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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터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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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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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 운명과 숙명

DUMMY

024. 운명과 숙명






*



“젠장. 왜 난 그렇게 헛된 시간을···.”

“응?”


문 앞에서 기다리던 줄리아의 중얼거림을 들었다.


줄리아는 뭔가 착잡하면서도 후련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보았다.


“왜, 무슨 일 있었어?”

“아. 아니. 그냥. 내 인생이 좀 그래서. 한심해서.”

“?”


철컥.


문을 열고 들어가자, 줄리아가 바로 샤워하고는 나왔다.


“등짝. 등짝을 보자.”

“!”


사랑을 나누고 침대에 누워서 그녀의 투덜거림을 들었다.


“그냥. 왜 그렇게 무력하게 살았는지, 왜 5년간 방구석에 갇혀서 무기력하게 살았는지··· 시간이 너무 허투루 보냈어. 오빠. 병신같아.”

“마음이 망가졌잖아. 충분히 쉬어야지.”

“으음.”


여자는 몬스터 암컷과는 다르게 좀 많이 복잡하다.


다 알려고 하지 않고, 또 그러기는 귀찮아서 그냥 들어주고 잠시 걱정해 주었다.


사랑은 다 알려고 하면 오히려 망가지는 것 같다.


“고마워. 들어줘서.”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줄리아는 힘이 되었는지 나를 껴안고 다시 부딪혔다.


안으면 제대로 볼 수 없지만, 감촉과 냄새와 소리는 더 강해진다.


1시간 후.


“운동은 어땠어, 할만해?”

“응. 온몸이 노곤해. 자고 일어나면 근육통에 욱신거리겠지.”

“일어나면 힐링 걸어줄게.”


줄리아는 내 말에 강하게 거부했다.


“싫어. 내가 노력했다는 느낌을 가져가지 마. 승리의 쾌감이야.”

“.......”

“근육통도 쾌락이잖아.”

“그. 그건 그렇지.”

“또 ···”


줄리아는 계속 말하고 나는 조금 능숙해져서, 중간에 적당히 추임새를 넣으며 조용히 들어주었다.


흡사. 사냥감을 살피듯이.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인간의 감정을 학습했다.


“적의 장점을 빼앗는 것. 그게 최고의 복수라는 걸 몰랐어. 집에 웅크리고는 저들과 연결된 모든 걸 혐오했어. 튼튼한 몸, 잔인한 마음··· 근육을 증오했어. 나를 누르고 무자비하게 들어오는 힘이 싫었어. 힘 자체는 선악이 없는데··· 운동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돼지처럼 먹어댔어. 이러면 성욕이 떨어져 강간당하지 않을까 하는··· 좆같은 마음으로.”


훈련소에 가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단다.


“오빠. 증오하는 놈에게 장점을 찾는 건 힘들어. 확실한 장점이라도 그렇게 느끼기 싫어. 정말 기분이 좆같거든. 하지만. 훈련소에서 살기 위해서는 근력이 필요하고, 잔인하고 비열한 마음이 필요해. 그래야 살 수 있어. 아빠가 24시간 나를 보살펴 주는 것도 아니고··· 몸과 마음을 폭력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강간당하고 자살했던 그 애처럼 되었겠지. 나랑 비슷한 냄새가 났던 애인데··· 더럽게 훈련 못 했어. 그래서. 도와주지 않았어.”


그녀는 죄책감에 마음을 떨었다.


나는 입을 움직여 그녀가 바라는 말을 했다.


“네가 누군가를 책임질 이유는 없어. 도와주지 않는 게 나쁜 게 아니야. 나쁜 짓을 하는 게 나쁜 거지. 선(善)의 반대는 악(惡)이 아니라 선하지 않은(不善) 거야. 선하지 않는다고 나쁜 게 아니야.”

“??”


신기하다고 보는 눈빛에 쭈뼛대며 말했다.


“그. 그렇다고 책에 쓰여있었어.”

“··· 호호호.”


줄리아의 마음이 차분해졌다.


죄책감이 많이 줄어든 모양이다.


그녀 속의 ‘사랑하는 나’는 전보다 더 강하겠지?


좀 더 정령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줄리아가 다시 말했다.


“운동을 할 때···.”


처음 푸쉬업을 할 때 느껴지는 거북함은 어느 순간 쾌감이 되었다.


“포기하지 않고 하루 운동에 성공하면, 뭔가 마법을 쓴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뭐. 진짜 마법의 느낌은 모르지만,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어. 뭔가 영화처럼 내가··· 나의 끔찍한 과거에 개입해서 비참함을 바꾸는 그런 느낌이 황홀했어.”


줄리아의 얼굴이 환희로 물들었다.


운동을 끝낼 때마다 왜 그런 얼굴인지 궁금했는데, 궁금증 하나가 풀렸다.


트레이닝은 고통에 대한 저항이고, 그녀는 저항에 성공했다.


운동은 과거에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했던 그때의 모습이 아닌, 졌지만 그래도 용감하게 싸웠다는 느낌을 얻는다.


와이얼드에게 패배했던 나의 마음과 같다.


“더 이상 병신같은 년은 없어.”


이불을 걷어서 줄리아의 알몸을 보았다.


“쭉쭉빵빵.”

“후훗.”


탄탄한 근육과 잘록한 허리, 달덩이 같은 엉덩이와 허벅지.


그리고. 여기저기 찔리고 베인 상처.


그동안 어떤 인생을 보냈는지, 시련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확연하게 보였다.


“과거의 역사에 개입한다···.”


가끔 일리아가 중얼거렸던 말들이 생각났다.


「인간에게 지식을 전수하지 않았다면···.」

「인간을 보살피지 않았다면, 이렇게 다 죽지 않았을 텐데···.」


미래는 지나간 과거보다 우월하다.


그 우월함으로 과거에 개입해, 현재의 고통을 덜고 싶은 건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그런 종류의 소설은 메텔란에도 제법 있다.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베르반과 일리아가 쫓겨서 몬스터 랜드에 오지 않았다면, 나는 맛있는 고기를 먹지 못했을 거다.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을 운명(運命)이라고 하고, 바꿀 수 없는 걸 숙명(宿命)이라고 한다.


마법사는 궁극적으로 숙명을 운명으로 바꾸는 존재다.


“그래서. 이제 더 노력하려고.”

“.....”


줄리아도 숙명을 운명으로 바꾸려는 마음을 가졌다.





2일 후.


직원들이 들어와 몇 가지 기구들을 설치했다.


“마법사들 무서워.”


줄리아는 가끔 헬스장에 보이는 마법사들이 무섭다고 몸을 떨었다.


손님이 아니었다면, 방으로 끌려가서 몹쓸 짓을 당할 게 분명 했고, 군침을 흘리며 뚫어지게 보는 시선도 부담스러웠단다.


“오빠. 힐끔 보는 수준이 아니야. 남자가 힐끔 보는 건 어쩔 수 없는데, 여자가 생리하듯이 남자도 그게 생리현상이니까.”


그래도. 이틀간 무기를 고르듯이 여러 운동을 하고, 직원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몇 가지 기구를 정했다.


기구에 적힌 영어글자를 보니, 아메리카(미국)라는 곳에서 수입한 철 덩어리다.


쭈욱. 쭈욱.


줄리아는 스트레칭하더니 환하게 웃으며 기구에 달라붙었다.


끼익. 끼익.


“? ! ···”


뭔가 느낌이 찝찝하다.


몸의 움직임, 헐떡이는 모습이 다른 남자와 그 짓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자세도 아닌데, 기분이 묘했다.


‘뭐지 이 감정은?’


“오빠.”


가슴 운동하는 기구에서 일어난 줄리아가 나를 불렀다.


“오빠도 운동해 봐. 근육은 계속 단련해야지, 안 쓰면 줄어들어.”

“으음.”


일어나 냄새를 따라 줄리아에게 갔다.


그녀의 코치를 받으며 바를 잡고 날갯짓하듯 움직였다.


휙. 휘익.


별다른 자극 없이 빠르게 움직이자, 줄리아가 멈추게 하더니 가장 무거운 200kg으로 고정했다.


“다시 해봐. 제법 무거울 거야.”

“후후.”


짓궂게 웃는듯한 모습이 귀여웠다.


못난 꼴을 보이면 안 되기에, 나는 약간 긴장하며 바를 잡고 날갯짓했다.


“!”


휘익. 휘익.


아까보다는 자극이 되었지만 역시 가볍다.


100개는 넘게 할 것 같다.


이 몸은 이런 기구로는 단련이 안 된다.


나는 바에서 손을 놓고는 손을 뻗어 줄리아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내가 이런 행동이 가능하다는 것에 놀랐다.


“하하. 한 1,000kg이면 조금은 자극이 될지 모르겠네. 흐흐.”

“으으. 이게 한계야. 꼴을 보니 다른 운동기계도 마찬가지겠네.”

“당연하지.”

“가. 운동 방해돼!”


줄리아는 분하다는 듯이 나를 쫓아 보내고는 다른 새신랑(?)을 찾아서 헐떡였다.


쫓겨난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상한 불륜을 구경하면서, 또 마력폰으로 헬스를 검색했다.


[몬스터와는 다르게 인간은 근육을 쓰지 않으면 퇴화한다··· 마법사는 마법을 통해 퇴화를 막을 수 있다. 또 약물을 써서 근육을 키우는 것처럼, 마법으로도 키울 수 있다. 또 어떤 무공은 근육의 밀도를 극한에 가깝게 압축시킬 수 있어, 웬만한 물리적 공격은 무시할 수 있다.]


마력이 있으면, 근육의 힘은 크게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와이얼드의 근육을 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마력이 다 떨어지면 남는 건 순수한 몸의 힘뿐이다.


‘며칠 전만 해도 몬스터 랜드에서 무거운 바위를 들고 절벽에 올랐는데··· 이제는 별로 자극이 되지 않겠지?’


육체가 재구성되면서 웬만한 무게로는 자극이 되지 않는다.


헬스장의 마법사들은 내 애인을 보기 위해서 왔을 거다.


‘안 그러면 중력실에서··· 아아. 그래.’


지하에 중력을 조절해서 수련하는 방이 있다.


일부 전투마법사들은 중력 마법진이 있어서 몇 배에서 수십 배의 중력으로 몸을 단련한다.


‘시발. 마법진에 마력을 넣어야 하는데.’


당장 급한 게 아니다.


‘그래. 당분간은.’


책상에 놓인 단검을 보았다.


베르반은 무기에 한해서는 모습을 바꿀 수 있다.


롱소드, 봉, 창··· 채찍.


옷이나 네모난 상자 같은 것으로는 변할 수 없다.


‘일단. 베르반으로 단련해야겠어.’


몸이 바뀌면서 기초 체력은 훈련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줄리아를 보니 마음이 완전히 바뀌었다.


고통을 참으면 쾌락으로 변하고, 건강이라는 이익이 생기는 이 단순함이 전환의 근본이다.


앞으로 감당할 고통은 날이 갈수록 커질 거고, 이 운동이라는 건 나침반처럼 헤매지 않게 해줄 거다.


“헉. 헉헉!”


줄리아가 거센 호흡을 내질렀다.


꼭. 일부러 저런 소리를 내는 것 같다.


힐끔힐끔 나를 보면서 숙명을 운명으로 바꾸는 데 도움을 받고 있다.


‘아름답다.’


근력운동이 끝났다.


줄리아는 스트레칭을 다시 하더니, 이번에는 샌드백을 치고 여러 무술 동작을 연습했다.


최근에 내게 다운받은 복싱, 무에타이 같은 움직임이 공간을 채웠다.


나는 그녀의 엉덩이와 사타구니 등을 보면서 설렜다.


‘훌륭해. 여자라는 이야기. 재밌어.’


“허억. 하악.”


털썩.


줄리아는 숨을 헐떡이며 기절하듯이 바닥에 앉았다.


그러고는 생수를 마시며 나를 보았다.


“오빠. 주짓수할 줄 알지? 도와줘. 그건 혼자서는 못해.”

“....”

“빨리 와.”


살금살금.


설레는 마음으로 다가가자 줄리아가 나를 팔을 잡고 조였다.


나는 허리를 움직여 자세를 뒤집고 만지자, 그녀가 기겁했다.


“아. 아니야! 이건 카마수트라잖아! 제대로 해.”

“어. 어어.”


흥분을 진정시키고 합을 맞췄다.


몸에 느껴지는 압력과 감촉, 진한 체취에 전투력이 급감했다.


‘예쁜 여자와 그래플링(Grappling)할 때는 조심해야겠어. 아니면. 카마수트라 그래플링이라는 걸 만들던가.’


“헉헉.”


2시간 후.


운동이 끝났다.


쏴아아.


서로 씻겨주고 몸을 말리자, 그녀의 마음이 완벽하게 스트레칭 된 게 느껴졌다.


달뜬 눈빛으로 내게 달려드려는 줄리아의 몸을 살짝 뒤로 밀었다.


“?”


놀라는 그녀에게 웃어 보이고는 인벤토리에서 세계수를 꺼냈다.


우우웅.


세상의 모든 정령사들이 악착같이 찾아다니는 나무.


세계수는 명성에 맞지 않게 일반 묘목처럼 비루했다.


“줄리아. 잘 들어.”


나는 내가 오거라는 사실과 몇 가지 사실을 숨기고, 제한된 진실을 알려주었다.


내용은 별것 없다.


요정 부모에게 거둬진 것과 세계수를 받은 것 정도.


줄리아는 평범한 나무가 세계수라는 사실에 까무러치게 놀랐다.


“오. 오빠.”

“내가 말한 비밀은 꼭 지켜.”

“으. 응. 약속할게.”


쓰담쓰담.


줄리아의 검정 머리카락을 흩트려 버리고는 웃었다.


“약속은 네가 정령사가 된 다음에 해.”

“··· 저. 정령사?”


줄리아의 놀란 얼굴이 점점 달뜬 흥분으로 변했다.


“잘 들어.”


나는 천천히 알아듣기 쉽게 정령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고맙습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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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025. 정령사 줄리아 24.09.06 20 0 12쪽
» 024. 운명과 숙명 24.09.06 25 0 12쪽
23 023. 클레어 바이블 24.09.06 25 0 12쪽
22 022. 냄새(그르누이) 24.09.05 28 0 12쪽
21 021. 처음이자 마지막 마법 24.09.05 25 0 12쪽
20 020. 승리 24.09.05 27 0 12쪽
19 019. 혜영의 세상(3) 24.09.04 26 0 13쪽
18 018. 혜영의 세상(2) 24.09.04 30 0 12쪽
17 017. 혜영의 세상(1) 24.09.04 36 0 13쪽
16 016. 혜영과 와이얼드 24.09.03 35 0 12쪽
15 015. 검이 심장을 뚫다. 24.09.03 33 0 12쪽
14 014. 와이얼드와 대결하다. 24.09.03 39 0 13쪽
13 013. 콜로세움 24.09.02 3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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