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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퍼가 판타지에서 살아남는 방법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존존
작품등록일 :
2011.12.30 16:53
최근연재일 :
2011.12.30 16:53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39,620
추천수 :
423
글자수 :
62,544

작성
11.11.11 14:12
조회
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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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글자
6쪽

래퍼가 판타지에서 살아남는 방법 - 2

DUMMY

2





모두들 어느정도 예상했겠지만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니 나는 전혀 색다른 곳에 와있었다. 설마 이건 이계뽕빨차원이동판타지?!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렇게 사정이 좋지도 않았다. 차라리 이계뽕빨차원이동판타지물처럼 눈을 떴을 때 갈색머리 미녀가 살고있는 오두막이라거나, 하다못해 사방이 막힌 동굴이라거나, 그도 아니면 하다하다 못해 뾰족귀 엘프들이 살고 있는 숲속이라거나 하는 그런 정말 판타지스러운 상황은 개나 줘버리고, 나는 눈밭에 파묻혀있었다. 그것도 내 인생 24년 동안 대한민국 밖으로 나가본적이 없는, 그러니 내가 겪어본적이 있을 리가 없는 사나운 눈보라가 얼굴로 마구 몰아치는!


“나, 나는...”


어떻게 이렇게 재수가 없을 수가 있는 걸까.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얼어붙어서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가혹한 환경 하에서도 인간의 생존 본능이란 참 대단해서 내 덜덜 떨리는 손은 입고 있던 유니폼 잠바 지퍼를 목 아래까지 끌어올리고 있었다.

입으로 간신히 숨을 내뱉을 때마다 하얀 입김이 솟아나온다.

감전된 것까진 기억나는데, 내가 만약 죽은 거라면 여기가 천국은 절대로 아니겠지. 그럼 지옥인가. 별로 착하게 살진 않았지만 그렇게 나쁘게 살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하는 얼빠진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알고 있다. 여기서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비틀거리며 일어난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만히 보니 여기는 숲이긴 숲이었다. 내가 흔히 생각하는 녹색 무성한 나무 사이로 햇빛 내리쬐고 사슴이 뛰어다니는 숲이 아니라, 삐죽빼죽 살풍경한 나무들이 온통 흰 눈발로 뒤덮여있는 하얀 숲.


“시베리아...?”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금발머리 엘프가 살 만한 곳은 아닐 것 같은 이곳에서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지구상에서 생각나는 장소가, 혹은 빗댈만한 장소가 그곳밖에 없었다. 러시아에서 국제 스파이로 훈련시키기 위해 나를 납치한 건가. 정말 판타지스러운 생각을 해봤지만 아무래도 나같은 놈에게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여러 생각을 해보려고 해도 머릿속까지 얼어붙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나는 생각을 털어냈다. 엄마 보고 싶다 따위의 생각을 지금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다. 나는 유니폼 잠바에 달린 후드를 뒤집어썼다. Cass 로고가 달린 이 잠바가 생각보다 두껍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추워서 손가락이 얼어붙을 것 같지만 주머니 속에 깊숙이 파묻으니 동상에 걸릴 정도는 아니었다. 현실이 닥쳤으니 어쨌든 움직여야 한다. 엘프 따위는 없겠지. 아니, 겨울 숲이니까 윈터 엘프 같은게 있을지도 몰라. 검은 피부에 은색 머리카락...


“거기 누구냐! 인간인가!”


설마 있는거냐 윈터 엘프! 갑작스런 목소리에 말도 안되는 기대를 담아서 확 몸을 돌렸다. 언제 나타난 것인지, 나무숲 사이로 무척 따뜻해 보이는 털 망토와 털 후드를 뒤집어쓴 시커먼 무언가가 보였다.


“인간이군, 이곳에서 여행자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얼빠진 표정으로 바라보는 나에게 성큼 다가오는 그 덩치큰 모습, 그 걸쭉한 목소리는 아무래도 엘프는 아닌 것 같은데...


“나는 다이랑 오크 부족의 전사, 문명에 때묻지 않은 용맹한 바바리안 힌도라고 한다! 만나서 반갑다 인간이여!”


털가죽 후드를 벗고 넓은 가슴을 탕탕 치는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실감했다. 그렇다. 이것이 현실이다. 나에게 현실은 은발머리 엘프가 아니라 200센치미터의 키와 멋진 송곳니를 가진 오크였던 것이다. 깔창을 깔아서 겨우 180센치인 나는 자신을 힌도라고 밝힌 그 오크를 한참이나 올려다보아야 했다.


“이 혹한의 숲을 홀로 떠돌다니, 그 모습을 보니 너도 명예와 싸움의 전율을 찾아서 떠도는 전사로구나! 이름을 알려달라 인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추위와 이 생생함은 꿈이 아니다. 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사실은 오크가 말도 하고, 먼저 공격해오지 않는다는 것 정도일까. 추웠지만 나도 후드를 벗었다.


“나는 진...”


욱 이라고 말하려다가 멈칫했다. 만약 이곳이 내가 생각하는 그런 곳이라면 원래 내 이름은 분명 이상한 이름일텐데, 순간적으로 어떻게 나를 소개하는 편이 유리할까를 생각해낸 나는 어깨를 활짝 펴고 가슴을 두드렸다.


“나는 진로크, 멀리 세상 남쪽 끝의 정글 줄구룹에서 온 진로크다. 만나서 반갑다. 문명에 때묻지 않은 전사여!”


몇 년 전인가 밤새가며 했었던 온라인 게임의 설정을 아무렇게나 붙여댄 나는 손발이 오그라들어가면서도 힌도의 눈치를 보며 과연 나의 임기응변이 제대로 먹혀들어간 걸까를 살폈다.


“주, 줄구룹의 진로크!”


결과는 Yes 였다. 역시 이 오크는 이런 마초스러운 걸 좋아하는 녀석임에 틀림없었다. 오크 힌도는 감동받은 얼굴로 가슴을 탕탕 쳤다.


“다이랑의 힌도와 줄구룹의 진로크는 오늘부터 친구다!”


“친구다!”


마지막 말을 따라하며 나는 피식 웃었다. 아 역시 나의 임기응변은 대단하구나.


“친구는 함께 움직인다! 오늘부터 진로크와 힌도는 함께 다닌다! 가장 멋진 전투와 명예를 위하여!”


“...어...”


이, 이건 아닌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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