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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어느날 님의 서재입니다.

대통령이 제일 쉬웠어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오월어느날
작품등록일 :
2023.10.21 18:28
최근연재일 :
2024.02.01 23:30
연재수 :
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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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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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7
글자수 :
652,510

작성
24.01.12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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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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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00) 학부모와의 대화

DUMMY



-쌍년아! 내 전화를 니가 씹어? 죽고 싶어서 그러냐! 그런 거야!


청와대에 갔다 온 그날 저녁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누군지 밝히지도 않고 다짜고짜 욕이라니.

상당히 기분이 나빴지만 꾹 누르고 일단은 정중하게 전화를 받았다.


“...누구시죠?”

-... 그 양소정 선생 핸드폰 아니오?


양소정 선생은 자신이 교장으로 재직 중인 학교의 평교사였다.


“아닙니다. 저희 학교 선생님이 맞기는 합니다만.”

-어? 분명히 번호 맞는데... 전화 받는 분은 누구신데요?

“아. 저는 양소정 선생님이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교장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전화는 바로 끊어졌다.


“뭐야 이게?”


문득 대통령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학부모의 민원전화를 다이렉트로 받게 될 거라고.


“에이 설마...”


양소정 선생은 부임한지 그리 오래 되지 않는 신입 교사였다.

민원이 많아서 힘들어한다고는 듣기는 했는데...


“뭐 이렇게 예의 없는 사람이 다 있어?”


그러다가 문득 요즘 평교사들은 이런 민원처리를 매일 하는 건가라는 데까지 생각이 이르렀다.


“어쩌다 있는 일이겠지 설마.”


하지만 몰랐다.

그날 밤에만 수십 통의 전화와 그만큼의 욕을 먹게 될 거라는 걸.



###



“양소정 선생님. 오늘은 간만에 얼굴이 좋아 보이네?”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정말 내가 걱정이 얼마나 많았는데. 부임한지 얼마나 됐다고 언젠가부터 매일 얼굴이 그늘져 있어서 말이야.”


소정은 간만에 푹 잘 수 있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던 민원전화와 문자가 갑자가 뚝 끊겼다.

거짓말처럼.


“아무튼 좋아 보여서 다행이네. 오늘도 힘 내보자고요.”

“네. 선생님도요.”


휴식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학부모의 연락이 왜 없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설마 대통령이...?”


학교에 다녀가고부터였던 게 기분 탓인 건가.


“양소정 선생님.”

“네?”


이번엔 교감선생님의 부름이다.


“지금 교장실로 올라가 봐요.”

“교장실요?”

“그래요. 지금 당장.”


무슨 일이지?

실수한 게 있나 곰곰이 생각을 하던 중 설마 학부모의 민원이 교장선생님에게 바로 간 건 아닌가 싶어 덜컥 겁이 났다.


‘그건 아니겠지.’


애써 부정하면서도 부른 이유가 도무지 짐작되지 않아 교장실로 가는 내내 조마조마했다.


“교장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 왔어요? 거기 앉으세요.”


부임한날 인사차 들어와 보고 몇 달 동안 들어올 일이 없었던 이 공간.


“내가 물어볼게 있는데.”

“네? 어떤 걸... 말씀을 하시는 건지...”

“학부모들하고 평소에 연락을 자주 하나요?”

“학부모들요?”

“네. 그게 어떤 게 됐든. 자주 하는 편인가요?”


표정을 보니 형식적인 질문이 아니었다.

뭔가 일이 있는 게 분명하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되는 거지?’


잠깐 고민이 됐지만 어차피 할 말은 정해져 있다.


“여러 가지입니다. 교우관계나 학업성취도에 대한 문의가 많은 편입니다.”


우리애가 앞자리에 앉은 아이가 휘두른 연필에 얼굴에 상처가 생겼다며 검사 아빠가 욕을 하며 전화를 한단 말은 하지 않았다.


“흠... 그래요?”

“네. 그 외에는 급식에 대한 건의라든가, 학교의 기타 시설문제에 대한 것도 있습니다.”

“혹시 말인데요. 이건 그냥 물어보는 거니까 솔직하게 답변하면 됩니다. 정말 허심탄회하게.”

“네?”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 거지?

슬슬 겁이 나기 시작한다.


“혹시 전화로 대화를 하는 와중에 욕을 하는 학부모가 많습니까?”

“... 욕... 이요?”

“욕설포함,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성희롱하는 문자를 보낸다거나, 그것도 날짜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사실 이런 문제는 자신만 겪는 건 아니었다.

평교사들 중 이런 민원에 시달리는 사람은 은근히 있었다.

멘탈의 차이인지 정도의 차이가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다른 선배 교사들은 잘 이겨냈고, 유독 자신만 힘들어하는 것 같은 느낌적인 차이가 있을 뿐이지.


“말을 하기 어려운 것 같은데. 내가 먼저 말을 하죠. 내가 사실 어제...”


그러면서 교장선생님이 하나씩 꺼내는 말들은 소정으로서는 믿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동시에 이해도 됐다.

갑자기 학부모의 연락이 왜 그렇게 뚝 끊겼는지도.



###



“학부모 단체요?”


대통령실로 요청이 왔다고 한다.

학부모단체에서 나와 면담을 하고 싶다고.


“설마 예전에 화물차 기사님들처럼 청와대 앞에서 죽치고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겠죠?”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보자고 하세요. 뭐가 어렵습니까.”


정권의 심기를 거슬리는 말 한마디만 해도 검찰조사를 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모두가 말 한마디를 조심스러워했다.


“어쨌든 좋은 현상이네요. 의사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걸 국민들이 스스로 인지를 하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감히 어떻게 국회의원을 장관을 대통령을... 이런 생각들 많이 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래도 선생님을... 이런 생각들을 안 하게 됐을까.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들어줄 건 들어주고 설득할건 설득해야죠. 언제 보자고 합니까?”



###



이것도 사람들의 인식에 자리를 잡았나보다.

언제든지 이렇게 토론을 직접 얼굴을 보고 할 수도 있고, 온라인 이원 생중계로도 가능하다는 걸.


“강직한 아나운서님. 오랜만입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희로서도 오히려 요즘 많이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렇죠.”

“예전에는 왜 이렇게 못했을까 싶네요. 할 생각을 안했던 건가요?”


국민과의 소통을 원하는 대통령은 전에도 있었다.

물론 이렇게 파격적이고 쉬운 방법을 찾은 건 내가 처음이지만.


“오늘도 자신이 있으십니까?”


스튜디오로 가는 동안 강직한 아나운서가 내게 묻는다.


“자신요?”

“항상 대화로 해결을 하시지 않습니까. 어떻게든 설득을 하고요.”

“그렇게 해야 하니까 하는 거죠.”


당연한 걸 묻다니.


“이거 참. 예전 누구하고 비교되네요. 맨날 해외로 국빈 방문한 한 대통령도 있었는데요.”

“그때 우리나라가 한 오년 후퇴했다고 했죠. 그거 또 잘 이겨내지 않았습니까.”


역대급 암흑기였던 몇 년 전 얘기를 입에 올리는 사이 스튜디오에 다다랐다.


“오늘도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멀어져 가는 강직한 아나운서를 보며 나 역시 내가 있어야할 자리로 향했다.



잠시 후.


‘역시 물을 흐리는 건 미꾸라지 한 마리지.‘


모든 학부모가 교사에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밤낮없이 전화를 걸어 괴롭힌다면 진작에 사단이 났을 것이다.


“저희가 오죽하면 이렇게 단체방까지 만들어서 선생님들을 관리하려고 하겠어요?”


대화를 하던 중 학부모 한명이 자신의 아이와 같은 반 친구의 다른 부모들과 단체로 대화방을 만들어서 선생님에게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받는다는 말을 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쳐다보는지는 안중에도 없군.‘


여기 온 사람 중 대다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선량한 보통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단체방을 만들어 선생님을 관리한다는 사실에 많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보통은 저렇지.’


반대로 본인이 뭐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듯 떠드는 사람들은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단체대화방을 만들어 선생님들에게 보고씩이나 받는 그 사람들 역시 그냥 보통 사람들이었다.

학벌도 직업도 지극히 평범한.

차이가 있다면 얼굴에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정도?


“그렇게 해서 좀 나아지셨습니까?“


묻고 싶었다.


”네. 확실히요. 요즘 세상이 얼마나 험하고 애들은 또 얼마나 무서운데요. 중고등학교까지 갈 것도 없어요. 어릴 때부터 이렇게까지 케어를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살수가 없다니까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새끼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나 하나는 나쁜 사람이 되도 좋다는 사명감에 불타오르는 사람 같았다.


“뭐가 나아지셨나요? 구체적으로 좀 듣고 싶은데요.”

“네? 뭘 듣고 싶으신데요?”

“전부 다요. 대체 뭐가 그렇게 불안하시길래 학부모들이 연합을 해서 담임선생님한테 아이 학교에 등교 잘했다는 말까지 들어야 되는 건지 궁금해서요. 그 정도면 아예 부모님이 등교를 시켜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전에는 우리도 직접 했죠. 그런데 집안일 하고 아이까지 케어하려면 친구들하고 여유있게 커피한잔 할 시간도 없거든요."


귀를 의심하게 하는 말.


"커피 한잔 할 시간도 안 나서... 데려다주던걸 안하고 있다라..."

"엄마도 사람이잖아요. 숨 쉴 구멍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예전하고는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엄마라고 해서 아이에게만 매어 있는 세상도 아니다.


“맞아요. 엄마도 사생활이 있어야 돼요.”

“인정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아이들이 학교를 잘 오는지 챙기는 것도 업무니까 그 정도는 당연히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음... 학교를 잘 왔는지... 선생님이 잘 체크해야죠. 맞습니다.”


여기서 드는 한 가지 의문.


”그런데 그걸 굳이 학부모 단체방에서 해야 합니까?“

”네?“

”애가 학교에 잘 갔는지 애한테 직접 전화를 해도 되는 거 아닌가요? 요새 안전 때문에라도 애들한테 스마트폰 하나씩 다 사주잖아요. 밥은 잘 먹었는지, 학교에는 잘 도착했는지,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친구들하고 재미있게 놀고는 있는지... “


예전과 다르게 부모들은 엄청나게 바쁘다.

애들한테 예전보다 신경을 쓰기가 힘든 게 사실인건 맞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걸 선생님한테 학부모들이 보고를 받을게 아니라 아이들한테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


맞는 말인지라 다들 조용해졌다.


‘그래도 인간 같지 않은 사람은 없구나.’


엄마로서의 기본적인 양심은 다행히도 남아 있는 모양이다.


“저희도 사정이 있어요.”


물론 정신 못 차리는 철부지 엄마도 있고.


”사정이 있어서 아이 아픈데 병원도 못 따라갔습니까?“

”... 네? ...“

“모두에게 공정하기 위해 모인자리입니다. 제가 여러분의 목소리를 듣고자 여기까지 왔듯이 선생님들의 목소리도 들어야 공평한 거 아니겠습니까?"

"네... 그거야..."


쪼그라드는 목소리들.


"초등학교 선생님 중에는 아무리 쪽지시험이라도 미리 문제를 좀 알려주면 안 되냐는 어이없는 요청을 받은 분도 계시던데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가 아무리 철부지 엄마 소리 들어도 그 정도로 개념이 없지는 않습니다."


누군가의 강한 항변.


"확실합니까? 여기 계신 학부모 중 그런 분 안 계신 거?"


주변이 싸늘해진다.

본인들끼리 서로 얼굴 보고 눈치보고 분위기가 서먹해지는 사람이 몇 보인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왜 학부모 면담이라는 이유로 학교를 벗어나서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잘 시간에 연락을 주고받아야 합니까?“

”그건... 아이가 갑자기 늦게 들어오면 걱정도 되고...“

”아이한테 직접 전화를 하면 되지 않습니까?“

”전화를 안 받으면 어떻게 해요.“

”그렇다고 선생님한테 전화를 하면 무슨 수가 있습니까?“

”혹시 연락이 가능한 친한 친구 전화번호라도 물어볼 수가 있는 거니까요.“

”그런 건 낮에 미리미리 물어보세요. 자식들 걱정에 유난 떠는 분들이 그런 걱정할일에 왜 미리미리 대비 안하시는 건데요?“


다들 아무 말이 없다.


”생각하시는 것 이상으로 현직 선생님들이 많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본인들이 단체방 대화보고 낄낄거릴 때 선생님들은 홧병이 생길 정도로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으신다고요.“

”너무 우리 학부모들만 잘못한다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이시는 거 같은데요. 이거 지금 방송으로도 나가고 온라인으로 생중계 되고 있을 텐데. 저희들 신상 털리면 어쩌려고 너무 말씀을 막하시네요.“

”여러분들. 학부모 단체방에서 선생님들 신상도 공유를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래서 마음에 드는 선생으로 담임 바꿔달라고 교장한테 직접 요청을 하는 걸로도 알고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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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제일 쉬웠어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21 (120) 대한민국의 주권 完 24.02.01 167 5 11쪽
120 (119) 고인 물은 썩기 마련 24.01.31 151 5 12쪽
119 (118) 군대는 군대답게 24.01.30 145 4 12쪽
118 (117) 그럼 직접 하실래요? 24.01.29 142 5 13쪽
117 (116) 혁신 24.01.28 145 5 12쪽
116 (115) 총선 24.01.27 152 4 12쪽
115 (114) 일왕의 사과 24.01.26 159 4 13쪽
114 (113) 침공 24.01.25 166 3 12쪽
113 (112) 생각의 차이 24.01.24 142 3 12쪽
112 (111) 같은 편 24.01.23 144 4 12쪽
111 (110) 탄핵 24.01.22 145 3 12쪽
110 (109) 아이 한명에 매달 오십만 원 24.01.21 143 4 12쪽
109 (108) 어울리는 건 따로 있는 법 24.01.20 146 4 12쪽
108 (107) 인구 유입 정책 24.01.19 154 5 12쪽
107 (106) 고령화 마을 +1 24.01.18 164 3 12쪽
106 (105) 우리도 마음만 먹으면 24.01.17 176 4 12쪽
105 (104) 긴급 체포 24.01.16 178 4 13쪽
104 (103) 백악관 초청 24.01.15 169 5 13쪽
103 (102) 친일파 재산 환수 24.01.14 177 4 12쪽
102 (101) 교양과 강단 24.01.13 170 5 12쪽
» (100) 학부모와의 대화 +1 24.01.12 171 5 12쪽
100 (99) 개헌 24.01.11 174 6 12쪽
99 (98) 믿음직한 파트너 24.01.10 167 3 12쪽
98 (97) 교권보호 24.01.09 166 5 12쪽
97 (96) 국민의 정의 24.01.03 173 5 12쪽
96 (95) 민원인들과의 대화 +2 24.01.02 175 5 13쪽
95 (94) 비선실세 24.01.01 175 6 13쪽
94 (93) 유일한 이웃나라요? 23.12.31 179 6 12쪽
93 (92) 우리나라만 중요하죠 23.12.30 178 6 12쪽
92 (91) 안심부터 23.12.29 153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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