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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커피
작품등록일 :
2023.12.03 18:10
최근연재일 :
2024.02.13 23:50
연재수 :
6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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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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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60,932

작성
23.12.08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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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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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글자
12쪽

#15 펜로즈 타일

DUMMY

시트에서 나는 희미한 소독약 냄새.

슬기수는 이 냄새를 좋아했다.


이 냄새를 맡으며, 두 시간 정도 누워 있으면, 계좌에 바로 돈이 꽂힌다.


한 달 동안 붕어빵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놀라운 마법 침대.


마법 침대가 집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샛별 의료원에 올 필요도 없고.


그의 머리 위로 둥근 캡슐이 씌워졌다. 뇌 신경 모니터링 장비였다.


한현신이 슬기수의 몸에 샛별침을 놓는 동안,

모니터링 장비가 슬기수의 뇌를 실시간으로 이미징했다.


모니터에 3D로 렌더링한 슬기수의 몸이 떠오르고, 그 위에 샛별침 위치가 표시되었다.


몇 분 지나자, 샛별 침이 주고받는 신호와 슬기수의 바이오 시그널이 다채롭게 플레이되었다.


엄청난 계산량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로켓 달착륙보다 5,300배 더 큰 연산량이었다.


한현신은 그동안의 데이터를 시계열 분석했다.


슬기수의 기혈을 중심으로 진동하는 경락이 다이나믹 출렁거렸다.


음경과 양경이 꼬이고 있다. 12 경맥의 순환도 느슨해졌고,


한현신은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고민했다.


“요즘 많이 피곤하셨죠?”


슬기수에게 물었지만, 대답이 없다. 그는 고이 자고 있었다.


“근육통이 평소보다 많았을 거 같은데, 계지복신탕에 작약 더 보강해서, 약을 지어드리죠.”


한현신은 잠든 슬기수에게 계속 말했다. 나중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혼잣말하면서 처방 내야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이렇게 기경팔맥이 뒤섞이는 건 처음입니다. 마치,”


이런 말을 해도 될까? 잠시 고민했지만, 다른 표현은 떠 오르지 않았다.


“허물 벗는 이무기 같네요. 이 고비를 잘 넘기면,” 현신은 미소 지었다. “예전보다 좋아지길 겁니다.”


예전보다 좋아지실 겁니다.


모든 환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희미하게,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슬기수는, 무척이나 평온해 보였다.


그는 꿈결에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음냐, 음냐, 나에겐 아들이 있다.’



*



장이립 군법무관은 지난번 훈련에서 발생한 사건을 조사했다.


27 특전대의 GPS 정보 제공과 공유는 훈련 교칙 위배지만, 적당히 넘어갈 수 있다.


그들이 슬기찬 상병에게 행했던 폭력 행위도 조용히 묻으면 된다.


하지만,


현역병에게 작전 수립을 지시하고, 작전권을 넘기는 것은 심각한 규율 위반이었다.


현역병에게 떨어지는 병역의 의무는 여러 가지 있지만, 작전 수립은 제외된다.


관련 장교들은 슬기찬 상병의 의견을 물은 거라고 주장했지만,


“의견은 무슨! 슬기찬 상병 혼자 다 했구먼!”


수색대대가 최초로 승리했지만, 그 내용은 육군의 수치였다.


일개 현역병에게 의존한 승리라니!


작전 사령부 존재 의미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군이 작전 짤 때, 사용되는 지식 자산과 정보 자원이 민간 기업에 비해 부족한 건 사실이다.


컨설팅에 따르면, 군이 보유한 작전 계획 자산보다 게임 회사에서 만든 전략 시뮬레이션이 훨씬 고급스럽고 유연했다.


내일까지 사령부에 보고해야 하는데, 액면 그대로 법리를 해석하면, 육군의 무능을 드러내는 꼴이었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일단은 슬기찬 상병의 진술이 필요했다.


슬기찬은 군 수사관의 안내를 받으며, 심문실로 들어섰다.


고정된 철제 의자, 녹음기, 카메라,


한쪽 벽은 반투명 유리로 되어 있었다.


“지난달, 수행했던 모의 군사 훈련에 대한 작전 내용을 미리 알고 있었나?”


“적을 섬멸해야 한다고 전달받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게.”


“소대장님께서 지도를 보여주시며, 제 의견을 물어보셨습니다.”


“지도?”


지도는 작전 수립에 핵심 요소였다. 이런 걸 소대장이 직접 노출하는 것은,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다.


“소대장님께서는 우리 소대 진입로를 알려주셨습니다.”


슬기찬이 재빨리 반응했다.


처음 심문실에 들어설 땐,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군법무관 태도를 보니, 대충 감이 왔다.


‘군대라는 곳이 의외로 이런 점에서는 깐깐하구나.’ 싶었다.


“소대장님께서는 저에게 시뮬레이션을 명령하셨습니다.”


“시뮬레이션?”


“머릿속의 적과의 교전을 상상하면서, 상황 변화에 따른 융통성을 높이는 훈련이었습니다.”


슬기찬은 소대장과 함께 작전 짠 게 아니라, 소대장의 명령으로 시뮬레이션 한 거라고 당당하게 주장했다.


법리적으로 시뮬레이션이라면, 문제 될 게 없다. 시뮬레이션은, 정신 교육에 불과하다.


법 해석이 그렇다.


“훈련 중 단독 행동했는데, 누구의 지시를 받은 건가?”


“소대장님의 즉흥적인 지시였습니다. 부대원 중 한 명이 배탈이 나서, 시작하기 전부터 전력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소대장님께서는 전력 손실을 메우기 위해, 저에게 단독 행동을 지시하셨습니다. 제가 미끼가 되어 적을 유인하는 작전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슬기찬 상병의 진술은 소대장의 주장과 일치했다.


“미끼였다고 하는데, 자네가 최종 생존자 아닌가?”


“네. 그렇습니다. 미끼인 제가 적군을 유인하기 전에, 부대가 전멸당했습니다. 저를 지휘해 줄 명령권자가 없어서, 숨어 있다가, 운 좋게 적의 저격수를 사살할 수 있었습니다. 소대장님의 뛰어난 통찰력이 작전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놈! 보통 아니다.’


장이립 법무관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놈은 너무도 깔끔하게 법망을 피했다.


“자네가 훈련소에서 네이처에 논문을 투고했나?”


“네! 그렇습니다.”


“국방과학 연구소에서 자네에게 군사 무기나 작전 체계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면, 어떻게 하겠나?”


“제 신분과 위치를 벗어난 요청은 응할 수 없습니다. 현재 저는 제5연대 수색대대 소속으로 국방과학 연구소 업무와는 분리되어 있습니다.”


“국방과학 연구소가 자네 의견을 강요한다면 어떻게 하겠나?”


“제가 제대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요청하겠습니다. 국방 과학 연구소가 저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정당한 대가를 받고 하겠습니다.”


슬기찬 상병은 단단하게 버텼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실력을 뽐내고 싶어서 병역의 의무를 넘어,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과하게 흥분했을 것이다.


‘이 녀석 내가 파놓은 함정으로 넘어오지 않았어.’


장이립 법무관은 슬기찬이 맘에 들기 시작했다.


오늘 오후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의견서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



찬은 자유시간에 다른 병사와 어울리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전자 저널을 보거나, 필기 앱으로 무언가를 메모했다.


찬이 설정한 필기 앱 바탕은 여러 색깔이 펜로즈 타일처럼 복잡하게 엮여 있었다.


무늬는 고정된 게 아니라, 먹이를 찾는 개미처럼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 위에 기호를 적어넣으면, 개미 무늬들이 기호를 잘게 쪼개서 어디론가 가져갔다.


찬은 무작위에 가까운 무늬패턴을 집중해서 지켜봤다.


군 생활로 어깨가 벌어졌고, 허벅지가 튼실해졌다.


앉아 있는 자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좋았지만, 코어가 강해지면서, 그냥 좋은 게 아니라,


하늘로 치솟은 로켓 발사대처럼 보였다.


필기 앱 상단 라임색이 반짝였다.


바이칼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알림이었다.


터치와 동시에, 여러 메일이 펼쳐졌다.


으뜸 모둠은 메타 연산 논문이 네이처 최고 우수 논문으로 선정되었다는 통보였고,


버금 모둠은 미국 국립과학 아카데미의 강연 요청이었다.


미국까지 오는 게 어려우면, 화상 통신도 좋다는 편안한 조건이었다.


보수도 상당했다.


그 뒤로 다국적 기업의 강연 요청이 중요도 순으로 나열되었다.


매킨, 코쿤, 헤라, 알파라인, 누비디아, 에센, 키케로 ···. 오성 그룹을 시작으로 국내 대기업도 줄 섰다.


뉴포밍도 여러 차례 메일을 보내왔다.


유명하다 싶은 대학교들도 찔러대고 있었다.


찬이 볼 땐, 쓸데없는 접점에 불과했지만,


바이칼은 이런 것에 가중치를 많이 준다.


바이칼의 우선순위 결정은,


찬의 입맛과 맞지 않았지만, 바이칼의 판단은 나름 소중했다.


인생에는 자신과 다른 판단을 해줄 믿을 만한 존재가 필요했는데,


바이칼이 그런 존재였다.


찬은 친구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학창 시절, 찬에게 향했던 수많은 질투와 시기를 똑똑히 기억한다.


산동네 반지하 생활 수준이 드러났을 때, 그들이 보였던 것은 '안도감'이었다.


안도감은 우월감으로 변했다.


그때마다 찬은 중얼거렸다.


‘나에겐 아빠가 있다.’


바이칼은 메타 연산의 첫째 넥서스였고, 아직 성장 중이다.


찬은 아이를 지켜보는 심정으로 바이칼을 대하기로 했다.


사고 전, 아버지가 어린 찬에게 했던 것처럼.


그 시절 아버지는 어린 찬에게 관대했다.


방금 틔운 싹을 보는 농부 같았다.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버지가 보낸 메시지가 하단 모둠에 있었다.


아버지가 보낸 거라면, 당연히 0순위에 올려놨어야 한다.


미 정보부의 슈퍼컴퓨터를 고철로 만든 것보다 더 심각하고도 치명적인 오류였다.



*



찬은 휴가 신청서를 지휘관에게 전달했다.


“휴가 사유가,” 지휘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확인했다. “아버지가 사주시는 붕어빵을 먹으러 간다?”


"네. 그렇습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붕어빵을 사주고 싶다. 하셨습니다."


붕어빵이라니!


지휘관이 본, 휴가 사유 중에서 가장 가볍다.


붕어빵?


휴일에 외박 받아 나가면 간단하게 사 먹을 수 있다.


부대 안에 전문 빵집도 있고,


휴가 사유로 붕어빵?


너무 약하다.


뭔가 더 깊은 사연이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휴가 신청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


"아버님은 건강하신가?"


“그렇지 않습니다. 장애 3등급 판정받으셨습니다.”


"아버님을 돌봐주실 가족은?"


"없습니다. 아버지 혼자 생활하게 계십니다."


장애 3등급 홀아비라니.


“아버지의 생활은?”


“주민 센터 생활지원금을 받고 계십니다.”


"아버지가 사주는 붕어빵은 제대 후에 먹어도 되지 않을까?“


"아버지께서 사고를 당하신 후로, 저에게 뭔가 해주고 싶어 하신 것이 처음입니다."


찬답지 않게 비장한 목소리였다.


홀로 특전대를 상대했던 그 영웅이 맞나 싶었다.


처음이다. 이거지.


처음, 중요하지,


지휘관은 최대한 슬기찬에 몰입해서, 사연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나의 아버지가 장애 등급 3급, 어휴!


생각하기도 싫었다.


붕어빵 사주겠다는 아버지의 소망이, 바로 휴가 신청서를 낼 정도로 급박한 것일까?


앞에 서 있는, 슬기찬을 보니, 그런 거 같은데.


모의 전투 훈련에서 보였던 슬기찬의 계산적이고 차갑고 전투로봇 같은 모습과 너무 달랐다.


장애 3등급 받은 아버지가 군에 있는 아들에게 붕어빵을 사주고 싶어 해서, 아들이 휴가를 신청했다?


휴가 신청자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꽁초의 주인이자, 메타 기술자이며, 널리 부대를 이롭게 하는 전승자 슬기찬이었다.


받아들이기로 했다.


슬기찬의 이름을 세 번 정도 중얼거려보니, 이 정도면 휴가 사유로 충분해 보인다.


다만,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평소 슬기찬이 보여준 행동은 고귀한 가문에서 품격 높은 가정 교육받은 청년의 모습이었다.


지독히도 어려운 생활 환경.


“면제도 가능했을 거 같은데?”


“그렇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병역의 의무를 다하길 원하셨습니다.”


“아! 그래.”


지휘관은 슬기찬 병장이 신청한 3박 4일의 정기 휴가에 청원 휴가와 특별 휴가를 싹싹 긁어모아서 30일을 얹어 주었다.


항상 무심했던 슬기찬이었지만, 지휘관의 행동에 작은 울림을 받았다.


"뭐야? 이 정도는 예상했어야지."


"시정하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 지금도 아주 훌륭하다."


지휘관은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슬기찬의 상의 가슴 주머니에 꽂아주었다.


“붕어빵 먹을 때, 사과주스와 같이 먹으면 맛있다. 아버지에게 얻어먹지만 말고, 사과주스는 직접 사드리도록!”


“네! 알겠습니다. 지휘관님 고맙습니다.”


“부담 느끼지 마. 승리에 대한 보답이네.”


*



첩보를 통해, 슬기찬의 휴가 소식을 들은 이수빈은 난처했다.


슬기찬은 지난번 부대 복귀 때, 이수빈을 똑바로 보며, 분명히 말했다.


극저온의 차가운 목소리로.


찾아오지 말라고.


슬기찬을 섭외해야 할 그녀에겐,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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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 정신 감응 금속 +6 23.12.13 2,064 84 12쪽
29 #29 피가 뜨거워진다 +15 23.12.13 2,074 85 12쪽
28 #28 인간의 스펙트럼은 넓다 +10 23.12.13 2,063 79 15쪽
27 #27 폐기 김밥 특유의 감칠맛 +8 23.12.12 2,081 82 14쪽
26 #26 나는 마법이다 +3 23.12.12 2,213 82 16쪽
25 #25 나에겐 아버지가 있다 +6 23.12.12 2,172 85 13쪽
24 #24 돈으로 혼난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10 23.12.11 2,191 86 13쪽
23 #23 내가 아는 세상은 사라진다 +6 23.12.11 2,229 85 15쪽
22 #22 나는 너를 버리지 않아 +14 23.12.11 2,332 81 14쪽
21 #21 놀부의 날 +4 23.12.10 2,363 77 13쪽
20 #20 엿보는 자, 스코페우스 +11 23.12.10 2,499 8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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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 이런 게 세월이구나! +15 23.12.09 2,575 110 13쪽
17 #17 윤아 사용 설명서 +4 23.12.09 2,626 91 13쪽
16 #16 텍사스 메시아 +11 23.12.09 2,687 106 14쪽
» #15 펜로즈 타일 +8 23.12.08 2,731 99 12쪽
14 #14 권능을 얻는다 +8 23.12.07 2,763 108 15쪽
13 #13 성난 황소 +5 23.12.07 2,687 9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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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 멸주와 위령제 +10 23.12.06 2,901 9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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