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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글동그림 님의 서재입니다.

차카게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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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글동그림
작품등록일 :
2012.08.28 16:34
최근연재일 :
2012.08.28 16:34
연재수 :
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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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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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1,943

작성
11.10.19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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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차카게 살자> Chapter 02. (2)

DUMMY

***


겨우 한숨을 돌리는가 했는데, 이번에는 보험사에서 장례식장으로 찾아왔다.

아버지 이익수씨의 사고가 자살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경찰을 대동하고 말이다. 종결된 사건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그러니까 사건 조회에 따라서 사고사가 아니라 바뀔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한 번 나간 넋이 다시 돌아오지 않은 새엄마 김숙영 여사는 이번에도 나는 모르겠으니, 큰 아들과 이야기하라고 내게 내몰았고, 힘이 되어줄 것처럼 와서 장례식장을 들락거리던 외삼촌-나와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김도형씨는 자기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처럼 딴 데만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저 인간은 왜 온 거야?’

결국 이번에도 보험사 직원과 변호사를 상대하는 사람은 내가 되었다.

“봐요, 이산하 학생. 정황이 그렇지 않아? 사채업자들이 장례식장까지 찾아왔다며? 압류당한 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보험금까지 수령하면 얼추 빚 갚을 수 있게 되는 거 아냐? 맞지? 그러니까 말해 봐. 사고 전에 아버지가 뭐라고 언질이라도 한 게 있는지....”

어이가 없었다.

결국 자살로 처리되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 식으로 몰고 가는 중이다.

“봐요, 양반.”

“거, 학생. 말 좀 조심해. 양반이라니!”

그런다고 내 말이 곱게 나올 리가 없었다. 겉은 고2지만, 그 속에 담긴 나는 40대에 전직 변호사니까 말이다. 게다가 상대가 애라고 대하는 놈들의 꼬락서니를 보니 아무리 좋게 말한다 해도, 좋게 말이 나올 수가 없었다.

“아, 나야 말조심하고 싶지! 그런데 양반. 양반께서 내게 명함이라도 건넸어요? 대뜸 세별생명보험사에서 나왔다고 하고, 자기 이름이라도 밝혔어? 나? 나는 아버지 돌아가시고, 새엄마는 나몰라라 손 놓고 있고 집은 압류 당해서 경매로 넘어가게 생겼고, 간밤에는 장례식장까지 찾아와서 행패 부린 사채업자들하고 한 판 떠서 완전히 눈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나랑 제대로 대화 하려면 그 쪽부터 먼저 제대로 하라고요. 자, 처음부터 다시 합시다. 이렇게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상중이라, 경황이 없군요. 어디에서 나오신 누구라구요?”

경찰과 보험사 직원은 서로 얼굴만 바라보았다. 뒤늦게라도 내가 고2짜리 만만한 학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으니 다행이다.

그렇게 상황을 짐작한 보험사 직원은 다시 한 번 아버지 이익수 씨의 사망과 관련하여 자살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고, 나는 가볍게 비웃어 주었다.

“그러니까, 정황상 심각한 경제 위기로 말미암아, 자살의 의심이 있다는 말씀이시죠? 결국 정황상일 뿐이네요. 그런데 선부께서는 어떻게 그 순간에 트럭이 중앙선을 넘어서 차를 덮칠 것을 아셨을까요? 무슨 영화처럼 미래를 미리 아는 초능력이라도 있다는 겁니까?”

내 말에 보험사 직원은 말을 못 하고 입만 뻐끔거렸다.

“게다가 도난 차량이라면서요? 그게 도난 차량이라는 것은 또 어떻게 아셨을까요? 아버지께서 무슨 말씀이 있었다면, 그 즈음에 아버지와 우리 가족의 통화내역이라도 있을 것 아닙니까?”

경찰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고, 보험사 직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사고사망으로 종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일주일 후에 연락드리겠습니다. 그 때 보험 수익자께서는 신분증과 인감 증명과 가족관계 증명서, 그리고 인감도장과 통장 사본을 갖고 보험사 지점으로 내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때까지 우리와는 한 발 떨어져서 뒷짐 지고 딴청 피우던 법적 외삼촌 김도형씨가 고개를 내밀었다.

“저어, 보험금은 얼마나....”

“피보험자께서는 5억원짜리 생명보험에 가입하셨습니다.”

“5억!”

순간 나몰라라, 나는 상관 없다 하며 저 만치 떨어져 있던 새엄마가 득달같이 달려왔다.

“그럼 우리 빚 갚고 살 수 있는 거에요? 집도 안 넘어가고?”

보험사 직원은 딱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저런 생각없는 엄마와 어떻게 같이 살고 있느냐고 묻는 듯 했다.

나는 차갑게 말했다.

“빚 갚으면 남는 게 없을 겁니다. 부동산 압류는 제1금융권에서 했고, 사채업자들은 거기에 명함도 못 내밀고 있으니까요.”

내 말에 새엄마는 무슨 소리냐고 나만 빤히 바라보았다.

“말 그대로에요. 제1금융권 채무와 근저당, 압류, 거기에 사채의 채무가 얼마인지 다 합치면 집이랑 뭐랑 다 해서 남는 게 없을 거라는 거에요. 남는 게 있다고 남겨줄 사채업자들도 아니고.”

새엄마가 울먹거린다.

“그럼 무슨 소리야? 결국 거리로 내앉는다는 소리 아니야?”

나는 눈짓으로 보험사 직원과 경찰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여기 더 앉아있어봤자, 건질 것도 없고 귀찮기만 할 테니까 어서 빠져나가라는 신호다.

역시 사람 상대하는 직업이라 그런지 그들도 곧바로 내 신호를 알아차렸고, 대충 인사 하면서 빠져나갔다. 그 두 사람의 배웅 역시 내가 해야 했고, 문상객에게 인사하는 나를 붙잡고 새엄마는 늘어졌다.

“네 말은 그러니까 보험금 5억원도 모두 날린다는 거 아냐?”

나는 도대체 아직 미성년자인 내가 어디까지 나서야 하나 한숨만 내쉬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다른 방도를 강구해야지요.”

“다른 방도?”

“네. 다른 방도!”

“다른 방도, 뭐?”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말고요. 내일 장례식이 끝나면, 집으로 모든 가족들이 모이라고 하세요. 삼촌이랑, 사촌들까지 모두요. 인감도장과 인감증명,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등록부, 제적등본도 가지고요. 신분증 사본도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갖고 오면 좋구요.”

“삼촌에게까지 연락을 해야 하니?”

새엄마는 머뭇거리면서 물었다.

“네. 꼭 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게 좀....”

나는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 새엄마와 삼촌간의 관계가 기억났기 때문이다.

“알았어요. 삼촌에게 전화하는 것은 내가 할께요.”


***


우리는 망부의 시신을 화장을 하고 화장장에 유골함을 안치시켰다. 나는 부조 들어온 돈 중에 남은 돈으로 5년치 관리비를 미리 선납을 하는 것을 끝으로 모든 장례 절차를 마무리 지었다.

장례식장에서도 우리의 딱한 사정을 알기 때문에 최대한 편의를 봐 주었고, 초반의 어수선함과는 달리 큰 탈 없이 장례를 끝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집에서 가족들과 친척들을 대면할 수 있었다.

새엄마와 두 동생들, 아버지 형제인 삼촌 내외와 사촌 남매들이 전부다.

오랜만에(?) 보는 삼촌과 사촌들이라서 어색했다.

이게 모두 새엄마 탓이다.

새엄마는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하던 삼촌이 공금을 횡령하고 있다며 아버지 회사에서 내쫓았고, 삼촌은 결국 보유지분을 정리하고 독립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외삼촌이 들어왔다. 정말 삼촌이 공금을 횡령했는지 아닌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아버지는 새엄마의 말을 믿고 친동생을 회사에서 내보냈다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틀어진 형제간의 관계는 결국 친형의 사망 소식에도 동생이 와서 문상만 하고 가는 지경까지 틀어지고야 말았다.

나는 모두 모인 자리에서 상속포기신청서를 내밀었다. 그리고 나는 최대한 간단하게 말했다.

“법원에 이것을 제출하면 우리 모두 아버지의 빚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삼촌이나 사촌들은 망설이지 않고 상속포기신청서에 빈칸을 기입하고 내게 건넸다. 애초에 아버지 재산 따위에는 아무관심이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받는 대신에 우리 가족의 상속포기신청서를 삼촌에게 내밀었다.

“대신에 좀 부탁드립니다.”

삼촌은 뜻밖의 말에 나를 쳐다보았다.

“아마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부터 사채업자들은 엄마나 우리 남매를 감시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들은 이것을 법원에 접수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즉시 법원에 접수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야 우리 가족 뿐만 아니라 삼촌네 가족들까지 모두 사채업자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형, 꼭 그래야 하는 거야?”

사촌동생인 정하가 물었다.

“우리한테 거둘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 삼촌에게도, 또 너희 학교까지 찾아갈 거야. 그게 바로 사채업자들이야.”

역시 세상 경륜이 있어서인지, 삼촌은 즉시 내 말을 알아들었다.

“알았다.”

삼촌은 다시 동사무소에서 나와 새엄마, 그리고 두 동생들의 서류를 발급받아야 할 것이다. 물론 나는 그에 필요한 위임장을 모두 작성해서 넘겨준 상태다. 삼촌이 할 일이 많다. 그 외에도 어느 법원에 가야하고 어느 부서에서 무슨 절차를 거쳐서 일을 하는 지까지 모두 상세하게 적어 주었으니까, 한글만 읽을 줄 안다면 누구나 할 수 있으리라.

“아버지는 네가 이렇게 의젓한 줄 알면 기뻐하실 거다. 시간 내서 한 번 집으로 놀러 오렴.”

서류를 받자 삼촌은 망설이지 않고 집을 나섰다. 내 뒤를 따라 여동생 수아와 남동생인 강하가 따라 나왔지만, 삼촌은 내 인사만 받았다. 새엄마는 아예 나와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삼촌 일가가 나가자마자, 외삼촌이 들어왔다. 멀지 않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되었어?”

나는 일일이 설명하기도 귀찮았고,

“상속을 포기하면, 아무 것도 못 갖는다는 것이 아니냐?”

새엄마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외삼촌은 그것부터 따졌다.

흐르는 것은 눈물이요, 나오는 것은 한숨 뿐이라더니, 지금이 딱 그 상황이었다. 아버지를 화장하고 돌아앉은 지 고작 서너 시간인데, 벌써부터 유산이 얼마나 되는지 따지고 있었다.

“계산해 보세요. 프랜차이즈라지만 어차피 구멍가게 같은 회사였어요. 큰 돈이 있는 게 사무실 임대 보증금이랑 브랜드가 전부인데, 요즘 널린 게 커피전문 브랜드잖아요. 그 외에는 이 집이 다 아닙니까?”

나는 종이를 가져다가 쓰면서 정리를 했다.

“지점도 본사 직영 체제가 아니라 지사장 체제였던 데다가, 브랜드라는 것이 아버지의 커피 감별사 자격으로 비롯된 것인데, 아버지가 이렇게 가셨으니, 그것도 종이조각이 되어버릴 테구요. 결국 사무실 보증금과 여기 집 밖에 남는 것은 없습니다. 문제는 부채지요. 이미 경매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매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죠.”

“보험금이 있잖아!”

엄마가 나섰지만, 나는 엄마의 말을 끊었다.

“그건 별개입니다. 나중에 설명하고요. 집이 시세가 5억이라지만, 공시지가는 4억이고, 통상 75%에서 낙찰된다고 가정할 때 그럼 3억에서 낙찰될 것입니다. 근저당 설정되어 있고, 은행압류된 것부터 순서대로 제하고 나면....”

“5천!”

벌써부터 그 계산하고 있는지 새엄마는 바로 답을 했다.

그 모습이 나는 역겨웠다.

“문제는 사채입니다. 그게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는데.... 분명한 것은 아무리 적어도 5천보다 많을 것이라는 거죠.”

“그것을 어떻게 알지?”

외삼촌이 물었다.

“그것도 모르고 사채업자들이 달려들었겠어요? 장례식장까지 찾아와서 뒤집어엎은 것을 보면 뻔하죠. 그것으로는 쇼부가 안 되니까 온 것 아닙니까?”

내 논리 정연한 말에 외삼촌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5억5천보다는 작지 않을까? 남는 5천이랑 보험금 말이야.”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생명보험금은 상속재산이 아닙니다.”

“뭐?”

가족들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상속재산은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는 것을 말합니다. 보험금은 피보험자의 재산이 아니라, 처음부터 보험수익자의 재산, 즉 어머니와 우리 세 남매 것이라는 거죠.”

새엄마와 외삼촌은 물론 두 동생들까지 나한테 당겨 앉았다.

“우리가 상속을 포기하면, 아버지 재산은 물론 빚까지도 물려받지 않는 것이구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아버지의 빚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아버지 것이 아니었던 보험금은 정상적으로 지급되구요. 그건 상속재산이 아니기 때문에 저희들 것입니다.”

“그럼 사채 빚은....”

나는 차갑게 말했다.

“그것을 왜 우리가 신경써야 합니까?”

그 말을 하는 순간에 나는 등골이 오싹했다.

그것을 왜 우리가 신경써야 하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상대가 사채업자들이 아니라면 신경써야 하는 게 도리다. 그나마 다행이다. 피해자라고 해야할지 모르지만, 채권자들이 사채업자들이니까 말이다.

“그럼....”

“예. 아버지는 저희들을 위해 5억원이라는 돈을 남겨주셨습니다. 아니, 남겨주신 게 아니군요! 남은 가족들을 위해 준비해 놓은 셈이네요.”

내 말에 엄마와 동생들이 손을 맞잡으며 기뻐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과연 이게 기뻐해야하는 일인지 이해가 안 갔지만, 어쨌거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거리로 내앉게 생기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



(Chapter 02. 는 계속 됩니다.)


작가의말

어디 산속이나 외딴 섬에라도 들어가서, 글을 쓰고 왔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부터 책을 읽은 것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게 즐거워졌네요.

그런데 세상은 왜 이렇게 복잡할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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