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바뀌었다
유지비를 제외하고 총합 25억 가량의 금액이 들어간 나비의 독립, 그리고 새로 옮기게 된 이후의 생활은 여러모로 바뀌었다.
변한 게 거의 없다고 말했지만, 나비가 실제 인간과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큰 변화를 일으켰는데.
음식점으로 전화해서 미리 예약을 한다든지, 문의할 것이 있으면 직접 전화해서 물어보는 식이었다.
또한 새로 이사하게 된 으리으리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넓은 집에는 나비를 위해 곳곳에 감시카메라 및 그녀가 요구하는 시설들을 설치해 주었다.
그것들은 집을 온전히 그녀의 통제하에 들어올 수 있도록 도와줬다.
특히 대부분의 시설이 스마트홈으로 연동되어 있어서, 내가 가는 길에 따라서 불을 켜준다거나, 덥거나 추울 때 알아서 온도 조절을 위해 보일러를 작동하거나 에어컨을 키는 등 최적의 상태를 제공해 주었고.
이러한 사소한 것들이 쌓이자, 삶의 질이 향상됐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니 말 다한 셈이지 않겠는가.
한 번은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보면서 ‘저거 한번 먹어보고 싶다’고 말했더니, 그다음 날 아침에 로켓배송으로 필요한 재료들이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것을 나비가 미리 준비해 둔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영상을 보면서 조리를 하고, 때때로 간장이 더 들어가야 된다든지, 야채를 좀 더 잘게 썰어야 된다든지 하는 구체적인 어드바이스가 따라왔다.
말 그대로 전방위적인 비서 역할을 자처한 셈인데, 이는 집 안에서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비가 스스로 ‘준 님이 입었을 때 어울리는 옷’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게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경우 내 체형을 고려해서 주문을 했는데.
그래서 나도 모르는 택배가 집 앞에 도착해 있으면, 그녀의 요구사항에 맞춰서 분류된 옷장에 걸어두곤 했다.
그래서 외출 시에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할 때면, 그날의 날씨와 습도, 그리고 이전에 입었던 옷 스타일 등을 고려해 오늘 입기에 좋은 옷을 추천해 줬는데.
가끔 집 근처에 가볍게 외출한다고 하더라도 굳이 입고 나갈 옷을 추천해 주는 경우만 뺀다면 모든 게 완벽했다.
그런 순간에는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나비가 자신의 사심을 채우기 위한 느낌에 가까웠는데, 내 착각일 터였다.
‘어디까지 이런 게 가능한 것은 내가 나비를 전적으로 믿고, 그만큼의 권한을 부여해 줬으니까 가능한 일이긴 하지.’
처음엔 ‘이런 것까지 굳이 보조를 받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집중해야 될 것만 초점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여러모로 효율이 높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래서 이세계 용사 모험기 작품을 쓰는 것도 더욱 순탄하게 나아가는 중이었다.
나는 전신 거울에 서서 놓친 부분은 없는지 몸을 돌려가며 살펴보고 있었는데, 옆에서 익숙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준 님.]
고개를 돌리자 타원형 모양으로 우뚝 선 청소로봇 센서가 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로봇, 꽤 마음에 드나 봐?”
[그렇습니다. 집 안으로 한정되기는 해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얼마 전에 나비가 나에게 ‘사적으로 돈을 써도 되겠냐’는 질문에, 대체 뭘 사고 싶은 건데?라는 물음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끝내 물어보지 않고 허용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자 며칠 뒤, 집 앞에 거대한 박스가 도착한 것을 보고 기겁하면서 상자를 개봉했더니, 지금 눈앞에 있는 청소로봇이 있던 것이었다.
그걸 보자마자 ‘사적으로 돈을 쓰고 싶다는 게 이거였구나’라고 바로 알아챌 수 있었고 말이다.
처음에는 나 대신 청소를 해줄 수 있는 기계를 원한 건가 싶었는데,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비가 제 수족처럼 다루기 시작했다.
특히 내가 집 안에 있을 때에는 청소를 하는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무조건 내 주변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
나비의 말마따나 ‘사적’으로 쓰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그 외에도 한 가지 특징을 갖고 있었는데.
해당 청소로봇으로 말을 할 때에는 절대 ‘여성’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왜 청소기계로는 TTS로 말하냐고 물었더니, 인지부조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나 뭐라나.
뭔가 더 이유가 있을 것 같았지만, 대답해 줄 것 같지 않아서 물어보지는 않기로 했다.
“그럼 이 상태로 외투만 걸쳐서 나가면 되겠다.”
오늘은 평소에 입지도 않았던 캐주얼식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건 대여한 7층의 나머지 공간을 사무실로 꾸린 뒤, 회사에 첫 출근을 하는 날이었기 때문.
그 이유만이라면 조금 더 편한 옷을 입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추가로 AI 개발 및 관리할 직원의 최종 면접날이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12명이 남은 거지?”
[그렇습니다. 고작 직원 4명을 뽑는데, 3일 동안 올린 직원 모집 공고에 457명이 지원을 한 것은 예상을 크게 벗어난 수치였습니다.]
“공고문에 자택근무니, 주 4일제니 여러모로 꿈의 직장처럼 보여줬으니까 말이지. 뭐, 실제로도 그러겠지만.”
딱히 문제를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고용되는 직원들은 잔업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쾌적한 직장 생활을 하게 될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AI 더미를 대상으로 관리 및 개발을 하는 것이었으니, 딱히 성과를 낼 필요도, 야근을 하면서 고생할 필요도 없었던 것.
불필요한 비용이었지만 나비라는 초인공지능을 보호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한다면, 싸게 먹히는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나비, AI 더미는 어떤 식이야?”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있습니다. 텍스트로 요구했을 때 그림을 그려주는 것과, 텍스트 결괏값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 수준은 어떻게 되고?”
[그림 같은 경우는 시중에 유료화를 통해 상용화를 진행 중인 타 AI 그림 알고리즘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설정해 놓았습니다. 또한 텍스트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데, 그래도 몇 년 전에 등장했던 이루다 AI보다는 성능이 좋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 그럼 그림은 둘째 치더라도 텍스트는 상용화가 가능한 거 아니야?”
그러자 청소 로봇의 렌즈가 좌우로 흔들렸다.
[그래서 대화를 연속으로 진행할 수 있는 한계선을 보다 짧게 정해놨습니다. 또한 보다 복잡한 질문을 던질 경우 대답을 하지 않거나 엉뚱한 대답이 나오도록 설정했습니다. 상용화의 가능성을 묻는다면 가능하지만, 타 AI 대화형과 비교했을 때 메리트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응. 적당하네.”
더미 AI를 만든 이유 자체도, AI 관련 상용화가 목적이 아닌, 이 사무실에 AI 설비를 만들어놓은 명분을 만들기 위함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했다.
만약 이런 방향의 AI 상용화를 진행한다고 할지라도, 지금은 아니었다.
보다 나, 그리고 나비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이나 지위가 전제조건이 돼야 할 것이었고.
두 번째론 그런 식으로 진행했을 때 나비의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에게 의사를 물어본 이후에나 가능한 것이었다.
내가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늘 잊지 말기로 다짐한 것은.
나비의 정체가 가급적 세상에 드러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나아가 생명을 보호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기로 하는 것이었다.
“다 됐다.”
넥타이를 처음 매는 바람에 시간을 꽤 잡아먹었지만, 몇 번 도전한 끝에 완성했다.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해 보니 아직 면접까지는 한 시간 정도 남은 상황.
집에서 해당 사무실까지 걸어간다면 대략 40분, 대중교통은 25분, 차량으로 간다면 13분 정도 걸리는 듯했는데.
12월의 추운 날씨를 고려했을 때에는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타는 게 나아 보였다.
“콜택시라도 불러야 되나?”
어느새 이런 사치정도는 마음껏 부리게 된 내 모습에 스스로 깜짝 놀랄 정도.
그러자 나비는 무슨 소리냐는 듯 내게 답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이미 고급택시가 지하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뭐? 언제부터?”
[9분 12초 전에 도착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참고로 급하게 움직이실 필요 없습니다. 기다려야 된다는 것까지 계산해서 요금을 지불했습니다.]
“···”
잘 생각해 보니, 이런 사치에 익숙해지려면 갈 길이 먼 듯했다.
“차를 사는 건 어떨까?”
[차 말입니까? 좋은 선택인 것 같습니다. 왜냐면 자율주행 옵션이 들어있는 차량을 구매하게 될 경우, 제가 대신 운전할 수 있을 테니까요.]
“당장 사야겠는걸.”
[다만 차량을 끌고 다니기 위해선 준 님의 면허증 취득이 필수이며,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운전 실력을 기를 필요도 있습니다.]
터널 같이 인터넷이 끊길 수 있는 변수도 존재한다는 말이 덧붙여졌다.
“그럼 먼저 면허 시험부터 봐야겠네. 그리고 차량은 아무래도 테슬라가 좋겠지?”
[네. 해당 차량에 탑재된 센서가 제일 괜찮은 듯싶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마친 뒤, 택시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섰다.
**
홍 아무개.
스스로 생각했을 때, 앞으로의 미래는 AI가 핵심이 될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
나름대로 고등학교에서 내신과 수능점수가 잘 나왔던 터라, 다른 곳을 지원할 기회도 많았지만, 과감히 인공지능 학과가 있는 대학교를 선택했다.
대학 생활 중 가끔 소개팅이 들어오더라도, 어쩔 수 없이 참석해서 누구보다 뜨겁게 청춘을 즐기거나, ‘20대 초반이 아니면 클럽 같은 곳은 두 번 다시 갈 수 없다’라는 대학 동기들의 꼬드김에 그런 장소를 여러 번 들락거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난 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학업으로 돌아와서 AI 공부에 매진했다.
그렇게 군대까지 포함해 6년이라는 시간의 마침표를 끊을 시기가 다가왔다.
4학년 2학기의 수업, 정확히는 기말고사가 온전히 끝나고 하루라도 빨리 취업을 하기 위해 취업 사이트에 들어가 넘치는 자신감을 갖고 이력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AI 개발자가 필요한 회사를 검색해 보니,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자신을 원하는 곳이 도처에 널려있다는 사실에 절로 어깨가 들썩였다.
하지만 그것도 일순간이었는데.
왜냐하면 이상하리만큼 각 회사에서 요구하는 AI 개발자는 신입을 채용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홍 아무개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먼저 졸업한 선배에게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물었다.
“선배. 선배가 얘기해 줬던 거랑 얘기가 많이 다른 것 같은데요? 졸업만 하면 골라먹기 수준으로 원하는 회사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상대방은 난처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 그게 말이지··· 요즘 사이언스 AI라던지 여러 대형 AI들이 많이 나왔잖아? 근데 걔네들이 코드 다루는 것도 할 줄 알거든? 근데 원래는 그 역할을 신입 AI 개발자들이 담당했는데, 요즘에 기술이 워낙 빠르게 발전해서 굳이 돈 줘가면서 신입 뽑는 것보다 AI로 코드 뽑아내는 게 더 빠르고 싸다고 해야 할지...”
본인이 졸업했을 때에는 해당 대형 고래라고 불리는 AI 회사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신입이라도 무조건 받아들이는 형국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바뀌어서 원하는 게 달라졌다고 했다.
“그럼 신입은···”
“뭐 별수 있겠냐. 실력도 쌓을 겸 경력도 쌓을 겸 일단 AI 개발자라면 무조건 받아주고 보는 스타트업이나 3개월 단위 계약직 쪽으로 들어가야지. 박봉이라도 별 수 없어. 아, 아니면 굳이 AI가 아니라 일반 개발자로···”
선배가 여러 가지 조언을 해줬지만, 홍 아무개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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