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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를위해 님의 서재입니다.

쑥과 마늘 없이 사람이 되는 법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중턱
작품등록일 :
2018.06.16 20:44
최근연재일 :
2018.10.30 03:07
연재수 :
84 회
조회수 :
27,341
추천수 :
545
글자수 :
445,694

작성
18.06.22 23:14
조회
480
추천
7
글자
11쪽

1장 - 커럽터(corrupter)(7)

DUMMY

싸움에 신경 쓰느라, 그리고 놈을 파묻느라 갑옷이 비에 젖어버렸다. 어차피 연기로 된 갑옷이니 녹이 스는 것은 걱정할 필요도 없고, 갑옷답지 않게 빈틈도 전혀 없는지라 물이 새어 들어오지도 않는다. 물론 이대로 막사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지라 현관에서 비를 털기로 마음먹었다.


“···.”


쏴아아아아···.


방금 전에 죽인 놈이 개구리들을 전부 죽여 버린 덕분일까. 개구리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쏟아지는 빗소리만이 귀를 심심하지 않게 해줄 뿐.


“···죽겠네.”


욱신거리는 몸뚱이만이 심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커럽터를 죽일 때마다 이런 기분이 든다. 이전에 과장 아저씨 네와 만났을 땐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했다는 사실에 기뻐서 잠시 죄의식을 잊었지만···. 지금은 못 잊겠다. 내가 커럽터라는 사실이 더욱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센티넬(centinel) 아저씨가 생각나는지라 더더욱 잊질 못하겠다. 어쩌면 저들에게 마지막 기회가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이제 물은 다 말랐네.”


어차피 물에 젖지 않으니 고여 있던 물은 몇 번의 가벼운 점프만으로 금방 털어낼 수 있었다. 이제 죄책감만 조금 떨쳐내면 괜찮을 것 같다. 언제 떨쳐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 이겼다고 말은 해야지.”


불도 꺼야겠다. 놈은 이 불을 보고서 우릴 죽이러 온 거니까. 물론 다른 몬스터들도 그건 마찬가지이기도 하고···.


“···이번에 일 끝나면 센티넬 아저씨 찾아봬야지···.”


찾아뵐 이유야 많고 또 많다. 아끼는 총에 인챈트를 새로 걸어드리거나···장승을 세워드리러 가거나···그게 아니면 그냥 같이 밥이나 먹자고 고기를 들고 가도 괜찮다. 「근무 시간」이 끝나면 일방적이긴 해도 대화도 나눌 수 있고. 그리고···.


“···가족 분들과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대화를 못 나눴지.”


가족이 배우자 분과 아들로 엘프만 둘인데, 그들의 소리에 집중했다가 총을 맞았던 기억이 난다. 가족이 있는 건물에선 인기척이 느껴지긴 하지만, 사실상 없는 취급을 한지 어느덧 9···아니, 7년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제 아파트를 바라보는 건 총을 안 쏜다. 이것조차 수 년이 걸려서야 겨우 가능했다.


“하아···. 저 아저씨랑 형을 보내주면 또 대화의 일방통행을 겪겠네. 그래도 죠니 말고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게 어디야. 그리고 얼마 전엔 수첩이랑 팬도 구해드렸고.”


강원도를 벗어나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도, 벌써부터 의뢰를 끝낸 것처럼 걱정을 하는 내가 제법 안일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잊어버렸다. 그런 것까지 걱정하기엔 지금의 난 조금 많이 심란했다.


---


다음날. 몸은 이제 전부 나았다. 아픈 곳도 없고···도리어 상당히 괜찮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쏴아아아아···.


비가 안 그친다. 더군다나 저 빌어먹을 개구리들이 마구 쳐들어오기 시작했다.


“천둥 번개!!”


하늘을 향해 쏘아올린 벼락이 저 빌어먹을 개구리들을 튀겨버린다. 한 번에 뻗어져나가 수십, 수백 갈래로 갈라진 벼락의 줄기를 느껴 보건데···.


“···250마리.”

“뭐? 그렇게 많아?”

“이 이상 늘리면 일격에 못 줄일까봐 이것 밖에 못 죽였어요.”

“···죽인 게 그 정도구나. 굉장하네.”

“아직 멀었어요. 엄청나게 와요.”


아직 장마철이 오려면 한참 남았는데, 벌써부터 저 녹색 고깃덩이들이 달려드니 구역질이 나려고 한다. 더군다나 기분 나쁜 게 점까지 박혀있다니. 청개구리의 미노타우루스 프로그는 솔직히 어느 정도는 봐줄만 한데, 저 점박이들은 정말이지 역겹기 짝이 없다.


“저 점박이 새끼들은 정말 꼴도 보고 싶지 않네요.”

“나도. 안 그래도 기분 나쁜 무늬였는데 커지기까지 하니까 더 기분 나빠. 야 민기야! 총알 더 가져와!”

“탄약고에서 가져온 거 벌써 다 썼어요?”

“아니, 근데 좀 불안해서.”

“총열이나 식혀둬요. k-2c1이 상대적으로 새 총이긴 한데, 그래도 쉬지 않고 200발 쯤 쏘면 총열 망가져요.”


무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니 이 시커먼 녀석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총열이 뭐예요?”

“총알이 나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면 돼. 이 봉으로 된 부분 말이야.”

“위요 아래요?”

“···아까 쏘는 거 봤잖아.”

“마법 쏘느라 못 봤죠.”

“당연히 아래에 있지. 소염기도 아래에 달렸잖아.”

“아···. 그럼 여기 금속···뭐라고 해야 하지. 구멍 숭숭 뚫린 데다 손잡이 달아둔···.”

“총열 덮개.”

“아, 그렇군요. 아무튼 거기에 인챈트 해드릴까요?”


인챈트란 말에 두 사람의 눈빛이 달라졌다.


마법을 부여하는 기술을 인챈트라고 한다. 보통은 공장 규모의 시설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챈트다.


마법을 부여해도 일정 시간동안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인챈트라 부르지 않고 그냥 마법 부여라고 부른다.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과장 아저씨는 그것이 가능한지에 대해선 묻지 않고, 그 대신 마나 걱정부터 했다.


“마나 괜찮겠어?”

“인챈트같이 마나를 조금 많이 사용하는 행동이 마나량을 늘려주는데 도움이 되거든요. 운동이랑 같은 거예요.”

“···그러면 마나를 안 쓰면 다시 줄어드는 거네?”

“딱히 줄진 않던데요. 그건 몰랐네요. 운동을 안 해봐서.”


근육도 쓰지 않으면 줄어드는 법인데, 마나는 그런 일이 없다니. 그 말에 과장 아저씨는 애처롭게 구겨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근육보다 마나가 낫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군 그래.”

“근육도 쓸 만하긴 해요.”

“쓸 만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장점이 더 많다는 이야기야. 하아···. 왜 내 몸엔 마나가 제대로 깃들질 않나 몰라···.”

“···그러게요. 모든 사람의 몸에 평등하게 마나가 깃들었다면 기사 학교에 갈 일도 없었을 텐데···.”


내가 생각하기에도 뜬금없이 튀어나온 말에 일동이 침묵에 잠겼다. 어째서 사람에겐 평등히 마나가 깃들지 않는가에 관한 충분히 나올 법한 이야기이긴 했지만, 먼저 말을 꺼낸 사람, 그 말을 듣고 있던 사람으로 하여금 침묵에 잠기게 하기에도 충분했다.


결국 과장 아저씨는 참기 힘든 침묵을 깨기 위해 본론으로 재빨리 넘어갔다.


“···내가 괜한 말을 했네. 인챈트 말이야, 최대한 많이 부탁하고 싶은데.”

“···총이 버틸 수 있다면 몇 번이라도 가능해요.”

“오래 된 물건은 좀 그런가?”

“수십 년 동안 다뤄진 물건이 아니고서야 괜찮아요. 그리고 정말 정성스럽게 다뤄진 물건이라면 백 년이 지나도 괜찮더군요.”

“내가 정비 하나는 확실히 했지.”

“그야 업무 시간이 남아도니 할 수 있는 게 총기 수입뿐이었으니까요.”


딱!!


말조심을 하지 않은 대가로 민기 형은 커럽터인 내가 보기에도 제법 빠른 속도로 정수리를 얻어맞았다. 더군다나 그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중지의 세 번째 마디로 비껴나가듯이 치니 소리에 비해 충격도 강한 모양이었다.


민기 형은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그저 정수리를 감싸 쥐고 쓰다듬는데 집중했다. 아마 이 쪽도 한두 번 당한 것이 아니겠지. 물론 마땅히 치러야 할 대가였지만.


---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믿을 수 없지만, 상황에 대한 보고를 한지 일주일이 되기도 한 날인 오늘···길드의 본대가 나타났다.


“엘븐 나이트 대대 1중대장인 민세훈입니다.”


갈색의 찰랑이는 긴 생머리를 한 호리호리한 체형의 남성의 뒤로 서 있는 전원이 각성자 중에서도 가장 안정된 각성 형태를 이루고 있다는 엘프들로만 이뤄진 길드의 특수부대. 1개 소대 규모만 모여도 커럽터든 뭐든 갈아버린다는 최고 중에서도 최고만 모인 작자들이다.


그런 이들이 1개 중대, 그러니까 80명가량이 와버렸다. 고작 커럽터 하나에게 쏟아 붓기엔 너무 지나친 노력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아차. 너무 멍 때렸어.


중대장은 뒤늦게나마 맞경례를 붙였다.


“···초지진 중대의 중대장입니다.”

“긴장하실 것 없습니다. 본토로 가는 건 저희뿐이니까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대해주시죠.”

“아뇨···. 그런 게 아니라···.”

“그런 게 아니라면?”

“여러분들이 온다는 말을 듣고서 이쪽에서 텔레포트를 해서 가볼 생각을 했는데···텔레포트가 시전 되지 않습니다. 시동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건너편이 파괴됐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아···. 그렇군요. 전 또 이번 일에 책임을 어떻게 물어야 하나 고민이라도 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사실 그게 맞았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텔레포트까지 제대로 되지 않으니 더욱 전전긍긍 할 수밖에.


“걱정하지 마십시오. 해당 좌표로의 텔레포트는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텔레포트 스테이션이 망가진 건 참으로 아쉬운 일이지만···커럽터가 오지 않았습니까. 이 정도야 뭐 충분히 넘어갈만한 일이라 생각하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시길.”

“아하하···. 예···.”


부러워 죽겠다···. 저게 엘리트의 후광인가.


그는 마냥 그가 부러웠다. 민세훈 대위가 미치도록 부러웠다. 그의 여유도 부러웠고 그의 능력도 부러웠고···그냥 다 부러웠다. 다른 모든 것보다 남의 똥을 치우더라도 후광을 비추는 저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중대장 자신도 이곳에서의 복무기간을 마치면 엘븐 나이트 대대에 들어가 소위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간혹 마주칠 때마다 그 가능성이 자꾸만 꺾이는 것이 느껴졌다. 일반인과 기사의 격의 차이란 걸까.


“아무튼,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정확한 좌표값 부탁드리고 싶습니다만.”

“여기 지도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고생하십시오.”


그리곤 텔레포트 마법으로 해당 좌표로 사라졌다. 그곳에 몬스터가 있을지, 커럽터가 있을지, 아니면 기적적으로 살아있을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는 채로 말이다. 다만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그의 표정에는 약간의 걱정과 씁쓸함이 어려 있었다. 텔레포트의 푸른 광채에 감싸인 탓이 얼마 보지 못했지만, 그를 향한 질투 때문에 조금도 놓치지 않고 그를 바라본 덕분에 똑똑히 보았다.


“···진급 시험에서 밀리기라도 했나···?”


중대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했지만, 이내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결국 암만 그래도 이런 곳에서 중국인 이사 새끼 아들이 싼 똥에 책임을 질까봐 전전긍긍해야하는 자신보단 훨씬 나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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