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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순덕님의 서재입니다.

드럼 더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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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득이
작품등록일 :
2022.05.19 16:42
최근연재일 :
2024.04.1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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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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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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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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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3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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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정소리

DUMMY

유나와 얼굴을 마주한 소리의 눈은 뒤로 넘어가 흰자만 보였다. 혹시 입에서 거품은 나오지 않나 유나가 소리의 입을 쳐다봤다. 지금 이 상황이 그냥 맨 땅에서도 무서워 오금이 저릴 텐데 고소공포증이 있는 유나는 2층 침대 가느다란 계단에 몸의 반을 의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냥 내려가 버리고 싶었지만 눈까지 돌아간 소리의 얼굴이 딱 마주보는 상황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소리의 입에서는 거품대신 이상한 목소리가 나왔다. 평소에 하이 톤인 소리언니는 갑자기 남자도 여자도 아닌 이상한 목소리를 냈다.


‘빙의구나!’


공포영화광인 유나는 ‘엑소시스트’와 ‘링’, '사탄의 인형'을 떠올리며 오들오들 떨었다.


‘여기서 내 생을 마감하는 구나! 엄마 말 안 듣고 내 맘대로 대학 가서 벌 받는 건가? 건장한 20대 여학생 기숙사에서 시체로 발견 되다!’


영화 속에 유혈이 낭자한 잔인한 장면의 피해자가 유나의 얼굴로 그려졌다.


“엄마가 아파! 엄마가 아파!”


정신이 번뜩 들었다.


“빨리 전화해봐! 엄마가 아파!”


흰자만 보이는 눈으로 얼굴은 소리지만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말했다.


“엄마?”


“빨리. 엄마가 아파!”


유나는 그대로 아래로 뛰어 내려왔다. 가방을 손으로 쥐고 1층 라운지로 뛰어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수 없어 계단으로 달려 내려와 1층에 도착하자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라운지 입구 옆에 있는 공중전화 박스로 가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가방에서 전화 카드를 꺼냈다. 집 전화번호를 누르데 손가락이 자꾸 다른 번호를 눌러 간신히 통화 음으로 연결되었다. “뚜우우 뚜우우” 소리가 너무 길었다. ‘뭐하느라 전화를 안 받아’ 짜증과 불안이 동시에 밀려왔다. 버릇처럼 잘근잘근 씹어 문 입술이 터지기 일보직전에야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밝고 천진난만한 아빠의 목소리다.


“아빠?”


“유나니?‘


“아빠...... 엄마는?”


“왜? 이 시간에 무슨 일 있어?”


“엄마는?”


“엄마 옆에 있지.”


“뭐?”


유나는 허탈함이 밀려왔다.


“유나야 왜?”


“엄마 괜찮아?”


“뭐가?”


“아니........ 건강하냐고.”


“뜬금없이 무슨 말이야? 너 오늘 우리 고기 먹고 온 거 어떻게 알고 귀신 같이 전화했네. 안 그래도 우리 고기 먹으면서 유나 있으면 삼 인분은 더 먹었겠다. 그랬는데....... 주말에 오면 같이 거기 가자. 네가 좋아하는 계란찜도 무한 리필이야. 너 맘껏 먹을 수 있어.”


유나의 눈에서 주룩주룩 눈물이 쉴 새 없이 나왔다.


“아, 진짜 엄마는 삼 인분이 뭐야? 나 5 인분은 먹을 수 있어.”


“그래그래. 5 인분. 까짓 거 그거 못 사주겠니. 근데 너 무슨 일 있어? 혹시 울어? 왜 고기 먹고 싶어서 그래?”


“울긴 누가 운다고 그래.”


유나의 얼굴은 이미 콧물과 눈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늘 가지고 다니는 캠퍼스 백에다 콧물 묻은 손을 쓱쓱 닦으며 유나가 말했다.


“엄마 주말에 거기 예약해 둬. 내가 다 먹어버릴 거야.”

“하하하 그래그래. 늦었는데 얼른 자고. 학교생활은 괜찮지? 친구도 좀 만들었고?”


“그럼 여기 엄마도 봤잖아. 완전 좋아. 저녁은 파스타 먹었는데 여기 다 공짜야. 장난 아니지?”


“그래 좋긴 좋더라. 너무 살찌진 말고. 이제 남자친구도 사귀고 해야지.”


“남자는 무슨. 알았어. 잘 자 엄마.”


서둘러 전화를 끊은 유나는 소매에 얼굴을 닦아내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방으로 돌아와서 보니 소리는 언제 그랬나 싶게 폭 잠들어 있었다. 계단을 기어 올라가 가만히 얼굴을 쳐다봤다. 곤하게 자는 소리는 숨소리마저 새근댔다.


‘진짜. 나 뭐 한 거야?’ 유나는 마치 악몽을 꾸고 깨어난 것 같았다.


소리는 다른 날보다 개운하게 아침을 맞았다. 길게 기지개를 켜고 아래로 내려오자 유나가 원망어린 눈으로 자신을 째려봤다.


“왜?”


“아니에요.”


퉁명스럽게 말한 유나가 먼저 학교로 간다며 방을 나갔다. 살짝 찔리긴 했지만 좀 놀랐나 보다 했다. 유나는 소리가 이해하기 힘든 아이다. 어떻게 된 게 하루 종일 먹는 것만 생각한다. 단순한 듯 하면서 또 은근히 속이 복잡하다. 일단 자신과 맞지 않는다. 더럽다. 유나의 침대는 일어나 나간 모습 그대로 베개와 이불이 엉켜 있었다. 책상위에 쌓인 책들과 화장품들을 보니 속이 울렁대는 것 같다. 화장실로 들어간 소리는 아무도 없는 것을 알면서 소리를 질렀다.


“진유나 너 진짜 머리카락 안 치울래?”


샤워부스 안 하수구 구멍에 유나의 긴 머리카락들이 동그랗게 말려 꽉 채우고 있었다. 정말 마음 같아서는 치우고 싶지 않지만 물이 차오르는 바닥에서 샤워를 할 수는 없어서 소리는 휴지를 잔뜩 말아 머리카락을 끌어 모은 후 쓰레기통에 버렸다. 시각디자인과 은숙은 야작으로 거의 들어오지 않아 트러블이 없었지만 진유나는 참기 힘들었다.


“소리야! 오늘 클럽 안가?”


소리는 같은 과 영아와 은지를 만나 짝 하고 하이 파이브를 했다.



“그거 걸리면 학교 짤린다 던데.”


“뭐, 클럽 좀 간다고 짤리겠어? 소리가 같이 가줘야 재미있지.”



소리는 시끄러운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다섯 살 때부터 클래식 피아노만 치는 게 지겨워 고등학교 때 반항하는 의미로 한 번 갔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성숙한 외모 덕분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시끄러운 음악과 번쩍이는 조명에 똑같은 춤을 추는 인형 같은 사람들. 재미없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소리의 책상에 포스트 잇으로 메모를 남겨두었다.


‘사랑하는 우리 소리! 엄마는 우리 소리 때문에 사는 거야. 알지?’


소름 돋았다. 그때부터 소리는 틈나는 대로 클럽에 갔었다. 반항하고 싶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강남에서 크게 보석상을 하는 부모님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대놓고 바람을 피는 아빠와는 오래전부터 대화가 없었다. 엄마가 가여워 소리는 시키는 대로 다 했었다. 딱히 흥미 없는 피아노도 열심히 쳤고, 되지도 않은 공부도 과외며, 학원이며 시키는 대로 다 다녔다. 엄마의 숨소리는 소리의 어깨에 무거운 벽돌처럼 내려앉았다.


처음 엄마가 원하는 여대에 떨어지고 더 이상은 피아노를 치고 싶지 않았다. 일 년을 또 그런 지옥 같은 삶을 살기 싫었다. 대학을 포기하고 싶다는 말을 하려던 그날 엄마는 술에 잔뜩 취한 채 거실에 앉아 있었다.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고, 소리가 들어오자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팔딱팔딱 뛰는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소리는 하고 싶었던 말을 삼켰다.

일 년을 꼬박 같은 삶을 살았다. 엄마의 꼭두각시 인형이 된 듯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삶을 살았다. 어떤 날은 숨이 쉬어지지 않아 밤새 침대에서 허우적대며 괴로워했다. 공부머리도 음악에 재능도 없다는 것을 엄마도 알 텐데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당연하게 대학 시험에 또 떨어졌다.

매일 같이 가던 클럽은 집보다 편했다. 대놓고 엄마 카드로 긁고 다녀 모르지 않을 텐데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 똑같은 동작으로 허우적대는 사람들과 반복되는 음악을 들으며 새벽까지 보낸 후 클럽 밖을 나왔다. 집에 들어가기 싫었지만 딱히 갈 곳도 없었다.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입에 물고 골목길에 쭈그리고 앉았다. 취한 행색의 가지가지 사람들을 구경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늘 테두리에서 구경만 하는 자신이 이방인 같았다.


‘더러운 세상의 이방인’


벌떡 일어나다 뭐를 밟았는지 힐이 미끄러지며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짧은 바지를 입고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소리는 헛웃음이 나왔다. 킥킥 거리며 길바닥에 앉아 구두에 붙은 종이를 떼어냈다.


‘이지 예술대학교’


“멀다.”


소리의 눈은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100프로 기숙사 생활’ 이라는 글귀에 박혔다.


최고의 교육을 받았던 소리는 무난하게 시험에 합격했다. 엄마는 마뜩치 않아 했지만 그래도 예술 대학이라니 마음잡으라는 의미에서 허락했다. 비싼 등록금도 엄마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집을 떠나 기숙사에 들어온 첫날 소리는 날아갈 것 같았다. 늘 막혀있던 가슴도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소리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간질을 찾아보기도 했었다. 검사받을 용기는 나지 않았지만 가끔씩 몸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러다 ‘신병’이라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소리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몸의 변화가 이것 때문이라 확신했다. ‘그래, 이게 내 운명이라면 받아들이자!’


잠들기 전 이상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체온이 올라가고 숨이 가빠지며 기절할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십중팔구 몸속에 이상한 것이 들어온 것이다. 남들은 장군님 선녀님을 만난다고 하는데 아직 소리에게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냥 다른 것이 몸 안에 들어왔구나 하고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그날 밤 눈을 뜨니 유나는 보이지 않고 온 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유나에게 들켰다는 생각에 잠깐 당황했지만 어차피 알 게 될 것이었다. 소리는 찬물에 몸을 씻고 깨끗한 잠옷으로 갈아 입은 후 다시 자리에 누웠다. 보드라운 잠옷의 느낌이 소리를 토닥여주는 것 같았다. 뒤척일 새도 없이 기절한 것처럼 잠으로 빠져 들었다.




이지 예술 대학교. 처음 들어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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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막걸리 22.06.09 20 0 12쪽
» 정소리 22.05.30 17 0 10쪽
9 빙의 22.05.30 25 0 11쪽
8 영웅 선배의 비밀 +2 22.05.27 23 1 9쪽
7 입학식 22.05.26 25 0 10쪽
6 룸메이트 22.05.26 32 2 10쪽
5 본능 +2 22.05.23 25 2 10쪽
4 이지 기숙사 22.05.23 29 2 10쪽
3 합격 22.05.20 30 2 11쪽
2 이지 예술대학교 22.05.19 35 3 13쪽
1 1997년 추웠던 그날. +2 22.05.19 89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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