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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깨비 님의 서재입니다.

투신, 조선의 복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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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깨비
작품등록일 :
2023.06.02 12:24
최근연재일 :
2023.07.21 19:10
연재수 :
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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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4
추천수 :
112
글자수 :
267,470

작성
23.07.14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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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16화 살인자(4)

DUMMY

< 살인자 (4) >






“정말 역겨운 소리를 지껄이는구나.”


경멸 어린 목소리였다.

바우가 대놓고 미움과 증오의 감정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제 슬슬 종서 역시 그런 그에게 분노가 치밀기 시작했다.


“살인자에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

“살인자, 그럼 그때 내가 어찌해야 했을까? 과연 누구의 말을 믿어야 했을까?”


바우의 언성이 점점 커졌다.

이에 종서 역시 지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머릿수가 더 많고, 더 강한 쪽을 믿고 싶었던 거겠지!”

“닥쳐라! 네놈의 그 더럽고 추잡한 죄가(罪價)가 모든 상황을 망친 거라 하지 않았나!”


상황 이쯤 되자 종서는 대체 그 죄가(罪價)가 무엇을 말하는지 무척 궁금해졌다.


“···좋아, 상전을 향한 충성심이 강한 모양이니 그 배후는 더 이상 캐묻지 않을 게.”

“알려줄 생각조차 없었어.”

“하지만 적어도 그 죄가(罪價)라는 거 말이야. 그게 뭔지 정도는 알려줄 수 있지 않나?”


오수의 죄가(罪價).

한번씩 언급된 적은 있었지만 이제껏 그 누구도 속 시원히 알려준 바 없는 수수께끼와 같은 그것.


‘그 죄가(罪價)라는 거 분명 구악(九惡)과 다 연관이 있을 거야. 그게 뭔지 알아야 구악(九惡)을 밝히고 찾을 수 있어.’


하지만 이번에도 바우는 회피할 뿐이었다.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아. 그건 예의와 존중이 아니야.”

“그러니까 누구에게 예의와 존중이 아닌 거지?”

“······”


망할 묵비권의 행사였다.

종서가 이를 한번 꽉 깨물고 나서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어차피 다 알게 될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나를 이렇게 만든 고향 땅에,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 하나하나 다 찾아갈 예정이니까. 그러니까 결국 일찍 알게 되는 것과 늦게 알게 되는 것의 차이일 뿐이야.”


바우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고향 땅에 갈 거라고? 사람들을 찾아서? 당신 제정신인가? 정말 내가 아는 그 오수 형이 맞는 거야?”


당연히 아니었다.

바우가 아는 과거의 오수는 굉장히 유약한 인물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현세에서 이세로 강림한 종서는 엄연히 다른 종류의 인간이었다.

은혜와 원수를 뒤로 미루는 그런 물렁한 성격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세 조선 땅에 강림한 이후 그의 성격은 더 과격하고 더 파탄이 난 상태였다.


“찾아가는 선에서 그칠 생각 추호도 없어. 나를 악연(惡緣)으로 규정한 사람들을 모두 다 인벌(人罰)할 예정이니까. 복수할 거야. 당한 만큼 갚아줄 거야. 백배, 천배, 몇갑절씩.”


그것은 일종의 선전포고(宣戰布告)라 할 수 있었다.


구악(九惡)의 분쇄(粉碎).

복수(復讐)와 인벌(人罰).

말살(抹殺)과 귀향(歸鄕).


바우가 그런 종서를 비웃었다.


“허, 뻔뻔하기 그지없네.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그러거나 말거나 종서의 태도가 무척 단호했다.


“누가 뻔뻔한 사람이고, 누가 죽고 싶어 환장한 사람인지 끝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모두가 다 알게 될 거야.”

“실성을 했네, 실성을 했어. 하아, 이렇게 어리석은 남자였나···”

“진흙탕에서 이년을 구르고 죽을 위기를 숫하게 넘겨봐. 사람이 안 미치고 배기나.”

“···알고 싶어?”

“······?”

“정말 알고 싶은 거야?”

“무엇을?”

“형의 그 죄가(罪價)가 무엇인지 말이야.”


심경의 변화가 있는지 바우의 목소리가 제법 차분해졌다.

종서가 혹여 그의 마음이 변할까 싶어 즉시 화답했다.


“당연하지, 답답해 죽을 지경이다.”

“좋아, 그렇다면 알려주지. 당신의 추악한 과거를. 그저 마지막 인정이라 생각해.”


종서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드디어 그 빌어먹을 죄가(罪價)라는 것이 뭔지 듣게 되는 순간이었다.

바우가 자신의 안면 근육을 굉장히 과장되게 쓰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은. 말.이.야···”

“······?”


종서의 몸이 잠시 달았다.

그걸 눈치챘는지 일부러 잠시 뜸을 들이던 바우가 이내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은 희대의 색마(色魔)야.”


순간 바우의 두 눈에 경멸과 조롱의 기색이 역력했다.

종서가 황당하다는 듯 한쪽 눈을 찡그렸다.


“뭐, 색마(色魔)?”


그러자 바우가 실성한듯 실실 웃으며 말했다.


“욕정에 눈이 멀어 감히 주인 아씨를 겁탈하고 강상과 반상의 법도를 무너뜨린 희대의 종마(種馬). 그게 바로 당신이란 인간의 수준이고 실체야.”

“······”


잠시지만 말문이 턱 막혔다.

어처구니가 없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종서는 당연히 그의 말을 새빨간 거짓말이라 규정한 바였다.

하려면 좀 그럴듯한 거짓말을 하던가.

뜬금없이 사람을 강간(强姦)범으로 몰아버리다니.


“역시 제대로 말해줄 생각이 없구나.”

“크하하하,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그걸 믿지 못함은 당신의 소관이지. 더 이상 내 알 바 아니야.”

“······”


할 말이 없었다.

마치 놀림을 당하는 것 같았다.

종서는 치미는 화를 참지 못한 채 그의 어깨에 꽂은 죽장검을 움직여 안쪽의 살을 후벼 팠다.


“으아아악!”


바우의 비명성이 울려 퍼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종서는 이제 그 속내에 악과 증오 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역시 그냥 입 닥치고 지옥에나 떨어져라. 앞으로 내 일은 내 알아서 할 테니까.”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움을 직감한 것인지 바우가 자꾸 실성한듯 웃었다.


“크하하하, 내가 한 건 살인이 아니야. 죄가의 집행이었을 뿐이지. 잘못된 건 내가 아니야, 네놈이지. 네놈의 그 더러운 죄가가 인영이 그 착한 아이를······”


퍼억!


아구창에 한방을 날렸다.


“으으읍!”


헛소리에는 매가 약이었다.


“그 아이는··· 당신··· 때문···”


종서가 다시 한번 더 체중을 실은 강력한 펀치를 그 아구창에 날렸다.


퍼억!


“크으읍!”

“두 번 다시 남의 동생의 이름 입에 담지 마라. 살인자 주제에. 역겨워서 못 들어주겠으니까.”


자질구레한 변명 따위 더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죽장검을 써서 그를 죽이는 건 너무 쉽고 아쉬움이 진하게 남을 것 같았다.

종서가 온몸에 체중을 실은 펀치를 쓰러진 바우의 얼굴에다 일직선으로 내리 꽂기 시작했다.

그것은 일방적인 구타라 할 수 있었다.


한번, 두 번, 세번, 네 번, 다섯번, 여섯 번, 일곱 번, 여덟 번, 아홉 번···


계속해서 구타했다.

멈추지 않았다.

부서지고, 깨지고, 터지는 짜릿한 손맛이 느껴졌다.


한번, 두 번, 세번, 네 번, 다섯번, 여섯 번, 일곱 번, 여덟 번, 아홉 번···


바우의 얼굴은 이미 피투성이였다.

그럼에도 종서는 멈추지 않았다.

지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바우의 안면부가 아예 폭삭 내려 앉을 때까지였다.


한번, 두 번, 세번, 네 번, 다섯번, 여섯 번, 일곱 번, 여덟 번, 아홉 번···


종서가 주먹으로 바우를 때려 죽이는 중이었다.

그때 각축장에서 당한 일을 그대로 되갚아주는 셈이라 할 수 있었다.

그때의 철검이 이제는 주먹으로, 그때의 공격자가 이제는 수비자로 그 방식과 입장이 아주 약간 뒤바뀐 것뿐이었다.


“크으으윽.”


바우는 명백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얼굴이 완전히 다 박살이 난 채였다.

간신히 숨구멍에 숨이 들었다 나갔다만을 반복하는 중이었다

바로 그때 다 죽어가던 그가 무언가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사제(師弟)······ 형제(兄弟)··· 친우(親友)··· 우리··· 서로를···”


종서가 구타를 멈추었다.

어째서인지 그의 두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 탓이었다.

분노는 더한 슬픔에 덮이고 증오는 더한 연민에 덮였다.

감정의 굴곡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심연속에 내재된 오수의 감정이 솟구쳐 올라왔다.

지금 바우가 지껄이는 그 뜻 모를 말이 오수의 영(靈)을 자극하는 기폭제 역할을 한 것 같았다.

게다가 이제는 종서의 입에서도 무언가 뜻 모를 말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서로를 구축하자.”


그것은 종서의 입을 빌린 오수의 기억이었다.

그 말을 들은 바우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짓뭉개진 입으로 가까스로 말을 이었다.


“천리··· 만리··· 동풍(同風)이··· 분다···”


이제 그 말의 의미를 알 것도 같았기에 종서 역시 천천히 말을 이었다.


“천리, 만리에 걸쳐 동풍(同風)이 분다. 동속(同俗), 동류(同流), 동행(同行)이라 동풍(同風)이 불어온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서로를 구축하자. 동풍계(同風契)를 구축하자.”


문뜩 떠오르게 된 오수의 잔여 기억에 따르자면 그것은 일종의 주문(呪文)이었다.

스승이 써주고 동문들과 함께 외운 주문(呪文).

계원들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한 바로 그 주문(呪文).


동풍계(同風契)의 주문(呪文).


어찌 보면 그것은 단서라 할 수 있었다.

바우 외 또 다른 구악(九惡)에 대한 단서.

지금 격렬하게 휘몰아치는 감정의 격류가 바로 그 증거였다.

일전에 꾼 적 있는 꿈속의 내용을 어슴푸레 반추한 바 동풍계의 계원은 오수, 바우, 새염 그리고 아직 이름 모를 서가(徐家) 적어도 이렇게 네 명이었다.

그 외 계원들이 더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그렇게 네 명은 확정인 것 같았다.

그들 중에 또 다른 구악(九惡)이 존재할 터였다.


“함께··· 좋은 일··· 믿음의··· 대가··· 분아··· 분아······”


종국에 이르러 바우가 누군가를 애타게 찾았다.

하지만 끝끝내 그 말을 맺지 못한 채 침묵에 빠져들었다.

깊은 침묵,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 참이었다.

바우는 마치 혼자만 시간이 멈춘 듯이 더 이상 손가락 하나를 까딱하지 못했다.

그리고 흉부 역시 더 이상 들썩이지 않고 침전했다.

눈알은 이미 다 터진 상태였기에 깜빡거릴 수 없었다.

구악(九惡) 중 그 첫번째 살인자(殺人者)에 대한 인벌(人罰)의 종장(終場)이었다.

그때 마침 바로 뒤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당신 괜찮니?”


연우의 목소리였다.

마치 밤 야차(夜叉)처럼 치열하게 싸우느라 그녀의 존재를 까맣게 잊은 바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삼십보 뒤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 살육전을 다 지켜본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니 이 복수전에 그녀가 제법 큰 도움이 되었다.

격렬한 사투 중 한번 날려준 비검의 역할과 지원군의 존재를 흘려준 덕분에 바우가 받게 된 심리적 압박감은 종서의 승리에 크게 기여한 바 그야말로 시의적절한 개입을 해준 셈이라 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


종서는 연우에게 말을 걸 수 없었다.

구악(九惡) 중 하나인 살인(殺人)자가 사망하자 갑자기 혼재된 기억과 감정들이 물밀듯이 밀려든 탓이었다.


“크으으윽!”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종서가 황급히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에 화들짝 놀란 연우가 연신 종서의 양어깨를 붙잡고 뒤흔들었다.


“당신 정말 괜찮니? 정신 차려, 정신!”


그녀의 행동이 종서가 정신을 차리는 데에 그다지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다그닥다그닥.

다그닥다그닥.


그때 마침 저 멀리에서 지축을 울리는 말 무리의 발굽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임오준을 포함 지원조 인원들이 이제 막 범고개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크으으윽.”


이제 안심이 되어서일까.

종서가 힘없이 땅바닥에 엎어졌다.

바우의 시신 바로 옆자리였다.

종서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우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와 잠시 조우했다.

한데 어찌된 일이지 피와 피가 뒤섞이지 않았다.

그저 우연한 일일지도 몰랐고 어쩌면 서로가 서로를 거부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항상 좋은 일만 생기는 것 같아. 고마워, 오수 형. 나 너무 좋아.’


꿈속에서 본 적 있는 바우의 환한 미소가 아른거렸다.

동풍계(同風契) 형들보다 먼저 장가를 간다며 한창 신이 난 듯한 바로 그 미소였다.

그 미소를 다시 한번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은 완벽하게 짓뭉개진 상태였으니까.

다름아닌 종서가 직접 벌여 놓은 일이었다.

지금의 바우의 얼굴은 이제껏 그가 도축해온 고깃덩어리들의 상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나 과녁에 꽂혔다.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어.’


한때는 절친한 형제이자 이제는 뒤틀린 원수 사이, 정말인지 묘한 기분이었다.

그때 연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종서의 의식을 꿰뚫고 들어왔다.


“당신, 정신차려. 조금만 더 버티면······”


하지만 거기까지.

그녀의 목소리 그리고 지축을 울리는 말 무리의 발굽 소리가 점차 멀어지며 눈앞이 서서히 암전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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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18화 일부 종장...(Part 1) 23.07.21 86 1 19쪽
41 17화 논악 23.07.16 99 1 16쪽
» 16화 살인자(4) 23.07.14 91 1 13쪽
39 16화 살인자(3) 23.07.14 90 1 12쪽
38 16화 살인자(2) 23.07.12 89 1 14쪽
37 16화 살인자(1) 23.07.09 95 1 14쪽
36 15화 초하루(3) 23.07.07 96 1 16쪽
35 15화 초하루(2) 23.07.05 95 1 16쪽
34 15화 초하루(1) 23.07.02 104 1 18쪽
33 14화 사전답사(4) 23.06.26 103 0 15쪽
32 14화 사전답사(3) +2 23.06.25 108 0 14쪽
31 14화 사전답사(2) 23.06.19 105 0 16쪽
30 14화 사전답사(1) 23.06.18 111 1 14쪽
29 13화 청록회(2) 23.06.18 113 1 12쪽
28 13화 청록회(1) 23.06.16 119 2 13쪽
27 12화 비구니 +2 23.06.15 123 2 15쪽
26 11화 박투대전(4) +1 23.06.14 129 2 14쪽
25 11화 박투대전(3) 23.06.13 125 2 14쪽
24 11화 박투대전(2) 23.06.12 119 2 13쪽
23 11화 박투대전(1) 23.06.11 122 1 14쪽
22 10화 임오준(2) 23.06.11 127 1 17쪽
21 10화 임오준(1) 23.06.10 123 3 13쪽
20 09화 복수자(2) 23.06.09 129 3 14쪽
19 09화 복수자(1) 23.06.09 152 3 13쪽
18 08화 견여금석(2) 23.06.08 135 4 13쪽
17 08화 견여금석(1) 23.06.08 134 4 13쪽
16 07화 갑절복수 +1 23.06.07 136 4 14쪽
15 06화 일책 불사핵(4) +1 23.06.07 136 4 17쪽
14 06화 일책 불사핵(3) 23.06.06 139 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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