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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순덕님의 서재입니다.

마법 웨딩홀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중·단편

공모전참가작

에리카짱
그림/삽화
에리카
작품등록일 :
2024.05.22 16:44
최근연재일 :
2024.06.26 14:3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268
추천수 :
20
글자수 :
93,064

작성
24.05.31 15:00
조회
14
추천
1
글자
9쪽

행복한 야구선수

DUMMY

“곧 식이 시작될 예정이니 하객분들은 자리에 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홀 안에 울려 퍼졌다.


“설마”


기웃대며 느리게 안으로 들어오던 유나가 앞으로 넘어질 뻔 하는 몸을 간신히 들어 올렸다.


‘앗’


엘리베이터에서 우르르 내린 사람들이 안으로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대로 있다가는 밟힐 것 같았다.

중학교 시절 단체관람을 갔다가 극장에서 넘어져 밟혀 본 경험이 있는 유나에게는 트라우마 같은 거였다.

될 수 있는 한 가장자리로 물러나 멍하니 사람들이 자리에 앉는 것을 지켜봤다.

분명히 일하러 온 건데 구경만 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넓은 홀 안이 사람들로 메워지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안내방송이 나왔다.


“곧 식이 시작될 예정이니 하객분들은 자리에 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이크 앞에 선 사람은 누가 봐도 문창과 정서리 였다.


“서리가 왜?”


아침 미팅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소심하게 사회자석 뒤로 다가갔다.

서리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자 서리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편하게 돌아보며 검지를 입가로 가져갔다.

다시 한번 안내방송을 마친 서리가 유나를 밖으로 끌고 나갔다.


“어떻게 된 거야?”


“뭐가?”


“언제부터 여기서 일한 거야?”


“졸업하고 쭉”


“진짜?”


“여기서 왜 동창회를 하고 있지?”


“누가 또 있어?”


시치미를 떼는 건지 서리는 눈꽃에 대해 모른 척했다.

사실 과도 다르고 모를 수 있는데 유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뭔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일 안 해?”


“맞다. 나 오늘 여기로 발령받았는데, 뭐 해야 해?”


서리는 골칫덩이가 왔다는 듯 머리를 쓸어 넘기고 한숨을 폭하고 내쉬며 티를 냈다.


“왜? 알려주면 나 잘해.”


“너 지금 안 보이니?”


서리가 하객들을 가리켰다. 식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그래서 뭐 해야 해?”


“야~!”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는지 주변을 둘러보며 눈치를 보다가 다시 목소리를 낮춘 서리가 말을 이었다.


“네가 신랑신부야? 혼주야? 내가 왜 너까지 안내해야 돼? 아, 나! 과장 진짜.”


“그래서 나 뭐해?”


해맑은 유나를 보며 뭐라고 하겠는가.

식 직전에 보낸 과장이 ‘돌아이’지. 하는 생각을 하는 듯 서리답게 시원하게 포기했다.


“저기 가서 앉아있어.”


서리는 동그란 테이블에 가족들이 다복하게 앉아있는 혼주 석을 가리켰다.


“저, 저기?”


“응, 편하게 앉아서 똑똑히 봐! 뭘 해야 하는지.”


말하며 서리는 바쁘게 신랑 신부 어머님이 대기하고 있는 입구로 달려갔다.

귓속말로 위치와 시작점을 알리고 다시 앞으로 빠르게 달려와 마이크 앞에 섰다.

뭐가 너무 일이 많은 게 유나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 화촉을 밝혀 주시겠습니다.”


급하게 말하고 걸어 나온 어머님들을 안내하며 그것도 양쪽으로 번갈아 안내하는 서리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자리에 앉아 어색한 미소로 옆자리를 보던 유나가 와인 잔에 따라진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뭐야? 술이야?”


달콤하고 향이 좋은 물은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행복한 기운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신부 눈 좀 봐봐. 눈에 욕심이 드글드글하네.”


“어디 시집갔다 왔다는 말도 있던데.”


“돈 보고 결혼하는 거지.”


“배우라며?”


“배우는 무슨 단역 좀 나왔다고 하던데, 그것도 막 벗는 그런 거.”


뭐지? 여기저기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아름다운 바이올린과 피아노 선율에 맞춰 한발 한발 앞으로 나오는 신부의 우아한 걸음에 울음이 묻어났다.

반쯤 숙인 고개로 보이는 촉촉한 눈은 한곳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앞에 선 남자.


한쪽 팔 소매만 길게 내려와 손끝이 보이지 않는 건장하고 맑은 얼굴의 신랑은 신부에게 괜찮다는 듯 환한 미소를 보였다.


안심한 신부가 다시 한 걸음 내디뎠다.


“애도 있다며?”


“아휴 부끄럽게 식은 왜 올리는 거야?”


또렷하게 들리는 사람들의 소리. 미친 거 아냐? 남의 결혼식에 와서.


유나가 발끈했지만 자기가 뭐라고... 조용히 신부에게 응원의 눈빛만 강렬하게 쏘아 보내주고 있었다.

자연스레 신부 부모님에게로 시선이 갔다.


“죄지었나? 왜 저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어.”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신부 부모님의 눈은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딸의 입장을 보고 싶었을 텐데 차마 그러지 못했다.


뚜벅뚜벅 신랑이 신부에게 다가갔다. 한쪽 팔을 잃은 신랑의 다른 쪽 튼튼한 손이 신부의 팔을 다정하게 안았다.

펄럭이는 반대편 소맷자락의 뻥 뚫린 구멍이 사람들을 향하다가 돌아선 신랑의 보조에 맞춰 옆으로 가라앉았다.

주변 수군대는 소리들에게 꺼져버리라고 말하는 듯했다.

든든하게 신부 옆에 선 신랑은 이제 괜찮아라고 신부를 안심시켰다.


“얼마 못 살겠지. 남자 인생 망친 여잔데.”


“관상이 안 좋아.”


그만!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그만들 좀 하지.

신부 눈에서 눈물을 뽑아내고 말겠다는 듯 독하게 말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아버리고 싶었다.


자연스레 와인 잔을 입으로 가져가 벌컥벌컥 원샷을 때렸다.


나쁜 사람들... 나쁜 놈들...


DALL·E 2024-05-31 13.51.25 - A woman with long hair styled in an updo, wearing a white shirt and black vest with a tight-fitting skirt, is sitting in a wedding guest seat, drinkin.jpg


중얼대며 말하는 유나의 몸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발끝이 바닥에서 떠오르는 듯 가벼운 느낌과 함께 서서히 온몸으로 나른한 기운이 퍼지며 손끝이 바닥에 톡 떨어졌다.

뻔한 주례사의 목소리가 뇌를 무겁게 누르며 아래로 아래로 떨어졌다.

떨어진 몸은 갑자기 하늘로 붕 떠오르더니 뱅글뱅글 돌았다.


회오리바람처럼 돌던 몸이 서서히 아래로 떨어지며 보드라운 풀 위에 유나를 눕혔다.


하늘을 나는 게 이런 기분일까? 가볍고 어지러우면서 상큼한 느낌.

서서히 눈을 뜬 유나는 살짝 차가운 공기에 한기를 느꼈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푸른 하늘이 아름다운 바닷가 절벽에 아슬아슬 걸쳐진 유나의 몸이 아래로 떨어질 것 같았다.


살겠다는 본능으로 유나는 안전한 방향으로 몸을 굴러 일어났다.

풀밭이라 그런지 옷은 깨끗하고 먼지 한 톨 묻어있지 않았다.


고요하다.


유나가 느낀 첫 느낌이었다.


파도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절벽에 신랑 신부가 서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로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앞을 보고 있었다.


뭐지? 설마? 시작과 끝을 같이 보는 것 같아 두려웠다.


남자의 양손이 신부와 맞잡고 서로 마주 보는 둘의 얼굴은 평화로웠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없어진 둘만의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아무도 없이 둘만 치르는 결혼식..


사랑하는 저 두 사람에게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행복한 날이 될 것이다.


바람에 펄럭이는 신부의 드레스가 햇빛을 받아 밝은 빛을 내고 있었다.

남자는 신부의 손을 놓고 곁에 둔 야구 방망이를 번쩍 들었다. 행복한 미소.

신부는 남자에게서 한 걸음 물러났다.


양손에 방망이를 든 남자에게 어디선가 야구공이 날아왔다.

기다렸다는 듯 바다 저 멀리 공을 날리는 남자의 팔은 튼튼했다.

마지막까지 힘을 놓지 않은 그는 멀어져 가는 공을 끝까지 지켜봤다.

신부의 얼굴에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야구 방망이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아픔과 그리움이 그의 얼굴에 번지기 전에 신부가 달려가 그에게 안겼다.

양손으로 신부의 허리를 안은 그의 눈에서도 눈물이 떨어졌다.


바뀔 수 없는 것은 버려야 하지만 잃은 것에 대한 아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극복이라는 단어는 처절한 고통을 수반하고 있는 거라 그는 아직 아팠다.


사고는 순식간에 벌어졌다.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한 즐거운 데이트가 그의 야구 인생에서 마지막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르는 사람이 걸어온 시비를 무시하려 했었다.

사랑하는 여자를 희롱하는 그의 말도 지나치려 했었는데, 여자에게 더러운 손이 닿는 순간 참지 못했다.

그를 달래며 그만하라는 여자의 말이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때 차갑고 날카로운 것이 그의 왼팔에 꽂혔다.


여자의 비명, 사람들의 웅성거림 뿜어져 나오는 붉은 피를 보며 기절했었다.

한 번이 아닌 여러 번 꽂힌 그의 팔은 더 이상 기능을 할 수 없었고, 죽지 않고 산 죄로 그를 찌른 남자는 겨우 몇 년의 형벌이 내려졌을 뿐이었다.


할 줄 아는 것이 야구밖에 없었는데, 노여움이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절망과 울화로 무너져갔다.

여자는 그의 옆에서 꿋꿋하게 그를 지켜냈다.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인생에서 만나는 억울한 일 한 번을 당한 것뿐이라고, 운이 나빴을 뿐이라며 그를 다독였다.

더 나쁜 일도 많은데 살아서 다행이라며 고맙다고 했었다.


모르는 사람들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껄이는 말들. 무시하고 싶었다. 잡아끄는 그들의 나쁜 손을 뿌리치고 싶었다.


남자가 원하는 결혼식은 딱 하나였다.


다른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 이뤄지는 둘만의 행복한 결혼식.



DALL·E 2024-05-17 15.40.06 - In a Japanese anime style, depict a bride in a flowing wedding dress and a groom in a sharp tuxedo standing on a cliff with waves crashing against the.jpg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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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9 이시언
    작성일
    24.06.03 13:07
    No. 1

    이번편이 제 갠잊으로는 현재까지 나온 편 중에 제일 맘에 들어요 신경써서 글 써즈시느라 고마워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에리카짱
    작성일
    24.06.03 13:37
    No. 2

    예전 웨딩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어서 그때 기억에 남는 분들의 스토리가 들어가 있어요. 늘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오후 보내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 이시언
    작성일
    24.06.03 14:19
    No. 3

    너무 사실적이라 공감 했습니다 저도 잠시 했어요 ^^ 그래서 놀랐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에리카짱
    작성일
    24.06.04 10:07
    No. 4

    응원해주시는 시언 씨 덕분에 힘내서 오늘도 시작해봅니다. 감사합니다 ㅎㅎㅎ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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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소원을 이뤄드립니다. +6 24.06.03 8 1 10쪽
» 행복한 야구선수 +4 24.05.31 15 1 9쪽
6 에리다누스 +2 24.05.30 12 1 9쪽
5 행복한 부부 +2 24.05.29 11 1 9쪽
4 이래서 돈을 버는 구나~ 알아버린 돈의 맛 +4 24.05.27 15 1 9쪽
3 아르바이트 24.05.24 12 1 10쪽
2 마법 웨딩홀 24.05.23 17 1 9쪽
1 마법 웨딩홀을 소개합니다. +2 24.05.22 3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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