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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 님의 서재입니다.

망자여, 왕이 되어라!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bok2705
작품등록일 :
2019.04.01 11:28
최근연재일 :
2021.01.04 19:0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823,182
추천수 :
13,734
글자수 :
1,133,243

작성
20.07.3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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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0
추천
49
글자
12쪽

117화: 시궁창 속으로 (6)

*본작은 역사적 고증보다는 상상의 비중이 더 큰 작품입니다.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지난 시대를 배경으로 나올 수 있는 수많은 픽션 중 하나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DUMMY

<망자여, 왕이 되어라!>

117화: 시궁창 속으로 (6)


벼랑 끝에 매달린 장교 중 일부는 버티는 대신 스스로 뛰어내리는 길을 택했다.


[참모님. 어디 가십니까?]

[알 거 없어.]

‘미친놈···’


자결을 결심한 장교들은 경계 임무를 거부하고 벽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병사들을 뒤로 한 채 사령부 내 외진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머리에 권총을 대고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헌신짝처럼 망가진 자존심을 어떻게든 지켜보려고 목숨을 끊은 것인지, 아니면 하얼빈이 넘어간 이후의 상황이 감당이 되지 않아서 목숨을 끊은 것인지.


관자놀이에 대고 쐈든, 입에 물고 쐈든, 턱에 대고 쐈든. 어쨌든 죽은 자는 말이 없었기에 목숨을 끊은 이유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껍데기만 남은 하얼빈 방어군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하얼빈 방어군은 정체성이라 다름없던 호칭도 더 이상 내세울 수 없었다.


하얼빈은 이제 그들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하얼빈은 방어군이 목숨 걸고 지켜야 할 도시도, 사실상 최고 권력기관으로서 초법적인 권한을 휘두를 수 있는 도시도 아니었다. 그리고 만주국의 영토도 아니었다.


하얼빈은 이제 동북 임시정부군의 도시였다. 1932년 일제가 강제로 점거한 이래, 약 3년 남짓한 기간 만에 되찾은 만주 거주민들의 영토였다.


대성의 위임을 받은 선임 야전 지휘관은 지휘용 장갑차량에 올라섰다. 야전 지휘관은 확성기를 들고 도시 전역에 탈환 소식을 알렸다.


[하얼빈 시민들에게 알립니다. 동북 임시정부는 지금 이 시간부로 하얼빈을 탈환하였음을 선포합니다.]


임시정부군 병사들은 야전 지휘관의 발표에 맞추어 함성을 내질렀다. 어찌나 크게 지르던지, 도시 전체가 기쁨과 환희에 젖은 함성으로 가득 찰 정도였다.


멀리 떨어진 도시 변두리에서도 들릴 만큼 큰 함성이었는데, 근처에 있는 건물은 오죽했을까?


임시정부군의 함성은 방어군 잔당이 모여든 시청 건물에도 전해졌다. 함성은 방어군 장병들을 완전히 짓눌렀다. 방어군 장병들의 절망감은 배가 되었고, 무너진 정신은 도저히 수습하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장병들은 얼마 남지 않은 담배를 게눈 감추듯 피워대며 시청 곳곳을 매캐한 연기와 지독한 냄새로 가득 채웠다.


그러나 흡연은 진실을 잠깐 감출 수 있는 얇은 천에 지나지 않았다. 담배 몇 개비 태운다고 해서 절망적인 현실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대성은 야전 지휘관 옆에 통역을 붙여놓고 발표문을 일본어로 다시 읽게끔 했다. 방어군 장병들은 적장의 사려 깊은 조치 덕분에 발표문의 내용을 한 글자도 빠트리지 않고 이해할 수 있었다.


[도시가 이른 시일 내로 제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니 시민 여러분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정부와 군의 지시에 잘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임시정부군의 하얼빈 탈환 선언은 지독한 담배 연기를 타고 방어군 장병들의 몸 안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동시에 방어군의 마음을 절망만이 가득한 시커먼 세계 속으로 몰아넣었다.


***


하지만 연설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하얼빈 시민들에게 전하는 말은 어떻게 보면 전초전에 불과했다. 연설의 강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세졌다.


야전 지휘관은 시청에 숨어있는 방어군 잔당을 대놓고 거론하며 일본군과 민간인의 취급을 완전히 다르게 하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


[다음으로 시청 안에 남아있는 일본군에게 알린다. 너희는 완전히 포위됐다. 더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할 것이며, 저항하게 놔두지도 않을 것이다.]

[······]

[더불어 너희는 도시를 파괴하고 민간인을 학살하려고 했다. 이는 엄연한 전쟁 범죄이며 그런 시도를 한 만큼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다.]


만약 하얼빈 방어군의 동귀어진 전략이 성공했더라면, 새로운 역사에서 전쟁 범죄의 표본으로 길이 남았을 것이다.


물론 일본 정부는 청야전술이라고 왜곡할 게 분명했다. 그러나 이는 미봉책에 불과했다. 본토나 국제 여론에는 먹혀들지 몰라도, 임시정부군 전차와 마주한 방어군에게는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조치였다.


‘전범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


야전 지휘관의 연설은 사실상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적어도 사리 분별할 능력이 눈곱만큼이나마 남아있었던 장병들은 대부분 그렇게 생각했다.


장병들의 정신은 붕괴라는 표현도 아까울 정도로 완벽하게 조각나고 갈가리 찢어졌다.


이내 장병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을 버티지 못한 자들은 장교, 사병 할 거 없이 저승행 급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저승행 급행열차는 총성 여러 발과 함께 유유히 세상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 외 나머지는 현실 도피에 빠져들었다. 목숨을 끊기에는 뭔가 내키지 않고, 그렇다고 맞서 싸우기에는 몸이 수십 조각이 날까 봐 두려워서 못하겠고.


그러면서 스트레스는 또 받기 싫고.


도피를 택한 이들은 흡연만으로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여겼다. 그들은 임시정부군의 방송을 한 귀로 흘려보낸 뒤, 군에서 보급한 약물을 몸 안으로 들여보냈다.


있던 잠도 쫓아버리고 두려움까지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리는 마법의 약물은 남은 장병들을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광기의 세계로 밀어 넣었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약물을 복용했던 장병 중 일부는 비틀거리며 총을 집었다. 그리고는 온갖 잡동사니가 쌓인 창문에 대고 욕을 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까 열 받네. 식민지인 따위가 어디서 정부 운운하고 우리를 범죄자 취급하고 난리야? 어? 야. 안 그러냐?]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 아니었으면 진작에 굶어 죽었을 놈들이. 야만인 새끼들 같으니라고.]

[야. 이러지 말고 그냥 시원하게 총알 세례 한 번 퍼부어주자. 우리가 누구야? 대일본제국의 군인 아니야? 본때를 보여주자고.]

[그래. 본때를 보여주자. 근데 너 왜 갑자기 반말이냐? 너 인마 내 후임 아니었어?]

[네가 내 후임 아니었냐? 아닌가?]


방어군은 두려움을 떨쳐낸 것이 아니었다. 벼랑 끝에 몰려 있던 심리 상태에 약물 효과까지 얹혀지면서 아예 이성 자체를 상실한 것이었다.


이는 대성이 임시정부군 내에서 각성제라고 불리는 약들을 완전히 금지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 시기 각성제라 불렸던 약들은 대부분 중증 후유증을 동반하는 마약이었다.


***


마약, 그중에서도 일본에서 처음 개발되었다는 약물은 방어군의 몸과 정신을 빠르게 파괴했다.


[모두 총 들어! 개자식들 다 잡아 죽이자고!]


방어군은 사실 예전부터 마약에 중독되어 있었다. 그 시절에는 마약이 아닌 각성제로 알려졌었기 때문이었다.


공방전이 길어지면서 방어군은 각성제를 복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이는 곧 중독으로 이어졌다. 더불어 방어군의 최후를 한껏 앞당겼다.


임시정부군 야전 지휘관은 군사재판과 처벌과정 등을 언급하며 연설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총성이 울렸다.


탕!


[미친!]


야전 지휘관과 통역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당최 보고 쏘기는 한 건지, 총알은 허공을 날아가 엄한 나무 한 그루에 박혀버렸다.


그리고 잠시 뒤, 발음이 완전히 뭉개진 듯한 일본어가 깨친 유리창 구멍을 통해 밖으로 흘러나왔다. 보급받은 약물을 한꺼번에 처리한 방어군은 임시정부군 전차에 총구를 들이대고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야 이 개자식들아! 너희가 겁박한다고 우리가 무릎 꿇을 것 같아? 어?]

[우리 아니었으면 진작에 굶어 죽었을 것들이. 은혜를 원수로 갚아? 배은망덕한 새끼들아! 너희만 폭탄 있어? 우리도 있어!]

[그래 새끼들아! 너희만 싸울 줄 아는 것 같냐? 우리도 알아! 우리가 더 잘 싸워! 우리가 더 강하다고!]

[벌레 같은 새끼들! 말 나온 김에 한 판 붙자! 결판을 내자고! 말로만 떠들지 말고. 덤벼!]


20세기나 21세기나 마약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물건이었다. 사람 인생을 망치는 물건으로써 말이다.


집무실에 처박힌 채 홀로 빠져나갈 구멍을 궁리하던 방어군 사령관은 갑작스러운 소란에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이윽고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황급히 물품을 챙겼다.


마약에 취한 방어군이 총격을 가하는 가운데, 야전 지휘관은 지휘용 장갑차량 안에서 마지막 경고문을 읊었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지금 즉시 저항을 중단하고 항복하라. 항복 요구에 불응할 시 바로 사격하겠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지금 즉시 저항을 중단하고···]


하지만 경고는 쉽사리 먹혀들지 않았다. 마약으로부터 비롯된 두 번째 광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방어군을 통제 불가능한 상태로 몰아넣었다.


게다가 결정적인 문제마저 있었다. 임시정부군은 하얼빈 방어군이 마약에 취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었다.


임시정부군의 눈에는 방어군이 그저 항복을 거부하고 죽음을 택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대성은 병사들을 파멸에 이르게 한 방어군 사령관을 욕하며 명령을 내렸다.


[참 나쁜 지휘관이야. 병사들을 저 지경으로 만들고. 기회까지 줬건만.]

[전단장님. 어떻게 하실 겁니까?]

[어쩔 수 없지. 끝내.]

[알겠습니다.]


임시정부군 전차는 대성의 지시가 떨어짐과 동시에 포신을 올렸다. 그리고는 총성과 욕설이 흘러나오는 곳으로 지체 없이 포탄을 날렸다.


***


쾅!


전차 부대의 포격은 방어군의 저항이 잠잠해질 때까지 몇 차례 더 이어졌다. 그렇게 시청은 약에 취한 방어군과 함께 산산이 조각났고 짙은 연기를 내뿜으며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포격 중지!]


임시정부군은 하얼빈 방어군이 최후의 발악을 펼쳤던 곳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방어군이 머물렀던 곳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상태를 보아하니 시신 수습은 고사하고 유골 수습도 하기 힘들 것 같았다.


애당초 수습하자고 하는 임시정부군 지휘관도 없겠지만.


대성은 전차 부대를 도시 전역으로 산개시켰다. 전차 부대는 기계화 보병과 함께 하얼빈 곳곳을 돌아다니며 각종 공공시설을 장악하고 주민들을 통제했다.


물론 관동군처럼 무자비하게 통제하지는 않았다. 굉음과 총성에 벌벌 떨던 일본인들은 지금까지의 악명과는 사뭇 다른 임시정부군의 태도에 적지 않은 놀라움을 나타냈다.


[몇 가지 조사에만 솔직하게 응해주시면 별 탈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예··· 아, 알겠습니다···]

[먼저 개인 신상 정보부터 알려주십시오. 성함과 직업이 어떻게 되십니까?]


전후 처리 작업은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애당초 도시가 난장판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임시정부군은 작업을 예상보다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임시정부군이 가장 먼저 시작한 작업은 신원 분류였다. 주된 대상은 일본인으로, 임시정부군은 시를 여러 개의 구역을 나누고 각 구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의 신분을 조사했다.


조사를 마친 일본인에게는 부동산을 제외한 가산을 챙길 시간과 도시를 빠져나갈 기회가 주어졌다.


물론 모든 일본인이 바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공직에 몸담았던 일본인은 더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이 받았던 혜택도 쉽게 누리지 못했다.


거짓말을 한 경우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불이익이 주어지기도 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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