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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검향 님의 서재입니다.

절륜무쌍 환관 위소보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대체역사

매검향
작품등록일 :
2022.04.19 10:20
최근연재일 :
2022.06.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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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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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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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천하절색(天下絶色)

DUMMY

1


때는 명(明) 융경(隆慶) 연간.

봄빛 태탕한 춘사월을 맞아 서자호(西子湖) 호반에는 시인 묵객들의 발길 끊이지 않고 있었다. 그런 호시절에 악다구니로 하루를 여는 모자가 있었다. 그것도 같은 항주(杭州) 서호(西湖) 호반에서.


수양버들 인간사의 근심만큼이나 풀어 헤쳐진 호반 기슭의 취춘원(聚春院). 이 기루(妓樓)에서는 지금 원주 위춘방(韋春芳)과 아들 위소보(韋小寶)가 한창 돈을 갖고 입씨름 중이었다.


“엄마, 돈 좀 줘.”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엄마냐?”

“돈 달라는데 거기서 왜 나이 얘기가 나와?”

“네 나이 열여섯이면 적은 나이냐? 남들 같으면 벌써 장가들어 떡두꺼비 같은 아들 낳아, 어미 품에 안겨줘도 줄 나이야. 이놈아!”


“주기 싫으면 말지. 웬 잔소리. 돈 있어, 없어?”

“억만금이 있어도 너 줄 돈은 없다.”

“그러면 그렇지. 아들 하나 있는걸, 으이구, 그냥!”

마당 우물가에 놓인 세수대가 졸지에 횡액을 당했다. 위소보의 발길질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하늘을 날더니 두 시비 옆에 떨어진 것이다.


그리곤 곧장 밖으로 나가는 아들을 향해 신세한탄이 이어졌다.

“허구헌날 노름에 계집에 빠져 돈은 탕진하니, 어느 어미가 예쁘다고 매일 돈을 주겠니. 저런 걸 아들이라고 온갖 정성들여 뒷바라지해온 내가 미친년이지.”


어머니 위춘방의 푸념대로 아들 위소보는 천하의 불한당, 아니 망나니, 개잡종이 따로 없었다. 배우라는 글공부는 제 이름 석 자 쓰는 것으로 졸업하고, 매일 술타령에 계집질, 도박과 싸움질로 하루가 새고 저무는 전형적인 사고뭉치인 아들인 까닭이었다.


이런 아들을 생각하면 자다가 벌떡 일어날 일이고, 울화가 치밀어 제 명에 못을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한다. 어머니의 이런 심사를 아는지 모르는 온갖 쌍욕은 다해가며 집을 나선 위소보는 그길로 아침부터 도박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자신이 갖고 있던 은자 한 냥을 다 잃었다. 그것도 부족해 자신이 소위 ‘마누라’로 부르는 두 시비(侍婢)마저 팔아 받은 돈 40냥마저도 탈탈 털렸다.


그러니까 반나절 만에 쌀 41석(石)을 잃은 것이다. 이 당시 은자 한 냥이면 쌀 1석( 94.4kg)을 살 수 있는 가치가 있었으니 거금 중의 거금이었다.


아무튼 어깨가 축 늘어져 집으로 돌아온 위소보는 먹으라는 점심도 안 먹고 괜히 두 시비에게 심술만 부렸다. 그러던 그는 기어코 맞닥뜨리기 싫은 일과 마주쳐야 했다.


두 시비를 40냥에 잡아 돈을 빌려준 도박장의 왈패 두 명이 취춘원에 나타난 것이다. 건들건들 들어온 둘 중 왈패 한 명이 위소보에게 물었다.

“윤아와 쌍아에게 통보는 했겠지?”


“뭘?”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위소보를 보고 다른 왈패 놈이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물었다.

“이제와 딴소리 하는 건 아니지?”

“사내대장부가 어찌 일구이언하겠어. 데리고 가.”


이를 곁에서 시종 지켜보고 있던 쌍아가 옆구리에 손을 척 올리고 위보소에게 물었다.

“설마 우릴 팔아넘긴 건 아니겠지요?”

“그렇게 됐어.”


시큰둥하게 대답하고 매정하게 돌아서는 주인인지 천하의 불한당인지를 잠시 째려보던 쌍아가 곁의 윤아에게 말했다.

“가자!”

“정말 저 짐승들 따라갈 거야?”

“그럼, 어쩌겠어? 이미 팔렸다는데.”


“헹, 나는 가기 싫은데.”

“싫어도 가야지 어쩌겠소. 묘령의 아가씨!”

왈패의 말에 윤아도 흔쾌히 나왔다.

“좋아!”


곧 두 시비 즉 윤아(倫兒)와 쌍아(雙兒)는 왈패 두 명을 따라나섰다. 여기서 윤아는 절륜(絶倫)에서 륜(倫) 자를 취한 것이고, 쌍아는 무쌍(無雙)에서 쌍(雙) 자를 취해 쌍아로 불리게 된 것이다. 둘이 합치면 절륜무쌍(絶倫無雙). 견줄 사람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무공 고수가 되라고.


아무튼 두 시비가 왈패 두 명을 따라나선 지 채 일각도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 그리고 쌍아가 손을 탁탁 털며 말했다.

“어떻게 된 거야? 다시 돌아오다니?”

“이렇게 될 줄 알고, 우릴 팔아먹은 것 아니에요? 주인 나리!”


혀를 내밀며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빙빙 돌리는 쌍아를 보며 평소 같았으면 욕이라도 한마디 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위소보지만, 궁금한 것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돈 물어줄 정도로 팬 것은 아니지?”


“그 정도는 아니고요. 다신 얼씬거리지 못할 정도로만 패줬으니 안심하세요.”

윤아의 말에 기분이 좋아진 위소보가 갑자기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가자. 침실로.”

“이 백주대낮에?”


두 사람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 두 시비와 위소보와의 관계는 이미 생쌀이 익어 밥이 된 사이였다. 유식한 말로 ‘생미주성료숙반(生米做成了熟飯)’이라고, 계집질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위소보라는 위인이 두 계집종을 절대 그냥 둘리 없었다.


조선의 속담에 ‘계집종 등 타는 것이 소 등 타는 것보다 쉽다’는 말을 빌 것도 없이, 천하의 불한당은 이미 두 시비와는 그렇고 그런 관계였던 것이다. 쌍아의 물음에 위소보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답했다.

“싫으면 말고.”


“그러지 말고, 이따 저녁에. 응, 응?”

봉긋한 가슴마저 부딪쳐 오며 딴에는 애교를 떠는 쌍아의 대답에 관계 없이 세 사람의 밤일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이날 저녁.

모자가 식탁에 앉아 식사하고 있는데 갑자기 두 사람이 들이닥쳤다. 깜짝 놀란 위춘방이 숟가락을 놓으며 물었다.

“아니 무슨 바람이 불어 예까지 왔소?”


제법 준수하게 생긴 40대 중반의 서생 차림의 사내가 담담한 투로 답했다.

“서호십경도 십경이지만, 그보다는 원주와의 하룻밤이 그리워......”

“누가 들으면 진짜인 줄 알겠네.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무슨 일이오?”


“실은 너무 마음에 드는 아이가 있어서, 여기까지 도망쳐 왔소.”

“응? 천하의 음란서생(淫亂書生)이 도망을 쳐?”

반문하며 위춘방은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한쪽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처녀를 바라보았다. 시선을 느꼈는지 처녀가 잠시 고개를 들어 위춘방을 바라보았다.


“아......!”

감탄사는 위춘방이 아닌 그의 아들 위소보의 입에서 먼저 튀어나오고 있었다. 밥을 먹다 말고 두 사람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시종 처녀를 쫓고 있던 위소보의 입은 이미 헤벌어져 있었고, 침마저 질질 흘리고 있었다.


그 정도로 20세 전후로 보이는 묘령의 아가씨는 천하절색(天下絶色)이었다. 아니 우물(尤物)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아가씨는 천하에 둘도 없는 뛰어난 미인이었다.


단정한 이마에 초승달 같은 눈썹, 가을날의 호수와 같이 맑은 눈, 마늘 찌같이 오뚝한 코, 주사(朱砂)보다 붉은 입술에 적당히 살이 오른 갸름한 얼굴.


게다가 키도 제법 큰 데다가 통통한 것이 양귀비(楊貴妃)의 화신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정말 뛰어난 미인이었다. 그런 까닭에 위소보는 첫눈에 반해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위춘방이 보기에도 여아가 천하절색으로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 그녀마저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며, 음란서생으로 불린 곽두월(郭 斗越)이 섭선을 살랑이며 위춘방의 물음에 답했다.


“얘기하자면 길고, 멀리 북방에서부터 여기까지 도망쳐 왔어. 이 아이의 배경이 보통내기가 아니라서 말이야. 아니지. 교주가 두려워서라는 표현이 더 적확하겠지만 말이야.”

횡설수설하는 음란서생을 바라보며 위춘방이 물었다.


“식사는 하셨소?”

“저녁은 저 아이나 주고. 나는 술이나 한 잔 주쇼.”

“계집은 필요 없고?”

“흐흐흐......! 잘 알면서 왜 그러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맛을 다시는 음란서생을 교태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던 위춘방이 밖을 향해 소리쳤다.

“거기, 쌍아, 윤아 있느냐?”

“네, 주인마님!”


두 시비의 합창을 들으며 위춘방이 지시했다.

“이분을 모시고 가, 술이나 대접해라.”

“우리 보고 대접하라고요?”

“그건 아니고, 모란실까지만 모셔다드려.”


“네, 마님!”

두 사람의 대답을 들은 음란서생이라는 작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저 아이 저녁 먹이고, 절대 도망가지 않게 감시 좀 잘해주쇼.”

“그러죠.”


위춘방의 대답을 들으며 음란서생이 방을 나갔고, 이내 멀어지는 세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위춘방이 멀리 떨어진 주방을 향해 소리 지르고 돌아왔다.

“밥 한 그릇 더 내오너라.”


“네, 원주님!”

선 채 앉지도 않은 위춘방이 아들에게 말했다.

“이 아이 저녁 잘 먹이고, 감시 잘해. 나는 가게 나가봐야 하니까. 알았지?”


“네, 엄마!”

‘엄마’ 소리에 또 한 번 째려본 위춘방이 곧 치마를 한 번 추스르는가 싶더니 이내 실내를 빠져나갔다. 그러자 위소보의 호구조사가 시작되었다.

“이름이 뭐야?”


이 물음에 잠시 망설이더니 처녀가 추수(秋水)같이 맑은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항아(姮娥)!”

“전설속의 달에 있는 궁전에 산다는 그 선녀 이름과 같은 거야.”


“그래. 월궁항아(月宮姮娥)라 하잖아?”

“참으로 미모에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

“호호호, 그렇지?”

“응. 그런데 지금 몇 살?”


“방년 20세.”

“에이, 방년 18세면 몰라도, 좀 늙은 나이 아니야?”

“뭐라고?”


발끈하는 항아의 입을 막기 위함인지 이때 시기적절하게 주방에서 한 여인이 쟁반에 밥 한 공기를 들고 들어왔다.

“얘기는 이따 하고 우선 밥부터 먹어.”

위소보의 말에 항아가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

곧 항아는 식탁에 다가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먹는 것이 영 시원치 않았다. 한마디로 깨지락깨지락. 숟가락을 빼앗고 싶은 정도로 굼뜨게 먹던 항아가 이내 숟가락을 놓고 말했다.


“나 답답해.”

“그럼, 어디 구경 갈까?”

“어디로?”

“항주하면 서호십경 아니야? 그중에서도 오늘 같은 달밤이면 삼담인월(三潭印月)을 바라보는 것이 제일 좋지.”


“여기가 그럼, ‘상유천당 하유소향((上有天堂 下有蘇杭)’이라는, 그 유명한 도시 항주야?”

“그럼, 여기가 어딘 줄도 모르고 따라왔어? 여기가 ‘위에는 천당이 있다면 아래로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는, 그 유명한 항주지.”


자부심 깃든 표정으로 주워들은 풍월을 지껄이는 위소보를 보며 항아가 답했다.

“끌려오느라 정신이 없었어.”

위소보가 정색하고 물었다.

“집이 어딘데?”


“그건 알려줄 수 없어.

수심어린 표정으로 답하는 항아를 보며 위소보가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괜한 걸 물었나 봐.”

“아니야. 우리의 인연이 더 이어진다면 알려 줄 수도 있으니, 너무 속상해 하지마. 그런데, 너 참, 잘 생겼다.”


“후후후.......! 그래? 남들도 다 그렇게 얘기하더라고.”

자부심 깃든 표정으로 실실거리는 위소보 또한 준미(俊美)한 미남이었다. 물론 그 개차반 같은 성질과 하는 짓을 보면 정나미 떨어지겠지만.

“어디든 데리고 가줘.”


“그래.”

곧 두 사람은 실내를 나왔다. 그러자 음란서생을 모란실에 안내해주고 돌아와 밖에 뻗치고 서있던 두 시비 중 윤아가 물었다.

“어디 가시게요?”

“그래.”


“잘 감시하라는 말 못 들었어요? 가긴 어딜 가요?”

쌍아의 쇳소리에 위소보가 손을 저으며 답했다.

“잠시 서호 구경하러 가는 것이니 걱정마.”

“당연히 우리가 수행해야겠지요?”


“따라오든지 말든지.”

퉁명스럽게 답한 위소보가 앞장서자 항아를 선두로 두 여인이 그 뒤를 따랐다.


집을 나오자 양쪽 호수 둑에 심어 놓은 초록의 버드나무와 푸른 호수가 봄바람에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 모습에 항아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어머나, 예뻐라!”


그녀의 감탄사와 상관없이 어느 순간부터 위소보의 마음도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었다. 봄바람에 너울너울 춤추고 있는 수양버들처럼 항아에 대한 사모(思慕)로. 향기로운 봄밤에.


--------


작가의말

고맙습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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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황제의 여인과 위소보 +4 22.05.27 1,107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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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수양 공주 +5 22.05.11 1,220 2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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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정분이 나다 +6 22.05.05 1,525 2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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