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침범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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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한 점 없는 청량한 하늘.
3만 명의 성기사가 광장 가장자리로 큰 원형을 만들고 있었다.
태양은 성기사들의 갑옷을 더 빛나게 만들었다.
광장의 한 가운데 용사들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용사는 자신의 무기를 다시 한 번 꼭 쥐었다.
성창, 신의 너클, 그리고 신의 지팡이.
그리고 반대편에 서 있는 한 사내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반대편의 사내.
용사는 아니다.
하지만 그 역시 성검을 들고 있었다.
창의 용사가 사내에게 소리쳤다.
“당연히 태양신 헬리오스님의 섭리에 따라 악을 물리치는 용사가 정의 아니겠는가!”
그러자 사내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따위 정의는 누가 결정했지?”
“그따위라니! 너처럼 피를 탐하는 절대 악이 할 말은 아니지 않나?”
“흥! 나는 단지 나를! 그리고 내 사람들을 지키고 싶을 뿐이다! 진정한 정의가 누군지는 훗날 역사가 알려주지 않겠나?”
- 콰광~!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용사들은 사내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사내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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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똥똥 띵똥똥
대운은 포장된 치킨 포장을 들고 아파트 초인종을 눌렀다.
- 삑 삐리릭~
현관이 열리더니 스무 살 초반 정도의 여자가 나왔다.
그리고는 말도 없이 치킨을 받아간다.
대운은 비닐을 건네주면서 마스크 위로 눈웃음을 지었다.
눈이 마주치자 여자는 얼른 눈을 돌리며 들어가고, 급히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는 이 시간에 집에서 치킨이나 시켜먹고, 나는 이 시간에 배달을 하는구나....’
이 대(大) 운(運)
운수가 크게 들어오라는 뜻으로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
하지만 이제껏 큰 운은 빠져만 나가고 있는 것만 같은 스물여섯 살 청년.
군대도 다녀왔고, 대학도 졸업했다.
어릴 적부터 그림을 잘 그려서 미대만 졸업하면 크게 성공할 줄 알았다.
그래도 군대에서는 인정받았다.
특히 주임원사에게 말이다.
강원도 산골, 사방을 둘러봐도 산밖에 안보이는 부대.
주임원사가 이대운을 불렀다.
“에... 이대우니!”
“병장 이대운”
“그래 대우니, 다음주 부대 환경정리 하는거 알제? 김하사 붙여줄게, 같이 행정반 게시판부터 부대 이~쁘게 함 맹그러 봐라~”
“예. 알겠습니다.”
매번 이런 식이다.
이유는 처음 이등병때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이다.
대운이 이등병 전입하고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즈음, 주임원사는 부대 병사들에게 물었다.
“여기 미대출신이나 사회 있을 적에 그림 좀 그려본 사람 있나?”
“이병 이대운! 미대 다니고 있고, 그림 좀 그려봤습니다.”
“그래? 이대우니? 그림좀 그리나? 대대 위병소 옆 담벼락 있재. 거기가 너무 삭막하다. 거따가 그림 좀 이~쁘게 그려본나.”
페인트로 벽에 그림을 그리는 일은 입대 전에도 가끔 해봤던 일이었기에, 자신 있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고생길의 시작이었다.
이후로 온갖 부대 환경정리시 뭔가 칠할 일이 있으면 그 일은 대운에게 맡겨졌고, 대운은 언제나 극악의 노가다를 해야만 했다.
“이야~ 이대우니, 그림만 잘그리는게 아니네? 니 손재주도 좋구만”
주임원사는 이것저것 만드는 일도 시켰다.
야외 비닐하우스 건조장, 아이솔레이트 창고 등.
주임원사는 어디선가 폐자재를 자꾸 주워왔다.
대운이 주임원사를 바라볼 땐 지금 당장 전역을 해서 고철, 폐지만 주워도 충분히 갑부가 되리라 생각했다.
어쨌거나 주임원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대운에게 뭔가를 만들라고 시켰고, 대운은 언제나 주임원사의 기대를 만족시켰다.
대운은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주임원사를 비롯한 여러 간부들의 기대와 칭찬이 듣기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 군대에서 이 정도 인정받았으니, 사회에서도 성공할 수 있겠지?’
대운은 군대에서의 인정을 기반으로 먼 미래 희망을 가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전역과 대학졸업 이후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대운은 남이 그려둔 것을 똑같이 베끼는 수준만 보면 천재적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가치를 지닌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대운의 능력이라면 손쉽게 베낄 수 있지만, 그래도 언제나 최소한의 양심은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취업도 쉽지 만은 않았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은 몸으로 떼울 수 있는 일이 유일했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배달라이더, 택배 상하차, 건설현장 등
뭔가 특별한 기술도, 학벌도 없는 대운이 할 수 있는 일은 자본주의가 허락한 노동뿐이었기 때문이다.
군대 시절만 해도 대운은 언제나 최선의 노력을 다 하는 성실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점점 삶이라는 굴레는 대운에게 현실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강요할 뿐이었다.
‘젠장! 세상은 열심히 한다고 인정해주지 않아! 대체 누가 결과보단 과정이 중요하다고 한 거야?’
그럼에도 아직 대운은 꿈을 잃지 않았다.
어릴적부터 손재주가 있다는 말도 많이 들었고, 실제로도 뭔가를 똑같이 따라 하는 것은 자신이 있었다.
특히 그림을 똑같이 따라 그린다던지, 찰흙으로 피규어를 똑같이 만들 수 있는 것은 대운이 가진 몇 안 되는 재주 가운데 하나였다.
그래서 유튜브도 시작했다.
결과는?
영상을 올린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구독자는 삼천 명에서 더 이상 늘지 않았다.
밤새 영상을 찍고, 편집하느라 새벽 하늘이 밝아오는 것도 모를 때도 많았다.
그렇게 정성을 들여 키운 유튜브 채널이건만 사람들의 흥미를 크게 끌지는 못했다.
라이브 방송을 시작하면서 부터는 별짓을 다 하기 시작했다.
일단 아이돌 댄스를 연습했다.
TV를 보며 몇 번 따라해 보니 대운은 어렵지 않게 흉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춤이면 춤, 먹방이면 먹방.
대운은 라이브 방송에서 눈물의 ‘똥꼬쇼“까지 안 해본 것이 없었다.
“아~~~ 행님들. 풍선 2개 정말 감사하고요~ 지금부터 삭발 미션 들어가겠습니다요. 네~ 감사합니다요. 행님들~”
그렇게 머리도 밀어보고, 소주도 한 병씩 원샷하며 춤을 췄지만.
결국 손에 쥐어지는 것은 원룸 월세 내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돈 몇 푼이 전부였다.
결국 대운은 다시 건설현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때부터 대운은 나름 목수일과 미장 등 기술이 필요한 부분도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었다.
대운은 그저 기술자가 일하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그러면 어느 샌가 그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대운이 건설 현장만 따라다니게 된 것도 기술을 어깨 너머로 보기만 해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부터다.
‘어라? 이게 되네? 그냥 몇 번 본게 전부인데 생각보다 쉽잖아?’
‘이렇게 현장만 따라다니다 보면 나도 기술자로 일할 수 있는 날이 올 거야. 그러면 지금 일당보다 두 배는 더 받을 수 있겠지? 그때까지 열심히 훔쳐 배우자~! 아자~!’
그렇게 숙식 노가다(숙노)를 따라다니던 어느 날.
대운에게 드디어 큰 운이 오게 된 사건이 발생했다.
“어이~ 대운씨, 얼른 씻고 쉬어~ 뭐해~”
“예. 저는 여기서 좀 더 쉬다 들어갈게요.”
“에이, 얼른 쉬어. 쉬는게 남는거야. 밥도 먹었지? 이리와봐. 내가 얘기 하나 해줄게.”
야간작업까지 끝내고 컨테이너로 돌아오는 길.
같이 숙식을 하는 노가다 김씨가 아는체를 한다.
하지만 대운은 김씨의 조언처럼 씻고 쉴 수가 없었다.
숙식용 컨테이너 하나에 다른 아저씨 3명과 한방을 배정 받았는데, 하루 종일 땀 흘린 아저씨들이 있다 보니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다.
컨테이너 내부는 아무리 씻어도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 아저씨들의 발냄새,
그리고 뭔가 썩은 것 같은 냄새들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비위의 아저씨도 있었다.
컨테이너 구석에서 혼자 소주를 홀짝 거리면서 자꾸 대운에게 인생 훈계를 하는 사람.
‘내가 이런 아저씨들에게 무슨 조언을 들을 수 있을까?’
‘계속 여기서 이렇게 일하다 보면, 나도 20년 후에 저런 모습일까?’
이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우울해졌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답답했다.
하늘이 보고 싶었다.
대운은 밖으로 나왔다.
흙에 찌든 작업복.
주머니가 많이 달린 작업조끼.
안전모에 안전화까지...
아직 옷도 갈아입지 못했지만.
대운은 냄새나고 시끄러운 컨테이너에 들어가기보다는 그냥 이대로 잠시나마 조용히 있고 싶었다.
“별이 참 많다.”
서울 하늘에는 가끔 보이는 두어 개의 별이 전부였다.
하지만 사방이 어둠뿐인 강원도의 공사현장.
하늘 전체가 별로 뒤덮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별이 많이 보였다.
“저 별은 유난히도 밝네?”
담배를 하나 꺼내면서 대운은 유난히도 밝게 보이는 별 하나를 발견했다.
진짜 밝았다.
그런데???
별이 점점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어라? 어째 저 별은 점점 커지네? 어~ 어~ 어~!!!!!!!”
별이 다가 오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떨어지고 있는 것인가?
대운은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도망갈 것인가?’
‘도망가면 내 달리기 실력으로 피할 수나 있을까?’
그런 고민을 몇 초 동안 하며 망설이는 사이, 별은 그대로 대운의 머리에 떨어졌다.
‘이대로 죽는구나.’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난 대운.
사방이 빛으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을 감고는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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