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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깨비 님의 서재입니다.

투신, 조선의 복수자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퓨전

벽깨비
작품등록일 :
2023.06.02 12:24
최근연재일 :
2023.07.21 19:10
연재수 :
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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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1
추천수 :
112
글자수 :
267,470

작성
23.07.02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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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15화 초하루(1)

DUMMY

< 초하루 (1) >






꿈속을 거닐었다.

이제는 제법 익숙한 감각이었다.

하얀 안개에 둘러싸인 숲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 다다르자 강변에 세워진 더 이상 사람이 찾지 않을 듯한 낡은 정자(亭子) 하나가 보였다.

하얀 안개가 천천히 걷혔다.

정자(亭子) 위에 사람이 하나 앉아 있었다.


오수 형.


큰 덩치에 곰 같은 인상의 남자, 바우였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웃으며 종서를 맞아주었다.

그리고 종서 역시 어째서인지 반가운 마음이 들었기에 재빨리 정자(亭子)에 다가갔다.


“두 녀석은?”


종서의 입에서 저절로 말이 튀어나왔다.

이것은 아마 과거 오수의 기억과 감정을 기반으로 한 일종의 시뮬레이션 대화인 것 같았다.

바우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서형(徐兄)이야 신나게 검을 휘두르다 늦게 올 테고, 새염 형은 신나게 주판이나 두드리다 늦게 올 테지.


“새염은 요즘 점포 장사가 잘 되나?”


그 형이야 워낙 수완이 좋으니까. 걱정이 없지.


“하기야 새염이라면 해적선에 뚝 떨궈도 앉은 자리에서 창칼을 팔아먹을 녀석이지.”


하하, 지독한 장사꾼이지.


그나저나 생각을 해보니 동풍계(同風契)가 다 같이 한 자리에 모이는 건 정말인지 오랜만의 일이었다.


“한동안 격조했었구나. 이번에도 네 경사가 아니라면 다 같이 모일 생각조차 못했을 거야. 축하한다, 바우야.”


이제 각자 바쁘니까 어쩔 수 없지. 그나저나 내가 형님들보다 먼저 장가를 들게 되었네.


“그러게나 말이다. 감히 이 형들을 제치고 너 혼자만.”


하하, 오수 형은 누님과 좋은 소식이 없는 거야?


한 여인의 실루엣이 떠올랐다.

물론 정확한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잠시나마 떠오른 그 실루엣을 상기하면 상당한 미인형인 것 같았다.


“글쎄, 나야 언제든 장가갈 준비가 돼있지만 여인네의 사정은 복잡하잖니.”


오수 형,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남아의 기개야. 형은 백면서생이라 그 기개가 너무 부족해서 그래.


“······”


그러다 딴 놈이 확 채갈라. 고을에 누님의 중매가 얼마나 많이 들어오는지 알고 있는 거야?


“이 자식이 감히 형한테 훈수를 둬?”


종서가 장난스레 바우의 목을 한 팔로 조였다.

삐쩍 마른 그가 건장한 바우의 목을 조르는 장면이 퍽 우스꽝스러웠다.

바우가 옆구리를 툭툭 치며 엄살을 부렸다.


항복, 항복이야.


종서가 조인 팔을 풀어주었다.


“새신랑이 몸 상하면 안 되지.”


하하, 봐줘서 고마워.


“웃음이 끊이지를 않네. 장가를 가서 그리 좋으냐?”


바우의 얼굴에는 그야말로 웃음기가 가득했다.


하하, 당연히 좋지.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반드시 행복하게 해줄 거야, 우리 분이.


“······”


종서가 처음 바우의 얼굴을 마주한 것은 축성장의 조장 막사 안이었다.

생각을 해보니 그때부터 그의 얼굴은 항상 그늘져 있었다.

한데 지금은 아무리 과거의 모습이라지만 이제껏 단 한번도 본 적 없는 그야말로 생기 넘치는 얼굴이었다.

무언가 머리를 크게 한 대 얻어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이런 표정을 지을 줄 알았구나.”


뭐라고, 형?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아니, 아니야. 그보다 저기에···”


종서가 강변의 상류 쪽을 가리켰다.

두 개의 실루엣과 그림자가 눈에 띄었다.

아직 거리가 멀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종서는 그들이 서형과 새염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다소 티격태격하며 정자를 향해 걸어오는 중이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먼 발치에서 그들의 실루엣을 바라만 보았을 뿐인데 점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립고 아련한 기분이었다.

그때 바우가 종서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우리는 서로가 사제(師弟)이고, 동기(同期)이며, 형제(兄弟)이고 또한 친우(親友)이다. 형의 그 말을 믿었고, 형의 그 말을 따랐어. 그래서인가 요즘 항상 좋은 일만 생기는 것 같아. 고마워, 오수 형. 나 너무 좋아.


그의 얼굴이 진지하고 또 행복해 보였다.

종서의 마음이 뭉클했다.


“그래, 우리는 언제까지나 서로를······”


종서가 미처 어떤 대답을 하기 전이었다.

갑자기 하얀 안개가 몰려들었다.

강변에서 걸어오는 두 사람의 실루엣이 먼지 지워지고 눈앞에서 선하게 미소 짓는 바우의 얼굴이 나중에 지워졌다.


“······”


이제 불편한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었다.



***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이제 곧 복수해야 할 원수와 지난 추억의 꿈이라니.

심지어 언제부터인가 단순한 기억 뿐만 이나라 오수의 감정선까지 전이되고 동기화(同期化)되어 가는 기분이었다.

바우의 선한 미소가 자꾸 떠올라 종서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빌어먹을!”


종서가 헛간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허공을 향해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이내 정신줄을 부여잡았다.

그가 나무 세숫대야에 물을 담고 연거푸 거칠게 세수했다.


어푸, 어푸!


“하아, 아침부터 요란하네”


뒤쪽에서 연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 역시 이제 막 방금 일어났는지 퉁퉁 부은 눈으로 사찰문을 열고 나온 상태였다.

종서는 말없이 가쁜 숨을 몰아쉬자 연우가 물었다.


“당신, 나쁜 꿈을 꾸었니?”


쬐는 햇살 때문인지 목소리가 제법 따스하게 느껴졌다.

평소에는 톡톡 쏘는 퉁명스런 말투였지만 이럴 때만큼은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종서가 잠시 골몰하다 대답했다.


“아니, 호(好)시절의 꿈을 꾸었지요.”

“한데 어째서 그렇게 화가 난 거야?”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회한(悔恨)이니까요, 그 달콤한 꿈의 조각은.”


종서의 얼굴에서 물기가 뚝뚝 떨어졌다.

연우가 그의 얼굴을 응시하다 얼추 사정을 짐작한다는 듯이 말했다.


“당신, 처음 만났을 때 한 말 벌써 잊었니?”

“······?”

“고향 땅에 다다를 때까지 멈추지 않고 은원(恩怨)을 까부술 거라 했잖아. 패기 넘치는 모습으로 말이야.”

“그야 그랬지요.”

“그럼 그때의 그 결의를 잊지 마. 부회주를 불러 당신을 도와주겠다 마음먹은 거 그때의 그 결의가 조금 멋있다라 생각했기 때문이니까.”

“그때는··· 좀 멋졌나요?”


연우가 손에 든 마른 수건을 홱 집어 던졌다.

뽀로통한 얼굴 표정이 제법 귀여웠다.


“일단은 집중하자는 말이야. 금일은 초하루니까.”


종서가 마른 수건으로 얼굴의 물기를 닦아냈다.


“초하루라··· 벌써 결행일 인가.”


어느덧 시간이 그렇게 흐른 상태였다.

그리 길지 않았지만 그리 짧지 않은 준비 기간을 거친 터였다.


“바우의 일은 알아서 해주리라 믿어요.”

“아침께에 그가 떠나면 미행을 하나 갖다 붙일 거야. 그보다 중요한 건 금일 오시(午時:11~13시)에 있을 관외채 습격과 김강 어르신의 무사 구출이란 걸 잊지 마.”

“무려 이천냥이나 걸려있는 청부업을 잊을 리가요.”

“단지 돈이 문제가 아니야. 검계(劍契) 청록회(靑綠會)의 이름 하에 실패나 실수는 있을 수 없어.”


연우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종서가 걱정말라는 듯 말했다.


“입회(入會) 후에 첫 임무이니만큼 최선을 다할 겁니다.”


그때 연우가 옆자리 나무 그루터기에 얹은 죽장 하나를 가져와 종서에게 건넸다.


“이거 받아. 요긴하게 쓰일 테니. 검계의 상징과 같은 병기야.”


종서가 그 죽장을 받아 들고 고개를 갸웃했다.


“병기요?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저는 박투에 능한 편이라 이런 막대기를 쓰느니 그냥 맨손이 나을 것 같은데요.”


연우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한 손을 쭉 뻗어 종서가 든 죽장의 끄트머리 부분을 잡고 비틀어 당겼다.


채앵!


단순한 대나무 막대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 안쪽에 날카로운 검신이 숨겨져 있었다.

종서가 죽장, 아니 이제 빈 검집이라 할 수 있는 그것을 들고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오오, 이거 대체?”


연우가 죽장에서 뽑은 검(劍)를 허공에 몇 번 휘두르더니 이내 그 검신을 한손으로 훑으며 말했다.


“창포검(菖蒲劍)이야.”


언뜻 평범한 대나무 지팡이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 안은 날카로운 검신이 벼려진 죽장검(竹杖劍)의 형태라 할 수 있었다.

조선은 군인을 제외한 일반 백성들이 사적인 병기를 휴대하는 것을 금지한 국가였다.

물론 융통성 있게 알음알음 넘어가거나 가끔 예외가 있을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국법의 지엄함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시대에 범죄자 집단인 검계(劍契)가 휴대하는 창포검(菖蒲劍)이란 상대방을 기만하기 위한 일종의 위장검(劍)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 허실을 꿰뚫지 못한 자가 자칫 방심을 하다 순식간에 목이 떨어질 수 있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병기라 할 수 있었다.


“이거 혹시 임형이 가지고 다니는 그 죽장과 같은 겁니까?”

“물론 같은 거야.”


종서가 자신의 목을 매만졌다.

괜스레 서늘함이 느껴진 탓이었다.

임오준 함께 다니며 그의 죽장 안에 검(劍)이 들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바였다.

그때였다.


바스락바스락.


우거진 수풀 속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들려왔다.

이에 종서와 연우가 잠시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하지만···


“조장, 접니다.”


잠시 후, 수풀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는 다소 앳되 뵈는 청의의 청년이었다.

연우가 그를 잘 아는듯 곧장 경계 태세를 해제했다.

청의의 청년이 서서히 다가와 종서를 한번 힐끗 훑더니 연우에게 물었다.


“아, 이 사람은?”

“신입 회원, 오수.”


연우가 소개를 하자 청의의 남자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종서를 바라보았다.


“전투조인가요?”

“부회주 임처사 그 인간의 직속이니 아마 이번에 오는 전투 이조에 배정될 것 같아.”


청의의 청년이 자신의 옷에 손을 쓱쓱 닦더니 종서에게 악수를 청했다.


“지원조의 하루입니다. 연우 조장 직속이지요. 형님이라 해도 괜찮겠습니까?”


제법 예의를 아는 청년인 것 같았다.

종서가 그의 손을 맞잡으며 흔쾌히 호형(呼兄)을 수락해주었다.


“얼마든지 편하게 말해도 좋아.”

“감사합니다, 형님.”


기류가 지나치게 화기애애한 가운데 연우가 주의를 한번 환기시키려는 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


“인사는 그쯤이면 됐어. 이제 청부업 얘기를 해야지.”


연우가 몸을 홱 돌려 사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종서와 하루, 두 사람 역시 그 뒤를 쫓아갔다.

실내에 들어온 세 사람은 탁자에 빙 둘러 앉아 본격적인 얘기를 시작했다.

하루는 이런 분위기가 제법 익숙한지 빠릿빠릿하게 각을 잡은 모습이었다.


“보고 드리겠습니다. 일단 말씀하신 그 바우라는 치 말인데요. 이미 온성을 떠났습니다.”


하루가 바우의 행적을 언급하자 종서가 이를 꽉 깨물었다.

그 이름만 들어도 심기가 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우는 그런 사정 아랑곳 않으며 하루에게 물었다.


“미행은?”

“당연히 지원조 하나 붙였죠.”

“어느 방향이지?”

“회령(會寧) 쪽이었습니다. 우리와 도주 경로가 겹치더라고요. 물론 온성에서 하삼도 내려가는 길이야 뻔할 뻔자지만요.”


종서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연우가 그런 종서를 바라보며 적당히 타일렀다.


“앞서 말했듯 당신의 일은 이후야. 지금 당장은···”

“적어도 선후(先後)를 구별할 줄은 압니다. 조급하게 굴지 않을 거예요.”

“그렇다면 다행한 일이야.”

“언제쯤 외성 북문을 통과할 예정입니까? 어서 관외채 뒷산에 올라 침투 준비를 하려면···”

“조급해하지 말라니까. 사시(巳時:09~11시), 이제 준비해야지. 죽립과 죽장, 가짜 호패나 잘 챙겨 둬.”

“알겠어요.”


연우가 이번에는 하루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구비해둔 야인들의 병기와 의복은?”

“지시하신 대로 하나하나 분리해서 성안에다 차곡차곡 은밀히 밀어 넣었지요.”

“그리고 또?”

“역시 지시하신 대로 분리한 거 재차 조립해서 지정된 장소에 잘 묻었지요.”

“위치 확인, 다시 한번 더 하자.”


하루가 품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냈다.

두루마리를 탁자 위에 올리니 관외채를 에워싼 뒷산의 약도가 한 눈에 펼쳐졌다.

하루가 약도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여깁니다.”

“바꿔 치기 할 시신 두 구(具)는?”

“초상난 천 것들 집에다 적당히 핑계를 대고 몇 푼 쥐어 줘서 싱싱한 시신 두 구(具) 구해 놨습니다. 지난밤 부패하지 않게 잘 처리해서 땅속에 묻었지요. 병기와 의복을 묻은 장소 바로 옆자리라 찾기 쉬울 겁니다.”


연우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아, 지원조가 해야할 일은 다 한 것 같네.”

“그럼요. 우리의 일처리는 항상 완벽합니다. 이제 전투 이조가 해줄 일만 남은 것을요.”

“그들은 다 도착했나? 인원 확인은?”

“전일 여덟 명이 무사히 도착한 거 확인했습니다. 어떤 이는 걸인, 어떤 이는 상인, 어떤 이는 나그네, 어떤 이는 양반의 방자 행세를 하며 무사히 들어와 대기 중입니다.”


연우가 탁자 위에 펼쳐진 약도를 붙잡고 잘게 찢었다.

그러자 하루가 그것을 입안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아마 증거 인멸인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연우가 사찰의 내부의 몇몇 부분을 가리키며 하루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 흔적들을 어찌해야 할지는 잘 알고 있겠지?

“여부가 있나요. 처음부터 사람의 흔적이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깔끔하게 지워질 겁니다.”

“전투 이조가 온성에서 빠져나간 이후에도 지원조는 한동안 위치를 고수하며 추이를 계속 파악해야 해.”

“그 또한 항상 하던 일인걸요. 이후에 천천히 한명씩 회령으로 빠지겠습니다.”


연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죽립을 푹 눌러썼다.

그리고 다소 차분하게 중얼거렸다.


“좋아, 그럼 이제 호랑이 등에 올라타야 할 시간이다.”


연우가 경장에 붉은 가사를 온몸에 두른 채 곧장 실내를 빠져나갔다.

하지만 뒷정리를 지시받은 탓인지 하루는 아직 나가지 않은 채 탁자에 남아있었다.

종서 역시 자리에 남아 그런 하루를 툭툭 건드렸다.


“한데 이제 호랑이 등에 올라타야 할 시간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뜻이야?”

“아, 그건 청록회의 은어 같은 겁니다. 청부업을 시작하기 전 일종의 은밀한 신호를 주는 것이라 해야 하나··· 무슨 뜻인지는 저도 잘··· 듣자 하니 회주(會主)님이 입버릇처럼 쓰시는 말이라 들은 바 있습니다만···”


종서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데 아까 말을 들어보니 지원조는 청부업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해서 여기에 남는 건가?”

“아무래도 그렇지요. 폭풍우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면 뒤처리할 게 있을지 모르니까요. 그리고 이후의 추이를 계속 살펴서 별 문제가 없는지 보고도 올려야 하고요.”

“대체 얼마나?”

“적어도 이삼일에서 통상 오륙일 정도일 겁니다.”

“오호, 그 정도면 시간적 여유가 좀 있겠는걸.”


지원 업무란 게 본디 사전의 일은 많지만 사후의 일은 훨씬 수월한 법이었다.

하루가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헤헤, 전투 이조가 여기 도착할 때까지 한창 바삐 움직였으니 이후 성공을 자축하며 괴기에 탁주 한 사발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다 이해하지. 지원 업무란 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니까. 어찌 보면 직접 전투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정교한 작업이라 할 수 있겠지.”


하루가 탁자를 한번 탁 치며 감탄한듯 말했다.


“크으! 형님은 그걸 이해하시네요. 기존의 전투조란 녀석들은 칼 좀 쓴답시고 으스대기만 하던데. 이 청부업이란 게 지원조가 밑을 깔아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왜 모르는지 모르겠어요.”

“지원조야말로 뭇사람들이 검계를 묘사하듯 그야말로 달빛에 숨은 그림자 같은 존재들이지. 정말 숨은 보물과 같은 역할이야, 숨은 보물과 같은.”


하루가 부끄러운지 양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


“아으! 뭘 또 그렇게까지 말씀하십니까. 전투조도 고생을 많이 하죠. 하하, 형님은 다른 전투조란 녀석들처럼 거만하지 않아서 좋아요.”


아직 어려서 그런가.

밑구멍을 살살 긁어주니 기분이 급격하게 좋아진 모양이었다.

이 하루란 녀석 꽤나 다루기 쉬운 타입의 인간인 것 같았다.

그래서 이때다 싶었는지 종서가 슬슬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렇게나 대단한 지원조이니 말이야.”

“······?”

“온성(穩城) 도호부사(都護府使) 정성백(鄭成伯)에게 직접 투서(投書)하는 거 정도는 일도 아니겠지?”

“에, 투서(投書)요?”

“하아, 역시 직접 투서하는 건 좀 힘드려나?”

“아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거 당연히 별 거 아니죠. 그 정도는 눈 감고 걸어가서 온성 도호부사 면전에 툭 떨구고 올 수도 있는 걸요.”


종서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그는 자신의 품 안에 꽁꽁 숨겨둔 치부책(置簿冊)과 십일 조장 관련 문서를 꺼내 보였다.

그러자 하루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이게 뭡니까?”

“회심의 한방이지.”

“···예에?”

“아우야, 양반 놈들 골탕 먹이는 거 좋아해?”

“좋아하죠. 마당극에서 광대들이 풍자놀이하는 것도 좋아하고 어느 고을에 암행어사가 출두한 얘기 듣는 것도 좋아하고요.”

“아니, 그런 거 말고 직접 엿 먹이는 거 말이야.”

“직접 엿··· 이요?”


종서가 탁자 위에 올려둔 치부책과 문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뭔지 알아?”

“글쎄요.”

“망할 양반과 아전 놈의 얼굴을 일그러지게 만들어줄 일종의 약점 같은 거야.”

“예에? 이게 대체 뭐기에···”


그제야 하루가 조금씩 관심을 보이는 듯 했다.

종서가 만면에 웃음기를 띠며 낮게 속닥거렸다.


“아우야, 한 번 잘 들어 봐라. 정말 재밌을 거야. 이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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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18화 일부 종장...(Part 1) 23.07.21 86 1 19쪽
41 17화 논악 23.07.16 99 1 16쪽
40 16화 살인자(4) 23.07.14 90 1 13쪽
39 16화 살인자(3) 23.07.14 89 1 12쪽
38 16화 살인자(2) 23.07.12 89 1 14쪽
37 16화 살인자(1) 23.07.09 95 1 14쪽
36 15화 초하루(3) 23.07.07 96 1 16쪽
35 15화 초하루(2) 23.07.05 95 1 16쪽
» 15화 초하루(1) 23.07.02 104 1 18쪽
33 14화 사전답사(4) 23.06.26 103 0 15쪽
32 14화 사전답사(3) +2 23.06.25 108 0 14쪽
31 14화 사전답사(2) 23.06.19 105 0 16쪽
30 14화 사전답사(1) 23.06.18 110 1 14쪽
29 13화 청록회(2) 23.06.18 113 1 12쪽
28 13화 청록회(1) 23.06.16 119 2 13쪽
27 12화 비구니 +2 23.06.15 123 2 15쪽
26 11화 박투대전(4) +1 23.06.14 129 2 14쪽
25 11화 박투대전(3) 23.06.13 125 2 14쪽
24 11화 박투대전(2) 23.06.12 119 2 13쪽
23 11화 박투대전(1) 23.06.11 122 1 14쪽
22 10화 임오준(2) 23.06.11 127 1 17쪽
21 10화 임오준(1) 23.06.10 123 3 13쪽
20 09화 복수자(2) 23.06.09 129 3 14쪽
19 09화 복수자(1) 23.06.09 152 3 13쪽
18 08화 견여금석(2) 23.06.08 135 4 13쪽
17 08화 견여금석(1) 23.06.08 134 4 13쪽
16 07화 갑절복수 +1 23.06.07 136 4 14쪽
15 06화 일책 불사핵(4) +1 23.06.07 136 4 17쪽
14 06화 일책 불사핵(3) 23.06.06 139 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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