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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어느날 님의 서재입니다.

대통령이 제일 쉬웠어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오월어느날
작품등록일 :
2023.10.21 18:28
최근연재일 :
2024.02.0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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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2,510

작성
24.01.1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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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06) 고령화 마을

DUMMY


경상북도 청산군.


“아이고 허리야...”


올해 여든하고도 다섯이 된 박순심은 일이 끝나고 돌아오면 아들을 위해 저녁거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응애. 응애.”


하나뿐인 손주가 우렁차게 울고 있었다.

지 엄마가 없는 손주는 아빠가 일을 하러 나가면 할머니인 자신이 돌봐야 했다.


“응애. 응애.”


하지만 순심은 아직 첫돌도 지나지 않은 손주의 울음소리 같은 건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바로 옆 대청마루에 누워있는데도.


“어디보자. 물은 다 끓었나?”


여전히 옛날 방식인 부엌에서는 커다란 가마솥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닫혀 있는 솥의 뚜껑은 육중해보였다.


“으싸.”


여든다섯 노인이 들기에 결코 가벼운 무게는 아니었지만 순심은 일상처럼 금새 뚜껑을 들어올렸다.


“어휴... 벌써 이렇게 끓고 있었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이미 소금이나 된장 같은 건 다 풀어둔 상태였다.

여기에 미리 사다놓은 돼지고기만 넣어서 푹 삶으면 맛있는 돼지고기 수육이 된다.

고된 일과를 마치고 돌아올 아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얘는 대체 어디를 간 거야? 아직 제대로 기지도 못하는 애가 제 발로 어디 갈 리도 없는데?“


그렇게 말을 하며 부엌 밖으로 나오는 순심의 바로 옆에 손주가 울고 있었다.

그러나 순심은 손주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



청산군 청산면 보건소. 늦은 밤.


”선생님. 정말 이러시기 있어요?“

-아, 미안해요. 대학동기가 오는 날인 걸 내가 그만 깜빡했네요.

”그래도 이러시면 안 되죠! 약속을 분명히 했는데.“


보건소 간호사로 근무하는 류경희는 잔뜩 심통이 나 있었다.

한 달 전에 잡은 데이트 약속이었다.

잊고 있는걸 보면 데이트라고 생각하는 건 경희 자신만 그런 것 같았지만.


‘진짜 너무하네.’


보건의인 차태수를 처음 봤을 때부터 짝사랑하고 있었다.

보건 공무원 시험에 합격을 해서 근무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일이 너무 없어서 한창 지루하던 차에 삶의 활력소를 찾은 셈이다.

물론 보건의 기간이 끝나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류선생님 정말 미안해요. 대신에 내가 내일 이 친구 놈 보내고 나서 두 배로 쏠께요. 한번만 봐주세요.

”알았어요. 그럼 두 배로 쏘셔야 돼요? 그게 뭐가 됐건 제가 해달라는 대로 해주기예요? 아셨죠?

-뭐가 됐건... 요?

“몰라요. 약속했으니까 이만 끊을께요.”


경희는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휴... 할일도 없는데. 이 밤 뭘로 지새우나?”


긴급 환자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보건소 근무자는 보건소와 걸으면 금새 닿을 거리에 살고 있었다.


“괜히 청소까지 해놓고 왔네.”


이미 연인사이라면 집에서 봐도 되지만, 연인도 아니었고,

이곳에서 적당히 분위기를 잡다가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커피라도 한 잔 하라면서 집으로 들일 생각이었는데.


“에이 진짜. 사람이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단 말이야.”


투덜대며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찰나였다.


덜커덕!


녹슨 보건소 정문이 열리면서 남자 한명이 뛰어 들어왔다.


“선생님! 의사 선생님 어디 있어요?”


환자 자체가 거의 없다.

그래서 주로 하는 일이라고는 고령자 출신들 건강 체크 뿐이었다.

간단한 감기약 처방이나 주사 같은.

이런 늦은 시간에 환자 발생으로 사람이 올 일은 없다는 뜻이다.

경희도 근무하는 내내 본적도 없다.


“우리, 우리 아기 좀 살려주세요!”


그 말에 남자의 손에 안겨있는 자그마한 뭔가를 본 경희는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



오랜만에 여산으로 내려온 후, 바로 옆 도시인 청산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이런 식으로 틈이 날 때마다 구석구석을 돌아봐야 소외 지역이 점점 없어진다.


”화상으로 회의 합시다. 지구 반대편하고도 화상으로 통화하는 마당에 이게 무슨 비효율적인 짓입니까?“


내가 있는 곳으로 보고를 하러 내려온다는 각료들이 몇 있었다.

조금의 시간도 아까워서 보고도 차안에서 받고 있는 판국에 이곳까지 내려온다는 인간들이 있다니.


”한두 명도 아니고 진짜. 내가 집무실을 하나 더 만든 취지에 대해 전혀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이네요.”


예전 정권 때 지방으로 이전해놓은 정부청사나 각종 공기관의 장들이 회의를 하러 한 달에 몇 번이고 서울로 온다는 사실이 문제된 적이 있었다.

잠깐 이슈가 됐다가 금방 쑥 들어가긴 했지만.


“창업대학교 공사는 다음 달 내로 마무리 지을 예정입니다.“

“빠르네요. 아이비리그 대학교 캠퍼스 문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훌라 대통령에게 아무 생각 없이 툭 던졌다가 추진된 사업.


“지지부진합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이유는요?”

“예상하시겠지만 인력 문제가 가장 크네요.”


교수들만 일류로 세팅이 되면 학생들이 몰려드는 건 시간 문제일 것이다.


‘교수들이야 돈을 주고 사와도 될 일이고.’


그들에게는 교육자의 사명감보다는 빵빵한 보수가 매력적일 것이다.

이건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거니까.


“창업대학교에 설립한 병원은 좀 어떻습니까?”

“일단 자발적으로 지원을 한 의료진들 위주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의대 신입생은 내년부터 선발을 할 계획이고요.”


반발이 만만치 않았지만 무시했다.


“정말 너무들 하죠? 의사는 안 그래도 모자라고, 그 모자란 인력마저 지방으로 오는 건 그렇게 싫어라하고요.”

”그래도 무시하는 건 잘 하셨습니다.“


의료계 의견 수렴하다가 정작 필요한 사람들을 방치할 수는 없다.


”어!!!"


그때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춰 섰다.


”대통령님 죄송합니다! 갑자기 사람 하나가 뛰어들어서요!“

“뭡니까?”


대통령이 내려왔다는 티를 내기도 싫고, 기동성이 떨어지는 전용차량은 귀찮았다.

고이 모셔두고 활동성이 좋은 승합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안전은 어떻게 하냐고?

아직 괜찮을 거라고 믿을 뿐.


"무슨 일 있습니까?"


운전대를 잡은 경호실 직원이 창을 내리면서 용건을 물었다.


“죄송합니다. 청산면에 근무하고 있는 보건의입니다. 응급 환자가 발생을 했다고 방금 연락을 받았는데요.”


응급환자?


“태우세요.”


아무거나 지나가는 차를 멈춰 세울 정도면 엄청나게 급하긴 한 모양이다.

내가 지킬 건 첫 번째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이다.


”청산면 보건소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이 시간에는 차도 없고... 한 이십분쯤 걸립니다.“


이십분이라... 차도 거의 없고 한산한 도로다.

그리 어둡지도 않고.


”최대한 밟으세요.“

”여기 나름대로 카메라 많아서 그렇게 밟으시면 안 될 텐데요.“


보건의가 조심스럽게 말을 한다.


”과속 걸리면 과태료 내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도 괜찮을까요?“


법은 최소한이다.

사람이 사는데 최소한으로 지켜야 하는 것.


”응급 상황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괜찮습니다. 밟으세요.“



잠시 후 이동하는 차안.


“환자 상태는요?”

“저... 그것이...”


아무것도 모르고 차를 얻어 탔는데 그 차안에 대통령이 앉아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조금 전의 다급함은 사라지고 조심스러움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지금 보건소에는 누가 있습니까?”

“이미 예전부터 근무 중인 간호사. 한명 뿐입니다.”


이것이 지역 의료 현실이다.


”원래 이 시간에 환자가 찾아올 일이 없습니다. 워낙에 다들 고령자시라... 평소에 감기약 처방해드리거나, 몸살이면 주사 한대 놔드리는 수준이죠.”

“그런데 환자가 발생을 했다고요?”

“그런데 그것이... 하...“


보건의가 말을 하다말고 끝도 없는 한숨을 내쉰다.


‘단순 응급 상황이 아닌가?’

”말씀을 좀 해보세요. 격식 같은 거 따지지 말고 들은 그대로요.“

”후... 이게... 이거 뭐라고 설명을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 상황이라. 저도 가봐야 확실한걸 알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뭔가 뉘앙스가 이상하다.

응급이면 적어도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환자가 애기인거 같은데...”

“애기요?”

“네. 그런데 전화를 한 간호사 쌤이 얼마나 놀랐는지 계속 울기만 하고... 상황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어요. 그냥 애가 삶아졌다. 이런 말만 계속 하는데 그걸 말뜻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없어서.”


어쨌든 평범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라 부랴부랴 나왔나보다.


’삶아졌다고?‘


나로서도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 표현이었다.

애기가 삶아졌다라...


’화상을 심하게 입은 건가?‘


최악의 경우 전신화상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돌잔치도 하지 않는 아기가 전신화상이라니...

하지만 실제 마주한 상황은 더 최악이었다.



###



여산대 병원 장례식장.

엄청나게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고, 우리 모두는 이 끔찍하고도 어이없는 상황에 황망한 표정이 돼 있었다.


“흐흐흑... 우리 아들 불쌍해서 어떡합니까...”


팔순이 넘으신 치매 걸린 노모가 아들위해 돼지고기 수육을 준비해놓겠다며 아직 첫돌도 안 지난 손주를 고기 덩어리로 착각하고 펄펄 끓는 가마솥에 넣은 채 끓여버렸다.


“이 미친 노인네가 정신 못 차리고... 흐흐흑... 이럴 줄 알았으면 어떻게든 그냥 서울에서 붙어 있는 건데... 흐흐흐...”


아직 첫돌도 안 지난 하나뿐인 아들을 치매 걸린 노모의 실수로 한순간에 저세상으로 보낸 아버지의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장례에 필요한 것 전부 지원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조문객은 별로 없었다.

애초 아이의 아버지도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있던 탓에 남아있는 친구가 없었던 탓이다.

마을에 사람 자체가 구경하기 힘들기도 했고.

그래서 마을이장이나 그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사람들이 그래도 마을에 안 좋은 일이 생겼다며 자리를 지켜주고 있었다.


”안타깝다는 말도 조심스럽네요.“


책임을 져야할 사람이 없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했고.


‘고령자나 치매 노인마다 전담 공무원을 스물네 시간 붙여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사람 문제이긴 한데 따지고 보면 시스템 문제이기도 하다.

치매노인이나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한 부모님을 집안에서 가족들이 보살피던 시대는 지났으니까.


“내일 날 밝는 대로 보건복지부 장관하고...”


그 사람들이 실무를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미리 언질을 해놓으세요. 현재 간병이나 치매 관련으로 정부에서 지원을 하는 게 얼마나 되고, 전국적으로 어느 정도수준까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내일 물어볼 거니까 준비 잘하시라고요.”

“알겠습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그리고 각 도지사들도 연락 취하세요.“

”아, 그럼 화상으로 보고 받으시겠습니까?“

”네. 역시 그게 제일 좋겠네요. 그리고 거기에 광역시와 시군 가리지 말고 소멸 위기 도시들, 고령자가 많은 도시들, 특히 청년은 없는데 고령자만 많은 도시들, 시장하고 군수들까지 다 함께 보는 걸로 합시다.“

”거기까지만 준비를 하면 되겠습니까?“


내일 아침 일과가 시작하기도 전에 화상으로 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일과시간에는 원래 진행하던 업무 살피느라 바쁠 테니 그전에 해야 한다.


”일곱 시에 보자고 하세요.“

”너무... 빠른 것 아닐까요? 그래도 공무원들인데...“


이 시간에 모아본적은 없으니 툴툴대는 걸 걱정하는 거다.


“국민들 투표에 의해 선출된 사람들 아닙니까.”

“그렇죠.”

”초과근무 어쩌고 하겠지만 지자체장들에게는 그런 거 없습니다.“


물론 일을 빈틈없이 잘하면 사정을 좀 봐줄 수도 있지만... 왠지 그럴 것 같지가 않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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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제일 쉬웠어요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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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120) 대한민국의 주권 完 24.02.01 167 5 11쪽
120 (119) 고인 물은 썩기 마련 24.01.31 151 5 12쪽
119 (118) 군대는 군대답게 24.01.30 145 4 12쪽
118 (117) 그럼 직접 하실래요? 24.01.29 142 5 13쪽
117 (116) 혁신 24.01.28 145 5 12쪽
116 (115) 총선 24.01.27 152 4 12쪽
115 (114) 일왕의 사과 24.01.26 159 4 13쪽
114 (113) 침공 24.01.25 166 3 12쪽
113 (112) 생각의 차이 24.01.24 142 3 12쪽
112 (111) 같은 편 24.01.23 144 4 12쪽
111 (110) 탄핵 24.01.22 145 3 12쪽
110 (109) 아이 한명에 매달 오십만 원 24.01.21 143 4 12쪽
109 (108) 어울리는 건 따로 있는 법 24.01.20 146 4 12쪽
108 (107) 인구 유입 정책 24.01.19 154 5 12쪽
» (106) 고령화 마을 +1 24.01.18 164 3 12쪽
106 (105) 우리도 마음만 먹으면 24.01.17 175 4 12쪽
105 (104) 긴급 체포 24.01.16 178 4 13쪽
104 (103) 백악관 초청 24.01.15 169 5 13쪽
103 (102) 친일파 재산 환수 24.01.14 177 4 12쪽
102 (101) 교양과 강단 24.01.13 170 5 12쪽
101 (100) 학부모와의 대화 +1 24.01.12 170 5 12쪽
100 (99) 개헌 24.01.11 174 6 12쪽
99 (98) 믿음직한 파트너 24.01.10 167 3 12쪽
98 (97) 교권보호 24.01.09 166 5 12쪽
97 (96) 국민의 정의 24.01.03 173 5 12쪽
96 (95) 민원인들과의 대화 +2 24.01.02 175 5 13쪽
95 (94) 비선실세 24.01.01 175 6 13쪽
94 (93) 유일한 이웃나라요? 23.12.31 179 6 12쪽
93 (92) 우리나라만 중요하죠 23.12.30 178 6 12쪽
92 (91) 안심부터 23.12.29 153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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