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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bot 님의 서재입니다.

형의 사령마를 떠맡게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WritingBot
작품등록일 :
2020.05.1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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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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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촉5

DUMMY

이런 약선의 말에 대한 시우와 하늬의 첫 생각은 같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약선보다 한 수 아래의 손시훈의 예시를 들어보자. 이미 멸망한 세계라고 하지만 그 사람은 직접 남아있는 신의 숨통을 끝장내는 것을 생중계했다.



이 사람도 그것을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려고 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다. 이미 다른 세계에서 사람들을 속인 시점에서 명분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자신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나무가 죽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마르기 시작하는 것은 높은 가지 끝의 잎사귀지."



현재 이 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투기장의 바닥에서 스러진 생명들과, 그 생명들을 가공하는 신성력이다.



-운명력...

"제국은 어지간해서는 연방 소속국보다 좋은데 이게 문제야. 정확한 용어는 운명력이 맞다만, 여기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닐 텐데."



아눕롤의 중얼거림에 가볍게 투덜거린 약선. 그리고 그의 설명이 이어진다.



신을 죽이는 건 그에게 있어서 쉬운 일이다. 하지만 신의 가호가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그를 대체하려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신을 죽이는 건 진짜로 뒤를 생각하지 않고 저지르는 짓이다.



그가 말한 대로, 높은 가지 끝에 해당하는 외곽의 사람들부터 천천히 말라죽으리라.



이를 막기 위해서는 일단 투기장의 끝까지 천천히 기다리면서 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말하는 약선에게 시우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하지만 투기장의 끝까지 기다렸다가는 재기불능으로 망가진 사람들이 상당히 생길 텐데요."

"그 문제는 내가 상당히 보충하겠네."



팔다리 잘린 것쯤은 자신이 가볍게 치료할 수 있다나.



너무나도 덤덤하게 말하는 것도 그렇지만, 아눕롤이 굳이 그런 당연한 일은 말할 필요가 없다는 반응을 해주는 게 더 무섭다.



"하지만 자네의 말대로, 정상적으로 투기장이 진행이 된다면 수많은 도전자들이 재기불능의 상태에 빠지거나 죽겠지. 그래서 시우군과 하늬양의 도움이 좀 필요할 것 같아."



간단하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와 싸워서 상처 입히기 전에, 시우와 하늬가 죄다 먼저 제압을 해버리면 그만. 예시로 든 것은 시우가 최근에 투기장의 부서진 돌조각으로 머리를 날려버린 이세계의 한 왕자다.



이런 설명을 듣고 시우와 하늬는 이런 면에서는 은근히 손시훈을 또 닮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생긴 모습 또한 은근히 처음 보지만 친척처럼 닮은 것도 그렇고...



"안나 김으로 변신했던 모습도 그렇고, 저희 형과 무슨 관계죠?"

"뭐랄까, 쌍둥이보다는 멀고, 형제보다는 가까운 관계야. 그러니까, 나는... 평행세계의 네 형이다. 전문적인 용어로는 평행개체의 관계라고 부르지."

""에이""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이런 사람이 자신의 형이면, 이런 사람이 시우의 형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고 있는 시우와 하늬다.



손시연이라면 대성통곡을 하면서 제발 그쪽이 진짜 오빠가 되어 달라고 할 수도 있다.



겉모습으로만 봤을 때 약선이 손시훈보다 못한 모습이라고는 살짝 죽어있는 눈과 미묘하게 음침한 분위기. 하지만 그것도 사람에 따라서는 은근한 매력이 될 수 있다. 바로 옆에 레티야라는 토끼 수인만 하더라도 두근두근거리는 표정을 거의 유지하고 있지 않는가.



내면을 보자면... 더더욱 비교가 되는데, 정말로 잠깐만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손시훈보다 더 침착하며 이성적이다. 닮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무것도 몰랐을 때의 착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이런 시우와 하늬를 향해서 약선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런 말이 있지. 시험의 어려운 문제는 보통 처음 찍은 것이 정답이다. 닮았다고 생각했다가 왜 부정하는 것이지?"

"그쪽이 이렇다면 왜 제 형은 이렇게 된 걸까 생각을 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나도 그게 좀 안타깝기는 해."



목소리에 너무 진심이 묻어 나왔다. 그런 약선의 목소리와 걸맞은 표정을 보지 못한 탓인지, 레티야는 약선을 영 좋지 못한 방향으로 띄워주고 있었다.



평행개체라고 하더라도 한낱 한시에 태어나는 건 아니라고. 그리고 약선은 평행개체들 사이에서 가장 어린 편에 속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동생인 약선이 모범적으로 독특한 것이고 형인 예옥이 막 나간다는 말인데



손시훈의 현생 쌍둥이 동생인 시우는 그게 절대로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사적으로는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강조해주는 꼴 아닌가.



이런 시우의 앞에서 약선의 눈동자가 살짝 더 죽는다. 아무래도 몹쓸 생각을 억누르는 정신적인 반동이 오고 있는 모양. 그리고 그는 손수 평행세계의 자신이자, 키잔트헤임 제국의 탄생에 기여한 동료를 쉴드쳐주기 시작했다.



대충 어디서나 들을 것 같은 험난한 전쟁터를 경험한 군인이라서 어쩔 수 없다는...



"약선님도 그 예옥이라는 분에 걸맞는 활약을 하시지 않으셨어요? '표적치료'라고 주요 핵심 인사들을 '암살'하셨다고 들으셨어요. 예옥이라는 분은 어떻게 보면 잔챙이들만 쓸어버린 것 아니에요?"



핑계를 대려고 하는데 또 레티야가 방해한다... 아눕롤이 묵묵히 있는 걸 보니 관점에 따라서는 그렇게도 볼 수 있기는 한 모양.



다만 묘하게 팔에 흐르는 전류가 조금 늘어난 것이, 바로 반박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 보인다. 시우도 대충 반박을 할 수 있다. 보통 그 잔챙이들은 하나하나가 마왕급이었을 테니까.



이런 쉬운 반박을 하지 않는 것은 나름대로 사성의 앞이라고 예의를 갖추고 있는 탓이겠지.



여러모로 분위기가 더 안 좋아지고 있기에 시우는 황급히 말머리를 돌렸다.



"일단 우리라고 묶어도 되겠죠?"

"그래"

"그럼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정리해보죠."



짧게는 이 태초의 도시에서 퍼지고 있는 장티푸스의 무증상 보균자를 잡아야 한다.



둘째로는 태초의 도시에서 열리고 있는 투기장의 본선을 정해진 일정보다 빨리, 최소한의 피해자를 내면서 끝내는 것



결과적으로는 이세계의 사람들을 식충식물처럼 먹어치우면서 살아가는 이 세계의 시스템을 끊어내야 한다.



"그에 걸맞는 도움은 줘야겠지. 여기서 미리 쌓은 인맥을 이용해서 지구에서 온 학생들의 조사를 해보지. 만약에 음,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죽지만 않았다면 치료해주도록 하지. 그럼 자네들은..."



이것도 인연이니 친해지길 바란다는 약선이었다.



.

.

.



그놈의 친해지길 바래. 미묘한 데서 똑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걸 보면 확실히 근본은 같은 평행세계의 인물이 맞기는 하다.



이 생각과 행동의 결과물이 영 시원찮다는 문제도 똑같았다.



"정말이지 약선님은 너무나도 상냥한 게 문제라니까요. 물론 그게 약선님의 매력이긴 한데요..."



쫑알쫑알



뒤쪽에서 찬양과 불평불만이 뒤섞인 말이 흘러나온다. 기본적으로는 그렇게 싫은 목소리톤이 아니다만, 말의 내용이 내용이다 보니 짜증이 좀 난다. 쉽게 친해지는 것은 좀 힘들 것 같다.



솔직히 며칠동안 같이 다닌 소감을 말하자면 '기자라는 사람이 그렇게 말이 많아도 되냐?'라는 핀잔을 주고 싶다. 물론 그런 핀잔을 줬다가는 자신은 언제나 주변의 모든 소리를 듣고 있으니 상관없다는 대답이 돌아오겠지만 말이다.



이미 '제 귀는 축 늘어져 있지만, 쫑긋 솟은 귀보다도 더 좋다구요!'란 말을 들었다.



하지만 전음은 듣지 못하겠지. 그렇게 무난하게 뒷담을 하는 시우와 아눕롤이었다.



내용은 대충 처음에는 지금의 블루베리에게서 철이 빠진 버전을 생각했는데, 가면 갈수록 김송현이 능력만 성장한 버전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것만이라도 어디냐-라고 생각해보자.'

'끄으으윽'



여기서 살짝 소외된 것은 하늬. 눈동자가 점점 멍- 해지고 있다. 뒤에서 쫑알쫑알거리는 소리를 그냥 한 귀로 흘리는 것도 나름대로의 정신력을 상당히 소모하는 행위니까.



그리고 레티야가 쫑알쫑알 거리는 것을 멈출 때의 상황은 더 나쁘다.



"흠..."

"음..."

"하아"



이번에 눈앞에 있는 것은 먹음직스러운 아이스크림. 그리고 역시 '과일'이 들어가 있다. 확실한 조사를 하기 위해서는 이걸 먹어야 한다.



"시우님, 하늬님"

"갑자기 '님'자를 붙이시는 이유가?"

"저는 장티푸스 백신을 맞기는 했어요."

-잘됐군요. 그 약선님이 손수 제작하신 백신이니 충분히 드실 수 있겠군요.



아눕롤의 이 말에 바로 비열한 미소를 짓는 레티야.



이어지는 것은 이론상으로는 맞는 소리다. 백신을 맞는다고 해서 질병에 무조건 면역은 되지 않는다는 것. 가볍게라도 앓을 수 있는 위험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다.



반면에 시우와 하늬는 완전한 면역이다. 심연의 가호란게 그런 것이니까.



"그래서 전 안타깝게도... 먹지 못할 것 같아요. 사실 제가 먹는다고 해서 뭘 아나요?"

"그렇긴 하네요."

"그렇죠? 그럼"

""그래도 먹어.""

"흐으읍!"



명령에 곁들여지는 두 쌍의 번들거리는 눈동자에 바로 숨을 흡 들이키는 레티야. 마력광이 있는 하늬의 눈이고, 평범한 인간의 눈인 시우의 눈이고,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수 같은 묵직함이 느껴진다.



이 압박감에 울며 겨자 먹기로 아이스크림을 입에 집어넣는 레티야. 마치 맛있는 사약을 먹는 듯한 슬픔과 고통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약선님을 위해서...!"

"이상해요. 블루베리 언니가 비슷한 모습을 보여줄 때는 추하기는 해도 나름대로의 유쾌함이 있었는데, 왜 저 언니는 그저 추하죠?"

"그게 바로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라는 것이겠지. 그럼 우리도"



과즙이 스며들어 색이 물든 크림을 크게 떠서는 입 안에 집어넣는 시우와 하늬다. 그리고 그런 시우와 하늬를 레티야는 절박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건 진짜 뭐 하자는 것인지. 그를 보면서 띠껍다는 표정으로 아이스크림을 한 숟가락 입에 나란히 넣는 두 사람. 그러자 레티야의 표정이 바로 바뀌었다.



얼굴에서 슬픔과 고통이 싹 가시고 거침없이 아이스크림을 막 퍼넣는다.



그 와중에 시우와 하늬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는 것은 잊지 않는다. 하지만 레티야의 눈에 보이는 것은 레티야가 띠꺼울 뿐, 아이스크림에는 별 이상이 없다는 듯이 식사를 즐기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다.



아이스크림에는 확실히 문제가 없다. 확신을 가지며 완전히 후식을 즐기는 레티야.



이런 그녀에게 불행이 있었다면, 시우와 하늬의 눈치가 레티야보다 몇 배는 훨씬 더 좋았다는 것.레티야의 정신이 완전히 아이스크림에 빠지자마자 두 사람은 빠르게 눈빛을 교환했다.



.

.



"우으읍-"

"등을 두드려주고 싶지만, 구토는 식도에 안 좋다는 말을 들어서요."



후식을 다 먹고 난 뒤 진실을 전해주는 두 사람. 그에 레티야의 안색이 바로 흙빛으로 물든다. 그리고 화장실로 달려가려는 하늬가 그 앞길을 막으며 밉살스런 목소리를 꺼내주었다.



"이것도 친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고통은 함께 공감하면서 나누는 것이라고 들었거든요."

"이- 이- 병아리! 자기가 멀쩡하다고 해서 어떻게 그런 짓을!"

"심연의 드링커라고 딱히 멀쩡하지는 않거든요."



소독이 괜히 소독이겠는가. 먹을 때마다 입안을 묵직한 무언가로 행구는 감각을 한 입마다 느껴야 한다.



"그렇다고-"

"아눕롤, 기자라면 우리가 억지로 먹는 기색을 느끼지도 못한 책임도 있지 않을까요?"

-살짝 가혹하긴 하지만, 도련님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요.



꼬우면 약선한테 이르던가-



물론 손시훈을 알고 있는 그들로써는 돌아올 대답을 알고 있다. 장난은 적당히- 수준으로만 끝나겠지. 그것을 아는지 레티야는 얼굴이 빠르게 붉게 물들었다 파랗게 물들었다 에서 행동이 멈춰버렸다.



그렇게 멈춘 레티야를 다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 입을 여는 하늬였다.



"자자, 몇몇 식당들을 돌면서 후식만 쭉- 먹어왔잖아요? 그 성과 보여줄 수 있어요?"

"당장 보여드리죠!"



억지로 안색을 바꾸면서 당당히 걸어나가는 레티야. 그 모습을 보니 묘하게 사람을 부리는 데 익숙해진 하늬가 대견하면서도 걱정된다.



이대로 가면 묘하게 사람을 깔보는 N의 성격과 비슷해지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을 담아서 하늬를 힐끗 보니 느껴지는 감정은 한심함 보다는 안타까움과 걱정의 감정에 더 가깝다.



아직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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