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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순덕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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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득이
작품등록일 :
2022.05.19 16:42
최근연재일 :
2024.04.1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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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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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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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9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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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이지 예술대학교

DUMMY

다음날 유나는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CD 하나를 골라 전축의 CD 플레이어에 올렸다. Ace of Base의 'Beautiful life'가 흘러나오자 어깨춤을 추며 소파에 앉았다. 반복되는 가사에 유나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이런 끼가 있었던가? 엉덩이가 들썩이며 흥을 돋우었다.


식탁에 앉아 어이없는 표정으로 유나를 지켜보던 엄마는 유진이 들어오자 손짓으로 불렀다.


"헐, 언니 지금 춤추는 거야?"


"춤보다 노래가....... 저거 무한 반복이야?"


"나름 쉬운 걸로 골랐나본데. 왜 팝으로 했을까?"


“내 말이. 아주 가지가지 하고 있어.”


"웃기긴 하네. 은근히 웃기는 재주가 있었네. 몰랐는데."


"웃기면 붙여주나?"


엄마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안방에서 나오던 아빠는 유나를 보고 잠깐 멈칫 하더니, 식탁에 와서 엄마, 유진이와 마주 앉았다.


"당신이 유나한테 차분히 얘기 좀 하지."


"뭐, 유나가 좋다면 난 괜찮을 것도 같은데."


" 우리 집에 연예인 나오면 좋잖아."


생각지도 않은 아빠의 찬성에 엄마는 발끈했다.


" 이 사람이 진짜. 연예인은 아무나 되나? 객관적으로 유나가 연예인 할 만큼 예뻐?"


아빠는 자신을 꼭 빼닮은 유나의 얼굴을 생각하며,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다가


"아니, 뭐 그건 아니지만, 귀여운 얼굴이잖아 "


엄마는 기가 막힌 듯 아빠를 쳐다봤다. 아빠가 유나와 눈이 마주치자 손으로 크게 하트 표시를 해보였다. 유진이는 엉겁결에 파이팅을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이 순간이 이상한 것은 엄마 한 사람인 것 같았다.


드디어 실기 시험 날.


경기도에서도 외곽에 위치한 이지 예술대학교는 차편이 좋지 않다.


늘 엄마가 깨워도 잘 일어나지 않던 유나는 새벽같이 일어나 샤워하고, 화장을 했다. 어제부터 골라둔 가장 단정한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서니 그제야 일어난 유진이 유나를 보고 놀랐다.


"언니, 지금 화장한 거야?"


"응, 왜? 이상해?"


"응 이상해. 진짜 그러고 갈 거야?"


그나마 유진은 외모에 관심이 많은 고등학생이라 유나를 도울 수가 있었다.


"그래도 사람 꼴은 하고 가야지. 창피해서 진짜."


"동생 있으니까 좋다. 헤헤"


속없는 듯 웃으며, 유나는 화장을 고쳐주는 유진의 손에 얼굴을 맡겼다.


"엄마, 나 준비 끝. 가자"


"엄마 지금 몸이 너무 안 좋은데, 유나야 아무래도 운전은 무리일 것 같아."


"엄마, 나 진짜 소원이야. 실기만 보게 해줘. 그래야 떨어져도 여한이 없지. "


"너 진짜. 떨어지면 착실하게 재수해서 내년에 교대 가는 거다."


"알았다니까. 엄마 지금 너 무 예쁘니까 그대로 출발하자."


"얘는 세수는 하고 가야지."


일단 출발은 했는데, 학교로 가까워지면 가까워 질수록 불안감이 커져갔다. 도심에서 벗어나 논과 밭이 펼쳐진 풍경에서 한참 동안 논과 밭만 보였다. 그렇게 30여분을 가서 과연 여기에 학교가 있을까 싶은 곳에 학교가 있었다. 아주 화려한 외관과 규모를 자랑하는 이지 예술 대학교는 논과 밭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었다.


“여기 뭐 학교 말고는 아무것도 없네? 버스 정류장은 있나?”


엄마가 걱정스레 말했다.


“아 뭐 다시 올 일 없는데 무슨 상관이람.”


중얼거리듯 다시 혼자 말한 엄마는 시원하게 학교 정문 안으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 문도 없이 양쪽 기둥만 있는 학교 안은 밖과는 딴판으로 다른 세상이었다. 중세풍으로 지어진 은은한 아이보리 색 건물들은 마치 로마로 여행 온 듯 했다. 편의점과 웬만한 물건은 다 살 수 있는 상점들까지 리조트처럼 화려한 학교 앞에서 유나 모녀는 입이 떡 벌어지는데,


"너 여기 어떻게 안거야? 난 세상에 이런 학교는 처음 본다."


"나도"


방학인데도 학교에는 학생들이 많았다.


은색, 노란색, 보라색 색색깔의 머리들이 왔다갔다 정신이 없었고, 겨울임에도 노출이 심한 옷차림의 여학생부터 복고풍의 정장 스타일에 힙합, 교복, 만화에 나오는 공주님 정말 신경 쓰지 않은 후줄근한 트레이닝 복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학생들이 자유롭게 다니고 있었다.


"너 여기 정말 괜찮겠니?"


"그러게."


"그래, 좋은 구경 왔다 생각하고 맛있는 거 먹고 들어가자."


멍하니 주변을 쳐다보던 유나는 생각이 달랐다.


"나 여기 정말 다니고 싶어."


주차장 옆 게시판에 눈에 잘 띄는 반짝이는 금판으로 학교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아니 보였다가 사라졌다. 지도들이 홀로그램처럼 움직였다. 한 줄로 늘어선 건물들은 묘하게 일치해 보여 정문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아니 훠~얼씬 많이 줄지어 있었다. 이렇게 큰 학교가 이런 외진 곳에 있다니 이상하게 소름끼치는 느낌이 들었다.

방송연예과는 제일 정면에 위치한 첫 번째 건물이었다.


길을 따라 곳곳에 놓인 벤치에는 혼자 외롭지 말라는 듯 생각하는 사람, 강아지, 고양이 등 여러 모양의 조각상이 놓여있었다.


"꼭 모나코에 온 것 같다. 그치"


어디선가 봤는지 엄마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옆에 바다와 보트만 있으면 탁 트인 길이 비슷한 것도 같다. 아니, 방금 오른편으로 바다를 본 것도 같다. 파도소리도 들었던가? 이리저리 돌아보며 감탄하는 엄마를 뒤로하고, 일단 실기가 코앞이다. 준비한다고는 했는데, 사람들 앞에서 처음 해보는 연기가 어떨지 이제야 실감이 났다.


"떨지 말고, 어차피 여기 다 잘하는 애들 일 텐데, 그냥 편하게 하고 와."


응원이라고 하는 건지 엄마는 편안한 표정이다.


“나는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있을까? 여기 커피 파는 데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잔잔한 음악소리가 커지며 ‘나 여기 있어’라고 신호라도 주듯 커피숍을 알려주었다. 들어오라 손짓하는 활짝 열린 문으로 커피향이 진하게 퍼져 나왔다. 엄마는 카페를 보자마자 끝나고 오라며, 손 흔들고 가버렸다. 정말 무슨 해외여행이라도 온 줄 아나 보다.


방송연예과 건물은 메인 건물답게 크고 화려했다.


오페라 하우스처럼 웅장한 문을 밀고 들어가니 예쁜 사람은 인형같이 예쁘고, 웃기게 생긴 사람은 정말 웃기게 생긴 개성강한 사람들이 웅성대며 서있었다. 옷차림도 자기 스타일대로 무대의상도 보이고, 동물인형 탈을 머리끝까지 쓰는가 하면 가죽옷에 체인을 감싼 긴 머리 남자도 있었다. 유나처럼 깔끔한 하얀 셔츠에 청바지와 자켓 차림이 차라리 더 눈에 띄어보였다. 벌써부터 기죽어 구석에 박혀있으니, 하얀색 퍼프소매 블라우스에 빨간색 멜빵 치마를 입고 노란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 내린 인형같이 귀여운 여자아이가 말을 걸어왔다.


"안녕, 난 눈꽃이라고 해."


"어, 안녕 난 유나. 진유나"


"근데, 눈꽃이라고?"


하얀 얼굴의 눈꽃은 눈웃음을 치며, 귀엽게 말한다.


"이름이 별로라 개명했거든."


“신분증까지 보여줬다.


"어, 정말이네."


"원래 이름은 뭐였는데? 아 이거 물어보면 좀 그런가?"


"응, 좀 그래."


웃으며 말하지만 가시가 있다. 유나는 연습하던 대본을 다시 들고, 웃으며,


"연습해야지. 너는 뭐 준비했어?"


"나야 뭐 늘 연습하던 거라 얼마나 준비한 거야? 난 중학교 때부터 연기학원 다녔거든."


"아, 나 딱 일주일 연습했는데, 망했다."


"일주일? 너 합격하면 나 무지 억울할 것 같다."


"뭐, 기간이 중요한가. 난 그냥 열심히 해보게."


“연기가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응, 그치."


맘에 안 드는 캐릭터다. 차라리 혼자 있고 싶은데 눈꽃은 딱 붙은 듯 계속 따라왔다.


번호를 확인하는 듯 깔끔한 외모의 키가 큰 남자가 서류 홀더를 들고, 한 명, 한 명 찾아다니며 수험표를 나눠주고 있었다.


"진유나 학생 맞나요?"


"네."


" 안녕하세요. 조교 김한탁 입니다. 특이하게 하고 왔네요. 기대 할게요."


수험표를 건네주며, 빙긋 웃었다.


헐, 나보고 특이하다니 도대체 여기는 어떤 곳인 거야?


"너 몇 번이야?"


또, 눈꽃이다. 얘는 친구도 없나? 나도 없지만.


"나 3번. 헉 너무 빠르잖아."


"난 65번인데 아쉽다. 같이 들어가면 내가 유리할 텐데."


정말 정이 안가는 캐릭터다.


" 이인영이다."


눈꽃이 문 쪽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묵직한 문이 열리더니 까만 선글라스의 딱 봐도 연예인인 키가 큰 남자가 들어왔다. 뒤이어 연예인 무리인지 외모에서 빛이 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같이 들어오고, 눈꽃을 뺀 다른 수험생들은 관심 없는 눈길만 슬쩍 주고 자기 연습에 빠져있었다. 막상 연예인들과 나란히 서니 심장이 방망이질하기 시작했다. 실기도 얼마 안 남았는데, 얼굴에서 홍기는 빠지지 않고, 대본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어떻게 여기는 연예인도 남자들만 오는지 정말 다니고 싶다. 이 학교.’


연예인들은 끼리끼리 노는지 한곳에 모여서는 조용한 수다를 떨고 있었고, 유나는 슬금슬금 옆쪽으로 다가갔다. 도대체 연예인들은 무슨 얘기들을 하는지 듣고 싶었다. 간절히.


탁 탁 누가 어깨를 두드려서 돌아보니, 아까 그 깔끔한 외모의 조교가 빙그레 웃으며, 손으로 실기장 입구를 가리켰다.


"수험번호 3번 학생, 준비하셔야죠."


숨을 못 쉴 것 같았다. 막상 실기장 앞에 서니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핸드폰에 준비한 음악을 확인하고, 달달 떨리는 손을 맞잡고는 생전 해보지도 않은 하느님, 부처님을 찾고 있는데, 불렀다.


수험번호 3번.


문을 열고 들어가니 생각보다 넓은 강당 같은 곳이다.


1번 학생은 벌써 그 넓은 강당에 홀로 서 있고, 앞쪽으로 심사위원들이 앉아있었다.


희한하게 세면대가 입구에 있었다. 1번 학생은 맨얼굴에 신발도 신고 있지 않았다. 저것도 컨셉인가 하는데, 벌써 2번 차례다.


마이크에서


"2번 학생 세면대로 가서 클린싱으로 화장 지우고, 신발 벗고 무대로 들어오세요."


'나 아침에 화장 왜 한거니?'


세상 고운 모습의 2번 여학생은 세면대로 이동한 후 다른 사람의 얼굴이 되어 무대 앞으로 섰다.


'뭐, 다 화장발이네. 막상 지우고 보니 너나 나나 큰 차이가 안보이네 뭐.'


생각 삼매경에 빠져있는데,


부른다. 마이크가 나를


"3번 앞으로 나오세요."


"3번 학생 세면대로 가서 화장 지우고, 신발 벗고 무대로 들어오세요."


이런 식으로 실기하면 밤샐 것 같았다. 일단 시키는 대로 하고는 자리로 왔다.


"3번 학생 시작하세요."


또, 마이크가 나를 부른다.


"네, 안톤 체홉의 '갈매기' 준비했습니다."


잠시 눈을 감았다.


신기하게도 처음 무대라는 곳에 섰는데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앞에 앉은 심사위원의 얼굴은 거리가 멀어 보이지 않고, 자신을 향해 쏘여진 조명을 받으니 텅 빈 공간에 내가 아닌 니나가 서있는 착각이 들었다. 설레었고, 감정이 복받쳐 올라 나도 모르게 대사를 뱉고 있었다.


잠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대사는 끝났는데, 고요함이 너무 길었다.


"저, 연기 처음 해보죠?"


'나 너무 잘한 거 아니었나? 감정 좋았는데...'


"네..."


'너무 자신감 없는 목소리가 나왔다.'


"성적이 다른 학생보다 월등히 좋네요."


'실기 보러 왔는데, 성적 얘기다. 망한 거지 나.'


주섬주섬 신발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온 유나는 두리번거리며, 카페를 찾다가 까만색 딱딱한 것에 부딪혔다. 악 소리가 나오게 아픈 이마를 비비며 고개를 들다 또다시 비명을 질렀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에 나오는 박사의 머리를 하고, 쭉 찢어진 눈에 하얀색으로 칠한 듯 흰 얼굴은 공포 영화에서나 볼 법한 모습이었다. 오토바이용 옷인지 돌처럼 딱딱해 부딪힌 머리에 혹도 난 것 같았다.


"악"


" 죄송합니다."


외모와 다르게 너무 착하고 느린 목소리였다.


"아니, 제가 부딪힌 거라... 죄송합니다. 저기.... 카페에 갈려면 어떻게 가야 할까요?"


"아..... 왼쪽으로 보세요."


분명 보이지 않았는데, 고개를 돌리자 카페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이지 예술 대학교. 처음 들어보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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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정소리 22.05.30 17 0 10쪽
9 빙의 22.05.30 25 0 11쪽
8 영웅 선배의 비밀 +2 22.05.27 23 1 9쪽
7 입학식 22.05.26 25 0 10쪽
6 룸메이트 22.05.26 33 2 10쪽
5 본능 +2 22.05.23 26 2 10쪽
4 이지 기숙사 22.05.23 29 2 10쪽
3 합격 22.05.20 30 2 11쪽
» 이지 예술대학교 22.05.19 36 3 13쪽
1 1997년 추웠던 그날. +2 22.05.19 89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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