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짭짤한김 님의 서재입니다.

강호의 미식파 독고 램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무협

짭짤한김
작품등록일 :
2021.05.15 18:27
최근연재일 :
2021.06.15 20:57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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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글자수 :
120,714

작성
21.06.13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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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2화 - 건곤일척

DUMMY

의식이 돌아왔다.


바라지도 않았는데,

눈은 제멋대로 떠졌다.


낯선 방안.

그 안에는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장 낭자···”


“독고 램지님. 정신이 드십니까?”


장부슬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왔지만,

그녀의 얼굴에 다른 사람이 겹쳐 보였다.


민초단···

그녀와의 일이 기억났다.

독침에 당해 기절해 있던 자신을, 그녀가 보살펴 주었다.


만약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녀의 손을 잡고, 저 멀리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흘러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었다.

그녀는 얼음으로 된 방 안에 잠들어 있고,

자신은 수도에서 행패를 부리다, 사부님을 울리고 말았다.

그것이 현실이다.


방안에는 침묵이 이어졌다.


자신의 시선이 저 멀리 다른 곳을 향해 있음을 그녀 역시 눈치챈 것 같았다.


“미안하오.”


상대를 앞에 두고 예의가 아니다 싶어 사과했다.


“괜찮습니다. 굳이 저에게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그녀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아니오. 내가 잘못을 한 게 맞으니, 제대로 사과하겠소.”


“아, 아니··· 이러시면···”


독고 램지가 고개를 숙여 사과하자, 장부슬은 팔을 앞으로 뻗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구해줘서 고맙소. 장 낭자.”


“아닙니다. 우연히 수도로 가는 길에 독고 램지님이 보여서··· 이제는 괜찮으십니까?”


독고 램지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대어 보았다.

상처 같은 게 나 있을 리가 없었다.


“이제 아무렇지도 않소. 낭자 그런데 여기는?”


“저희 산장이 보유하고 있는 임시 거처입니다.”


“그렇소···”


독고 램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사부님은 이곳을 알지 못할 것이다.

지금은 그녀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쭈어보아도 되겠습니까?”


장부슬은 조심스레 말을 꺼내왔다.

물어보는 눈빛이 아련해서, 차마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독고 램지는 그동안의 일을 설명해주었다.


사부님을 찾아 수도에 왔지만, 대장군에게 사부님과의 접견을 거절당한 것.

얼떨결에 귀환하는 군대를 만나, 황실에다 화풀이한 것.

그녀가 나타나 눈물을 흘린 것.


그것을 견디지 못하여 뛰쳐나온 것까지.


말하다 보니 자신이 정말 우스워질 지경이었다.


“그런 머저리 같은 녀석을 장 낭자가 찾아낸 것이오.”


“그렇게 스스로를 질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녀는 따뜻한 눈길로 말했다.


“···나를 탓하지 않으면, 누구를 탓하란 말이오? 내가 다 저질렀소, 내가 사부님을 슬프게 만들었단 말이오.”


“독고 램지님.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실수를 어떻게 만회하느냐입니다.”


“모르겠소··· 난.”


눈길을 피하고 고개를 돌렸다.


“이 꽉 깨무시길 바랍니다.”


그녀의 주먹이 오른뺨에 꽂혔다.


“언제까지 그렇게 도망만 다닐 생각입니까?! 아가씨가 지금의 당신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


“뭐 하고 있냐고, 정신 차리라고, 자신이 반한 당신은 이런 모습을 하지 않았다고. 이런 말을 하며 당신을 질책할 게 뻔합니다.”


“난··· 어찌하면 좋단 말이오?!”


“그녀가 사랑하던 당신의 모습을 떠올려 주십시오. 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녀에게 보내는 마지막 보답이 될 것입니다.”


어째선지 눈물이 흘렀다.

그녀 없이 그녀가 좋아했던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라니···


가슴이 아파짐과 동시에 따뜻한 것으로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단아···”


나직이 그녀의 이름을 흘렸다.


이제서야 그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


“미안하오. 내 못난 모습을 보여드렸소.”


독고 램지는 아직도 눈가에 남아있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독고 램지님.”


장부슬은 따뜻한 미소로 받아주었다.


“그나저나, 장 낭자는 무슨 일로 수도로 오게 되었소?”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져 서둘러 화제를 전환했다.


“저희는 반란군을 지원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들이 필요한 무기나 식량을 조달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도 장부원 그 녀석의 계획이오?”


“아버지와 같이 의논했다고는 하지만 장 표두의 계획이 틀림없겠지요.”


장부원.

무림맹과 마교를 부추겨 두 세력을 크게 약화시킨 장본인이다.


“또 그 녀석인가··· 어찌 됐든 난 사부님만 무사하면 되오, 단아 때 같은 실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겠소.”


“앞으로 어떡하실 생각입니까?”


“일단 사부님에게 찾아가 사과하겠소. 그리고 사부님의 체면을 생각해 황자나 병사들에게도 고개를 숙일 참이오.”


장부슬은 문득 중요한 것이 떠오른 듯 물어왔다.


“독고 램지님은 황자가 병사들을 이끌고 나간 이유를 아십니까?”


“잘 모르겠소. 그것이 중요한 것이오?”


“네. 그들은 혈교 무리를 소탕하고 돌아오던 참이었을 겁니다.”


“혈교?”


“본래 마교의 산하에 있던 조직이었는데, 그 세를 점점 불려가더니, 몇 년 전 따로 독립하여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렇군. 이젠 마교가 해산했으니, 그들이 날뛰기 시작하는 건가.”


일말의 책임 정도는 느껴졌다.

마교가 해산한 데에는 분명 자신의 탓도 있었다.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어째서 황자가 직접 혈교 무리를 소탕하였는가? 입니다. 보고에 따르면 황자는 자신의 근위병들만 데리고 혈교를 소탕하러 갔다고 합니다.”


“황실 전체에서 군대를 보낸 게 아닌, 황자 개인이 움직였다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그리고 거기엔 당신의 사부님이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근래 황실에 생긴 변화라고는 그녀가 황실로 찾아온 것 말곤 없습니다.”


“사부님과 황자 그리고 혈교인가.”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실수가 용서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조금은 단단해진 마음을 가지고,

만회의 한 걸음을 내밀었다.


***


황실 입구 앞에선 독고 램지는 가슴이 떨려왔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사부님을 찾을 때와는 다른 이유로 고민하고 있었다.


싸웠다가 화해하는 건, 어릴 때나 지금이나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조금 더 어른스러운 방법은 없는지, 조금 더 멋들어진 말은 없는지, 고민해봤지만 결국 떠오르질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독고 램지와는 대조적으로 그를 둘러싼 병사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독고 램지가 병사들을 박살 냈다는 소문은 이미 황실 전체에 퍼졌다. 그들은 두려움에 누가 먼저 창이나 검을 찌르질 못했다.


“혹시 그날 거기에 계셨던 분 있으시오?”


뜬금없이 튀어나온 독고 램지의 말에 병사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나름대로 사정은 봐주었지만, 나도 잘못이 있으니, 혹시 그들을 안다면 내가 사과했다고 전해주시오.”


독고 램지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사과할 사람이라면 더 있지 않소?”


중후한 내공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병사들이 길을 튼 사이로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나왔다.


“사부님께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독고 램지는 대장군에게 예를 표하며 인사했다.


“조금은 나아진 얼굴을 하고 왔구만, 마음은 정했소?”


“그분을 향한 마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어중간한 마음 그대로란 말인가. 그렇다면 자네는 그녀를 만날 수 없네.”


대장군이 손짓을 하니 병사들이 물러갔다. 그리고 부관으로 보이는 자가 대장군의 키만 한 창을 건네주고는 물러났다.

대장군은 커다란 창을 아무렇지도 않게 허공에다 몇 번 휘두르고는 창을 위로 세운 채로 바닥을 쳤다.


그 충격에 바닥이 쩍 하고 갈라졌다.


“강 노인에게 이미 나에 대해 들었을 테지?”


“한때 강호에서 힘 좀 쓰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도 맞설 텐가?”


그의 눈빛은 어느새 위압을 뿜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물러설 순 없었다.


“한 수 부탁드립니다.”


독고 램지는 식칼을 꺼내 곧바로 거리를 좁혔다. 길이의 이점은 창이 지니고 있기에 한순간에 파고들어 승부를 내기로 했다.


하지만, 오히려 대장군은 바닥에 꽂힌 창에서 손을 떼었다.


무슨 일이지? 하고 생각을 하는 찰나 그의 손에서 장력이 뿜어져 나왔다.


독고 램지는 장력에 밀려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싸움에 있어서 방심은 금물이라네.”


대장군은 씨익 하고 웃었다.


큰 외상은 없었지만, 한 방 당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좋습니다.”


독고 램지는 식칼 끝에 내력을 모았다. 그러자 고래를 베었을 때처럼 강한 빛이 모여 칼날을 이루었다.


대장군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도 창을 들어 검강을 형성했다.


검과 창은 서로를 향해 휘둘러졌다.

칼날이 부딪히자, 내력 간의 강한 충돌이 일어났다.

그 충격에, 독고 램지와 대장군, 둘은 동시에 튕겨져 날아갔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니, 대장군도 일어나 있었다.


“내가 이겼소. 독고 소협.”


무슨 말인가 했지만,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식칼을 보니 칼날의 절반이 잘려있었다.

반면 그가 들고 있는 거대한 창은 멀쩡했다.


만약 서로의 목숨을 노렸다면, 칼날 대신 목이 베였을 것이다.


“그녀에게 안부 정도는 전해주겠네.”


대장군은 등을 돌려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독고 램지는 식칼을 집어넣고, 고래의 등뼈로 만든 검을 뽑았다.


그의 도전적인 눈빛에 대장군은 다시금 창을 들어 검강을 형성했다.


독고 램지도 똑같이 검에다 내력을 불어 넣었다. 식칼과는 다르게 하얀 검날 끝에는 푸른 빛이 감돌았다.


둘은 누가 말할 것도 없이

동시에 검과 창을 휘둘렀다.


아까와는 달랐다.

독고 램지의 검날은 내력의 충격마저 베어내며, 창에 달린 칼날을 반 토막 내었다.


“제가 이겼습니다. 대장군님.”


“황실 보물로 내려오던 창을 부러트리다니··· 자네의 내공도 대단하지만, 그 검은 대체 어디서 났는가?”


“하후석이라는 자가 커다란 고래의 등뼈로 만든 것입니다.”


“역시, 그랬나. 그자가 만든 것이라면 이해 가네. 창도 부러졌으니 깔끔히 패배를 인정하겠네.”


대장군은 양손을 들어 항복의 의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조언을 주자면, 그 아이가 고집을 부리는 일이 있더라도 가끔은 강하게 밀고 나가게.”


“지금처럼 말입니까?”


독고 램지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굳이 내가 조언할 필요는 없었나 보군. 장금이를 잘 부탁하네.”


가볍게 악수를 한 두 남자는 동시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웃지 않고서야, 이 멋쩍은 상황을 버틸 수가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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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 미식파 독고 램지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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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화 - 결혼식 21.06.15 17 0 11쪽
» 22화 - 건곤일척 21.06.13 14 0 11쪽
21 21화 - 황실 대장군 21.06.10 16 0 11쪽
20 20화 - 새로운 검 21.06.09 20 0 13쪽
19 19화 - 검강 21.06.08 19 1 11쪽
18 18화 - 행방불명 21.06.07 17 0 11쪽
17 17화 - 강호의 마지막 괴물 21.06.06 18 0 11쪽
16 16화 - 기습 그리고 죽음 21.06.05 31 0 12쪽
15 15화 - 마교의 두 남자 21.06.03 25 0 11쪽
14 14화 - 구출 21.06.01 17 0 11쪽
13 13화 - 한빙장 21.05.31 21 0 11쪽
12 12화 - 민트초코 21.05.29 26 0 12쪽
11 11화 - 목적과 이해관계 21.05.28 22 1 13쪽
10 10화 - 좌룡산장 21.05.27 19 1 11쪽
9 9화 - 무림맹으로 가는 길 21.05.26 24 1 11쪽
8 8화 - 인연은 깊어져 가고 21.05.25 26 1 12쪽
7 7화 - 독광침 21.05.24 27 1 11쪽
6 6화 - 폭풍전야 21.05.22 33 1 11쪽
5 5화 - 숲에서의 밤. 21.05.21 48 1 13쪽
4 4화 - 고집 또는 대의 21.05.20 47 1 12쪽
3 3화 - 쌀의 행방 21.05.19 56 1 11쪽
2 2화 - 보름달이 빛나는 밤 21.05.17 79 4 13쪽
1 1화 - 독고 램지 +2 21.05.15 166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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