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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를위해 님의 서재입니다.

쑥과 마늘 없이 사람이 되는 법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중턱
작품등록일 :
2018.06.16 20:44
최근연재일 :
2018.10.30 03:07
연재수 :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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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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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5
글자수 :
445,694

작성
18.06.20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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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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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1장 - 커럽터(corrupter)(5)

DUMMY

쏴아아아···.


바깥에서 비가 세차게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막사가 요즘 한반도에선 드물게도 천장이 멀쩡한 건물이었던 덕분에 비가 새지는 않았다. 물론 실내는 구름이 깔린 하늘 덕분에 어두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해가 완전히 저물어 완벽한 어둠에 감춰질 것이 분명했다.


나는 어디서 귀신이라도 튀어나올까 재빨리 옥상에 방수포를 깔아놓은 다음 재빨리 실내로 들어왔다. 그리곤 내가 귀신 따위에 겁에 질려 서둘러 들어왔다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걸어서 생활관에 들어갔다.


“혹시 몰라서 옥상에다 방수포 깔고 왔어요.”

“우와. 비 엄청 내리던데 하나도 안 젖었네?”

“놀라운 마법의 힘이죠. 염동력으로 지속적인 밀어내기를 하면···그러니까 과학시간에 그걸···.”


생각이 나지 않아 침묵으로 기억을 더듬던 중, 민기 형이 불쑥 말을 꺼냈다.


“척력?”

“예, 맞아요. 척력이요. 그걸 이용해서 떨쳐내고 있어요.”


척력의 힘으로 물이 닿지 않게 한다는 말에 민기 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차피 그 갑옷에 물 안 스며들지 않아?”

“그야 그렇죠. 근데 갑옷 바깥에 물이 묻긴 하잖아요. 갑옷에서 물 흘러내리면 실내가 더러워지니까···. 솔직히 청소 다시 하긴 싫어서요.”

“아···. 그러네. 여기 청소 네가 했다고 했지?”

“···앞으로 다시는 안 할지도 모르죠. 여기 청소를 한 가장 큰 이유가 천장이 막혀있고 헌터들 훔쳐보기 딱 괜찮은 위치란 점 때문이었으니까요. 근데···여기에 과연 사람들이 다시 올까요?”


그 말에 일행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절대로 안 오겠지.”

“커럽터가 찾아온 건 둘째 치고···마나 결정이 고갈 직전인 곳이니까. 다시 맺히기 전까지는 쳐다보지 않겠지.”

“뭐, 강원도에는 널린 것이 폐광이니 기왕에 지은 건물에 언제라도 다시 찾아올 수 있겠지만, 커럽터 하나라도 나타나면 길드는 비용 문제 때문에라도 새 전진기지를 짓겠지.”

“비용 문제요? 마나 결정이 그렇게나 많이 깨져요? 그게 비싸다고는 들었는데.”

“···아니. 중국 문민정부 알지?”

“공산당 붕괴 이후 운 좋게 마나 폭풍에 휩쓸리지 않은 대만이 정권을 잡았죠. 근데 그게 왜요?”

“공산당과는 달리 시민들을 생각하는 척이라도 하려고 여러 정책을 펼쳤거든. 우리나라도 일단은 임시 정부인 탓에 그쪽의 법을 지켜야 해서 생명 보험 쪽은 보상을 좀 많이 하도록 강요를 한 덕분에···길드원이 사고로 죽으면 그 보험금 명목으로 길드에서 지급해야하거든.”

“···쉽게 말하자면, 저 시설 짓는 거랑 비슷한 돈이 깨진다 이거죠?”

“그렇지. 가뜩이나 한반도 작전 뛰려는 사람도 없는데 두 명만 죽어도 거의 외벽 하나를 짓는데 드는 돈이 나와.”


외벽 하나를 짓는 비용을 모르니 그 가치를 짐작하기가 힘들었지만, 그래도 사람 목숨 값인데 싸게 줄 리가 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비가 그치면 출발해야겠는데. 강릉에서 배를 구하는 건 무리고···. 시설도 전력 공급 시설이 망가졌으니 유선 통신 연락도 안 되고···.”


유선통신이란 말에 전화기가 떠올랐고, 전화기란 생각에 휴대전화가 떠올라 물었다.


“휴대전화는요?”

“경기도까지 가야해.”

“경기도까지만 참고 업히실래요? 30분도 안 걸리는데.”

“···업히는 거랑 옆구리에 짐짝처럼 끼워지는 거랑은 전혀 다른 거잖아.”

“아뇨. 한 분씩 업고 나르게요.”

“···? 잠깐만. 한 명씩? 그러다 남겨진 쪽이 몬스터에게 습격당하면?”


···그걸 생각 못했네. 일단 이 쪽에 남는 사람은 내가 몬스터 씨를 말려뒀으니 상관은 없겠지만···. 경기도는···.


“일단 도착하면 천둥 번개 마법으로 모조리 먼지 덩어리로 만들 생각인데···그거론 모자랄지도 모르니 총에 인챈트 시켜드릴게요. 파이어 볼트 한 발이면 와일드 보어 정도는 한 번에 잡더라고요.”


하지만 두 사람의 표정엔 난색이 사라지지 않았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에 혼자 남겨지는 것이 좋을 리는 만무하긴 했다.


“···선배 말대로 모험을 하기보단 안정적으로, 그냥 이대로 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아.”

“···그런가요? 하지만 너무 위험해요. 비가 오고 있는 동안, 그리고 그 직후엔 미노타우루스 프로그가 수천 마리는 활보하고 다니고, 놈들의 시체나, 혹은 이제 놈들을 시체로 만들려는 놈들이 달려들겠죠.

그 와중에 여러분들을 발견하면···.”

“어느 쪽이나 위험한 건 마찬가지라 이거지?”

“네. 솔직히 비구름을 파괴해서 빌어먹을 개구락지 놈들 못 오게 하는 방법도 있긴 한데···.”


비구름을 없애서 개구리들이 나타나지 않게 하는 방법에 두 사람의 얼굴이 반색하는 것이 보였다. 실망할 텐데.


“그거 좋네. 그걸로 가자.”

“···커럽터가 오더라고요. 너무 규모가 큰 마법은 개인이 할 리는 없다는 판단을 하고 몰려들더라고요. 물론 전부 죽이긴 했는데···.”

“···전부? 여럿이 왔다고?”

“네···.”

“···그걸 혼자서 다 죽인 거야?”

“천둥 벼락 맞추면 어지간해선 다 죽어요. 정 안 되면 소우주 마법 써서 시간 멈추고 모가지를 베어버리면 그만이죠.”


두 사람의 얼굴에 감탄과 경악이 반쯤 섞인 표정이 감돌았다. 민기 형 쪽에선 가끔씩 무어라 말이라도 하려고 입을 벌렸다가 다물기를 반복할 뿐이었고, 그나마 과장 아저···형이 조금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소우주 마법. 현존하는 마법 중에서 머쉬룸 클라우드랑 리틀 썬과 같은 소우주 마법이 아니면 상대할 방법이 없다고 들었는데.”

“교과서에 수록된 마법이었거든요. 그리고 그거 인간 시절에도 썼어요. 마나가 모자라서 금방 끝내서 문제지.”


그 사실이 더 놀랍다는 듯이 과장 형은 긴장된다는 듯 입술을 핥으며 중얼거렸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조금 있네.”

“···설마 아직도 소우주 마법이 최고위 마법일 줄은 몰랐는데요. 10년은 지났잖아요.”

“말이 10년이지···사실 소우주 마법은 아직도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마법으로 유명해. 마법 자체를 위력으로 붕괴시키는 미국의 머쉬룸 클라우드나 그 열화판인 리틀 썬 마법도 그것처럼 복잡하지는 않다는 말이 있으니까.”


···어찌 보면 세상이 정체된 것일지도. 이 정도만 있어도 되면 그곳에서 유지와 보수를 선택하는 것도 세상의 한 모습이다. 마치 내 생활처럼···. 아, 잠깐만. 내 생활은 유지와 보수보다는 천천히 가라앉는 것이었군.


“아무튼, 서둘러서 가는 건 반대야.”

“나도 선배 말에 찬성.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수고해줬으면 해.”

“아니에요. 10년 만에 진짜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됐는걸요. 여러분들이랑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만 해도 전 수년 동안 축구공에 손도장 찍어놓고서 죠니라고 이름붙인 놈이랑 만 대화를 했다고요.”

“···그거 영화에서 나온 거 따라한 거지?”

“의외로 정서적으로 괜찮긴 해요. 다만 환청이 들려서 문제지. 지금처럼 이 빌어먹을 농구공의 개소리가 종종 들린다니까요.”

“···축구공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손도장이 찍힌 공이 죠니란 사실이 가장 중요하죠.”


그 말에 과장 아저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커럽터가 되면서 미쳤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 진짜로 뭔가 좀···.”

“그렇죠?”

“커럽터라서 미쳤다고 하기보단, 외로운 탓에 미쳤다고 보는 편이지만.”

“말하면 입만 아프죠. 아무튼···텔레포트 마법을 어디서 배우지 않는 이상 안 돼요.”


하지만 그런 걸 어디서 배운단 말인가? 마법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마법진을 해석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마법진만 있으면 괜찮지 않아?”

“거기 있는 건 제가 부쉈잖아요. 그리고 혹시나 싶어서 내려가 본 지하 2층의 텔레포트 마법진도 싸우다가 제가 부숴버렸고요.”

“광산에 텔레포트 스테이션에 있잖아.”

“···훼손된 마법진은 솔직히 몰가치해요. 획 하나만으로도 내용이 휙 바뀌는 것이 마법진인데. 더군다나 제가 거기에 칼질을 그냥 한 게 아니잖아요.”


팔, 몸통, 다리, 그리고 목과 머리. 가리지 않고 칼을 찔러 박았다. 그 덕분에 마법진은 아주 크게 훼손됐고, 결국 알아보기 힘들어졌다.


“···진짜로 옆구리에 끼여서라도 가야하나?”

“살살 뛸게요.”

“그런 말 하지 마···. 아직 결정된 게 아니야···.”

우유부단한 태도가 살짝 짜증이 날 무렵, 나는 한반도의 악명을 이용해 살짝 거짓말을 섞기로 했다.


“···솔직히 강원도에 근 10년간 나무가 심각하게 울창해졌어요. 식물형 몬스터들도 많고···늘 말하는 거지만, 전 괜찮지만 여러분들이 문제라니까요.

저 빌어먹을 개구리 놈들은 강원도 서부 숲에 비교한다면 하나도 위험하지 않은 수준이라고 해도 좋죠. 왜냐? 그냥 번갯불에 튀겨버리면 그만이니까! 근데 식물형 몬스터는 안 돼요···. 숲 전체가 놈들의 영역이라 숲 전체를 파괴해야 안전해지는데, 그러면 커럽터가···.”


즉, 강원도 서쪽의 원시림은 어떻게 하건 손해밖에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쯤 설명하면 슬슬 포기해 볼만도 한데···.


“···선배. 그냥 옆구리에 한번 끼여 볼까요?”

“···그래야하나 진짜로···.”


오! 효과가 있다! 역시 거짓말을 하길 잘 했다. 숲의 주인만 조심해서 서쪽 숲을 피하기만 해도 훨씬 의뢰가 수월해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옆구리에 끼여서 가기로 결정했다.


“···돌겠네. 허리 개 작살날 것 같은데.”

“어차피 허리 쓸 일도 없잖아요. 그 나이 될 때까지 애인 한 명도 없었으면서.”

“이 새끼가 자꾸만 아픈 곳을 찌르네···.”


결국 비가 그치고서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진즉 이렇게 출발했다면 벌써 경기도에 도착했을 텐데. 나는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라이트 볼 마법으로 빛의 구체를 만들어 방을 밝혔다.


빛이 없는 곳에선 귀신이 나올 것 같아서 무서우니 말이다. 커럽터는 죽일 수 있지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놈들은 죽일 수 있을지 없을지도 확실치 않다. 없다고 믿고 싶지만 솔직히 괴물도 있고 마법도 있는 세상이 아닌가. 없다고 마냥 생각할 수도 없었다.


---


지익···. 지익···. 지익···.


한쪽 발을 질질 끄는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진다. 쏟아지는 빗물을 피할 생각이 없었던 탓에 그의 몸은 차가웠지만, 그의 몸을 지배하는, 그가 한쪽 다리를 질질 끌어가면서도 걷도록 만드는 그의 감정만큼은 식지 않았다.


그가 찾는 것은 하나 뿐. 사람. 아니, 정확히는 살아있는 것. 원래대로였다면 사람이 올 일이라곤 없는 강원도엔 오지 않았을 그였지만, 오랜만에 내린 비 덕분에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온 미노타우루스 프로그를 죽이느라 자신도 모르게 이곳 평창까지 와버렸다.


“···.”


굳게 닫힌 입은 열리지 않는다. 열 이유가 없는 까닭이다. 그의 입은 단 두 순간에만 열린다. 몬스터를 잡아먹을 때, 그리고 그에게 짓밟혀 죽음을 앞둔 인간에게 행복한 미소를 지어보일 때. 그 두 순간에만 그의 무거운 입이 비로소 열린다.


그런데 그는 지금 자신의 이빨을 환히 드러내고 있었다. 커럽터 치고는 꽤 보기 좋다고 해도 좋을 기분 좋은 환한 미소. 하지만 그것을 봐야하는 사람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무서운 광소···.


검게 불타는 피부의 사이로 보이는 그의 탁한 눈동자 속에 맺힌 것은 버려진 군 막사의 창문을 밝게 비추는 불빛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일렁이는 사람의 그림자였다.


그는 자신의 걸음을 재촉했다. 방금 전보다 발을 끄는 소리가 빠르게 들려왔다. 늦으면 놓칠지도 몰라.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몰라. 그렇게 초조하게 만들어 스스로를 재촉하면서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버려진 막사로 향했다.


작가의말

미노타우루스 프로그. 한국에서 가장 먼저 명명한 명칭으로, 누군가가 황소 개구리가 지나치게 커진 것을 보고 소가 크다 못해 미노타우루스가 됐네, 라고 말한 것을 시작으로 그렇게 부르게 됐다. 이름과는 달리 2족보행을 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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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3장 - 숲의 주인(5) +2 18.07.10 354 11 12쪽
18 3장 - 숲의 주인(4) 18.07.09 371 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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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3장 - 숲의 주인(2) +1 18.07.07 378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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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장 - 커럽터(corrupter)(3) +1 18.06.18 657 11 15쪽
3 1장 - 커럽터(corrupter)(2) +3 18.06.17 787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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