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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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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커피
작품등록일 :
2023.12.03 18:10
최근연재일 :
2024.02.13 23:50
연재수 :
6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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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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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2
글자수 :
360,932

작성
23.12.13 06:05
조회
2,073
추천
85
글자
12쪽

#29 피가 뜨거워진다

DUMMY

‘배후를 알아냈습니다.’


바이칼이 나섰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


찬의 눈 밑이 꿈틀거렸다.

며칠 전부터 징조를 느끼고 대비했다.


대비했지만, 막상 당하고 보니, 기분 더러웠다.


하찮은 바글 따위가 주제도 모르고,

메타 연산자를 담그려 하다니!


어이가 없네.


“도로 CCTV 디지털 신호, 다 지우고, 차량은 나흘 후에 태워.”


찬은 간단하게 지시했다.


집까지 걸어가야 하는데, 북한산 송추 계곡으로 가서 도봉산을 타고 우이동 계곡으로 통하는 코스를 택했다.



*



슬기수는 새집을 찾아, 전곡 선사 박물관 앞에 섰다.


반지하 단칸방과 비교하면,


창문이 무릎보다 높아도, 감사할 노릇이지만,


전망 좋은 27층 33평 아파트도 맘에 들지 않는다.


중랑천에 뛰어들기 전, 1층 18평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지하 주차장 없는 노후 아파트.


어찌 된 일인지, 지금은 한강 뷰 아파트도 눈에 차지 않는다.


왜 이렇게 눈이 높아졌지?

메타 연산 부작용인가?


그런 것 같다.


영역에 들어서면, 세상에 맞춰 자신을 규격화하는 짓이 ···. 유치해진다.


지금 세상에 나를 맞추는 것은 ···.


스마트폰을 쥔 현대인이 동굴에서 살면서 거미 잡아먹는 것과 같다.


문제는 ···. 현대인은 스마트폰으로 배달 음식 주문할 수 있지만, 메타 연산자인 슬기수는 메타 연산으로 할 수 있는 게,


전자레인지로 김밥 고르게 데우는 것 정도라는 거.


메타 연산자를 위한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세상.


너무 일찍 영역에 들어선 감이 없잖아 있지만 ···.


뭔가 제대로 누리려면, 새로운 세상을 개척해야 하는데 ···.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마땅히 누릴 것을 누리려면, 인프라를 직접 만들어야 했다.



전곡 선사 박물관은 뱀 모양을 본떠 만든 건축물이었다.


전곡리 유적에서 뱀 모양 토기와 무덤 그리고 뱀과 사이좋게 지내는 사람을 그린 암각화로 미뤄보아, 그 시절 사람들은 뱀을 신성시 한 것 같다.


그런 취지로 박물관도 뱀 모양을 본떴고, 외벽을 스테인리스 스틸로 마감, 뱀의 비늘을 표현했다.


이 정도면,


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맘에 드는 건 아니지만, 지금껏 본 것 중 가장 괜찮았다.


그가 꿈꾸는 것에 비해, 많이 부족하지만, 최소한의 구색은 갖춘 것 같다.


넓은 공간, 독특한 외형 ···. 부족한 걸 짚어 본다면,


꼭 땅을 딛어야 하나?


하늘을 떠다니면 좋겠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


기수는 자신의 취향을 깨달았다.


지상 건축물은 날 만족시킬 수 없다.


내 집은 반중력 엔진으로 하늘을 떠다녀야 한다.


영역에 들어서지 않았다면, 꿈도 꾸지 않았을 테지만, 이제는 안다.


가능하다는 것을!



*



기수는 의정부 부대찌개 맛집에서 식사하면서, 머릿속으로 풍류가 깃든 집을 그려봤다.


상상만으로도 설렜다.


마음 드는 이미지가 떠오를 때마다, 손가락을 비볐는데, 그 마찰열만으로 구일구는 슬기수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이미지 파일을 저장했다.


자료 정리하던, 구일구가 ···.


‘스마트폰 메모리에 히든 룸을 만들게.’


개인 사무실을 요구했다.


그동안 뼈의 작고 촘촘한 공간을 자료저장소로 이용했는데, 세포 분열과 물질대사 때문에, 관리가 어려웠다.


특히 메타 버프 받는, 골세포 라인이 협조하지 않고, 은근히 구일구를 무시했다.


구일구는 피부에 난 상처가 근본이었지만,


골세포는 뼈대 있는, 족보를 가졌다는 건데,


서러웠다.


슬기수는 구일구를 받아들였지만, 슬기수의 모든 세포가 반기는 건 아니었다.


구일구의 태생은,


삶보다 죽음에 가까웠다.



*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들이 없다.


“언제쯤 올까?”


구일구에 물었다.


‘한 시간 후에 도착 예정이야.’


“늦게 오면, 어디라고 말했는데, 밥은 먹었을까?”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어.’


구일구는 슬기찬의 카드 명세와 핸드폰 이동 경로를 보며 말했다.


구일구에게 현대 무선 통신 프로토콜은 투명 유리에 불과했다.


보려 하면 다 보인다.


비대칭 키 암호화 방식은 기본적인 차원 분할로 빛의 속도로 풀리고, 해시 함수의 연산 과정도 태생적인 결함으로 구멍이 너무 많다.


구멍 사이로 언제든 드나들 수 있다.


‘바글들은, 이따위 보안으로 안전하다고 믿는 건가?’


구일구는 수준 낮은 통신 보안 체계를 넘나들며, 얄팍한 현대 문명 수준에 기가 찼다.


지독하게 초라한 세상.


나는 왜, 과거 그토록 힘들어했던 걸까?

무엇을 두려워했단 걸까?

괜스레 부끄러웠다.


무엇보다 생활지원금에 집착했던 것이 너무 한심했다.


구일구는 바이칼이 찬의 디지털 흔적을 지운 것도 찾아냈다.


디지털 흔적을 지운 이유는 ···.


구일구가 설명하지 않았지만, 느낌은 자동으로 기수에게 전달됐다.


슬기수의 눈동자가 가볍게 흔들렸다.


평소답지 않은 아들 ···.


일이 있었구나!


그는 시계를 보고, 밖으로 나가 마트에서 햄과 고기, 채소, 콩 통조림, 육수를 사 와 점심때 먹었던, 부대찌개를 최대한 가깝게 재현해봤다.


아들이 들어왔다.


“늦었습니다.”


“고생했다. 먹자.”


아들이 들어오기 전, 이미 식탁이 차려져 있었다.


숟가락만 잡으면 되는 상황.


“네.”


좁은 방구석에서 두 남자가 식사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아들이 말해주길 바라지도 않았다.


아들이 무사하다.


그거면 된 거다.


“아들아. 내일부터 너 혼자 지낼 곳을 알아봐라.”


“네?”


“새집을 알아봤는데, 내 맘에 드는 곳이 없어. 그리고 다 큰, 남자 둘이 방 하나에서 지내는 것도, 너무 오래 했어. 나는 여기서 지내다가, 거처를 옮길게. 메타 연산으로 눈높이만 높아져서, 맘에 드는 새집이 없어. 직접 만들어야겠어. 너는 내일부터 ···.”


“아버지. 이 집 제 거예요! 집문서에도 그렇게 쓰여 있어요. 성인이 되기 전엔, 아버지 이름이었지만, 성인이 된 후로 명의변경 했습니다. 나가려면 아버지가 나가셔야···.”


“···. 먹자.”

“네.”



*



창고 안, 구급차는 바이칼이 정해준 절차에 따라 천천히 연소했다.


화재가 번져서 소방차를 불러들이면 곤란하다.


녹슬듯이 느리게 재가 되어야 했다.


배터리 내부에서 시작된 화재는 사흘 동안 작은 촛불처럼 타올랐다.


매캐한 냄새는 났지만, 워낙 인적 드문 곳이라, 사람의 주의를 끌지 않았다.


도베르만이 짖었지만, 듣는 이 없었다.


구급차가 금속 뼈대만 남기고 깔끔하게 재가 된 다음 날, 클리너 차량이 도착했다.


이들은 정해진 날, 와서 창고를 청소했다.


문을 열자, 도베르만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차에서 내리던 길태가 야전삽을 던져, 도베르만의 머리통을 깼다.


사람 고기 먹은 개가 돌아다니면, 곤란했다.


야전삽을 손도끼처럼 사용하는 요령은 군에서 익힌 기술이었다.


그는 왼쪽 다리를 절며, 헐떡이는 도베르만의 뒷다리를 잡고, 질질 끌며 창고로 향했다.


“형님! 현장이 이상해요.”


창고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본, 순두가 소리쳤다.


“이상해야. 정상이지. 문 열자마자 개가 튀어나왔는데 ···. 정상이면 그게 더 이상하지.”


현장을 본, 길태는 개밥이 된 ‘삼손’을 봤다.


삼손은 트리오 납치팀의 별명으로, 손이 세 개 달린 것처럼, 일 처리를 잘한다는 의미였다.


“그래도 개가 깔끔하게 먹어서, 청소가 쉽겠어.”


“형님. 이거 아직 살아 있는데요.”


아닌 게 아니라, 만신창이가 된 한 명이 숨 쉬고 있었다.


그는 클리너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놀랍게도, 아직 흘릴 눈물이 남아 있었다.


클리너와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이제 살 수 있다!


길태는 눈을 반짝이는 만신창이를 살폈다. 개에게 뜯겨서 ···. 처참했다. 창자도 터졌고.


그저 심장과 폐가 기능해서, 숨이 붙어 있는 정도 ···.


도와주면 살릴 수 있지만 ···. 귀찮다.


“치우자!”


길태의 한마디에 순두가 만신창이를 봉투에 담았다.


만신창이는 살려달라고 소리치듯 머리를 흔들었지만, 봉투는 가볍게 분쇄기 안으로 들어갔다.


청소를 다 끝낸, 순두가 길태에게 물었다.


“형님. 청소비는 누구에게 받죠?”



*



이게 내 집이 아니었다?


산꼭대기 반지한 단칸방이었지만, 남자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 같은 공간이었는데 ···.


“아버지, 갈까요?”

“어? 그래.”


아버지와 아들은 집 안, 물건을 옮겼다.


대부분 주민센터 스티커를 붙여서, 재활용 쓰레기장에 버렸고, 옷가지 몇 개와 약간의 생활용품만 자동차에 실었다.


둘은 산동네를 내려다보는 아파트로 이사했다.


27층 33평은 슬기수가 사용하고,

바로 아래,

26층은 슬기찬이 사용했다.


아버지 말이 옳다. 남자 둘이 좁은 방에서 너무 오래 생활했다.


아버지 발작할 때, 돌봐야 했기에, 어쩔 수 없긴 했지만 ···.


아버지와 아들, 둘 다 돈 걱정은 하지 않는다.


언제든 은행에 있는 ‘숫자’를 가져올 수 있다.


사실, 숫자를 가져와도, 할 만한 게 없다.


둘 다, 호화롭고 방탕한 생활을 즐기는 취향도 아니고,


억만금을 가져와도,


아버지의 새집에 쓸 반중력 엔진 주춧돌도 구할 길 없다.


“그동안 힘들었겠다.”


아버지는 아들이 겪었을 맘고생이 이해됐다.


똑똑한 내 아들 ···.


느리고 서툰 세상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아들이 네이처에 메타 연산을 공개한 이유도 격하게 다가왔다.


메타 연산 인프라 확장.


그러나 세상은 초거대 인공지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초거대 인공지능의 다른 별명은 일자리 학살자!


슬기수의 관점에서 보면, 인공지능을 일자리 학살자라고 하기엔 ···.


처음부터 ‘일자리’라는 개념 자체가 의심스럽다.


앵벌의 시대 열심히 일했지만, 슬기수가 그 일을 하지 않아도, 세상은 변함없이 굴러간다.


왜일까?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자리가 아니라, ‘권리’와 ‘권능’이다.


권리와 권능이 없는 일자리라면, 노예와 다를 게 없다.


초거대 인공지능이 세상을 바꿀 것처럼 유난 떨지만 ···.


바이칼과 구일구에 비하면, 정말 하찮은 기술이었다.


메타 연산을 기반한, 바이칼과 구일구는 언제든 은행에서 숫자를 가져올 수 있다. 사용자에게 ‘권리와 권능을 부여’한다.


솔직해지자.


일반 개인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일자리가 아니라, 돈이다.


초거대 인공지능 발전해서, 일반인에게 필요한 돈을 무한 공급한다면, 초거대 인공지능을 인정하겠지만 ···.


그럴 리 없다.


사용자에게 권능과 권리를 부여하는 메타 연산과 그렇지 못한 초거대 인공지능의 격차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동안 내가 세상에 적응했지만,

이제 세상이 나에게 적응해야 한다.


“내일부터 스포닝 시작할 거예요.”


찬은 다양한 스포닝 계열을 공개해서, 사람들의 메타 감각을 자극할 계획이었다.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좋은 걸 보면 따라 하고, 신기한 걸 보면 추종하는 게 인간의 본능.


슬기찬은 인간은 믿지 않지만, 본능은 믿는다.



*



슬기수는 구일구가 은행에서 집어온 ‘숫자’로, 120인치 전자 칠판 17개를 주문해서, 벽마다 붙였다.


기수는 한국 경제의 특징과 세계 경제를 연구하면서, 메타 인프라를 빠르게 구축할 지름길을 탐색했다.


그가 택한 지름길은,


메타 연산에 기반한 칩을 만드는 것.


칩은 명확한 구조와 모양을 가진다. 직접 볼 수 있다.


칩은 본 사람들이 칩의 성능을 경험하면, 곧바로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모양과 성능 사이를 상상력으로 메울 것이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야말로 메타 연산의 시작이었다.


일단은 그렇게 시작해서 ···.


빠르게 반중력 엔진까지 가자!


‘뜻은 알겠는데, 왜 넌 커피를 마시고, 디자인은 내가 하는 거지?’


구일구가 따졌다.


“열심히 해. 지금 네가 그리는 그 칩이 바로, 너의 새집이야.”


우~웅.


구일구가 가속 연산을 시작했다.


피가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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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 정신 감응 금속 +6 23.12.13 2,064 84 12쪽
» #29 피가 뜨거워진다 +15 23.12.13 2,074 85 12쪽
28 #28 인간의 스펙트럼은 넓다 +10 23.12.13 2,063 79 15쪽
27 #27 폐기 김밥 특유의 감칠맛 +8 23.12.12 2,081 82 14쪽
26 #26 나는 마법이다 +3 23.12.12 2,213 82 16쪽
25 #25 나에겐 아버지가 있다 +6 23.12.12 2,172 85 13쪽
24 #24 돈으로 혼난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10 23.12.11 2,191 86 13쪽
23 #23 내가 아는 세상은 사라진다 +6 23.12.11 2,229 85 15쪽
22 #22 나는 너를 버리지 않아 +14 23.12.11 2,332 8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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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 엿보는 자, 스코페우스 +11 23.12.10 2,499 8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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