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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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필립 공작님 영지부터 시작하실까요?”
갑작스런 이레인의 말에 필립 공작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예? 그게 무슨······.”
필립 공작이 황급히 이레인의 말에 반박하려 하자, 용사 크리스가 크게 소리쳤다.
“이것 보시오! 조사의 순서는 성녀님이 정하는 것이오. 공작은 그저 안내만 하면 되는 것이오!”
‘이 용사 놈을 그냥······. 확 대운님께 부탁해서 없애버릴까? 아니지······. 조금만 참자.’
겨우 화를 억누른 필립 공작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안내를 시작했다.
“이쪽 방향입니다. 가시지요.”
필립 공작은 일행이 출발하자 수하에게 전했다.
“(우리 영지에 성기사단과 용사, 성녀가 함께 간다고 대운님께 전하도록.)”
“(알겠습니다. 지금 통신을 연결하여 알리겠습니다.)”
필립 공작은 자신의 영지까지 돌아 갈수도 없었다.
국가 지도가 있으니 누가 봐도 최단거리로만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촉박했다.
이레인 일행이 출발한 필립공작의 영지.
대운은 지난 한 달간 리리스, 발트와 함께 훈련을 계속했다.
대운의 기본능력인 일반복제의 능력.
그 능력은 발트와의 훈련을 통해 그의 전투감각을 고스란히 익히게 되었다.
“대운님처럼 실력이 빨리 늘어나는 사람은 처음 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한번 본 것을 그대로 따라하실 수 있는 건가요? 가히 천재적인 것 같습니다.”
“에이~ 별말씀을요. 헤헤헤.”
“흥! 이런 멍청이가 천재라고? 네놈도 멍청이인 것이냐?”
발트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는 지금 이런 능력을 갖게 되기까지 지난 20년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손바닥에 피가 나도록 검을 휘둘렀습니다. 그런데 대운님은 저와 한 달도 안 되는 훈련 기간 동안 저와 비슷한 수준으로 검을 맞대고 있지 않습니까.”
“리리스. 그냥 인정해. 원래 이 몸이 조금 천재라고 말이야. 꺄르르.”
“그런 자만이 언젠가 너를 큰 위험에 빠뜨릴거다. 잔말 말고 훈련이나 하거라.”
리리스도 대운의 성장이 싫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성장이 빠르다고 하더라도 성녀와 성기사, 그리고 용사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채근하며 무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하녀 메리는 연무장에 들어오며 대운을 찾았다.
이번 ‘메리’는 친절하고 예쁘기까지 해서 대운이 좋아하는 하녀였다.
“대운님! 필립 공작님이 소식이 전하였습니다.”
“아! 메리. 무슨 소식인데?”
“성녀와 성기사단, 그리고 용사가 가장먼저 저희 영지를 조사하러 온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대운님과 리리스님께 전하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뭐? 공작님은 분명 가장 마지막에 오거나, 아니면 아예 이곳 영지는 조사대상에서 빼준다고 했었는데. 일이 제대로 안되었나 보네. 애휴······. 리리스 어떻게 해야 하지?”
“뭘 어쩌란 말이냐.”
“우리 그냥 도망갈까? 지난번처럼 또 세나린 산맥으로 도망가면 되지 않을까?”
“네 녀석은 언제나 도망만 다니는구나.”
리리스는 메리에게 물었다.
“메리야. 성기사단의 수는 얼마나 된다고 하더냐?”
“스무 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용사의 수는?”
“용사는 검을 차고 있는 자 한명이라고 합니다.”
몇 주 전 정보길드장 휴고가 찾아와서 건넨 정보와 일치했다.
애초에 이정도 인원을 대상으로 훈련을 진행했기에 리리스는 이변이 없음을 알아챘다.
대략적인 정보를 듣자 리리스는 대운에게 말했다.
“대운. 이정도 전력이라면 네놈이 어찌 해볼 만은 하겠다.”
“뭐라고? 기사가 스무 명에 용사도 있다며?
“30년전 마왕을 없앨 수 있었던 건 용사 4명이 모여야 했고, 성기사들도 3000명이 함께 공격을 했었느니라.”
“마왕 하나를 상대하기 위해 용사 4명과 성기사 3000명이 필요하다고? 리리스. 내가 힘을 빼앗아 가지 않았더라면 너도 그 정도로 강한 거였어?”
“흥! 그렇지. 나는 네 생각보다 더 강하단다. 그리고 나의 능력을 빼앗아간 네놈도 역시 그만큼 강해져야 하느니라. 네놈이 멍청하고 미련하여 아직 본신의 능력을 모두 발휘하지 못하고 있을 뿐.”
“으······. 그래. 알았다고. 훈련하면 되잖아!”
“네놈은 4서클의 마법까지는 흉내 낼 수 있게 되었다. 지금부터는 새로운 것을 익히기보다는 그동안 배운 것을 반복해서 연습하거라.”
“알았어. 고마워. 리리스. 날 이렇게 강하게 해줘서.”
“고마워할 건 없다. 어차피 네놈은 날 지켜야 하니 네놈이 강해져야 하는 건 당연한 이치니까.”
“리리스는 내가 지켜줄게. 걱정마.”
대운은 새초롬한 리리스를 바라보며 지켜준다고 선언했다.
‘내가 여자를 지켜주겠다고 했던 적이 있던가?’
괜한 상상을 하던 대운에게 리리스는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해두마. 만일 네놈이 흑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나는 경우에는 지금까지 알고 있는 마법에다 ‘블러드’를 함께 시전하거라. 그러면 피의 마력이 더해지면서 마법의 위력이 증가할 것이니라.”
“고마워. 그러면 지금부터 다시 훈련을 시작해볼까?”
대운은 지난 한 달 동안 빠른 성장을 보였다.
겨우 1서클 마법 몇 개만 사용하다가 4서클의 마법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된 대운.
동시에 기사단장 발트와 검술 대련도 꾸준히 하면서 소드 엑스퍼트 초급의 실력을 이루었던 것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이레인 성녀일행은 필립공작의 영지로 들어섰다.
“이곳이 저의 영지입니다. 성녀님은 저택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 입구의 게스트하우스에 모시겠습니다. 저곳에 일단 짐을 푸시지요.”
필립 공작은 이레인 일행을 대운의 숙소와 멀리 떨어진 게스트하우스로 안내했다.
“그러면 일단 여기서 쉬시고, 내일부터 조사를 시작하면 되겠죠? 무슨 일이 있으시면 하녀를 하나 대기시킬 테니 요청하시면 됩니다. 내일 조사를 시작하시게 되면 또 찾아주십시오. 그럼 전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필립 공작이 안내를 마치고 돌아가자 이레인은 용사 크리스를 보며 입을 열었다.
“크리스님. 아무래도 이 영지가 가장 의심스럽습니다. 예전 신탁을 통해 봤던 이미지가 꼭 이곳 영지의 건물과 같았습니다.”
“성녀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러면 이미 알고 여기부터 오자고 하셨던 겁니까? 이곳에 마왕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여기에 마왕이 있는지는 찾아봐야 합니다. 하지만 신탁에서의 정보를 생각해보면 린넬 왕국의 가장 남서쪽, 그러니까 세나린산맥과 살라나왕국과 가까운 영지에서 검은 기운이 출몰하였습니다. 그래서 이곳을 먼저 조사 대상으로 요청했던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도 마왕의 출현에 대비하여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크리스는 성녀의 말을 듣고 방을 나섰다.
그리곤 주변의 한적한 공터를 찾았다.
자신의 성검을 바라보는 크리스.
과거 마왕과 싸울 당시 마왕의 심장을 찔렀던 바로 그 검이다.
마왕을 상대하는데 용사만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비밀은 바로 성검의 존재유무다.
일반인이 성검을 든다고 하여 마왕을 무찌를 수 없다.
그렇다고 용사가 일반 검을 들어도 역시 마찬가지로 마왕을 상대할 수 없다.
이것은 지난 30년전 마왕을 상대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깨달은 사실이다.
하지만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용사가 성검을 사용한다면?
마왕이 용사를 공격할 때면 용사가 받는 피해는 줄어든다.
반대로 용사의 공격은 마왕에게 더 큰 피해를 주게 된다.
이것이 마왕과 용사, 그리고 성검의 효과인 것이다.
‘이 검으로 이레인 성녀님을 반드시 지켜야 해.’
사실 크리스는 마왕이 사람을 해치는 것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다만 그런 사람들을 대신해서 마왕의 앞에 나설 이레인 성녀가 걱정되기에 이번 조사에 참가한 것이다.
- 우웅~!!
크리스는 마나를 자신의 성검에 둘렀다.
과거 마왕과의 대결 당시 소드마스터 상급의 실력에 이르렀다.
그렇기에 용사 4명이 모두 함께하지 않았어도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크리스는 그동안 연습했던 검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30년전 마왕과의 대결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왕의 무수한 마법시전을 피하고, 마족들의 칼날을 막으며 마왕의 심장에 칼을 꽂기까지의 심상훈련.
크리스의 온몸은 훈련으로 인하여 땀에 흠뻑 젖었다가 몸의 열기에 마르고, 또 다시 땀에 흠뻑 젖기를 반복되었다.
‘이레인 성녀님을 건드는 자는 그 어떤 마왕일지라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
필립 공작은 발트 기사단장과 함께 이레인 일행의 숙소를 찾았다.
“간밤에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예. 신경써주신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그러면 영지를 둘러보면서 조사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시죠. 저희는 성녀님을 뒤따르겠습니다.”
성녀 이레인은 품속에서 은빛 태양 펜던트를 꺼내었다.
“디바인 체크!”
성녀가 주문을 외우자 은빛 펜던트는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부정한 기운이 있는 곳에 이르면 이 펜던트의 빛이 어두워질 것입니다. 지금부터 이 펜던트의 빛이 이끄는 대로 조사를 진행하겠습니다.”
그렇게 설명을 진행한 후 성녀는 길을 나섰다.
번화가를 지날 때만 해도 필립공작의 표정은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성녀가 빈민가에 들어서면서 필립 공작은 치부가 드러난 듯 고개를 숙이며 따라갔다.
여기저기 넝마주이들이 길 구석에 앉아서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아이들은 깨끗한 옷을 입은 사람이 신기했는지 연신 따라오면서 구걸을 했다.
“이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얼른 저리가지 못할까!”
성녀와 기사단에 접근하려는 아이들을 보자 발트는 소리를 쳤다.
마을을 순찰할 때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눈도 못 마주치게 매질을 했었지만, 그래도 성녀가 함께 있어서 소리치는 것이 전부였다.
“아닙니다. 어느 곳이나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죠. 아이야. 이걸 받으렴.”
이레인 성녀는 작은 돈주머니를 꺼내어 아이들에게 동전을 나누어 주었다.
그때였다.
- 파앗~!
돈을 받기위해 이레인 주변으로 몰려든 아이들 중 한명이 성녀의 펜던트를 낚아채 달아나기 시작했다.
“꺄악!”
- 짤라랑~! 짤그랑!!~~~~
그 바람에 이레인 성녀는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고, 나누어주던 주머니의 동전들이 짤랑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흩어져버렸다.
크리스가 소리쳤다.
“이놈들이~!”
하지만 성녀의 디바인 체크 팬던트를 낚아 챈 소년은 벌써 저 멀리 모퉁이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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