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카게 살자> Chapter 03. (1)
Chapter 03.
정말이다.
계모라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나와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람이라는 사회통념이 나에게도 적용될 줄은 나는 정말 몰랐다. 이렇게 처절하게 말이다.
적어도 거리로 나 앉게 생긴 위기에서 구해준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안다면, 사람이 그래서는 안 되는 거다.
***
새엄마는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정말 살갑게 대했다.
그리고 나는 그게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최소한 집에서 쫓겨나도 가족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집도 마련할 수 있게 했고, 한동안-적어도 일 년 이상은 아무 것도 안 하고 먹고 살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새엄마의 입장에서 보자면, 내가 구세주나 마찬가지인 거다.
어쨌거나 사채업자들은 구속되었고, 중형을 선고받을 게 뻔했다. 무엇보다도 신 부장이 내 배때기에 칼을 쑤셔 박았다는 게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연히 놈들에게 희롱당하고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 게 우리만이 아니다. 놈들의 구속은 전격적으로 이루어졌고, 덕분에 놈들은 장부를 감출 새도 없었다.
그리고 살고 있는 집의 부동산 경매는 예상대로 한 차례 유찰되었다. 통상적으로 경매 낙찰률을 볼 때, 앞으로 한두 차례 더 유찰될 것이다.
하지만 새엄마는 더 이상 그 집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없나보다.
집안일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앞으로 이사하고 새 살림을 장만하고, 미래 설계를 이야기 하면서 꾸려나갈 일들에 대해서 내게 많은 것들을 물었고, 조언을 구했다.
미리 이야기했다시피 우리는 상속을 포기했다.
집안의 유채동산에 한해서는 부부 공동의 소유권이 있기 때문에 평가액의 절반을 새엄마가 부담을 하면 다 가져올 수도 있지만, 새엄마는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사망을 오히려 홀가분하게 여기는 것 같아서 불만이기는 했지만, 어쩌겠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이라는데 말이다.
“아들! 그런데 그 때 옷 속에 책을 끼고 있을 생각을 어떻게 했어?”
어떻게 하긴! 폭력조직이건, 사채업자건 근본은 똑같다. 수틀리면 배때기부터 쑤시는 것은 그들의 전문 분야가 뭐건 다를 바 없다.
조폭으로 스카우트되면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뭔지 아나? 두 달 이상 골방에 갇혀서 먹고자고, 먹고자고, 또 먹고자다가 싸고 하면서 살을 찌운다. 그래야 한 방에 나가떨어지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체중을 불린 후, 다음에 쑤시는 연습을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쑤시면 바로 나가떨어지지만, 곧바로 죽지는 않는 곳만을 쑤시는 요령을 배운다. 일종의 테크닉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노하우다.
죽이면 짭새가 뜬다!
이건 불문율이다. 치고 받고 싸우는 와중에 찌른 시체를 챙긱 겨를도 없고.... 시체가 굴러다니니, 경찰이 출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까 죽이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
또 싸워서 지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죽이면 저 쪽에서도 보복을 한다. 결국 치킨런으로 달려가게 되고, 그러면 또 새가 뜬다.
그러니까 죽지 않을 정도로 찌르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조폭이나 다 마찬가지다.
여하튼 그런 게 그런 자들이고, 막판에 수가 틀리면 내가 당할 것이라는 정도는 능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옷 속에 참고서를 끼고 있었고, 덕분에 깊지 않은 상처로 조기에 퇴원할 수 있었다.
자, 문제는 여기서부터!
퇴원하기로 한 날, 새엄마는 나를 우리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갔다.
두 평도 안 되는 넓이에 책상과 침대, 간이 냉장고와 소형 TV가 전부인 고시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랑 같이 산다는 것은 무리지 싶구나. 그래서 어렵사리 내린 결정이다. 네가 내 입장이라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이해하겠니?”
순간 나는 새엄마가 이 돈은 어디에서 났을까 생각이 들었다.
새엄마-이 순간부터는 김숙영 여사-는 어색한 웃음을 웃으면서 말했다.
“옷이며 교과서랑 참고서에 학용품까지, 필요한 네 짐은 모두 새로 장만해서 갖다 놓았다. 고시원 임대료는 네가 졸업할 때까지 해서 15개월분을 미리 정산해 놓았고. 참, 네가 그렇게 갖고 싶어하던 새 컴퓨터랑 타블렛이랑 새 스마트폰이다. 어차피 신 부장인가 신 과장인가 하는 놈이 네 컴퓨터를 부숴 버렸기 때문에 새로 장만해야 했었지? 23인치던가, HD화질이 정말 좋더구나. 너도 만족할 거다. 스마트폰도 전에 네 번호랑 똑같고.”
그러면서 김숙영 여사께서는 내 새 교복과 추리닝, 사복과 속옷 따위를 일일이 꺼내서 보여 주었다.
2학기 기말고사가 끝이 나고, 곧 방학이다. 그리고 또 크리스마스겠지.
나는 고개를 들지 않고 바닥만 바라보면서 물었다.
“동생들은요?”
김숙영 여사가 어색하게 웃었다.
“수아는 바로 합숙소로 돌아갔다. 너도 알지 않니? 수아 뒷바라지 하는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지. 지금껏 몇 년을 투자해 왔는데, 이제 와서 그만 둘 수도 없고.... 게다가 곧 있으면 데뷔할 텐데, 연예인이 되어서, 구질구질한 모습을 보여줄 수도 없고.... 너도 대충 짐작했겠지? 합숙소에 있어야 할 수아가 왜 집에 와 있었는지 말이다. 그게 다 돈 때문이다. 다행히 이번에 보험수당으로 밀린 합숙비도 내고, 애 때 좀 벗길 수 있었지. 호호호....”
생각만으로도 즐거웠는지 소리내어 웃던 김숙영 여사께서는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내 앞에서, 지금 웃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나 보다.
“거기에 막내는 이제 겨우 초등학교 3학년이다. 사립이지않니! 지금이야 학교에서 과외수업을 모두 책임지고 있다지만, 곧 중학교 가고, 그러면 또 학원이랑 과외를 다니기 시작하면.... 들어가는 돈이 상상이 안 되는구나.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지!”
김숙영 여사는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러면서 내 눈치를 살폈다.
내가 아무 말을 안 하자, 제 딴에는 나름 나를 신경썼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설득에서 협박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나도 나름대로 네 입장을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야. 우선 나도 애들 데리고 살 집은 있어야 하지 않겠니! 집부터 마련하고 보니, 수중에 남는 돈도 거의 없더구나. 게다가 어차피 네 성적으로는 대학교는 못 갈 테고. 그러면 학원이네, 과외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 하지만 수아는 진로가 정해졌고, 강하는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야. 우리 네 사람이 각자 필요한 돈과 써야할 돈을 생각해 보면, 너도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니?”
그러면서 다정하게 웃어 보였다. 이건 설득도 아니고, 협박도 아니고, 일방적인 통보다.
“걱정 마라. 내가 아무리 친엄마가 아니라고 한들, 큰아들인 너를 고등학교도 졸업 안 시킬까! 내 학비도 미리 학교에 지불해 놓았단다.”
그리고는 쌀쌀맞게 말했다.
“미리 고시원 결재하고, 학교 등록금 내고, 이것저것 다 마련하는데, 천만 원이라는 돈이 후딱 날아가더구나.”
그러면서 봉투를 내민다.
동전까지 들어있는 것을 보니, 천만 원 예산 잡아서 모두 준비하고 남은 돈일 거다.
나는 웃음밖에 안 나왔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땅만 바라보면서 물었다.
“이것 모두 외삼촌, 아니 김도형씨 생각이죠?”
내 질문에 김숙영여사는 흠칫 놀라며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한 발 뒤로 물러난다.
이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고, 안 봐도 비디오다.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김도형은 김숙영 여사를 선동해서 보험금을 수령했다.
고시원? 집에서 살림만 하고 백화점 쇼핑민 다니던 김숙영 여사는 그딴 것 전혀 모른다. 지나가다 보이는 빌딩 건물 간판에 달려 있는 무슨무슨 고시원이라는 것이 학원으로 알고 있었을 사람이 바로 김숙영 여사다.
그렇게, 지금까지 편하게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을 쓰기만 하던 김숙영 여사가 이런 치밀한 계획을 세웠을 리가 없다. 그럴 주변도 못 되고. 그럼 그녀를 뒤에서 사주한 사람이 반드시 있을 거다.
그리고 그 사람을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웃는 얼굴에 항상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던 김도형, 그 자의 표정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금도형은 아마 제 누나한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어차피 피 한 방울 안 섞인 놈인데, 굳이 누나가 책임질 필요 뭐 있어? 5억을 넷이 나누면 한 사람 당 1억이 조금 넘는 돈밖에 안 되지만, 셋이 나누면 2억에서 약간 못 미치는 돈이잖아! 그리고 산하만 빼면 모두 한 가족인데, 나눌 필요 있어? 누나가 5억을 다 손에 쥐게 된다고!”
이렇게 말이다.
또 이런 말도 했겠지.
“누나 지금 나이가 몇이야? 아직 30대잖아. 한창이라고. 누나도 새 출발해야지. 그런데 내 자식도 아니라 남의 자식까지 맡아 키우면서 잘 살 자신 있어? 없으면 떼어놔. 예부터 머리 검은 짐승은 키우는 법이 아니랬어!”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냥 돈 천 만원으로 방 하나 구해주고, 떼어내 버려. 고2짜리 놈한테 돈 천 만원이면 큰 돈이지. 안 그래?”
능히 그럴 사람이 김도형이다.
그렇게 그 돈을 모두 빼돌리고, 그 중에 천만 원으로 나랑 얼굴 한 번 안 부딪치면서 내가 혼자 살 수 있도록 모든 세팅을 해 놓은 것이다.
적어도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15개월 동안은 결코 내가 다시 그 사람들을 찾을 일이 없도록 말이다.
웃음이 나왔다.
나는 묻고 싶었다.
빼돌린 그 돈을 누구 명의로 했냐고.
김숙영 여사를 꼬드긴 김도형씨라면, 김숙영 여사를 잘 구슬려서 그것 역시 자기 명의로 해 놓았을 것이다.
핑계는 많다.
(chapter 03 계속 됩니다.)
- 작가의말
저어,
chapter 제목이 없는데, 너무 허전하지는 않을까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내일 정규연재 신청을 하면 언제 쯤 될까요? 빠른 시일 내에 정규연재 입성을 하면 좋겠다는 욕심이 무럭무럭 드네요. ^^;;;
Comment '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