022.08.0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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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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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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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DUMMY

-짐승-



“그러니까 이 빗을 갖고 나가지 못할뿐더러 나간다 해도 맨손으로 만지면 죽는다고?”


범이 도깨비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재차 물었다.


“허얼- 나 지금 세 번째 말하는데.”


도깨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보시오. 돌멩이와 함께 춤추는 거위. 나 좀 봅시다.”


“어, 어?”


주인님의 말씀에 범이 얼빠진 표정으로 이쪽으로 걸어왔다.


기껏 찾은 빗을 못 쓴다고 들었으니 제정신이 안 들 수밖에.


“약속대로 빗을 찾았으니 우리는 이만 가보겠소.”


“아니, 지금···.”


“조건은 처음부터 빗을 찾는 것까지였소. 당신의 빗을 찾았으니 약속은 지킨 셈 아니오?”


“그건 그런데···.”


“그럼 이만.”


범이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했지만, 주인님은 말을 끊어버리고 빼도 박도 못하게 작별인사까지 해버리셨다.


“뭐야? 아저씨들은 갈려고요?”


“그래.”


주인님이 뒤로 돌아서서 출구로 나가려고 하자 도깨비가 앞을 가로막았다.


“나한테 볼일이 있나?”


“으음···.”


주인님과 나를 번갈아 쳐다본다.


“우리 집에 가실래요?”


“싫다.”


무안할 정도로 단칼에 거절해버리고 도깨비를 지나쳐 앞으로 가셨다.


그러자 도깨비가 양 주먹을 꽉 쥔 채 부들부들 떨더니 범에게 뛰어갔다.


저놈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얼른 주인님의 곁으로 달렸다.


“아저씨! 저 아저씨를 우리 집에 오게 하면 그 빗을 사용하게 해줄게요!”


도깨비의 말에 주인님이 작게 무언가를 말씀하셨는데 욕을 하신 것 같다.


“무시하고 앞으로 걸어.”


“이봐, 잠깐 나 좀 봐.”


범이 어느새 앞에 서서 우리를 가로막았다.


“선 넘지 마시오. 약속은 분명 당신의 빗을 찾는 것까지였소.”


범이 아닌 주인님에게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직, 아직 시간이 좀 남았잖아? 저기 6구역의 날이 점점 어두워지는 거 보이지?”


범이 손가락을 위로 뻗어 머리 위에 있는 6구역을 가리켰고 주인님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셨다.


“아직 하루의 반이 남았어. 응? 범 하나 살린다고 생각하고 남은 시간에 저 녀석 집에 잠깐만 다녀오자.

내가 양성소까지 태워줄게. 빗을 찾는 게 조건이긴 했지만, 네 시간을 하루하고도 반을 산 거잖아, 내가?”


범이 무릎을 꿇고 보는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애처롭게 사정하며 빌었다.


도깨비는 이런 상황이 재밌다는 듯 키득키득하며 보고 있다.


“응? 제발, 제발 한 번만 부탁해.”


주인님이 허리에 손을 올린채 눈을 감으셨다.


“두 시간. 일 분이라도 초과할 경우 정말로 가겠소.”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흙을 털지도 않고 도깨비에게 걸어가 무언가를 얘기했다.


무언가 잘 풀리지 않는 것인지 이리저리 손짓해가며 열심히 설득한다.


도깨비가 고개를 끄덕였고 범은 그제야 환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저 빗이 뭐라고.


내가 보기엔 단순한 빗인데 저게 뭐라고 굴욕을 감수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거지?


아마도 내가 범이 되지 않는 이상 절대 모르겠지.


“좋아. 쟤가 두 시간 정도면 제염하고 봉인할 수 있대.”


“제염? 제염이 뭐지?”


“몰라. 하여튼 그걸 하면 내가 쓸 수 있대.”


“알았소.”



///



도깨비 혼자 있기엔 큰 집안의 식탁에 앉아 도깨비가 각각의 잔에 물을 따라주는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


“조금만 기다리면 맛있는 음식이 나올 거예요.”


그리곤, 이해 못 할 소리를 하고는 부엌으로 들어가 버린다.


“지금 저놈이 뭐 하는 거지? 마시지도 못할 물을 왜 따라 주는 거야?”


안달 난 범이 소꿉장난에나 쓸법한 물잔을 한번 들어보고 신경질적으로 내려놓았다.


자기 빗을 정상적으로 돌려준다고 해서 굴욕까지 감수했는데 이상한 짓만 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오호호, 다 됐으니까 기다려요. 둘이 먹는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맛있는 걸 내올 테니까.”


이내 부엌에서 나와 냄비와 그릇, 수저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 안에 요리는 없다.


이게 뭔 상황인가 싶어서 도깨비를 멀뚱멀뚱 쳐다보니 날 쳐다보며 미소를 살짝 짓는다.


“왜? 입맛이 없니?”


“어, 어?”


“이놈이! 엄마한테 반말이 뭐니!?”


도깨비가 눈을 표독스럽게 뜨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 엄마? 자기가 여성이라고 설정한 건가?


그건 그렇고. 갑자기 이게 무슨···.


진짜 소꿉놀이를 하는 거야?


그, 어린아이들이 하는 소꿉놀이?


“잘 먹겠습니다.”


주인님은 도깨비가 무엇을 하는지 진작 눈치채신 것인지 놀이에 어울려주셨다.


“그, 그렇지. 저도 잘 먹을게요.”


범도 상황을 이해하고 젓가락을 들어서 먹는 시늉을 했다.


“여보, 갑자기 왜 그런 존댓말을 하는 거야?”


“어, 어? 내가 여보야?”


“그럼. 당신이 아니면 누가 여보겠어?”


“마, 맞네. 내가 여보네. 잘 먹을게.”


“호호, 어서 먹어요. 너도 어서 먹으렴. 식겠다.”


도깨비가 날 쳐다보며 재촉했다.


“잘, 먹을게요. 엄마.”


내 평생 누군가에게 엄마라고 부를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여기서 부르게 됐네.


살짝 미소를 지으며 숟가락으로 떠먹는 척을 했다.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를 안고 도깨비의 놀이에 어울려주길 얼마간.


도깨비가 손뼉을 짝 치며 범을 쳐다본다.


“여보,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나한테 망가진 물건이 있다고 했잖아요?”


“어? 내가 그랬어?”


범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멍청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게 연기면 유랑극단이 찾아와 반드시 제 극단에 처넣어 버렸을 거야.


“아이참, 빗이 망가졌다고 했잖아요?”


“그래! 내가 분명히 그렇게 말했지. 그리고 당신이 그걸 고쳐준다고 했고!”


드디어 자기 빗을 고쳐준다고 생각한 모양에 흥분한 것인지 콧김을 씩씩 내뿜었다.


콧김이 얼마나 센지 얼굴을 막아주는 막이 김을 내뿜을 때마다 뿌옇게 되었다.


“어머, 그렇게 좋아요?”


“그래, 좋아서 미치고 팔딱 뛰겠어.”


“이리 줘봐요. 내가 한번 봐야 하니까.”


범이 밥 먹는 시늉을 할 때도 왼손에 꽉 쥐고 있었던 빗을 도깨비에게 건네주었다.


“흠, 이건 시간이 좀 걸리겠어요.”


“어, 얼마나?”


“한 시간 반?”


“아, 알았어. 그러니까 어서 해.”


“호호, 급하기는. 아직 식사를 전부 하지 않으셨잖아요? 다 하셔야 제가 치우고 수리를 하죠.”


“나 다 먹었어! 너희들도 다 먹었지?”


“그렇, 네.”


“네. 다 먹었어요.”


“들었지? 어서 그릇 치우고 수리해줘. 아니다, 그릇은 내가 치울게.”


“당신도 참. 설거지도 부탁해요.”


“설거지 같은 건 걱정하지 마. 당신은 내 빗을 수리하는 것만 집중하라고.”


범이 식기 도구를 한곳에 모아 부엌으로 부리나케 걸어갔다.


그리곤 일부러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내어 자신이 설거지하고 있다는 것을 도깨비에게 알렸다.


“자, 그럼 수리를 해 볼까? 아 참. 너희들은 저 방에 들어오면 안 된다?

저 방엔 아주 무시무시한 것들이 있거든.”


“알겠어요.”


내 대답을 들은 도깨비가 미소와 함께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들어오지 말라는 방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는 한바탕의 소동이 끝나고 침묵이 내려앉았다.


다만, 범이 내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만이 이 집에 누군가가 있다는 걸 상기시켜 준다.


“하하, 저 도깨비는 미친 도깨비가 아닐까요?”


침묵을 깨려고 일부러 어색한 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하지만 주인님은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소꿉놀이라니, 하하···.”


계속해서 말을 하려고 했지만, 눈치를 보니 주인님의 심기가 불편하신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도깨비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도깨비는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지만, 그에 대해서 입을 꾹 닫고 있고.”


여전히 눈을 감고 팔짱을 끼신 채 말씀하셨다.


“도깨비는 이 세상에 실재하는 것 중 유일하게 부모가 없는 존재다.

저 어린것이 이 큰 집에서,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이곳에서, 얼마나 외로웠을지 생각해 본 적 있나?”


“저는···.”


“태어난 순간부터 이 요람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혼자서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아···.”


“가족이 어떤 것인지 느껴보고 싶었겠지. 그래서 떼를 써가며 우릴 데려와 다짜고짜 소꿉놀이를 시켰을 테고.”


처음부터 가족이 없으면 그것이 어떤 것인지 모를 텐데 그리워한다고?


이해할 수 없었지만··· 주인님의 말씀이 맞겠지.


그 이후로 범이 내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음악으로 삼아 앉아 있는데, 갑자기 온 사방에서 지금까지 들렸던 다른 귀를 찢는 소리가 들렸다.


전혀 들어보지 못한 위협적인 소리다.


또한, 온 집안이 붉은색으로 번쩍거려 분위기를 더욱 위협적으로 만들었다.


“뭐, 뭐야!?”


아직 설거지하고 있던 범이 부엌에서 튀어나와 우리를 쳐다봤다.


방안에 틀어박혀 있던 도깨비가 문을 벌컥 열고 나와 복잡한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본다.


“이게, 이게 얼마 만에 느껴보는 건데···.”


우리 셋은 그런 도깨비의 눈치를 보며 숨을 죽였다.


“아저씨, 여기에 빗 있으니까 가지고 가요.”


도깨비가 작은 함을 내밀었다.


“어, 어. 그렇게 고마워.”


“여기서 열지 말고 이곳의 출입구에서 여세요. 또한, 열 때도 맨손이 아닌 지금 입고 있는 옷을 입은 상태로 여시고요.

입구에서 함을 열면 빗이 바닥으로 떨어질 거예요. 떨어진 빗은 옷을 벗고 집으시고요. 내 말 이해했어요?”


“전부 이해했어.”


“좋아요. 이제 전부 가세요.”


갑작스러운 축객령에 나갈 생각은 않은 채 도깨비를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다.


“나가라고!”


도깨비가 소리를 빼액 지르자 그제야 우린 집을 나갔다.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범이 우리를 보며 물었다.


하지만 우리도 모르니 대답을 못 할 수밖에.


“일단 여기서 나갑시다. 뭔지 몰라도 심각한 상황이 벌어진 것 같소.”


“어, 어. 그래. 빨리 나가자.”


“미안하지만, 당신이 우리를 양 겨드랑이에 끼고 나가면 안 되겠소?”


“좋아. 그게 더 빠르겠네.”


“함은 이리 주시오. 내가 들테니.”


범이 주인님에게 함을 주고 주인님과 나를 양 겨드랑이에 각각 끼고 출구를 향해 달렸다.



///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심하게 울린다.


“뭐, 뭐야!?”


범이 뜀박질을 멈추고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빨리 가시오!”


앞으로 갈 수 없을 만큼 땅이 울려 걷기가 힘든 모양이었지만 주인님은 범을 재촉했다.


“지진인 모양이야!”


“알고 있으니까 빨리 움직이시오!”


“씨발, 재수에 옴 존나 붙었네! 갑자기 지진은 무슨 지진이야!?”


몸을 가누지 못한 범이 휘청거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야! 미안한데 너희들도 걸어야겠다! 몸을 가누지 못하겠어!”


범이 주인님과 나를 땅에 내려놓았다.


“좋았어! 이제··· 저, 저것 좀 봐!”


갑자기 범이 손을 덜덜 떨며 앞을 가리켰다.


“왜 그러···.”


주인님도 범이 가리킨 방향을 보시고 말을 잇지 못하셨다.


뭔가 싶어 쳐다보니 땅에서 커다란 뚜껑이 열리고 있었다.


“저게, 저게 뭐야!?”


나는 전혀 보지 못한 광경에 범처럼 손가락을 덜덜 떨며 가리켰다.


“뭐긴 뭐야! 그냥 조금 큰 구멍이야!”


“잠깐!”


어느새 정신을 차린 범이 완전히 열려 큰 구멍으로 씩씩하게 걸어가려 했지만, 주인님이 급히 저지했다.


그 순간 쿠구궁 거리는 소리와 함께 전보다 큰 지진이 발생했다.


“또 지진···.”


범의 목소리를 삼킬 만한 큰 소리와 함께 구멍에서 커다란 원뿔 모양의 막대기가 나타나 점점 위로 향하더니 온 사방을 집어 삼킬만한 화염을 내뿜으며 하늘로 사라졌다.


“씨발, 저게 도대체 뭐야?”


우리는 멍청하게 이쪽을 덮쳐오는 불길도 모르고, 그저 커다란 막대기가 사라진 하늘을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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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109(1과 2사이지만 1과 가장 가까운 어느곳) 23.07.30 3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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