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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순덕님의 서재입니다.

드럼 더 드림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순득이
작품등록일 :
2022.05.19 16:42
최근연재일 :
2024.04.18 16:27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1,164
추천수 :
17
글자수 :
227,543

작성
22.05.23 16:38
조회
25
추천
2
글자
10쪽

본능

DUMMY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꽉 닫힌 방문 앞에서 망연해졌다. 덤벙대는 자신을 원망한다고 문이 자동으로 열어줄 것도 아니었다. 악수하듯 손잡이를 잡고 돌아서던 유나는 찰칵하는 소리를 들었다.


“뭐지?”


505호 방문이 서서히 열렸다. 마치 안에서 누군가가 들어오라 열고 있는 듯 천천히 열리는 문을 보고 유나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귀... 귀신?”


굳은 듯 서있는 유나에게 어서 오라 말하듯 활짝 열렸던 문은 다시 서서히 닫히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몸이 앞으로 나가 방안으로 쑥 들어왔다. 동시에 철커덕하며 문이 닫혔다.

문 앞에 선 자세로 유나의 눈이 주변을 샅샅이 훑었다. 방안에 누가 있다면 바로 나갈 수 있게 몸의 긴장을 풀지 않은 채 눈알만 돌리던 유나는 본격적으로 뒤지기 시작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옷장 문을 하나씩 열어봤다. 침대 아래까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랍장 속까지 다 열어보고 나서야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버렸다. 아무것도 없는 매트리스에 반듯이 누워 천장을 쳐다봤다.


‘쿠르르르릉 쿠릉’


천둥치는 소리가 아래에서 났다. 유나는 놀라지 않았다. 그 소리는 유나의 속에서 나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배고프다.”


배고픔은 늘 그렇듯 유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귀신이고 뭐고 일단 뭘 좀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났다.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게 캔버스 백을 꺼내 존에게서 받은 네모를 집어넣었다.

1층 라운지에서 초콜릿 하나를 집어 입에 넣은 후 밖으로 나왔다. 아직 3월이라 살짝 쌀쌀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하늘은 맑고 초록색 잔디들은 푸릇푸릇했다. 기숙사 오픈에 맞춰 일부로 심은 것 같았다. 들어올 때처럼 밖에는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모르면 물어보면 되는 것. 유나는 망설이지 않고 경비실로 향했다. 문을 두드리려다 살랑대며 말하는 작은 포스트잇이 보였다.

'LUNCH TIME'. ‘점심시간치고는 너무 늦은 것 아냐?’ 손목에 찬 시계를 보니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유나의 배꼽시계로는 때를 한 참 놓친 거다. 마음이 급해진 유나는 주위를 돌아봤다. 남녀 기숙사 가운데에 있는 투명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에 생뚱맞게 식물원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절박한 마음에 일단 거기로 향했다. 뱃속 천둥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유나의 걸음이 더 더 빨라졌다.

생각보다 큰 건물이었다. 입구는 다행히 닫혀있지 않았다. 높은 입구 위로 ‘COMMUNITY'란 글자가 보였다. 느낌이 좋았다. 안으로 들어가니 식물원이 아닐 거라는 예상을 벗어나 식물원이었다. 커다란 야자수가 앞을 막았고, 파인애플도 보이고, 바나나도 보였다. 배고프니 식물도 먹는 것 밖에 보이지 않았다. 저거라도 따먹을까란 유혹을 이기고 안으로 더 들어갔다. 식물원 안은 커다란 식당이었다. ‘예스! 됐어!’ 속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안쪽에 반가운 존의 모습도 보였다. 맞은편에는 같은 옷을 입은 흑인이 앉아 있었다. 느낌으로 크리스 임을 알 수 있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빈자리를 찾았다. 가방을 내리고 주문을 기다리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존은 분명 뭔가를 먹고 있었는데 직접 주문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식당 안은 꽤 넓었다. 존에게 물어볼까 하다 그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대전 엑스포에서 봤었나?’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식당 끝에 로봇이 ‘짠!’하고 서있었다. 말을 걸면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았지만 용기 내어 말을 걸었다.


“저기요.”


당연히 아무 말이 없었다. 유나는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았다. 한숨을 쉬고 로봇을 째려봤더니 로봇이 고개를 돌려 유나를 맞받아 쳐다봤다.


“헉”


너무 놀란 유나가 먼저 눈을 내렸다. 설마 한 대 치진 않겠지 란 생각에 슬그머니 눈을 올려 뜨니 여전히 로봇이 유나를 보고 있었다.


“아이씨”


폭 하고 박았던 고개를 다시 드는데 로봇의 배에 텔레비전처럼 스크린이 보였다. 잘 보이지 않아 점점 다가갔다. 거의 로봇 배에 얼굴이 닿을 정도까지 가서야 그것에 메뉴판인 것을 알았다. 다른 생각은 나지 않고 침이 꼴깍 넘어갔다. 국수도 있고, 오! 스테이크도 있었다. 어떤 것을 줘도 맛있게 먹을 자신이 있었다. 손가락을 메뉴판에 대자 화면이 바뀌며 ‘주문하셨습니다’란 글자가 떴다.


“망했다!”


어떤 메뉴에 손가락이 닿았나보다. 뭘 시켰는지도 모르고 속상해 하고 있는데 로봇이 선 벽면 창가에서 쓱 하고 음식이 나왔다. 생각지도 못한 밥과 된장국이었다. 돈을 어디에 내야하는지 벽을 만지며 찾아보는데 어디에도 동전이나 지폐를 넣는 곳이 보이지 않았다. 일단 음식이 나왔으니 받아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와! 진짜 맛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배고파서 그런지 다 맛있었다. 국물까지 싹 비운 후 쟁반을 들고 방황하는데 혹시나 하고 음식이 나온 곳으로 가 내려놓으니 또 싹 하고 사라졌다.

라운지에 앉은 유나는 콜라를 쭉 마시면서 곰곰 생각했다.


‘여기 등록금이 말도 안 되게 비싸다. 지금까지 학교 안의 모든 것은 돈 내는 것이 없다. 그러면 나는 여기에서 모든 것을 공짜로 즐길 수 있다. 대박! 완전 좋아!’


유나의 행복한 마음이 전해졌는지 어디선가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유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는 듯 디즈니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 나온 ‘Once upon a dream'을 듣자 행복감이 배가 되었다. 눈을 감고 피아노 선율에 머리를 살랑이다 고개를 들어 라운지 안의 피아노를 봤다. 아무도 없이 유나 혼자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긴 웨이브 머리의 드레스를 입은 피아니스트가 연주를 하고 있었다. 미소를 띤 피아니스트는 유나에게 눈인사까지 했다. 유나는 ’여기 정말 천국 아니야‘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깜빡이 아니라 아주 푹 자고 일어났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켠 유나는 가운데 뚫린 천장으로 가 위를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반짝반짝 별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마냥 보고 있기만 해도 좋을 것 같았다. 라운지 안은 여전히 조용하고 기숙사에는 유나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혼자라 생각하니 또 무서워졌다. 로비로 나와 저녁을 먹기 위해 밖으로 가려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나 갇힌 거야?”


유나의 마음이 급해졌다. 문을 손으로 밀다 몸으로도 밀어 봤는데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찌할지 몰라 입술을 씹으며 고민하던 유나는 그제야 문 옆에 박혀있는 글자를 봤다. ‘출입시간 평일 24시간. 주말 오전 8시부터 8시까지.’ 이것은 또 무슨 맥락 없는 시간이란 말인가? 평일은 자유인데 주말은 8시면 닫힌다니. 저녁은 굶으란 것인가? 유나는 여기에서 처음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배고픈데.......”


또 마음의 소리가 나왔다. 참 우스운 게 다른 데는 무딘 유나인데 배꼽시계만큼은 왜 이리 민감한지 때 되면 정확하게 울렸다. 아침까지 아무것도 못 먹는다 생각하니 더 배가 고팠다. 곰곰 생각하던 유나는 과감하게 어쩔 수 없는 것은 포기하기로 했다. 이왕 이리된 거 기숙사 안이나 구경하자는 생각에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지하로 내려가니 왼편으로 식당 오른편으로 세탁실이 보였다. 세탁기와 건조기, 앉을 수 있는 의자와 긴 테이블이 기역자로 쭉 있었고, 바구니와 세제가 놓은 선반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감옥처럼 철문으로 된 가장자리를 열면 옷을 널 수 있게 건조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지하에 빨래를 널면 냄새나지 않을까 현실적인 걱정을 하다 픽 하고 웃었다. 유나는 지금까지 세탁기를 만진 적도 없었다. 빨래는 당연히 집에 가져가서 엄마에게 부탁할 거였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곳이라 생각하니 더 이상 관심이 가지 않았다. 하얀 세탁실에 나와 맞은편 식당으로 들어갔다.


텅 빈 식당 안을 보자 정말 이 넓은 기숙사에 철저하게 혼자구나 다시 와 닿았다. 살짝 외로워지려는데 길게 줄을 선 냉장고가 눈에 들어왔다. 본능적으로 냉장고로 바로 가서 문을 열었다. 열기 전까지 반신반의 하면서도 살짝은 기대했었다. 기본적인 식재료는 있지 않을까하는. 역시나 냉장고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테두리처럼 조리대와 인덕션이 세트로 있는 싱크대가 길게 있었고, 위 아래로 그릇장이 닫혀 있었다. 라면을 기대하며 하나씩 열어나가는데 정말 그릇만 차곡차곡 있었다. 누가 이리 요리를 많이 한다고 속으로 욕하면서 앞으로 나갔다. 마지막 찬장 앞에서는 이게 뭐라고 선뜻 열기가 힘들었다. 정말 마지막 희망이라 생각하며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눈을 감은 후 확하고 과감하게 열었다. 가늘게 조금씩 눈을 뜨며 안을 보자 엄마가 좋아하는 티세트가 쫙 정리되어 있었다. 실망감에 쓰러질 것 같았다.


"그릇은 있고, 먹을 건 없네."


좌절하며, 테이블에 턱 하고 앉았는데, 긴 웨이브 머리를 날리며 새침한 표정의 날씬한 여자가 들어왔다.


'새 기숙사니 신입생일거고, 일단 말을 걸어볼까? 부끄러움은 뒤로 하고, 배가 너무 고프다.'


"저기..."


'아, 이럴 때 소심한 내가 진짜 싫다.'


예쁜 여자는 고개를 들어 살포시 쳐다봤다.


"아, 안녕. 너 무슨 과?"


처음부터 반말이다. 싫지 않다. 뭔가 먹을 게 나올 것 같은 말투.


"응 방송 연예 과. 너는?"


"나도 방송 연예 과. 반갑다."


"와, 진짜? 난 진유나라고 해."


"난, 한 정 원 반가워. 난 데뷔하면 개명할거야."


여기 과는 개명을 좋아하나보다. 어찌되었던,


"기숙사 몇 호야? 난 505호"


"난 301호."


"그런데, 너 혹시 먹을 거 가져왔니?"


"아니, 난 저녁 안 먹어!"


단호하다.


"그럼, 난 구경 다 했으니. 이만."


새초롬하게 나가는 정원에게 손을 흔들며 유나는 슬픈 미소를 지었다.




이지 예술 대학교. 처음 들어보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44 우주귀선
    작성일
    22.05.23 16:39
    No. 1

    첫 선작 댓글 남기고 갑니다!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6 순득이
    작성일
    22.05.23 16:43
    No. 2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길게 생각하지 않고 좋으니 한다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님 덕분에 큰 힘을 얻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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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능 +2 22.05.23 25 2 10쪽
4 이지 기숙사 22.05.23 29 2 10쪽
3 합격 22.05.20 30 2 11쪽
2 이지 예술대학교 22.05.19 35 3 13쪽
1 1997년 추웠던 그날. +2 22.05.19 89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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