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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범 님의 서재입니다.

이방인은 이세계에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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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범
작품등록일 :
2022.10.26 13:12
최근연재일 :
2023.01.17 08:30
연재수 :
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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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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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02,771

작성
22.11.1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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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8화

DUMMY

“바, 방금 그건 뭐죠?”


엘레니아는 눈을 부릅뜨고 아직도 백광으로 빛나는 로안의 검을 바라보았다.

마력을 지금 막 다루기 시작하는 로안이 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자신조차 검에 마력을 담는 것을 길고 긴 시간을 거쳐 이루어 냈다.

이걸 재능이라 말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검의 능력이라 말해야 하는 건지.


엘레니아의 두 눈이 깊어졌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알아야 대답을 해줄 텐데.

로안은 엘레니아보다 더 놀랐다.

몸에 힘이 없었다. 뽑아낼 수 있는 모든 걸, 검에 빨린 듯 두 다리에 힘이 풀렸다.

더이상 버틸 수 없었던 몸이 휘청거리더니 이내 바닥으로 쓰러졌다.


“얼씨구, 별꼴을 다 보는구나.”


세리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 한심한 눈초리로 로안을 훑어보았다.

저 몸에서 저런 힘이 나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로안이 나무의 정령을 무찌른 것도 사실이었다.

그녀는 로안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니 인정할 수 없었다.

자신도 해내지 못한 일을 고작 한낱 인간이 했을 리 없다고 부정했다.


“이봐요.”


날선 엘레니아가 그녀를 붙잡았다.


“뭐가.”

“지금 할 말 다 했나요? 도저히 이젠 참고 두고 볼 수가 없네요.”


로안은 저 둘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을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뭐, 어쩌라는 거지? 저 녀석이 아니어도 내가 해치울 수 있었어.”

“거짓말하지 마세요. 당신이 정령에게 고전을 면치 못한 것은 이미 우리가 다 봤으니까요. 로안이 아니었더라면 이곳에서 우리 모두 죽었을 거예요. 아닌가요?”


엘레니아는 철저하게 사실만을 이야기했다. 그런 사실이 세리스의 자존심을 더욱 건드렸다.


“너, 한 마디만 더하면 그 입을 찢어버리겠어.”


엘레니아의 말에 기분이 상한 세리스가 위협적으로 말했다.


“좋아요. 저도 바라던바.”


그녀는 검을 뽑으며 걸었다.


둘의 시선이 교차한다.

한 명의 인간과 한 명의 엘프는 서로에게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극에 달하는 순간이었다.

파바박-

두말할 것 없이 서로가 먼저 움직였다. 엘레이아의 검과 세리스의 단검이 서로 부딪혔다.

말없이 서로 노려보기만 했다. 힘에서 밀리지 않은 두 사람은 밀어내어 거리를 벌린 뒤 다시 돌격하려 했다.


“그만 하세요!”


그 모습을 지켜본 로안이 소리를 질렀다.


“······.”

“······.”


그 소리에 엘레니아와 세리스 모두 자세를 낮춘 채로 발을 떼지 않았다.


“이러고 있을 시간 없는 거 알잖아요. 그리고 너도. 인간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거 알아. 지금은 서로 협력해야 할 때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는 거야.”

“나는 협력할 생각 따위 없었다. 이건 내 의지가 아닌 시르파의 의지야.”


세리스는 차가운 태도를 일관했다.


“아무리 시르파의 의견이라도 우리가 서로 대립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어. 어린애도 아니잖아. 그러면 좀 생각이라는 걸 좀 해라.”

“너···”


그녀가 눈을 부릅뜨고 로안을 노려봤다.

로안도 더 이상 참지 않았다. 목숨이 달린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건 장난이 아니다. 등을 댄 서로를 믿지 않는다면 이미 이번 일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솔직히 말해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불나방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은 나도 그냥 참고는 못가.”


로안이 무섭게 그녀를 노려보았다. 서로 지지 않겠다는 눈빛이 서로를 쏘아보았다.


“흥···”


그녀가 뾰로통하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혼자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녀를 잡지 않았다. 혼자 생각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후우···”


로안이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쉬었다.


“엘레니아. 도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로안은 그녀가 이러는데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사실 어느 정도 이해는 하고 있지만, 이젠 애들 장난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 않을까.


“미안해요.”


세리스를 날카롭게 쳐다보던 눈빛은 사라졌다.


“미안하다고 끝날 일이 아니라는 거 알잖아요. 우리에겐 믿음이 필요해요. 말하기 어려운 과거가 있다는 건 잘 알아요. 그런데 그게 이번 일보다 중요한 건···”


아차.

로안은 말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그녀의 표정에 로안은 그만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기분이 들었다.


“엘레니아···”


로안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미안해요···”


그녀가 차갑게 뒤돌아섰다.


‘차갑다.’


그녀의 태도가 차가운 것이 아니다.

엘레니아가 뒤돌 때 흘렸던 눈물이 로안의 볼에 튀었다.

그 거리에서라고 말 할 수 있지만.


바람이 불어왔다.


*


엘레니아는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로안이 했던 말이 귀에 맴돈다.

악의가 담긴 말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마음이 아려오는 걸 참을 수 없었다.

혼자 마음에 두려고 했던 게 잘못일까. 다만 잘못이 있다면 제대로 말하지 않은 것이 문제다.

그렇다고 로안에게 이해를 바란다는 게 아니었다.

이 문제는 철저하게 내 개인의 문제였으니까.


“하아···”


내 모습에 절로 한숨이 나온다.

너무 한심했다. 감정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화를 내고 또 눈물을 보였다.

아마도 내가 눈물 흘린 걸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또 나를 찾겠다며 아마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진 않을지···.


“엘레니아 한참 찾았잖아요. 혼자 위험하게 이런 곳까지 오면 어떡해요.”


로안은 조심스럽게 엘레니아의 등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왜 찾아왔어요.”


로안은 대답하는 엘레니아 옆에 앉았다.


“미안해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굴어서. 그런데 엘레니아. 사람은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잖아요. 어떤 사연이 있는지 엘프와 어떤 악연으로 이어졌는지.”

“미안해요 말 못하겠어요. 사실 들어도 그렇게 좋은 이야기는 아니에요.”

“좋자고 하는 소리가 아니잖아요. 또 이런 상황을 만들어낼 순 없어요, 그 이야기에는 동의하나요?”


엘레니아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아요. 그러면 천천히 심호흡하면서 하고 싶은이야기를 해주세요.”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한 로안이 그녀의 눈을 부드럽게 바라보았다.

엘레니아는 뜸을 들였다.

말해도 괜찮을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니까.


“어렸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는 기사였어요. 이곳에서 나고 자라신 건 아니지만, 기사를 은퇴하고 저와 함께 살았죠. 어느 날 전쟁이 일어났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검을 들도 맞서 싸우셨죠.”


엘프와 인간의 전쟁. 종족 대전은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전쟁이었다.

지금은 그 관계가 원활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엘레니아와 세리스처럼 상처가 아물지 않고 곪아가는 곳도 있었다.


“어렸을 적 저도 어머니와 아버지를 지켜드리겠다는 마음 하나로 전장으로 나갔어요. 하지만 어린 여자아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죠. 방해만 됐을 뿐이에요. 그날 제 선택으로 어머니와 아버지는 목숨을 잃으셨어요. 제 어리석은 선택 하나 때문에···”


비극적이다.

어린 소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대의 비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함부로 위로할 수 없다. 그녀의 자조 섞인 모습에 깃든 비통함은 이루 말할 순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엘프들을 싫어하는군요.”

“맞아요. 엘프들은 제 부모님의 목숨을 앗아갔어요. 인간과 엘프가 전쟁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겠죠.”


엘레니아는 알고 있었다.

이 일의 근원이 모두 나한테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엘프를 탓하고 원망하는 건 자기만의 방어 기제였다.

그마저도 부정해 버린다면 자기가 부모님을 죽였다는 사실을 인정해버리는 꼴이 되어버린다.

자신에게 내재된 깊은 방어기제가 엘프를 싫어하고 혐오하게 된 그런 계기가 아니었을까···


“우습죠?”


엘레니아는 무릎을 끌어안았다.


“우습긴요. 저라도 그랬을 거예요.”


로안은 일어났다.

뭐 어떻게 설득하고 그럴 만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인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이었다.


“저는 먼저 일어나 볼게요.”

“저도 같이 가요.”

“아니에요. 조금 더 있어도 돼요. 친하게 지내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요. 마음이 진정되면 돌아와요. 나무의 정령이 쓰러트린 곳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


로안은 자신이 말한 곳으로 되돌아가니 세리스가 뚱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녀가 로안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말없이 쳐다봤다.

꼭 그 눈빛이 엘레니아는 어딨느냐고 물어보는 느낌이었다.


“알아서 올 거야.”

“누가 물어봤나.”


그녀는 쪼그려 앉아 나무맡에 등을 기댔다.


“나는 인간이 싫어.”


그녀가 높낮이 없는 말투로 말했다. 푸념을 늘어놓는 것이다.


“나는 인간의 추악한 마음이 싫고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준 게 싫어 몇 백년 전 인간은 우리들을 노예로 부렸지.”


부끄러운 과거 이야기에 로안은 이곳 사람이 아니었지만, 얼굴이 발개졌다.

과거 역사서에 자랑스럽게 적힌 글을 본 적이 있었다. 몇백 년 전 이야기였다. 초대 황제는 엘프를 노예로 들었다.

종족 전쟁에서 패배한 자들의 비참한 말로였다.


“너희들에게는 짧은 역사일 뿐이지만, 우리에게는 역사가 아닌 이야기야. 나도 그리고 시르파도 또 세스토도. 몇백 년 전의 치욕스러운 기억을 잊을 수 없어.”


로안은 둘의 복잡한 이야기가 참담했다. 아무래도 이 둘은 이 이야기가 끝나가는 동안 서로를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군.”


로안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햇살이 무성한 이파리 사이로 쪼개진 빗살들이 주변을 비췄다.


‘어지럽네···’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구 하나 이해 못할 일이 아니다. 충분히 통감하고 가슴이 아팠다.

그래도 우린 가야만 했다. 이미 의뢰도 수락했다.

그리고 이번 일로 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녹아든다면, 그걸로 큰 수확이지 않을까.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었다.

로안도 한 인간과 엘프의 마음을 돌려놓으려는 걸 포기했다.


“아 왔어요?”


엘레니아가 돌아온 것은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기 위해 모닥불을 피워놓았을 때였다.

조금 오래 혼자 있었던 엘레니아가 어색한 모습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배고프지 않아요?”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조금만 기다려요 먹을 것을 구해와 보죠.”


로안은 활과 화살을 가슴에 둘러매고 사냥감을 물색하기 위해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아쉽게도 사냥감은 찾을 수 없었다.

그 순간 이 숲이 굉장히 작위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동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도 그렇고 풀벌레 우는 소리조차 말이다.


“······.”


잎사귀가 들썩거리는 소리에 로안이 극도로 긴장된 표정으로 화살을 겨누었다

활시위가 바짝 당겨진 그곳이 가리키는 곳에서 사람이 등장했다.

로안은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사람···?”

“어, 진짜 사람이네···”


로안이 발견한 뒤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얏! 무슨 일이야 갑자기 멈춰서고 그러면 어떡해! 멍청아.”


여자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고개를 옆으로 내밀어 앞을 보자 로안과 눈이 마주쳤다.


“어? 사람이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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