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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깨비 님의 서재입니다.

투신, 조선의 복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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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깨비
작품등록일 :
2023.06.02 12:24
최근연재일 :
2023.07.21 19:10
연재수 :
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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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30
추천수 :
112
글자수 :
267,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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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6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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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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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7쪽

06화 일책 불사핵(3)

DUMMY

< 일책 불사핵 (3) >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바우를 직접 찾아가 상위전 출전 의사를 타진한 바지만 그것은 자신의 소관이 아니란 부정적 회답만 얻어온 터였다.

정치수가 그를 불러 하문하는 게 아니라면 조장 서열 재조정 건의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는 처지라나 뭐라나.


‘하기야 노비 팔자가 다 그렇지··· 괜한 기대만 했었네.’


게다가 바우와의 만남은 이번이 벌써 두번째였다.

그래서인지 이후 낮잠을 취해도 첫번째 만남 이후처럼 별다른 꿈을 더이상 꾸지 못했다.

상위전 출전 청탁과 오수의 기억 조각 얻기, 두개 다 아무런 소득 없이 쫑난 셈이었다.

종서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작금의 상황이 답답할 따름이었다.

그러자 바로 곁에 있던 전곤이 묻기를.


“오형(兄), 무슨 일이 있었나?”

“별 일 아니야. 그보다······”


종서와 전곤, 두 사람은 현재 조장 막사 안에 있었다.

손전등과 가로등 따위가 부재한 전근대 시대이기에 원래라면 해가 떨어질 시 축성장에서 칼퇴근을 시켜주는 것이 통상이었다.

한데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저녁부터 두 사람에게만 조장 막사 대기령이 떨어진 상태였다.


“······”

“······”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축성장을 관리감독하는 군졸 중 하나인 조강해가 막사 안에 들어왔다.


“칠석 조장 오수, 십석 조장 전곤은 이제 곧 야간 잔업을 통솔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될 거다.”

“······?”

“······?”


뜬금없는 얘기였다.

이 야밤에 갑자기 잔업이라니.

그러거나 말거나 조강해는 두 사람에게만 야간 잔업에 대한 지시사항을 하달했다.

그것은 북문을 나서 강을 건너 북방의 검은 숲에 들어가 마른 땔감을 운반해오라는 일전에 들어본 바 없는 다소 생소한 지시사항이었다.

전곤이 무언가 의아하게 느꼈기에 물었다.


“성문을 나서 북방 땅에 들어가야할 이유가 있습니까? 땔감이라면 성벽 안에서도 얼마든지···”

“검은 숲에 좋은 참나무가 많다. 벌목은 일과시간에 종종 행해온 일이다. 일전에 베어 놓은 장작들이 꽤 남아있을 테니 지정된 장소에 찾아가서 조용히 운반만 해오면 된다.”

“검은 숲에서 벌목이라니.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전곤이 토를 달고 있다라 생각했는지 조강해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축성장 작업 내용을 노비 따위가 다 알 리 있느냐.”

“······”

“염려할 거 없다. 단지 인솔 역할이 필요해 한가한 조장 둘을 보내는 것뿐이니. 숲에 도착하면 지게꾼 다섯이 알아서 작업을 할 것이다. 지게꾼 중에 밤눈에 밝은 길잡이가 있으니 그의 뒤를 쫓으면 무탈할 것이다.”

“강 건너의 검은 숲은 북방 영역입니다. 야인 무리와 조우하면 어찌합니까?”

“야밤이라 안전하다. 대낮에 강을 건너는 게 오히려 야인들의 눈에 띄기 더 쉽다.”

“하오나 약탈이나 습격은 야밤에 자주 일어나지 않습니까.”

“어허, 변변찮은 공성 무기 하나 없는 야인 무리가 굳이 성벽 주변에서 얼쩡댈 이유가 없다. 이제껏 많은 잔업을 지휘한 바이지만 야인 무리와 크게 마찰을 빚은 바 없었으니 당장은 그저 명에 따르면 될 일이다.”


조강해의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이에 종서가 눈치껏 전곤의 팔을 꽉 붙잡았다.

더 이상 대꾸를 했다간 자칫 항명하는 것처럼 비쳐질 여지가 있었다.


“······”

“······”

“크흠, 그럼 차비하고 가거라.”


조강해가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조장 막사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은 두 사람은 가볍게 행장을 꾸리기 시작했다.

전곤은 여전히 불만 가득한 표정이었다.


“오형(兄), 뭔가 이상하지 않아? 이 야밤에 잔업이라니.”

“귀찮긴 하네. 하나 상관이 시킨 일이니 어쩔 수 없지.”

“전례에 없는 일이야.”

“글쎄, 군졸의 말처럼 우리가 축성장의 작업 내용을 다 아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아까 그 군졸 말인데···”

“얼굴이 영 띠겁긴 하더구만.”

“···그게 아니라 조가(家)의 강해란 자야.”

“아는 사람이야?”

“어느 정도, 양광 형제에게 상납을 받는 위인이거든.”


종서가 순간 얼마 전에 찾아와 엄포를 놓고 간 양광 형제의 둘째, 박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말인즉슨 조강해가 양광 형제와 경제적 유착관계에 있는 비리 군졸이란 의미였다.


“무슨 말이 하고 픈 거야?”

“일부러 수작질을 부리는 게 아닌가 싶어서.”

“······”


종서가 잠시 골몰한 바이지만 그렇게까지 의심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 시대야 노비 따위는 개돼지 혹은 도구 정도로 치부하는 세계관이 아니던가.


“글쎄, 그저 아무 생각없이 막부리는 것뿐이야. 깊게 생각해서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어.”


행장을 꾸린 두 사람이 이내 조장 막사를 빠져나와 성문 앞에 다다랐다.

조강해의 말대로 지게를 하나씩 짊어진 노비 다섯명이 그들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어두운 밤중이라 정확히 식별할 수 없었지만 하나같이 힘깨나 쓰게 생긴 장정들이었다.

그중 하나가 먼저 툭 튀어나와 인사했다.


“길잡이 막손입니다, 조장님.”


앞니가 톡 튀어나온 것이 마치 쥐와 같은 인상의 남자였다.

종서가 물었다.


“검은 숲, 여기에서 얼마나 걸리지?”

“왔다갔다하면 반시진(1시간)은 훌쩍 넘길 듯 합니다요. 아무래도 서둘러야 하지 않을지요.”

“생각보다 멀구나, 젠장.”


종서 등이 성문을 나섰다.

조장 둘과 길잡이를 포함한 잡부가 다섯, 총 일곱 명이었다.

그들은 행등(行燈) 두어 개에만 의지한 채 어두운 비포장 길을 걸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야 제법 폭이 넓은 강물 앞에 다다랐다.

길잡이 막손이 먼저 강물에 들어가 능숙하게 앞장을 섰다.

경험이 많은 건지 얕은 지점을 귀신같이 캐치, 물결을 헤치며 천천히 나아갔다.

덕분에 나머지 여섯 명 역시 어렵지 않게 그 뒤를 쫓아갈 수 있었다.

강물 도하에 성공하자마자 지척 거리에 검은 숲의 초입길이 나타났다.

조선의 경계가 아닌 북방의 땅이었다.


“······”

“······”


어둡고 울퉁불퉁한 숲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시종 좋지 않은 얼굴 표정을 하고 있던 전곤의 입에서 마침내 불만이 터져 나왔다.


“길이 너무 험해.”

“그래도 이 길이 제일 평탄한 편입지요.”


길잡이 막손이 그의 눈치를 보며 대꾸해주었다.

그럼에도 전곤의 불만은 그칠 줄을 몰랐다.


“참나무를 베어 장작까지 쌓아 놓은 걸 대체 왜 지금 가지러 가는 거냐?”

“···솔찬이 양이 많아 그럽지요. 이미 낮에 몇 번 왔다갔다했었는데 한꺼번에 다 옮기는 건 아주 무리였습지요.”

“차라리 진작에 사람들을 더 많이 데려가지 않고서.”

“큰 덩어리로 움직이면 야인 무리의 눈에 띌 가능성이 커져서. 되도록이면 마찰은 피하는 게 좋아 놔서 그럽지요.”


북방야인(北方野人).

지금이 영조(英祖)의 시대라면 여진 기반의 청(淸)이 건국된 지 한참 더 지난 시점이었다.

한데 아직까지 약탈을 일삼는 북방의 야인 무리란 것이 남아있다 하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종서가 궁금증이 도져 물었다.


“야인 무리는 어떤 자들이지?”

“그야 뭐 말 타고, 칼 들고, 활 들고, 동물 가죽을 입고 다니는 자들입지요.”

“마찰이나 분쟁은 잦은 편인가?”

“그건 아닙지요. 어찌 됐든 온성은 높은 성벽을 끼고 있으니 그들이 함부로 넘보지 못하는 편입지요. 야인이란 것들은 대개 소규모로 민가를 털어먹는 짐승들입지요. 제가 북방인인지라 그 더러운 습성을 잘 알고 있습지요.”


그래도 마찰이나 분쟁은 많이 없는 편이라 하니 내심 안심이 되었다.

갈 길을 재촉하던 종서가 숲길을 걷다가 공터를 발견한 후에 재차 묻기를.


“언제쯤이면 도착이지? 반시진은 더 된 것 같은데.”

“예에, 이제 다 왔습지요.”

“······?”


종서가 막손의 행등을 낚아채 공터의 전후좌우를 비추었다.

큰 나무와 무성한 수풀들 뿐, 쌓아 놓았다는 장작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심지어 한바퀴를 빙 둘렀지만 아무것도 없는 공터임이 재확인했을 뿐이었다.

전곤 역시 황당하다는듯 막손을 노려보며 말했다.


“정말 여기가 맞는 거냐?”

“······”


이에 막손이 말없이 거리를 벌리며 태세를 갖추었다.

그리고 나머지 잡부 넷 역시 그를 쫓아 거리를 벌리며 태세를 갖추었다.

종서와 전곤, 두 사람은 영문을 몰랐기에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괴이하네.”

“지금 이게 무슨?”


그때였다.


화르륵!


갑자기 어둠 속에서 횃불 세 개가 활활 타올랐다.


“······!”

“······!”


그리고 한 인영(人影)이 횃불 하나와 함께 어둠 속에서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인영(人影)의 얼굴을 확인한 종서가 눈살을 찌푸렸다.


“익숙한 얼굴이네.”


얼굴에 난 선명한 칼자국.

그는 하위 박투전에서 종서에게 패배하여 나락으로 떨어진 전(前) 칠석 조장 칼날이었다.


‘독방행이라더니. 벌써 풀려난 건가?’


그간 마음 고생이 심했는지 몸이 더 야위고, 눈매가 한층 더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칼날이 종서를 향해 첫 마디를 건넸다.


“오랜만이다.”

“피차 살갑게 인사할 사이는 아닐 텐데.”


종서가 퉁명스레 대꾸했다.

원래 적대하는 사이인데다 이미 한번 복날 개 패듯이 팬 적이 있었기에 시간과 장소를 달리했다하여 딱히 예의 차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에 칼날이 빈정이 상한 듯 버럭 화를 냈다.


“건방진 놈! 내가 일전에 네 놈을 반드시 죽일 것이라 호언한 바를 기억하느냐!”

“그런 적이 있었나?”

“이 놈이!”

“아, 혹시 그때 처맞고 바닥에 드러누워 옹알이한 걸 말하는 건가? 당시 옹알이 소리가 너무 작아서 잘 알아 듣지 못했는데, 그 말이었구나.”


종서가 칼날의 속을 살살 긁었다.

아니나다를까 모욕을 당했다라 생각한 건지 얼굴이 시뻘게진 칼날이 소매에서 단검 하나를 끄집어냈다.


‘하여튼 망할 깡패 자식. 또 연장질인가.’


그나마 일전에 한번 이런 상황을 겪어본 바 있어 그런지 생각보다 마음의 동요가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종서가 천천히 스트레칭을 하며 일부러 태연한 척 말했다.


“또 깝치는 걸 보면 그때 꽂아 넣은 내 주먹이 충분한 감동을 주지 못한 모양이야.”


하지만 종서와 달리 곁에 있던 전곤은 뭐가 그리 다급한지 옆구리를 쿡쿡 찔러댔다.


“오형(兄), 오형(兄)!”

“걱정할 거 없어. 지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가운 상태니까. 단숨에 끝장을 내주지.”

“아니, 그게 아니라 저기 뒤편을 좀···”


그러고 보니 칼날의 뒤편에 허공을 부유 중인 횃불 둘이 아직 더 남아있었다.

천천히 어둠을 헤치며 튀어나온 횃불 둘의 정체는 바로 오석 조장 강치, 육석 조장 박이였다.

박이의 경우 대머리라 그런지 유독 그 실루엣이 눈에 더 잘 띄었다.

그리고 더 뒤편에서 정체 모를 남자 셋이 동시에 우르르 튀어나왔다.

전곤이 다소 긴장한듯 종서에게 귀띔했다.


“저 셋은 일전에 우리와 하위전을 벌인 바 있는 팔석, 구석, 십일석 조장들이야. 그러니까 오석 이하 조장들은 여기 죄 모인 셈이라 할 수 있을 거다.”


특히 하위 조장 세 놈은 아예 작정을 한 건지 한 손에 몽둥이를 하나씩 파지한 상태였다.

앞에서 여섯 조장들이 압박을 가하고 뒤에서 다섯 노비들이 버티고 선 그야말로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상황이었다.


“······”


이제야 말문이 턱 막혔다.

예상 외의 전개를 맞이한 탓이랄까.

암습이라 해봐야 기습적인 집단 구타 정도를 각오한 바였다.

한데 이 야밤에, 이 협소한 공터에서 무려 열한명의 무리가 무기를 파지한 채 앞뒤를 꽉 틀어막고 있는 걸 보아하니 무언가 외통수에 세게 걸린 듯한 기분이었다.

얼굴에 항상 건방끼가 감도는 전곤 역시 당장은 굳어버린 상황이었다.

이에 오석 조장 강치가 한발짝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이 놈아, 매번 건방지게 혀를 놀리더니. 이제와서 조개마냥 입을 꾹 다무는 게냐.”


종서가 요동치는 마음을 최대한 가라앉혔다.

겁먹은 티를 내게 된다면 이 다음 수를 기약할 수 없었다.

지금은 오히려 허황되거나 과장을 해서라도 당당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었다.


“수치를 알아라, 이 잣만아! 혼자 감당할 수 없으니 결국 사람들을 모아 그 뒤에 숨어버린 주제에. 옹졸하고 추악한 녀석!”

“이런 개 아들 놈이!”


강치가 욱하며 흥분한 탓에 뛰쳐나가려는 것을 바로 옆에 박이가 손짓으로 제지했다.


“워워, 유인책 따위에 걸려들지 마오, 형님. 금일 우리는 저놈들을 쳐죽이러 온 거지. 대전을 하러 온 게 아니지 않으오.”


둔하게 생긴 대머리 주제에 제법 눈치가 빨랐다.

일대 다수의 싸움은 힘들 것 같아 일단 한명 제끼고 시작할까 했었는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이번에는 박이가 굳이 전곤을 콕 찝어 말을 걸어왔다.


“야 이 어린 놈아. 그때 내가 분명 너를 기억한다라 했었지. 궁지에 몰린 기분이 어떠하냐?”


그때의 일을 마음에 담아두다니.

상당히 꽁한 성격인 것 같았다.

전곤이 애써 긴장한 표정을 숨기며 일부러 유들유들하게 대꾸했다.


“머리에 터럭 한 올 없기에 기억력도 없을 줄 알았는데 용케 이 전모(某)의 얼굴을 기억하는 모양이오.”


정말인지 뒤가 없는 독설이었다.

박이가 크게 화가 났는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매만졌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하나같이 주제 파악이 안 되는구나. 살려줄까 했었는데 그 따위 객기 때문에 명을 재촉하다니.”


웃기는 소리였다.

작금의 상황을 보면 어차피 이놈들은 종서와 전곤을 살려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두 사람 역시 본능적으로 그걸 알았기에 굳이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무릎 꿇어 살려줄 것 같으면 바로 꿇었지. 돌아가서 복수하면 되니까. 하지만 꼬라지를 보니 지금 그게 아니잖아.’


종서가 빠르게 골몰하다 이내 결단을 내렸다.

그가 곁에 있는 전곤에서 귓속말로 속닥거렸다.


“도망가자.”

“······!”

“여기에서 맞붙는 건 자살행위야.”

“동의하는 바야. 하지만 어찌해야···”

“전방의 조장들은 빡세니까 약한 후방을 뚫는 게 낫겠지.”

“하지만 후방 역시 다섯 놈이 버티고 섰어. 어찌어찌 후방을 먼저 뚫으려 해도 전방의 여섯 조장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방향을 나누자.”

“어떻게?”

“내가 전방의 조장들을 맡을 테니 고니 네가 재빨리······”


종서가 최대한 시간을 끌면 그 틈에 전곤이 후방을 뚫어 퇴로를 확보한다는 전략이었다.

후방을 뚫어 퇴로를 확보한 후에는 일단 찢어져 도망을 치고 숲길 초입에서 다시 만나거나 그게 여의치 않으면 누구든 먼저 강을 건너 곧장 성벽으로 달려갈 요량이었다.

다만 전곤이 이 계획의 맹점 하나를 짚었다.


“조가 강해 놈이 저놈들과 붙어먹었을 텐데. 무사히 도망친다 한들 우리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군졸 따위가 무슨 힘이 있겠어.”

“······?”

“기껏해봐야 뒷돈이나 받고 이번 일을 묵인해준 정도일 테지. 그러니까 정황 증거를 조작하고자 북방 숲에서 땔감을 구해오라느니 그딴 이상하고 무리한 지시를 내린 걸 거야. 상부에 변명할 거리가 필요할 테니까. 이제 계획이 틀어진 걸 알게 되면 아예 엮이려 들지 않을 걸.”

“정말 그럴까?”

“믿어라, 분명히 그렇게 행동할 테니. 나랏밥을 먹는 놈들은 하나같이 책임지길 싫어하거든. 제 밥줄이 걸린 일에는 대처가 항상 꼬리 자르기 식이야.”


현세에서 자영업을 할 때, 얼마나 많은 공무원의 책임 회피를 직접 경험한 바 있었는가.

공무원의 습성은 고금(古今)을 초월한 것이리라 종서는 그렇게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뭘 그리 조잘조잘대느냐! 곧 죽을 놈들이!”


종서와 전곤이 작당 모의하는 모습을 보이자 먼저 칼날이 고함을 지르며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손짓에 따라 전방의 조장들이 일제히 간격을 벌리면서 산개하고 포진했다.

일대 일로 개처럼 처맞은 것에 대한 학습 능력이 아주 없지는 않은 것 같았다.


“하아, 준비를 잘해왔네.”


머릿수에서부터 밀리는 종서가 굳이 희망을 걸 만한 하나의 요소를 찾고자 한다면 그것은 지금이 누구에게나 시야가 어두운 밤시간대라는 것 하나뿐이었다.

대자연이 흩뿌린 농도 짙은 어둠의 장막은 겨우 행등 두어 개, 횃불 세 개 따위로 걷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종서와 전곤, 두 사람은 재빠르게 눈빛을 교환한 이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둠을 틈타 먼저 선수를 치는 거다.”

“좋소이다. 금세 후방을 뚫어 놓을 테니 절대 먼저 죽지 마소.”


전곤이 몸을 홱 틀어 후방에 위치한 막손 등 다섯 노비들을 향해 가열차게 쇄도해 들어갔다.

그리고 종서 역시 들고 있던 행등을 내려놓고 여섯 조장들을 향해 날 선 가드를 곧추 세웠다.


“들어와, 이 양아치 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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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18화 일부 종장...(Part 1) 23.07.21 86 1 19쪽
41 17화 논악 23.07.16 99 1 16쪽
40 16화 살인자(4) 23.07.14 91 1 13쪽
39 16화 살인자(3) 23.07.14 90 1 12쪽
38 16화 살인자(2) 23.07.12 89 1 14쪽
37 16화 살인자(1) 23.07.09 95 1 14쪽
36 15화 초하루(3) 23.07.07 97 1 16쪽
35 15화 초하루(2) 23.07.05 95 1 16쪽
34 15화 초하루(1) 23.07.02 104 1 18쪽
33 14화 사전답사(4) 23.06.26 104 0 15쪽
32 14화 사전답사(3) +2 23.06.25 109 0 14쪽
31 14화 사전답사(2) 23.06.19 105 0 16쪽
30 14화 사전답사(1) 23.06.18 111 1 14쪽
29 13화 청록회(2) 23.06.18 113 1 12쪽
28 13화 청록회(1) 23.06.16 119 2 13쪽
27 12화 비구니 +2 23.06.15 123 2 15쪽
26 11화 박투대전(4) +1 23.06.14 129 2 14쪽
25 11화 박투대전(3) 23.06.13 125 2 14쪽
24 11화 박투대전(2) 23.06.12 119 2 13쪽
23 11화 박투대전(1) 23.06.11 122 1 14쪽
22 10화 임오준(2) 23.06.11 127 1 17쪽
21 10화 임오준(1) 23.06.10 123 3 13쪽
20 09화 복수자(2) 23.06.09 129 3 14쪽
19 09화 복수자(1) 23.06.09 153 3 13쪽
18 08화 견여금석(2) 23.06.08 135 4 13쪽
17 08화 견여금석(1) 23.06.08 134 4 13쪽
16 07화 갑절복수 +1 23.06.07 136 4 14쪽
15 06화 일책 불사핵(4) +1 23.06.07 136 4 17쪽
» 06화 일책 불사핵(3) 23.06.06 140 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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