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귀환歸還
사고였다.
비가 오는 날 고기질을 하러 바다로 나갔다가 생긴 사고였다. 아버지가 타고 바다에 나간 배는 사내, 무린의 기억 속에 있던 쪽배와 그다지 큰 차이가 없는 배였다. 장정 서넛이 타면 만선인 배.
그런 배를 타고 나갔다 파도에 배가 반파되면서 생긴 사고였다. 겨우 자력으로 뭍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산동 반도의 남쪽 해안은 따뜻하지만 북쪽 해안은 추웠다.
당연히 바닷물도 차가울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지금 계절이 겨울로 들어서는 초입이라는 걸 생각하면 바닷물은 석빙고 안보다도 더욱 차가웠을 게 분명했다.
어쩌면, 무린 조차 딱 한번 들어가 본적이 있는 북방의 끝, 북해의 호수만큼이나 차가웠을지도 모른다.
자력으로 나왔으나, 이미 빼앗긴 체온으로 인해…… 동사.
그게 무린의 아버지가 숨진 원인이었다.
그래도 그나마 시신이라도 챙긴 게 다행이었다. 같이 나갔던 마을사람 한 명은 아예 파도에 쓸려 나가 시신조차 챙기지 못했다고 들었다.
‘후, 하루, 하루만 일찍 왔어도…….’
무린은 그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하루.
아니, 시간상 따져보면 딱 반나절만 일찍 왔어도 어쩌면 아버지는 무사하셨을 것이다. 아니, 아니다.
분명히 무사했을 것이다.
자식이 온 날 무리해서 바다에 나갔을 리도 없고, 나간다 했더라도 분명 자신이 말렸을 것이다.
그러니…… 딱 반나절. 반나절만 일찍 왔어도…… 아버지는 무사하셨을 것이다.
뚝.
한 방울 눈물이 아버지의 봉분封墳에 떨어졌다.
무린은 그렇게 아버지를 보냈다.
그날 저녁.
무린은 동생들을 불러 방에 모여 앉았다.
아버지의 상을 치렀지만 두 동생들의 얼굴에서 깊은 슬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애써 참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세상이 무너져가는 슬픔을 느끼고 있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게 아닐까…….
무린의 생각이었다.
‘아니면 이미 나처럼 수도 없이 봐온 죽음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지.’
두 동생을 빗대어 한 생각이지만 그건 무린의 현재 상태였다.
무린은 많은 죽음을 봐왔다.
너무 많이 봐서 질릴 정도로 말이다.
아버지의 죽음은 분명 슬픈 일이다.
세상이 무너지는 슬픔을 느낀다 해도 그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허나 무린은 담담했다.
그걸 무린은 모르고 있었다.
생각을 끊고 두 동생을 다시 지긋이 바라보는 무린.
“…….”
무린은 말할 수 없었다.
십오 년의 세월.
그건 너무나 긴 세월이었다.
“…….”
“…….”
물론 그건 두 동생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십오 년의 세월은 두 동생들이 무린이 죽었다고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건 무린도 마찬가지.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있었지만, 이 어려운 시기에 어쩌면 가족들에게 불상사가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을 품기에 충분했다.
“후우…. 오랜만이다. 나를 알아보겠느냐.”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무린은 먼저 입을 열었다. 질문을 던진 후 조용한 눈동자로 동생들을 바라보자 동생들도 자신과 비슷한 눈빛으로 입을 열어 대답했다.
“네.”
“기억 속에 희미하게 있습니다.”
“…….”
기억에 있다라…….
고맙구나.
찰나 든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고 그저 침묵한 무린은 다시 물었다.
“어머니는 어떻게 되신 게냐.”
“…….”
“…….”
반드시 해야 할 질문이다.
아버지의 상을 치르는 동안,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그건 필시 무슨 일이 생겼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다른 일이 있다는 뜻이다. 집안의 장남인 무린으로서는 반드시 알아야 할 일이기에 지체하지 않고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동생들의 침묵.
무린은 가만히 기다리다, 다시 입을 열었다.
“어머니는 어떻게 되신 거냐 물었다.”
무린의 질문에 둘째, 무혜가 입을 열었다.
“잘 모릅니다.”
“모른다?”
“네, 제가 열다섯이 된 어느 날, 어머니는 갑작스레 사라지셨습니다. 아버지에게 물어봤지만 말해주시지 않았고요.”
“…….”
무린은 눈을 감았다.
결론은 간단했다.
없다.
무혜가 열다섯이 된 어느 날이라면…… 지금부터 구년 전이다. 그 구년이란 세월동안 어머니가 곁에 없다는 건 역시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생사를 두 동생이 확인하진 못했으나, 아마도…….그리고 기억 속에 어머니는 항상 아프셨다.
그렇다면 그 뒤는……?
생각하기 싫었다.
“힘들었겠구나.”
“…… 아닙니다.”
무린이 자신의 감정조차 애써 누른 위로에 무혜는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차분했다. 그 차분함에 무린은 무혜의 얼굴을 가만히 뜯어봤다.
자신이 아버지를 닮아 호남好男의 기상이 있다면, 무혜나 무월은 어머니를 닮아 청초함이 그득했다.
다만 조금 다른 점은 무월이 좀 더 무혜보다 성장이 좋았는지 좀 더 성숙한 여인의 몸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또한 눈매도 조금 달랐다.
무혜가 차분하고 지적이라면, 무월은 좀 더 화사한 느낌이 강했다.
‘무혜는 소향을, 무월은 검란소저를 닮았군.’
두 동생을 보며 무린은 북방의 전쟁터에서 있을 당시 인연을 맺었던 여협과, 자신을 잘 따르던 동생을 떠올렸다.
소향은 듣기로는 어느 세가의 자체라 했는데 머리가 좋아 군부의 물자를 담당했었고, 검란은 매화梅花향을 가득히 풍기는 여협이었다.
물론, 전쟁터에 있었던 만큼 결코 가진바 비밀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잠시 둘을 떠올리고 있는데 무혜가 이번엔 무린에게 질문을 했다.
“북방으로…… 가셨다 들었습니다.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합니다.”
“…….”
흔한 안부를 묻는 질문이지만 무린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북방北方.
사람들이 흔히 북방이라 하는 곳은 알다시피 전쟁터였다. 당금의 중원을 차지하는 제국과, 그런 중원을 차지하려는 이민족과의 싸움이 끊이지 않는 전쟁터.
피가 튀는 건 예사고, 팔 다리가 잘려 날아가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다.
오늘 같이 자던 동료가 내일 시체가 되는 것도 당연한 곳이 바로 사람들이 쉽게 북방이라 부르는 곳이었다.
매캐하고 역한 시체 타는 냄새를 매일 맡으며 지내야 하는 곳이 또한 북방이다. 돌아가는 자보다, 그곳에 뼈를 묻는 자가 더 많은 곳이 바로 북방이다.
그런 곳에서 있었던 일을 곧이곧대로 무혜와 무월이에게 말한다? 거기다가 십오 년을 못 봤었고, 이 마을에 도착해 상을 치루는 동안에도 한 마디 대화조차 나누지 않았는데?
‘농담도…….’
“잘 있었다. 잘 있었으니 오라비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겠느냐.”
“……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무린의 대답에 무월은 그저 다행이라고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번엔 무월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에게 들었습니다. 빚 때문에 팔려가셨다고요. 하물며 팔려간 곳이 북방의 전쟁터였다는 소리를 듣고…… 저는 오라버니가 그저 돌아가셨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 말에 무린은 잠시 침묵했다.
허나 무월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열이면 열 죽는 곳이라 했습니다. 오라버니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질 때, 살아계시기를 기도하는 것도 포기했습니다.”
“…….”
한恨이다.
인생에 대한 한인가, 아니면 자신에 대한 한인가. 어느 종류의 한인지는 아직 감을 잡을 수 없으나 무린은 무월의 말에서 한을 느꼈다.
무린은 십오 년 동안 전쟁터에 있으면서 수많은 인간군상을 만났고, 그들의 이야기를 직, 간접적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들으면서 무린에게 한 가지 능력이라고 불러도 좋은 게 생겼는데, 사람의 목소리와 얼굴의 표정으로 현재의 감정을 읽는 게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물론 아예 대놓고 속이고자 하는 사기꾼은 파악 못하겠지만 무월은 그도 아니니 파악이 가능했다.
‘슬퍼하고 있구나. 무엇이 그리 슬픈 게냐.’
속으로 그리 질문하고 무린은 가만히 무월을 바라봤다.
“어느 때는 오라버니를 원망도 했습니다. 곁에서 지켜주지 않는 오라버니가 참 미울 때도 많았습니다.”
나에 대한 한인가.
“허나 그게 제 잘못된 생각인 걸 깨닫는 순간부터, 오라버니의 생환을 다시금 기도했습니다. 하루, 매일을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아니다.
무월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무혜도 그렇지만, 무월도 차분하기론 무린에 뒤지지 않는 것 같았다.
“되었다.”
무린은 거기서 무월의 말을 잘랐다.
더 이상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무월의 한이 어디서 오는 건지, 무린은 이미 파악했다. 한 가지 이유가 아닌, 자신의 인생을 비롯해 가정환경 등등, 그 전부에서 나오는 게 분명했다.
나는 왜 이럴까.
왜 이렇게 비참한 삶을 살고 있나.
그 모든 게 복합적으로 작용해 생긴 한이 분명했다.
그래서 무린은 잘랐다.
차분하게 얘기하고 있지만 감정을 막고 있는 둑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감정을 폭발하면 좋은 일도 생기지만 매번 그러라는 법은 없었다.
“이 오라비가 돌아왔으니, 이제 그만 말해도 된다. 너의 마음. 오라비는 전부 이해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만 말 하 거라.”
무월은 가만히 앞으로 나아가, 두 동생을 끌어 안았다.
“고생들 했다.”
“…….”
“…….”
동생들은 울지 않았다.
잔잔하나, 격동을 그리고 싶습니다.
- 작가의말
제국의 군인은 아마 실패한 것 같습니다. 후우, 가슴이 쓰립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제국의 군인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중입니다.
현재는 유료 연재도 생각하고 있고, 아니면 좀 더 수정 후 다시 선을 보이는 방법도 생각중입니다.
이번 글은 무협입니다.
언제고 한 번 써보고 싶었는데, 그 시간이 좀 일찍 찾아왔습니다. 어렵지만 쓰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재미도 있고요.
그러니 독자님들도 그저 재미있게만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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