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가 판타지에서 살아남는 방법

래퍼가 판타지에서 살아남는 방법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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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힌도의 전혀 뜻밖의 활약으로 여관에 들어올 수 있었던 우리는 방 두 개를 잡는 건 너무 염치가 없다고 판단하여 침대가 두 개인 방을 골라서 짐을 풀었다.

힌도의 털가죽 망토와 작은 보따리 안은 그야말로 잡동사니 창고였다. 아마 식량일 것으로 추정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덩어리에서부터 아까 보았던 토끼 한 마리. 날이 다 빠져서 이미 용도를 알 수가 없는 단검, 모르긴 몰라도 아마 저것보다는 내 작업용 커터칼이 더 잘 듣지 않을까. 당연하게도 돈이 될만한건 아무것도 없었고 저런 걸 대체 왜 가지고 다니나 싶은 것들 뿐이었다.

주섬주섬 열심히 짐을 푸는 힌도에 반해 가지고 있는 모든 짐이 입고 있는 검은 유니폼 잠바로 압축되는 나는 할 일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소지품 목록을 하나하나 점검해 보기로 했다.

검은색 유니폼 잠바, 그 안에 남색 유니폼 긴팔 카라티, 그 안에 땀 흡수용 하얀 반팔티, 10900원 균일가 행사 때 구입했던 검은색 르까X 트레이닝 바지. 발바닥에 3센치 깔창을 은밀히 간직한 하얀색 나이X 포스...

몸에 걸치고 있는 건 대충 이정도다. 그리고 안주머니에 현금 칠천원이 들어있는 지갑, 왼쪽 주머니에 작업용 커터칼이랑 모나미펜, 그리고 오른쪽 주머니엔 아직 약정이 남아있는 스마트폰... 스마트폰?

순간 눈이 번쩍 뜨인 나는 얼른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한때 시X릿X든 으로 아주 잠깐 유명세를 탔었던 그 문자왓숑폰... 따위 수식어가 중요할 리가 없으니까 집어치우고 나는 얼른 핸드폰을 켜서 화면을 보았다. 제발, 여기가 어딘지라도 알 수 있다면, 정말 혹여나의 행여나라도 서비스만 된다면...

서비스 안됨

“으아아아아아아 씨빨 에스케이 망해버려라 창고에서도 안터지더니 내돈돌려줘 우아와와ㅘ왁”

나는 부왁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던져버렸다. 그러면서도 바닥으로 던지려던 핸드폰을 순간적으로 침대 위로 수정 조준해서 던지는, 정말 이런 나자신을 3인칭으로 볼 기회가 생긴다면 이 장면에서 나는 웃어야할까, 울어야할까.

“왜, 왜 그래 진로크, 무슨 일이라도 있나!”

내 이름은 진로크가 아니라 진욱이야, 김진욱이라고 이 송곳니만 길쭉한 바보 자식아. 게다가 진로크는 사람 이름도 아냐, 트롤 보스몹 이름이었나, 그 보스몹이 떨구는 양손검 이름이었나, 아니아니 그게 아니라 이런 젠장 이 와중에도 난 왜 이런 바보같은 생각을 하는거냐고.

“후우...”

흔히들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날 보며 나쁜 버릇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도 머릿속을 차갑게, 냉정을 되찾으려면, 아마 뇟속을 얼음으로 찜질하는 것보다도 더욱 특효인 방법이 바로 이걸거다.

“지, 진로크...?”

치밀어오르던 신경질이 가슴속에서 장마철 먼지 가라앉듯 차분히 가라앉고, 급속도로 냉정을 되찾은 나는 일단 유니폼 잠바를 벗고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이런 때일수록 이성이 감성을 앞서야해.

“우선은”

우선은, 우선은 말이야 힌도.

“우, 우선은...?”

“씻자.”

네 녀석은 정말이지 냄새가 너무 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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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오어어어 싫다, 나는 물이 싫다.”

라고 외치는 힌도를 억지로 목욕탕으로 끌고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 녀석 덩치답게 힘이 엄청나게 세서 한사코 목욕탕 문간을 꽉 붙들고 늘어지는데 도저히 내 힘으로는 끌고 갈 수가 없었다.

“아니, 도대체 왜 안 씻겠다는 거야?”

씻지 않는 여행자라고 광고하고 다니고 싶냐. 다시한번 있는 힘껏 끌어당겼지만 2미터의 거대 근육질 몸뚱이는 역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싫다, 나는 물이 싫다.”

왜 나의 동행은 다른 판타지 소설에서 나오는 것처럼 절세미녀 엘프가 아니라 못생긴데다 물을 싫어해서 냄새까지 지독한 이런 오크 녀석이어야 하는 걸까.

무슨 어린애 씻기는 것도 아니고, 왜 나는 이런 데까지 와서 나보다 덩치큰 사내녀석을 목욕탕으로 끌고 들어가려고 끙끙대야 하는거지. 문득 서글퍼진 나는 힌도의 겨드랑이를 붙잡아 끌던 손을 놓았다. 순간 킁 하고 오른손 냄새를 맡아보니 아아, 후각이 마비될 것만 같아.

“그래, 네 의지가 그렇게 확고하단 말이지.”

“그렇다, 나는 물이 싫다.”

흐음, 하고 나는 눈을 감았다.

“그럼, 할 수 없지. 네가 랩을 배우는 것도 포기할 수밖에”

순간, 힌도가 눈을 번쩍 떴다.

“그, 그게 무슨 소린가! 씻는 것과 그 랩이란 게 대체 무슨 상관이...”

“기본이 안 되어 있지 않은가, 네놈은!”

짐짓 과장되게 버럭 성을 내며 나도 눈을 번쩍 떴다. 최대한 엄격하게 보이도록 미간에 힘을 주면서.

“기, 기본이라니...”

“랩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다시 버럭 하는 소리에 힌도가 순식간에 거북이목이 되었다.

“무엇보다 그 기본은 타인과 나의 소통! 나의 생각이 담긴 가사를 확실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네놈은 이미 그 입냄새가 글러먹었어, 입냄새가! 그 입냄새론, 아무리 랩을 잘해도 소용없어!”

사람들이 듣기도 전에 다 도망가버릴 테니까아아! 하며 드래곤이 브레스 내뿜듯이 일갈을 내뿜자 힌도가 더더욱 거북이목이 되어 모기 죽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그, 그럼, 입 안을 씻는 정도라면...”

“미달, 미달, 미달! 네놈의 그 입냄새도, 그 암내도, 네가 걸친 옷에서 풍기는 그 냄새도 모두 마찬가지야! 자격미달이라고 자격미달! 정말로 노래를 배우고 싶다면 자기 자신부터 가다듬어라, 라는 내 스승의 격언이 있다. 자기 자신을 가다듬지 않는 너 같은 녀석에겐 랩은 커녕 비트박스도 가르쳐줄 수 없어!”

“비, 비트...?”

“자아, 씻을텐가 말텐가, 결정은 네가 하도록 해라! 난 씻으러 간다!”

따라오던가 말던가! 하면서 돌아설 듯 말 듯 하면서 힌도의 표정을 살짝 살폈다. 3초에서 5초정도 망연한 표정으로 바닥을 내려다보던 힌도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얼굴에는 무언가 엄청난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나는 웃었다.

[evolutio..]

비트박스 ㅋㅋㅋ 소설에선 어떻게 표현하실런지 궁금하네요 ㅋ
붑 츳 췹 붑~붑 췹 ㅋ

[쑥떡쑥떡]

랩에 건전한 몸과 건전한 영혼이 깃드는 영혼의 랩!

[벨레]

아~ 힌도 너무 귀여운것 같아요~

[PIE]

비트박스도 가르쳐줄 생각이었나!

[나무나무나]

암내... 정말 오랜만에 접하는 단어네요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