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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를위해 님의 서재입니다.

쑥과 마늘 없이 사람이 되는 법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중턱
작품등록일 :
2018.06.16 20:44
최근연재일 :
2018.10.30 03:07
연재수 :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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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49
추천수 :
545
글자수 :
445,694

작성
18.07.11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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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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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
13쪽

3장 - 숲의 주인(6)

DUMMY

“안 돼요.”


이럴 땐 단호하게 나와야 한다. 괜히 미적지근하게 될 듯 말 듯 한 반응을 보이면 곧바로 밀어붙일 것이 뻔했다.


“한 번만.”

“사람에게 한 번만 죽어달라고 해 봐요. 그 말을 듣나.”


하지만 두 사람은 끈질겼다. 민기 형은 능글맞은 투로 과장 아저씨와 함께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에이, 그거랑 이거랑 같나?”

“저한텐 같아요.”

“그러지 말고, 한 번만.”

“부탁해도 소용없어요. 안 해요.”


하지만 보통의 설득으론 안 될 것을 미리 예상했던 두 사람은 끈질기게 설득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무작정 부탁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던 민기 형의 설득과는 달리 과장 아저씨의 설득은···.


“커럽터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처럼 기회가 생겼을 때 얼굴을 보이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


이상할 정도로 집요한 모습을 보이는 과장 아저씨의 모습에 나는 시큰둥한 태도로 물었다.


“왜, 왜요.”


···물어보려고 했다. 젠장, 거기서 왜 말을 더듬어서! 하지만 이런 말 들을 걸 이미 알았다는 듯, 과장 아저씨는 막힘 없이 이야기를 풀었다.


“처음엔 너의 얼굴을 보이는 것이 무작정 너에게 상처만 준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너의 현 상태를 좀 더 자세히 알게 되니까 어쩌면 조금 괴로울지라도 그 괴로움을 딛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저 미친···아니, 저 엘프 아가씨의 말만 들어도 그래. 네 눈에는 너의 하관이 붉게 부어오른 모습이었다고 했지만···다른 사람인 저 엘프의 눈에는 갸름한 남보랏빛 피부였다고 했지. 이게 무슨 뜻일 것 같아?”

“······제가 보는 게 진짜가 아니란 거요?”

“바로 그거야.”


저 설득은···꽤 솔깃하긴 했다. 이런 내 심정을 꿰뚫어보기라도 한 듯, 아저씨는 버터라도 바른 듯 쉴 새 없이 굴러가는 혀로 날 설득했다.


“가만히 잘 생각해봐. 지금이 바로 기회가 아닐까? 네가 지난 8년간 미뤄왔던 네 얼굴을 확인할 기회. 네가 두려워하던 것이 무엇인지, 네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려줄 기회 말이야.”


하지만 난 과장 아저씨에게 조금 익숙해졌다. 이 정도 설득은 무시할 수 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고 해도 안 벗어요.”

“내 말을 들어봐. 넌 네 얼굴을 확인하는 것과 남에게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맞지? 하지만 말이야, 그렇기 때문에 네 문제의 해결책은 바로 그 뚜껑···아니, 투구 안에 있는 걸지도 몰라.”

“말도 안 돼요. 제가 두려워하는 거랑 해결책이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예요?”

“내 말은 그게 아니야. 그 안면부를 개방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작, 첫 발돋움인 거지. 너는 기억이 없어. 그렇지?

네 말이 맞다면, 넌 지난 8년간 단 한 번도 네 얼굴을 확인하지 않았어. 하지만 그것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 있었고···그리고 네가 생각했던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지. 적어도 하관만큼은 말이야. 그런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단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다면서. 어떻게?

그걸 그렇고 보도록 네 뇌가 각인을 시킨 것일지도 모르지. 그래, 쉽게 말해서 정신적 방어기재라 이 말이야. 하지만 사실을 가리는 것과 괴로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어. 하나는 도망치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길고 진부하게 이어지는 설득에 나는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렇게 말해도 안 해요.”

“···끝까지 들어봐. 이렇게 널 밖으로 끌어내려는 사람들을 봐봐. 우리가 널 상처 입히려는 사람이야? 그렇지 않아. 널 좋아하는 사람에 가깝지.”

“···절 좋아한다고요? 왜요?”

“네 능력은 돈이 되고, 너와 친해지면 어떤 방식으로든 이득이 되거든. 그리고 너란 녀석이 그닥 나쁜 것 같지도 않고 말이야. 난 이득이 되는데 사람이 덜 된 놈은 가까이 안 해.”

“전 사람이 됐고요?”

“적어도 돈 받고 사람 죽이거나 사람을 죽여 달라고 사주는 하지 않잖아. 도리어 지켜주는 쪽이지.”

“저도 의뢰 때문에···.”


이 말은 실수였다. 내 말이 어떤 내용으로 나올 것임을 알기라도 했다는 듯이 과장 아저씨는 말까지 끊어가며 물었다.


“우리가 너에게 의뢰를 요청하기 전에 우릴 구한 것도 의뢰 때문이었나? 그건 대체 누구의 의뢰지?”

“······.”


과장 아저씨의 페이스에 넘어갔다. 이건 안 좋은데···.


“그건 네 자신이 너에게 내린 의뢰야. 그것이 도덕적 보상이건 물질적 보상이건 간에···너는 우릴 구했어. 우릴 도와달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이걸로 네 사람 됨됨이가 밝혀졌군. 그럼 이야기를 계속 하지.

정신병은 헌터 취직에 도움이 안 돼. 문제를 인식하고 치료를 하는 것이 최우선의 방책이야. 정신병 편력은 네 점수를 깎을 수 있을 진 몰라도 네 능력을 가리진 못하지만, 반대로 너의 그 거대한 힘이 정신병에 매달려 휘둘리는 거대한 철퇴로밖에 느껴지지 않다고도 말할 수 있지.”

“···면접 봐요?”

“면접과 다를 바가 없는 이야기야. 네 가치, 네 문제에 대해 논하고 있으니까. 아무리 강한 폭탄이라도 그것의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사용해선 안 돼. 다행히, 지금 커럽터란 이름의 니트로글리세린은 다이너마이트가 될 기회를 얻었지. 다이너마이트가 되는 게 어때?”

“절 그런 거에 비유하지 말아주시겠어요?”


그런 거란 표현에 과장 아저씨는 인상을 팍 쓰며 반박했다.


“그런 거라니. 이게 얼마나 굉장한 건데. 다이너마이트 기술이 확보된 이후에 광산 작업이 얼마나 안전해졌는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지.”


이 사람은 회사 일이 아니라 보험 판매나 세일즈맨 같은 걸 했어야 했어···. 여기에 있을 사람이 아니야···.


“표정을 보아하니 보험 판매나 세일즈맨을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군.”

“티, 티 나요? 잠깐만. 눈 밖에 안 보이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요?”

“척 보면 척이지. 입을 신명나게 터는 사람이 이쯤 돼서 품을 법한 생각이 딱 이거거든.”

“···이런 식의 반응에 익숙하다는 듯이 말씀하시네요.”

“내가 길드에 일감 받을 때 이런 식으로 했거든.”


아······. 그래서 그렇구나···.


하지만 이런 노력이 꼭 받아들여질 수만은 없다. 모든 노력이 결과로 이어지진 않는 법이고, 그래서도 안 된다. 특히 지금은.


“···말씀은 정말 고마운데, 안 돼요.”

“에이 거 참. 속고만 사셨나.”

“그렇게 장사치처럼 말해도 안 돼요.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예요. 확실히 아저씨 말대로 이걸 열어 재끼는 게 문제 해결의 첫걸음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못 보겠어요. 도저히요.

이 안에 들어있는 것이 어떤 추악한 괴물일지 남들에게 보이는 것도 싫고···제가 보는 것도 싫어요.

절 신경써주는 건 정말 좋은데, 역시 안 되겠어요. 미안해요···. 정말로.”


그 말에 과장 아저씨와 민기 형은 실망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씁쓸하게 웃으며 나를 다독였다.


“···아니야. 솔직히 우리가 궁금해서 보려고 했던 거지, 실제로 내가 말한 대로 술술 풀릴 리가 있냐.”

“뭐야. 뭔가 답을 알고 있는 듯이 술술 말하더니, 그냥 짐작이랑 개인의 호기심 충족 목적이었어요? 선배 완전 개 쓰레기다!”


딱!


“윽.”


과장 아저씨는 민기 형의 정수리를 가격한 손을 가볍게 한번 털고선 날 진지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기억해줬으면 싶다. 뭐가 진짜로 널 위하는 길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는 거. 꼭 명심해.”

“와. 나 선배 이렇게 진지한 모습 진짜 오랜만에 본다. 평소에도 이렇게 진지하고 진심어린 모습을 보이면 선배에 대한 길드 내 평가가 치솟을 걸요?”

“그런 놈들 알게 뭐냐. 일일이 다 챙기면 피곤해서 못 살아. 챙길 사람만 챙겨야해.”


과장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내내 간지럼 당하는 기분이었다. 간지럼이 너무 심해서 자칫 잘못하면 가리고 있던 곳을 걷어내서 벅벅 긁을 뻔 했다.


물론 잘 견뎌냈지만.


그런데 그때,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숲의 주인이 내게 제안을 건넸다.


“흠. 그럼 이건 어떠냐? 네가 그 얼굴을 네가 볼 필요 없이, 우리에게 보여주기만 해다오.”

“···그건 꽤 심적으로 부담이 덜하긴 하지만, 싫어요.”

“그냥 보여 달라는 것은 아니다. 네 목표는 저 두 사람을 데리고 탈출시키는 것이지? 그렇다면 네가 원하는 곳에 텔레포트를 써주마. 이 정도면 할 가치가 있지 않느냐?”

“······!”


언젠가 아버지가 틀어주셨던 낡은 영화에서 이런 대사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할 거야.


“하, 할게요.”

“······.”

“······.”


민기 형과 과장 아저씨는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날 상대로 긴 일장연설을 한 과장 아저씨는 공기가 반쯤 빠진 힘없는 목소리로 가늘게 중얼거렸다.


“일반인이라 회사 진급도 못 했는데 일반인이라 협상도 안 되네···. 아이고 내 팔자야···.”


···솔직히 미안하지 않다면 사람도 아니지. 잠깐, 나 생각해보니 사람 아니지. 뭐 사람이 아니란 사실이 내가 죄책감을 가지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는 건 아니지만···.


“···형이랑 아저씨를 위해서예요. 날 위해서가 아니라. 놈들을 따돌리는 게 우리한테 유리한 것도 사실이잖아요.”

“···그래 그래. 잘 알겠어.”


대답에 영혼이 없다. 뭐···없을 만 하긴 하다. 저지른 짓이 있으니. 사람이 좀 한결같을 줄 알아야 하는데.


“···뭐 됐고, 일단 얼굴이나 보자. 패배의 쓴맛은 뒤로 하고 일단 궁금증부터 해결해야겠어.”

“맞아. 그 안에 뭐가 있는지 확인은 해봐야겠어.”


···어떻게 피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결국 실패했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것 아닌가. 최대한 안전하게 저들을 데려다주는 것.


하지만 이것도 과장 아저씨가 말하지 않았다면 거절했겠지. 납득을 할 과정을 거치지 못했을 테니.


물론 이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좀 쑥스러웠으니까.


“···하하. 뭐가 나오건 놀라지 말아주세요.”


그리곤 6년 동안 닫아뒀던 안면부를 개방했다. 그 시간은 약 5초. 5초가 끝나자마자 나는 재빨리 안면부를 닫아버렸다.


“이, 이 이상은 안 돼요.”

“···.”

“···.”

“맙···소사.”


내 얼굴을 본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놀란 토끼눈을 뜬 채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던 중, 숲의 주인이 갑자기 나에게 또각 거리며 다가오더니 내 양 팔을 붙잡고서 부탁했다.


“하, 한 번만 더 보여줄 수 있느냐? 하, 한 번만 더···!”

“예?!”

“조, 조금이면 된다···. 솔직히 5초는 너무 짧지 않았느냐. 그러니 한 번만 더···.”

“아, 안 돼요!”


두 눈을 반짝이며 나를 다그치는 그녀는 어딘지 모르게 부담스러웠다. 나는 도움을 구하기 위해 아저씨와 형을 향해 시선을 돌렸지만, 두 사람은 자기네들끼리 무언가를 담소 나누고 있었다.


“이런 말 하고 싶진 않았지만···정말로 민기 네 말대로 나이트 엘프···아니면 다크 엘프를 닮았어. 귀는 사람 귀였지만.”

“그렇죠? 근데 솔직히 이렇게 보니까 눈가의 문신도 없으니 다크 엘프 쪽에 가깝게 보이네요. 솔직히 나이트 엘프들 눈 문신은 좀 비호감인데 잘 됐네요. 물론 귀는 엘프처럼 뾰족하지 않긴 하지만요.”

“저기요?!”

“미안하다 커럽터야. 우리 좀 바빠.”

“맞아. 좀 바빠. 그러니 잠시만 시간 좀···.”


나는 숲의 주인에게 부끄럽기 짝이 없는 얼굴 공개를 다시 당할 위기에 처했고, 아저씨 네는 열심히 무언가에 대한 토론을 나누는 가운데···세 사람에게 가려져 내 얼굴을 못 본 엘븐 나이트만이 답답한 심정으로 외칠 뿐이었다.


“뭔데! 나 못 봤단 말이야!! 다시 해!”


···물론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아웃팅의 위기에 처했고, 누군가는 아웃팅을 시키려 노력하고 있었고, 나머지 두 사람은 열심히 토론을 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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