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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bot 님의 서재입니다.

형의 사령마를 떠맡게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WritingBot
작품등록일 :
2020.05.11 10:54
최근연재일 :
2021.10.1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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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38,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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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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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결전3

DUMMY

시작은 목소리부터 달랐다.


<"선법 : 보패(寶貝) - 팔괘로(八卦爐)">


공간 전체에 고르게, 하지만 연하게 흩어지지는 않는 목소리. 약선의 그 목소리와 함께 팔괘로가 전개된다.


손시훈의 팔괘로가 유리로 만들어진 것 같은 기둥이 빠르게 땅에 꽂혔다면, 이쪽은 허공 한가운데에서 자라나듯이 유리의 기둥이 생겨난다.


크기는 손시훈이 만들었던 것의 몇 배 이상


그 기둥과 기둥 사이를 투명한 벽이 빠르게 연결하며. 결과적으로는 8개의 기둥과 8개의 벽으로 이루어진 팔각기둥 모양의 완성되었는데-


"뭔가가 가득 차 있는 거... 같지?"

"네"


그렇다. 무언가가 팔괘로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물질이라고 하기에는 희미하고, 에너지라고 하기에는 뚜렷한 무언가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질과 에너지 사이에 있다는 그 마나하고는 또 다르다. 시우가 마나를 느낀다는 건, 정확히는 마나를 쓰려는 상대방의 적의, 혹은 위기상황을 느낌으로써 간접적으로 인식하는 것


그러나 지금 팔괘로 안을 채우고 있는 무언가는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그렇게 생각하는 두 사람의 앞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미묘하게 거리를 벌리게 된 약선과 투신. 거기서 바로 주먹을 들어올리면 자세를 잡는 투신과는 다르게, 약선은 고개를 돌리면서 시우에게 말했다.


"왔구나."


긴박함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다.


당연히 싸우는 입장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짓거리. 그렇기에 투신은 자신의 몸을 대포 쏘듯이 움직이면서 주먹을 거칠게 날렸다.


원래라면 이 또한 시우와 하늬가 보지 못했을 것이지만


이번에는 보인다.


이런저런 마음이 담겨있지 않은 무언가를 단순히 부수기 위한 주먹과, 그 주먹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일단은 부드럽게 흘러내는 움직임. 그리고 흘러내던 몸을 갑자기 비틀어서 잡아서는 움직임을 봉쇄하는 것까지


천천히


자신이 갑자기 성장했나? 아니다.


심연이 보조를 또 해주었나? 그것도 아니다.


진짜로 약선과 투선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마치 물이 가득차 있는 수영장 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다. 조금 더 덧붙이자면 이정도의 속도라면 A랭크 헌터일 경우 충분히 눈으로 따라잡을 수 있겠다.


시우가 이를 눈치채자마자 심연의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테르(Aether)

"진기(眞氣)라는 것이지, 누군가는 에테르라고 부르기도 하고. 그것을 팔괘로 안에 가득 채운 상태야."


어쩌면 미리 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부드럽게 받은 말. 그에 잠깐 멍해졌던 시우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설마 진기라는 것이, 선천진기(先天眞氣)의 그 진기를 말하는 것인가? 일반적인 내공보다도 훨씬 더 상위 차원에 있다는 그 힘?


"물질과 힘 그 사이에 서 있는 순수, 생명-사고-개념 그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존재. 인간에게서 내공의 상위 존재의 형태로 존재하는 이유는, 단지 인간이 생명체기 때문이야."


맞는 것 같다. 그것을 저 거대한 공간 안에 가득 채웠다고? 투신도 뒤늦게 그것을 인식했는지 약선에게 몸이 막 붙잡혔을 때만 하더라도 떨리지 않던 눈동자가 급격히 떨리기 시작한다.


이를 두고 진짜 섬뜩한 말을 하는 약선이었다.


"통상적인 팔괘로는 단순히 가열, 냉동, 그리고 전기분해를 하지. 원리만으로 놓고 보자면 아주 크기가 큰 오븐이나 냉장고를 소환하는 것이나 다를바가 없어. 하지만 진기로 가득 채움으로써 물리 차원을 넘어 개념 차원에서의 공격이 가능하지."


그러니까 겉과 속을 가리지 않고 바싹하게 익혀버린다는 소리.


평범한 마음가짐을 가진 이가 적과 함께 거기에 같혔다면 어떤 소리를 내뱉을까?


<미친녀석! 함께 죽자는 것이냐!>


약선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이미 손시훈도 비슷한 짓을 저지르지 않았는가. 농경신을 상대로 식물을 쓰는 걸 막겠다고 자신까지 통째로 얼려버렸다. 그걸 눈앞에서 직접 봤던 기억을 떠올리며 표정을 찌푸리는 시우를 두고 약선이 콧웃음을 쳤다.


"굳이? 그건 평범한 약자가 평범한 강자를 쓰러트릴 때나 하는 짓이지."

<뭣이?>

"너 개못하잖아."

<네놈!>


싸움이라는 단어는 생략되었다.


물론 할 필요는 없다. 지금만 하더라도 깔끔하게 금나로 붙잡은 상태이니까. 시우의 입장에서도 저 상태의 상대에게 팔, 허리, 다리 중 하나를 부러트릴 자신이 있는데 약선은 쉬우면 더 쉽지 어렵지는 않을거다.


하지만 마무리를 짓는 대신 몸을 크게 뒤틀면서 투신을 내던지는 약선.


그렇게 물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부드럽게 내팽겨쳐지던 투신의 움직임이 공중에서 우뚝 멈춰섰다.


동시에 투신의 뒤쪽부터 시작해서 온몸의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파문. 로켓 엔진을 뿜어서 공중에서 자세를 바꾸듯이, 신성력을 몸 뒤쪽으로 방출해서는 자세를 바로잡고 몸을 고정시킨 것이다.


거기서 기운을 한 층 더 끌어모으고 있는 투신. 팔괘로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에테르가 방해를 하면 그만큼 더 힘을 끌어올리면 된다는 간단한 태도다.


상대가 이렇다면 맞붙는 자신도 힘을 그만큼 끌어올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특히 이쪽은 상대방의 발을 붙잡기 위해서 진기까지 쓰고 있지 않은가.


이런 당연한 생각과는 달리 약선의 몸을 흘러다니던 내공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마치 밑이 빠져있는 항아리처럼...


"마법을 쓰려는 건가?"

"아니요, 마나도 느껴지지 않아요."


혹시나 싶어서 중얼거렸지만 바로 부정하는 하늬


그렇다면 뭘 하려는 것인가.


<상관없다! 네놈의 그 잘난 마법까지도 내 주먹으로 부숴주마!>


하긴, 상대방의 수를 굳이 다 알 필요는 없다. 가능하면 수를 쓰기 전에 처리하는 것이 현명한 짓. 그렇기에 대포알처럼 앞으로 나가는 자신의 몸과 함께 주먹을 휘두르는 투선의 앞에서


<"공령(空靈)">


엄청난 양의 내공이 갑자기 약선의 온몸에 가득찬다.


지금까지 시우가 보여줬던 것 하고는 수준을 넘어서 근본부터가 다르다고 할만한 움직임. 내공이 몸속에서 순환을 하는 게 아니라 몸 자체가 하나의 내공 덩어리가 된 듯하다.


저만한 힘이라면 뭘 해도 훌륭한 카운터가 되지 않을까?


무공을 모르더라도 기척만으로도 그것을 충분히 눈치챌 수 있다. 그렇기에 공격을 멈추고 회피를 하려는 투신이었지만, 그보다 약선의 주먹이 움직이는 것이 훨씬 더 빨랐다.


단순하게


주먹을 꽉 말아쥐고, 빠르게 앞으로 내미는 것이었으니까.


그건 삼류무공 수준의 초식도 없는, 현대의 체육관에서 멈춰있는 샌드백을 향해서 내지르는 잽과도 같은 주먹


이 주먹의 끝에서 몸 자체가 된 것 같았던 내공이 한꺼번에 뿜어져나온다.


<!!!!!>


그 내공에 자동차에 치여버린 것처럼, 그것도 범퍼를 보강한 것에 치인 짐승처럼 온 몸이 기괴하게 꺾여서 날아가는 투신. 비명조차도 내지르지 못한 그는 바닥에 몇 바퀴 몸을 구르고 나서야 숨을 간신히 몰아쉴 수 있었다.


<커흑... 큽...! 방금 그건 도대체?>

"한번 더 말하자면 공령(空靈)이라는 것이지."

<말도 안 돼. 텅 비워져 있는 영혼에서 그런 힘이 나온다고?>

"글쎄다. 시우 너는 어떻게 생각해?"


어떤가


확실히 머리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몇몇 무술이나 무공에서 순간적인 집중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온몸의 힘을 푼다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까지 하는 건 불가능 할 것 같은데....


이런 머리와는 달리, 가슴은 입을 움직여서 답을 말했다.


"...무언가를 가득 채우기 위해서는 일단은 비워야 한다..."

"그렇지! 바로 그거다! 그것이 공령의 핵심, 최대한 비우고, 최대한 채워내는 것이야."

<헛소리!>


몸을 수습해서는 다시는 당하지 않겠다는 듯이 달려드는 투신. 이에 맞춰 약선의 온몸에서 또 내공이 쭉- 빠져나간다. 시우는 그와 함께 약선의 몸 주변에 희미하게 안개가 흘러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가'


그래서 팔괘로 내부를 에테르로 가득 채웠던 것인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건이 움직이고, 뜨거운 쪽에서 차가운 쪽으로 온기가 이동하듯이, 내공이라는 에너지가 텅 비어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쪽으로 에너지가 몰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에테르에서 에너지인 부분은 약선에게로 빨려 들어가고, 남은 물질적인 부분은 안개처럼 흩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흡수된 에너지를 바깥으로 방출하고- 에너지가 빠져나간 몸에 에테르가 달라붙어 에너지를 흡수하고- 다시 방출하고- 다시 흡수하고


닫혀있는 육체에서 이루어지는 것보다 훨씬 규모가 클 수밖에 없는, 육체와 환경이 함께 이루는 거대한 순환


이 순환은 육체의 바깥에서 흩어지지 않고 차곡차곡 쌓여가던 에너지가 한꺼번에


<이번에는 내가 더 빠르다. 죽어라!>


깔끔하게 흡수되기 직전에, 약선의 가슴 앞까지 다가온 투신의 주먹. 하지만 타이밍이 좀 애매한 것이 이 구도라면 약선의 가슴을 때릴 수는 있겠지만, 약선도 반쯤 완성된 공령으로 투신의 머리나 가슴을 날려버릴 수는 있게 된다.


말 그대로 동귀어진. 좀 전까지만 해도 '함께 죽자는 것이냐!'라고 외친 몸으로 하기에는 좀 궁색 맞은 짓거리다.


하긴 약선의 말대로 약자가 강자를 쓰러트리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러나 자신은 평범한 강자가 아니라는 듯이 부드럽게 팔뚝을 움직이는 약선. 그리고 정말로 자연스럽게, 길을 가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나뭇가지를 치우듯이 약선의 팔뚝이 투신의 손목을 밀어낸다.


<!>


한 발이 늦었기에 한 발 더 완벽하게 이루어진 걷어내기


용케 뻗은 주먹이 약선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기는 했다만, 나뭇가지가 스친 것과도 같은 미미한 자국도 남기지 못한다.


그리고 어느새, 약선의 허리춤에 쥐어져 있던 주먹이 완성된 공령과 함께 앞으로 움직였다.


<!!!!>


자세는 정권 지르기. 너무나도 담백한 것이 이 또한 체육관에서 샌드백을 상대로 날리는 것 같았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투신은 물론이고, 시우도 충분히 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걷어내기를 당한 시점에서 투신의 처지는 멈춰있는 샌드백보다도 못한 상태


샌드백에게는 특별히 약점이 없지만, 걷어내기를 당한 이는 약점이 드러나 있으니까.


별 수 있겠는가, 맞고 쭉 날아가야지. 팔괘로의 한쪽 벽 끝까지 말이다. 그렇게 멀리 날아가서는 투명한 벽에다가 꼴사납게 박아버리고는 숨만 간신히 쌕쌕 내쉬는 투신


누가 봐도 싸움이 끝난 모습이다. 그걸 알려주듯이 약선은 패배자에게서 몸을 홱 돌려버렸다.


"잘 봤어?"

"어, 네."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


도움이라


모르겠다. 너무나도 아득한 경지라...


재료는 진짜로 평범한 재료. 하지만 전문 요리사가 해낸 요리를 본 것 같은 기분이다. 그나마 '따라할 수 있겠지?'라는 말 대신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라고 해서 낫다고 해야 하나


시우는 그렇게 생각다운 생각을 하고 있지만, 하늬는 생각을 멈추고는 입을 퐁 벌리면서 경악할 뿐이다. 잽 하나 - 걷어내기 하나 - 정권 지르기 하나의 세 동작만, 때린 것으로 따져보면 딱 두대만 때려서는 신 하나를 반쯤 죽여버렸으니까.


이런 둘이 정신을 조금 더 차릴 수 있게 박수를 짝 치고는 말을 이어가는 약선이었다.


"다 똑같아. 별무리를 끌어오는 것 같은 강기(罡氣)도, 생명력만으로 생물과 생물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전음(傳音)도,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뿌리가 되는 내공도, 그걸 처음 들었을 때 지금의 너를 상상할 수 있었어?"

"...아뇨."

"하지만 해내서 여기까지 왔고, 원리를 이해했잖아? 물론 그 이해가 너도 공령을 쓰게 해 준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걸 위한 노력은 노력만으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래, 그렇지. 설령 처음 보고, 생각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그 노력은 언젠가는 눈에 보이는 의미가 되어서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런 생각을 하며 주먹을 쥐는 시우를 두고 하늬가 말했다.


"저기, 그럼 저 투신은 어떻게 할 거에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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