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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순덕님의 서재입니다.

드럼 더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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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득이
작품등록일 :
2022.05.19 16:42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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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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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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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543

작성
22.06.0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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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막걸리

DUMMY

여기서는 아무도 나를 '모범생'이라 부르지 않는다. 다들 '개성 강하다'라 말한다. 여기가 이상한 곳인지. 내가 이상한 사람인지 요즘은 헷갈린다.


"엄마, 요즘 전화도 잘 안 받고 바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엄마 바빠. 뭐 하러 다 큰애한테 신경 쓰니. 알아서 잘하겠지."


요즘 엄마는 친구들과 코바늘뜨기에 빠져있다. 집에 가면 이제 아이보리 색 코바늘 커튼과 식탁보가 유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다.


"유나야, 밥 잘 챙겨먹고. 사람은 밥 힘으로 사는 거 알지?"


“알았어. 끊을게 너무 티 난다.”


“그랬나? 엄마 늦었거든. 다음에 통화하자!”


유나가 끊을 기미가 없자 엄마가 말했다.


"유나 화이팅!"


"알았어~ 엄마도 화이팅!"


뭐가 화이팅인지 ~ 주말인데, 집에 가려니 왔다 갔다 주말 다 갈 것 같아 이번 주는 그냥 남기로 했다. 빈둥대며, 언니들이 모두 나간 빈 방에 있다가 지루함에 벌떡 일어났다.


"그래, 나도 살 좀 빼면 좀 낫지 않을까? 밥을 굶을 수는 없고, 운동이라도 하자."


운동하는데, 츄리닝이면 딱이지. 어제부터 입고 있는 츄리닝 바람 그대로 신경 써서 비비도 바르고 머리를 질끈 묶은 후 밖으로 나왔다. 줄넘기 하나 없으니, 맨몸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달리기 밖에 없지. 일단 뛰자는 마음으로 기숙사 주변을 달리기 시작했다. 5분도 되지 않아 저질 체력 아니랄까 헉헉 대며, 얼굴이 빨개져 오고, 온몸에 땀이 나기 시작하더니 가려움증이 몰려왔다. ‘내가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야.’ 핑계를 대며, 벤치에 앉으려는데, 벤치 옆 커다란 나무 아래 돗자리가 깔려 있고, 그 위로 와인 병이 보였다.


'헉, 교내에서 음주라니'


궁금증에 쓱 내다보니, 마주쳤다. 웬 놈과. 하얀색 콩나물시루 같은 것을 귀에 꽂고, 책 한권을 든 채 누워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학교 기숙사 마당에서 와인을 마시는 시꺼먼 놈,


"아... 저기"


술은 상대방이 마시고 있는데, 당황한 것은 나다. 시꺼먼 놈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심한 눈빛으로 유나를 쳐다봤다. 가만히 바라보다 귀에 꽂은 기다란 귀마개를 빼서 옆에다 놓고 유나에게 말했다.


"왜? 너도 한 잔 줘?"


'또 반말이다. 초면인데.'


뭔가 스타일이 고급 진 게 소주가 아니라 와인이라 그런가.


"아니, 저기 저......."


'난 또 가지 않고 왜 이러고 있니.'


아무렇지 않은 듯 시꺼먼 놈이 시꺼먼 가방에서 와인 잔 하나를 꺼내서는 내밀었다. 나도 모르게 두 손으로 받아들며, 자주 빛으로 내려오는 와인을 보고 있는데,


"더 줘? 술 좋아하는구나."


술을 따르던 손을 잠시 멈추더니 다시 기울여 잔 가득 넘칠 듯 따라줬다.


'그만이라고 안 해서 그런가? 스톱이라고 해야 하나. 아~ 나 너무 우유부단해'


"뭐, 아. 아니. 어.......... 땡큐."


'땡큐가 뭐니 꾸지게.. 아, 진짜."


아무것도 묻지 않고,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유나를 쳐다보는 시꺼먼 놈을 보며, 에라 모르겠다. 잔을 쭉 하고 들이켰다.


‘윽! 생긴 거랑 다르게 맛이 없었다.’


재미있다는 듯 유나를 대놓고 쳐다보니 괜히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았다. 다 비운 잔을 들고 벤치에 앉았다. 소심한 성격에 돗자리 위에 앉지는 못했다.


"저....... 너 이름이 뭐니?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이름이라도 알자 우리."


시꺼먼 놈이 씩 웃는다. 나쁘지 않은 외모다.


"나, 영식이"


세련된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이름은 아주 구수했다.


'뭐야, 내 이름은 안 궁금한가? 물어보면, 지도 물어봐야 하는 거 아냐?' 성질급한 유나가 먼저 말했다.


"나는 유나, 진유나라고 해. 방송 연예과."


방송연예과라는 말에 또 한 번 올려다본다. ‘뭐야, 지금 그 얼굴에 방송 연예과? 이런 느낌? 자격지심인가?’


혼자 별 생각 다 하고 있는데 느리게 말했다.


"나도 방연과. 기억 안나나 보네. 강의실에서 봤는데, 나는 너 기억해."


"아... 진짜? 미안해."


뭐지? 왜 기억 안 나지?


"기억나는 외모는 아닌가 보지."


‘생각보다 소심한 성격인가 보다. 꽁하는 성격인가?’


"조도 달라 우리."


'우리? 뭐지? 나한테 관심 있나?' 유나가 오버해서 생각했다.


"괜히 오해하지 말고, 그냥 너 좀 특이하잖아."


왠지 속마음이 들킨 느낌이었다. ‘또 나보고 특이하대. 세상 평범한 내가 왜?’


"근데, 학...교에서 음주해도 되나? 이거 걸리는 거 아냐?"


"뭐, 사람도 없는데, 갑갑한 기숙사 방보다 낫지 뭐."


"그렇긴 하지만. 걱정 안 돼?"


"그런 거 안 해 봐서“


“아까 그 귀에 꽂고 있던 건 뭐야?”


“이어폰?”


“줄도 없는데?”


“그러게 줄이 없더라. 탭하고만 연결 돼. 다른 건 안 되고.”


“그거 어디서 샀어?”


“그거 다 주는데 저기 보안실에서. 안 받았어?”


“안 받았는데.........”


“달라고 해.”


"그래야겠다.”


"넌, 주말인데 집에 안가?"


"안가"


"왜?"


"그냥"


"그치, 뭐 나도 여기 있으니까. 전화나 자주 드려 부모님한테"


닭살 돋는 말이 나한테서 나왔다. 무슨 오지랖인지.


“아까 여기서 전화 드렸어.”


“여기서?”


“응”


“전화기는 라운지 가야 있잖아.”


“넌 뭐........”


“뭐가 뭐?”


“탭으로 전화 되는 거 몰랐어?”


“가이드북에 나와 있잖아. 여기 좀 신기한 거 많아. 대신 밖에는 어떤 것도 가지고 나가며 안 된대.”


“그놈의 가이드 북”


“안 읽어봤어? 생긴 거랑 다르네.”


“내가 생긴 게 어때서 그래?”


“글 많이 읽게 생겼어.”


어째 못생겼다는 말 같아 욱했다.


“글 많이 읽게 생겼다는 게 어떤 건데?”


“너같이 생긴 거.”


시꺼먼 놈 영식은 더 말하기 싫다는 듯 귀에다 그 콩나물을 꽂고는 다시 누워버렸다. 책은 폼으로 들고 온 것 같았다. 아니면 햇빛 가리개로.


"저녁 먹어야 되는데"


유나가 중얼거리자 귀신같이 알아듣고 한마디 했다.


"굶어도 되겠는데, 저장된 게 많아서. "


"뭐?"


'안지도 얼마 안됐는데, 감히 지금 내 뱃살을 얘기하다니...'


"식당 가서 밥해 먹자. 내가 요리는 좀 하거든."


"요리해준다고?"


'진짜 얘 나한테 관심 있나? 뭐, 잘 알지도 못하는데, 바로 요리해 준대.'


"너 남자잖아. 남자가 여자 기숙사 와도 돼?"


영식이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안 된다는 말이 어디 있어? 교칙에?"


'그러고 보니, 남학생 출입금지 이런 문구는 못 본 것 같다. 뭐 이런 학교가 다 있어? 엄연히 남녀칠세부동석인데.'


"일어나자. 배고 푸다."


"지금?"


"배고프면 밥 먹는 거 아냐?"


"그건 그렇지"


"난 지금 배고프거든"


"아~~"


보기와 다르게 행동이 빠르다. 벌써 다 챙겨서 걸어갔다.


"들어가려면 동의서가 필요하니까 보안실에 잠깐 들르자."


나만 아직 뭘 잘 모르는 건가? 여기 애들은 입학한지 얼마 됐다고, 규칙을 어떻게 저리 잘아는 걸까? 보안실로 가서 동의서 얘기를 하니 아무렇지 않게 서류를 줬다. 여자 기숙사라 내가 써야 하나보다. 관계는 과 친구. 이름은 알고, 성은 모르고...... 쓰다가 막혔다. 영식은 보안요원에게 인사하고 종이를 받아 마저 적고는 다시 내밀었다.


"응?"


"싸인. 동의한다고."


"아~"


오늘 처음 본 사이지만 크게 어색하지 않은 게 영식이가 스스럼없이 대해서 그런 것 같다.

여러 번 와 본 적 있는 듯 시꺼먼 가방을 어깨에 메고 지하로 내려갔다. 주말에 집에 가지 않은 학생들이 꽤 있었다. 유나 혼자 기숙사에 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북적북적하니 사람 사는 곳 같았다.

주방자리 하나를 겨우 잡았다. 염치없이 갖고 온 것 하나 없이 테이블에서 요리하는 영식을 보고 있자니 민망도 하고 해서 옆으로 쓱 다가갔다. 스테이크를 구우면서, 파스타를 삶고, 방연과가 아니라 호텔 조리과가 딱 인 것 같았다.


"뭐해? 그릇 준비 안하고?"


"그치. 응.. 응"


얼떨결에 주방 보조 노릇을 하며, 그릇 세팅을 마치니 영식이 나를 불렀다.


"왜?"


"괜찮아?"


'지금 맛보라는 건가?'


드라마에서 보듯 근사한 남자가 직접 요리한 파스타 면을 입에 넣어주려 한다. 아까 먹은 와인이 이제야 취기가 오르는 듯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수줍게 오~ 하고 입을 여니 한 가닥이 아닌 한 주먹 만큼의 파스타면이 우겨 들어왔다.


'욱'


역시 현실과 드라마는 갭이 크다.


"어때? 괜찮아?"


그걸 또 우걱 우걱 씹어 삼키며 유나가 말했다.


"이렇게 많이 주면 어떡해. 맛보라며"


"그런가. 미안"


오늘 처음 본 과 친구였지만 낯선 남자와 식사를 하려니 어색하기가 하늘을 찔렀다.

뭔가 말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의무감에 영혼 없이 말했다.


"요리는 어디서 배운 거야? 대박이다. 레스토랑해도 되겠어."


"아빠가 요리사야. 집에서 요리는 거의 안하지만 레스토랑에서 집 밥보다 자주 먹었어."


"유명하신 분이셔?"


"뭐 티비도 좀 나오고....그렇지 뭐."


"누군데?"


"그냥."


말하기 싫다는데, 억지로 물어보기도 그렇고, 또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어색할 때는 입에다 뭐를 넣는 게 최고지. 고기와 파스타면을 우겨넣고 있는데, 저 쪽 끝에서 키가 크고, 은테 안경을 쓴 깡마른 여자가 손을 흔들며 걸어왔다.


'아는 사람인가?'


"안녕"


"어, 안녕"


일단 인사는 하자. 누군지 얘기하다보면 알겠지 뭐.


"어... 누구?"


'뭐야, 나 아니었어?' 유나의 얼굴이 더 빨개졌다.


"아, 저...유나라고 합니다. 진유나."


"후후 특이하네. 반가워, 난 정서리"


"영식이도 안녕"


영식은 고개만 까딱 하고는 묵묵히 먹는다.


"아, 둘이 아는 사이."


"고등학교 동창생, 친하지는 않았지만. 영식이가 좀 생겼잖아. 인기 많았는데, 나도 좀 관심 있었고."


영식은 자기 얘기하는데도 옆 테이블 얘기 소리인양 관심 없는 척이었다. 서리는 앉으라는 말도 안했는데, 영식이 옆에 앉았다.


"난 문창과라 처음 보지?"


"문창과구나. 글 잘 쓰겠다."


"너는 스타일은 딱 문창 과인데, 방연과라니까 특이해서 보게 되더라."


"내가 문창과 스타일이구나."


문창과 스타일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글쓰기는 그닥 이었다.


"자, 자 이것도 인연이니 한잔!"


서리는 저녁식사라기에는 애매하게, 김치에 막걸리를 가지고 왔다.


"여기서 음주해도 돼?"


"뭐, 안된다고 붙여진 거 못 봤잖아. 먹지 말라면 그만 먹음 되는 거고,"


"그렇지."


말없던 영식은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막걸리를 받아들었다.


"너는?"


"응, 나도."


내 주량은 아직까지 그렇게 마셔본 적은 없지만, 좀 전에 와인도 그렇고, 뭐 그리 못 먹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원래 주말은 막걸리에 김치지."


서리는 생긴 것은 쌔~하니 도시여자 같이 생겨서는 막걸리에 김치를 즐기나 보다.


"내가 고등학교 때는 진짜 잘 마셨는데, 이제는 늙었는지, 예전 같지 않네. 하하하"


한 컵 따른 막걸리를 원 샷하며, 서리가 얘기했다.


'웃으라는 얘기지."


웃기지 않은 얘기지만 어째 술이 조금 들어가니 오버액션이 나왔다.


"맞아. 예전 같지 않아. 어째 술이 술술 들어간다. "


영식은 목소리가 커져가는 유나를 걱정스레 쳐다봤다.


"너 술 별로 안마셔봤지."


"뭐? 아니? 나 좀 마셔봤는데.........."


안 마셔봤다. 많이는....... 엄마, 아빠가 마실 때 살짝 맛만 본 게 전부였다. 점점 몽롱해지며, 컵을 잡으려는데 잡히지가 않았다. 눈앞에 안개가 낀 듯 어지러운데 기분은 점점 좋아지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이지 예술 대학교. 처음 들어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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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히치하이킹 22.06.13 28 0 10쪽
12 세상에 공짜는 없다 22.06.10 19 0 12쪽
» 막걸리 22.06.09 21 0 12쪽
10 정소리 22.05.30 17 0 10쪽
9 빙의 22.05.30 25 0 11쪽
8 영웅 선배의 비밀 +2 22.05.27 23 1 9쪽
7 입학식 22.05.26 25 0 10쪽
6 룸메이트 22.05.26 33 2 10쪽
5 본능 +2 22.05.23 26 2 10쪽
4 이지 기숙사 22.05.23 29 2 10쪽
3 합격 22.05.20 30 2 11쪽
2 이지 예술대학교 22.05.19 36 3 13쪽
1 1997년 추웠던 그날. +2 22.05.19 89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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