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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9,497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7.13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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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7
추천
42
글자
19쪽

85화. 혈전 또 혈전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천인족은 중한 부상으로 전투력을 잃은 거인들을 구태여 죽이지 않았다.


동료들이 후퇴하면서 미처 데려가지 못해 바닥에 앉거나 누워 있던 거인들은, 천인족이 틀림없이 자신들을 모두 죽일 것이라 예상하고 눈을 질끈 감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천인족이 더 이상 해코지를 하지 않자 점차 서로 의지하거나 바닥을 굴러서라도, 움직일 수 있는 거인들은 돌덩이처럼 자신들의 진영을 향해서 굴러갔다.


거인족의 샤리네는 입장이 매우 난감해졌다. 거인족 전사들 일만이면 충분히 천인족을 멸족(滅族)시킬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치며 출전했는데······.


이제 살아남은 거인들 오천팔백여 명 중에 전투가 가능한 전사는 오천여 명에 불과(不過)했다.


‘그러나 천인족도 고수들이 많이 죽었으니 한 번 더 밀어붙이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전열을 가다듬어 내일은 기필코 결판을 내고야 말겠다.’



한편, 이곳은 천인족 진지.


이곳에서도 앞으로의 전투를 두고 심각한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오늘 하루의 피해가 막대했기 때문이다.


“오늘 전투로 일만오천 명에 가까운 무사가 전사(戰死)하였소. 문제는 내일부터 더 심각해질 것이오.


비록 거인들 삼천 명 이상을 죽였다고 하나 아직 오천 명 이상이 남아 있는데, 우리는 그들을 막아야 할 초일류고수급이 오늘 많이 죽고 부상을 당했소.


만약 내일 전투에서 앞 전선이 붕괴되면 순식간에 후미의 중하급 무사들까지 수만의 전사자가 생길 것입니다.


지금 모두 진기가 고갈되고 심신이 지쳐서, 설사 오늘밤 쉰다고 하여도 쉽게 원기를 회복할 수는 없을 것이오.”


한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참석자들을 둘러보며 말하자 천사장이 먼저 나서서 영단 얘기를 꺼냈다.


“선인들이 제조한 영단을 금일 밤에 최대한 풀어서 지원하겠으나 그것이 얼마나 보탬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초일류고수들은 지금부터 내일을 위하여 충분한 휴식을 취하게 조치해 주세요. 그들 한 명이 후미의 수백 명 목숨과 다름없습니다. 선인들이 제조한 영단과 함께 모든 무가에서도 가진 영약(靈藥)들을 모두 풀도록 하세요”


그러자 모두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우리가 모두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 서 있는데 무엇이 아깝겠사옵니까? 모두 그리하도록 할 것이옵니다.”


한울이 조금은 안심이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천사장이 구자룬 총대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일은 오늘 투입하지 않은 비거들을 전부 동원하여 전투를 지원토록 하겠습니다. 효과가 그리 크지 않겠으나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 봐야지요. 그리고 만약에 우리 종족의 패색이 짙어지면 선인들도 과감하게 살계(殺戒)를 열겠습니다. 아무리 선도(仙道)에서 살생을 금한다지만 종족이 멸족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마지막은 우리가 모두 함께 해야지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시급한 안건들이 협의되고 식사와 휴식에 들어갔다.



‘영단이 필요하다고?’


영단 얘기에 쥬맥은 저녁에 천둔미리보(天遁迷離步)를 펼쳐서 주거지에 다녀왔다. 간 김에 금령파를 가져오면서 남아 있던 자오음양지(子午陰陽芝)를 커다란 봇짐째 그대로 들고 와서 천사장을 찾아갔는데······.


“아니, 너는 쥬맥이 아니냐? 오늘은 정말 고생했다. 네 덕분에 많은 사람이 살았어. 내일 또 싸우려면 푹 쉬어야지 왜 찾아온 것이냐?”


“실은 영초를 좀 가져왔습니다. 제가 산속에서 생활할 때 채취해서 보관한 것인데 보탬이 될까 해서요.


오늘 모두 진기가 고갈되어 내일 전투가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얼마 안 되지만 일선에 설 고수들이라도 나누어 먹였으면 해서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 그 마음만으로도 고맙구나.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선인들과 무가에서 가지고 있는 모든 영약을 풀기로 했다. 하지만 무사들의 수가 워낙 많아서 얼마나 보탬이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구나.”


천사장은 쥬맥이 가져온 커다란 봇짐을 당겨서 풀더니 그 안에서 진령닥 종이로 감싼 영초를 하나 꺼내 보았다. 그리고 내용물을 보자 깜짝 놀라는 천사장.


“아니! 이것은 그 귀한 자오음양지가 아니냐? 이 귀한 것을 한두 개도 아니고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었단 말이냐?


초일류고수급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원기를 회복하겠구나! 정말 다행이로다. 정말 고맙구나. 정말 잘되었어. 그런데 네가 직접 한울께 드리지 그랬느냐?”


천사장은 감격한 듯이 정말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너무 기뻐했다.


“제가 내놓은 것을 아무도 모르게 했으면 합니다. 귀찮아질 수도 있고, 또 이것으로 뭔가 원해서 생색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요. 이번 전쟁에서 보탬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우리 종족이 일심으로 단결하여 이번 멸족의 위기를 어떻게든 극복해야지요.”


“그래, 알았다. 정말 큰 보탬이 되겠구나. 정말 고맙다.”


천사장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이 녀석은 어떻게 욕심이 없나?’


쥬맥이 돌아가고 나서 천사장은 내일 선봉에 설 초일류고수급 숫자에 맞추어 자오음양지를 분배해서, 복용법과 함께 모두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복용(服用)하고 그 뜨겁고 차가움에 질겁하며 운기조식을 하는 무사들이 수없이 보였다.


운기조식을 마치고 나니 마치 온몸이 날아갈 듯한 개운함과 함께 원기가 전신에 가득 차오른다.


어디 그뿐인가? 십 년 이상 수련한 것과 맞먹는 내공이 늘어나자 모두 좋아서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중에 일부는 이십 년 이상의 효과를 보았다. 영약을 처음 먹어 보는 무인일수록 효과가 컸던 것이다.


천사장은 늦은 밤에 쥬맥이 가져온 자오음양지를 하나 들고 한울을 찾았다. 얼굴에는 웬일인지 가득 웃음을 띠고서.


한울도 오늘 이기어검을 쉼 없이 전개하느라 진기가 고갈된 상태여서 운기조식을 해야 하나, 천사장이 직접 찾아왔으니 만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천사장님이 이 밤중에 주무시지 않고 어인 일이십니까?”


“내일 전투를 위해서는 원기 회복이 필요하실 것 같아서 영초를 하나 가지고 왔습니다. 어서 드시고 운기조식을 하시지요.”


“하하하! 고맙습니다만 염려하지 마세요. 이미 가지고 있는 영단이 있으니 그것은 다른 무사들에게 주시지요.”


“이것은 일단 드셔 보시면 압니다.”


그러면서 천사장이 주머니에서 진령닥 종이로 두 겹을 감싼 자오음양지를 꺼내어 건넨다. 그러자 한울이 권고를 이기지 못해 종이를 벗겨 보더니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


“우와, 이것은 그 귀한 자오음양지가 아닙니까? 이것을 어떻게······. 이것은 쥬맥만이 가지고 있는 것 아닙니까?”


“예, 맞습니다. 실은 좀 전에 쥬맥이 영단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들었는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오음양지 한 봇짐을 모두 가지고 왔습니다. 자신이 가져온 것을 모르게 나누어 주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내일 선봉에 설 고수들은 모두 복용을 시켰으니 염려 마시고 드세요.”


“하하하! 우리 천인족의 복입니다. 이 어려운 때에 또 그 녀석이 몇만 명의 목숨을 살린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정말 다행이에요.”


“예, 정말 다행이지요. 이만 돌아갈 테니 어서 복용하십시오.”


“고맙습니다. 조심히 살펴 가시지요.”


천사장이 돌아간 뒤에도 한울은 다행이라고 몇 번을 되뇌었다.



대전 이틀째.


전장에도 어김없이 새벽은 찾아오고 마침내 다시 도검을 맞댈 날이 밝았다.


어젯밤에 초일류급 이상 고수들은 모두 자오음양지를 복용했고, 쥬맥 덕분에 일류급 고수들까지 위에서 밀려 내려온 영단을 받아서 복용했다.


그러자 모두 원기 회복뿐 아니라 내공이 증가하여 한층 사기가 올랐다. 새로운 전투를 준비하는 데도 활력이 넘쳤고······.


인간이란 누구나 같은 것! 사람의 목숨이 마치 파리 목숨처럼 하릴없이 스러져 가는 전장(戰場)에서 자신이 생존할 확률이 그만큼 높아졌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겠는가?


해가 떠오르자 또다시 모든 출전자들은 배를 든든히 채우고 전장에 대오(隊伍)를 갖추고 섰다.


진형은 어제와 비슷했으나 천인족은 일류급 무사들 중에서 출중(出衆)한 무사들을 골라, 어제 전사하거나 부상을 당해서 전투가 불가능한 초일류급 고수들의 빈자리에 채워 넣었다.


거인족은 후단의 전사들 천 명 정도를 거차 앞으로 전진(前進) 배치하여 거차와 낭아거를 보호하게 했고.


그때, 또다시 죽음을 재촉하는 듯한 전고 소리와 징 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지는데······.


둥둥둥~ 둥둥둥~ 둥둥둥~


쿠앙~ 쿠앙~ 쿠앙~


“전투를 시작한다. 모두 준비하라!”


“힘차게 전진하라!”


거인족이 일부가 부서진 거차 수백 대를 앞으로 밀면서 천인족을 향해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에는 일천여 명의 전사들이 늘어서서 거차를 보호했다. 그런데 거차가 천인족에 가까워지자 오늘은 하늘에 비거 수십 대가 나타나더니 단지 같은 것을 아래로 투척(投擲)하며 지나갔다.


쉬이이이잉! 쉬잉!


꽈앙~ 꽈과광~ 꽝!


갑자기 폭발하는 소리들이 크게 울리고 동시에 전고 소리도 울려 퍼졌다.


두둥~ 두둥~ 두둥~


“투석기를 발사하라!”


“투석하라!”


하늘에서는 비거가 폭뢰를, 땅 위에서는 투석기가 큰 돌들을 날렸다.


쉬우웅~ 슈융~


꽈가강~ 꽝~ 꽈가강!


무언가 날아가는 소리와 폭발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이번에는 부서지는 것만이 아니고 하늘에서 투척한 단지로부터 화염이 치솟아 거차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연기로 갑자기 어둑해지는 시야.


조금 지나자 땅에도 단지들을 묻어 놨는지 바닥에서도 폭발이 일어났다.


거인들이 당황하여 이리저리 쏠리는 사이에 거차들은 기름에 불타올랐다. 그러자 불이 뜨거워 접근하지 못한 거인들이 거차를 팽개치더니 무기를 들고 우르르 몰려나왔고······.


점점 접근해 오며 대력궁을 날리기 시작하자 천인족 진영에도 피해(被害)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두두둥~ 두두둥~ 두두둥~


“천궁을 쏴라!”


“발사!”


천궁과 사수가 대력궁에 많이 당했지만, 아직 건재한 천오백 기의 천궁에서 일제히 커다란 화살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쉬웅~ 쉬쉬쉭! 쉬 쉬쉬쉭!


파바바바박! 파바박!


“으아아아악!”


"커흑!"


사거리가 더 긴 천궁을 계속 연사(連射)하자 거인들 수백 명이 화살에 맞아서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래도 거인족은 앞장선 전사들 일천여 명을 내세워 긴 무기를 휘두르며 진격(進擊)해 왔다.


그중에는 삼 장 정도의 원반형 판자에 큰 쇠못을 가득 박아서 땅을 다지듯이 내리찍는 무기들도 눈에 띄었다.


거인들이 위에서 빠르게 내리찍으면 그 넓이가 커서 일류무사들도 피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


그때, 거인들이 몰려와서 코앞에 다다르자 쥬맥이 앞으로 나서더니 금령파로 음공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피 튀기는 전장에 맑은 음악 소리가 퍼져 나간다.


띠리링~ 띠리링~ 띠리리리링~


샤라랑~ 샤라랑~ 샤라라라랑~


핏핏핏! 피빗! 핏핏!


퍽버벅! 퍼억! 퍽벅!


“끄아아아아악!”


"끄으윽!"


음률에 섞인 노을빛 강기 여러 개가 뇌전처럼 빛을 뿌리며 날아가더니, 십여 명의 거인들 머리를 단번에 박살(撲殺)을 내버렸다. 꼭 수박을 깨트리듯이 말이다.


강기 여러 개가 줄줄이 날아가는데도 그 하나하나가 조종되어 어김없이 거인들의 머리를 맞추었고······.


아름다운 음악 소리에 전장에서 무슨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던 거인들은 기겁을 하며 놀랐고, 그것을 지켜보는 천인족은 사기가 충천했다.


“와! 죽여라!


무사들이 거센 함성과 함께 사기가 올라서 노도(怒濤)처럼 거인들을 밀어붙였다. 그러자 거인들이 허둥대는 사이에 또 수십 명이 즉사했다. 금령파의 강기에 맞아 순식간에 머리가 터져서······.


그러나 강기는 진기의 소모가 많은지라 점차 강기공에서 음파공으로 연주법을 바꾸어 금령파로 공격하는 쥬맥.


그러자 근처에 있던 거인들 수백 명이 갑자기 자신의 심장과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틀거렸고, 일부는 괴로워하다가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그때 쥬맥이 연주를 멈추자 무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그런 거인들의 심장에 도검을 쑤셨고, 쥬맥도 금령파를 수르에게 건네더니 검을 들고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검강이 발현된 백호제마검을 추켜들고 번개처럼 전장을 누비며 음파공에 당한 거인들의 목을 치는 쥬맥! 거인들에게는 죽음을 부르는 저승사자라 그들의 심장이 점점 공포로 물들었다. 주먹만 하다고 얕보던 천인족을 이제는 무서워하게 될 줄이야!!


그 모습을 본 천인족들이 ‘와!’ 하는 함성과 함께 더욱 거세게 공격하여, 비틀대는 거인들까지 수백 명을 순식간에 베어 넘겼다.


이제 전투는 백병전으로 치닫고···, 양측이 서로 죽고 죽이는 가운데 후미에서는 주술진이 펼쳐졌다.


두둥~ 두둥~ 두둥~


“현천행성진(玄天行星陣)을 펼쳐라!”


“진을 펼쳐라!”


중하급 무사들 수백 명이 조를 이루어 진을 펼치고, 주먹 크기의 마정단을 기석으로 땅에 박아 넣었다. 그러자 점점 검은 연무가 피어오르고, 무사들이 주변 사쾌의 행성들과 맞물려 돌아간다. 그 기세를 타고 거인들을 몰아붙이며 공방이 벌어졌고 말이다.


이제는 피가 냇물처럼 흐르는 전장!!


생명의 근본을 이루었던 붉은 피는 이제 생기를 잃고 흙으로 돌아가나니!


전투는 점점 열기를 내뿜으며 더욱 치열해지고······ 모두 피에 절어 자신도 모르게 광분했다. 마치 자아의식(自我意識)이 없는 미친 동물들처럼.


불에 타 죽을 줄 모르는 부나방처럼 죽음을 향하여 모여 들기 시작하니 영혼을 잃은 시신들이 산을 이루었다.


누구는 옆의 동료가 죽는 모습에 복수를 위하여, 누구는 종족의 생존을 위하여, 누구는 왜 이렇게 죽이고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눈이 벌겋게 광기에 절어서 칼을 휘두를 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짐승처럼 악귀(惡鬼)의 얼굴을 하고 미친 듯이 싸우더니, 어느 순간 그래도 먹고 사는 생명이랍시고 배고픔을 느끼는 모양이다.


배고프고 힘들어 죽겠는데 누가 이 전투를 중지시켜 주지 않나 하면서 자신들의 진영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눈앞에 널린 죽음 앞에서도 배고픔에 먹을 것을 생각하는 원시적인 사고가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었으니!


그것을 알아차리기라도 했는지 거인족 진영에서 큰 징소리가 울렸다.


쿠앙~ 쿠쿠앙~ 쿠앙~


“모두 서서히 후퇴하라!”


징소리에 따라 거인들이 천천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 큰 덩치에 긴 시간 싸움을 벌였으니 이제 배고프고 지친 것이리라.


그러나 오늘은 거차들이 대부분 비거의 공격으로 불타서 몇 대 남지 않은 것을 삐걱대며 끌고 가고 있었다.


천인족도 지쳐서 그 순간 대부분 제자리에 주저앉았고, 바빠진 의료대는 부산하게 움직이며 부상자를 실어서 후방으로 나르고 치료를 서둘렀다. 선인과 현자들은 환자 치료와 주술진이 파훼된 곳을 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오늘 전투로 거인들이 또 삼천여 명이나 죽고 수백 명이 중상을 입었다. 천인족 무사는 일만여 명이 죽고 중상자는 사천여 명.


경상자는 말할 처지도 못 되었다. 간단한 치료만 받고 다시 전장에 투입되는 것이다.


운신이 어려운 중상자는 어쩔 수 없이 응급조치 후에 주거지로 후송했다.


어제와 오늘 두 번의 전투에 벌써 이만오천여 명이 전사하고 육천여 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주 초기 같았으면 이미 멸족되고도 남았을 상황이 아닌가?



피해가 큰 거인족도 천인대 대장들을 불러서 심각한 회의를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천팔백여 명이 살아남았지만 이제 부상자를 빼면 전투가 가능한 전사는 채 이천 명이 되지 않았다.


진지 주변에는 끌어다가 쌓아 둔 거인들의 시신 육천이백여 구가 마치 큼직한 동산처럼 쌓여 있는데······.


힘이 빠진 샤리네가 입을 열었다.


“이제 전투가 가능한 전사는 이천 명도 채 되지 않는다. 어제 천인족이 무리를 했기 때문에 진기를 소진하여 오늘은 단숨에 쳐부술 줄 알았다.


그런데 무슨 비법을 썼는지 다시 생생하게 살아났어. 이제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


“만약에 천인족이 내일도 오늘처럼 다시 원기를 회복하여 덤빈다면 우리는 패해서 모두 죽을 수 있습니다.


전쟁을 장기전(長期戰) 전략으로 수정하여 원군을 요청한 뒤에 다시 싸우는 것이 좋겠습니다.”


군사 챵커테가 말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제 천인대장도 다섯이 죽고 다섯밖에 남지 않았으니.


“그럼 내일부터는 일단 전군의 접전을 중단하고 소규모 전투로 전환한다. 군사는 지급으로 보급품과 원군(援軍)을 요청하라.”


“그리하겠습니다. 식량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보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소규모 전투로 전환하면서 백 명 정도를 근처로 내보내 사냥으로 식량을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거차는 부서진 것이라도 진지 앞쪽으로 배치하여 적이 불시에 밀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1차 방어막을 친다. 지난번처럼 야간 기습에 당하지 않도록 경계를 철저히 하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작전이 협의되고 회의가 끝나서 모두 나가자, 샤리네는 챵커테와 함께 앉아서 작은 목소리로 다른 얘기를 계속 주고받았다.


그 말 중에 언뜻 천인족 주거지에 대한 말이 튀어나왔다.



여기는 천인족 진지. 여기서도 한울 주관으로 회의가 진행 중이다.


“그래도 오늘은 자오음양지 덕분에 잘 버틴 것 같습니다. 거인들이 오늘도 삼천여 명이 죽었으니 이제 전투가 가능한 인력은 이천 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을 겁니다. 앞으로 전투 양상(樣相)이 어떻게 변할 것 같은지 모두 생각되는 바를 말해 보세요.”


한울의 말이 끝나자 구자룬 총대장이 나서서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아무래도 내일부터는 소규모 전투로 전환하면서 진지를 지키고 장기전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커 보이옵니다.”


그러자 그 발언에 고개를 끄덕이던 야 대족장이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만약에 소규모 장기전으로 전환하면 우리는 고수들만 앞세워서 대응하면 되니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적이 원군을 요청한다면 그때는 정말 감당키 어려운 문제가 생길 것이옵니다.”


모두 그럴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거리는데 이번에는 비 대족장이 다른 관점에서의 의견을 내놓았다.


“지금 거인족은 장거리에서 식량과 보급품을 공급하고 있는데, 그 공급선을 차단시켜야 항복(降伏)을 하던지 물러갈 것이옵니다.”


그 말에 맞다고 무릎을 치는 한울.


“아주 중요한 얘기요. 그럼 비 대족장은 별도로 특공대를 조직하여 적의 보급선을 차단시키도록 하시오.”


“알겠사옵니다. 쥬맥과 백호대를 특공대로 내보내 거인족의 보급선을 차단하도록 하겠사옵니다.”


“그런데, 적이 식량 부족으로 우리 천인족의 식량을 노리거나 우회하여 주거지를 약탈할 가능성은 없겠소?”


이 문제에 대해서는 구자룬 총대장이 나서서 주거지 약탈(掠奪)시 방어 대책에 대한 의견을 내놓았다.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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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70화. 피 끓는 혈전 21.06.29 1,330 46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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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66화. 유리의 결혼 21.06.29 1,343 47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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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64화. 백호제마검의 비밀 21.06.29 1,354 47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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