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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범 님의 서재입니다.

이방인은 이세계에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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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범
작품등록일 :
2022.10.26 13:12
최근연재일 :
2023.01.17 08:30
연재수 :
77 회
조회수 :
15,098
추천수 :
717
글자수 :
402,771

작성
22.11.0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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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2화

DUMMY

로안과 엘레니아 그리고 지금 이 집의 주인 드레이는 아무말 없이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침묵 가운데 서늘한 눈빛을 보내며 서로 심리를 자극하는 중이었다.

한동안 말없이 눈빛을 교환하던 드레이가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안개가 내가 벌인 짓이라고 단정 짓는 이유가 있나? 나는 이 마을에 정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

“안개가 시작된 것도 당신이 오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죠. 드레이씨.”

“그걸로 나를 몰아가겠다? 이곳 감비아 마을은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모인 마을이야. 나 말고도 이곳에 드나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자신을 몰아가는 탓에 화가 난 드레이는 책상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분들 대부분 마을을 떠났죠. 드레이씨 말고는 이곳에 정착하고 있는 사람은 이곳에 젊음과 청춘을 다 바친 사람들이고 이런 저주가 낀 곳에 드레이씨가 남아있을 만한 이유는 없어 보이는데요?”

“이건 억지야...! 나도 감비아 마을이 좋아! 이곳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단 말이야! 너희들이 뭘 안다고 몰아가는 거지? 그래! 결정적인 증거를 가져와 증거를!”


다소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인 드레이는 증거를 요구했다.

로안은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카펫이 드리워진 바닥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드레이. 이곳 지하에 무엇이 있지?”


드레이가 정곡을 찔린 듯한 표정이었다.


“아, 아무것도....”

“정말인가? 지금 우리가 서있는 이 카펫 바닥에 정말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로안은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단순한 구조의 집에 대문짝만한 양탄자가 깔려있었다. 바닥에는 먼지가 소복하게 쌓여있었는데, 그 양탄자만 상당히 깨끗한 모습이었다.

로안은 그 모습을 본 순간 확신이 들었다. 범인은 바로 드레이라는 것을.

확신이 선 로안의 행동은 과감했다.

드레이를 밀치고 식탁은 옆으로 던져버렸다.


“이, 이봐 뭐 하는 짓이야...!”


드레이의 손이 로안의 몸에 닿기 전에 양탄자가 펄럭거렸다.

네모나게 벌어진 틈 사이가 보였다.

드레이는 그것을 보고 망연자실 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

“드레이씨 저희가 지금 보고 있는 게 뭡니까?”


드레이는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로안과 엘레니아를 번갈아 보았다.

순간 그의 눈이 빛나고 로안과 엘레니아를 뚫고 밖으로 나가려 하였다.


“어딜!”


엘레니아의 손이 번뜩이며 몸을 날렸다.

드레이와 함께 바닥에 엎어진 그녀가 드레이의 오른손을 꺾어 고통을 주었다.


“끄아아악! 그, 그만...!”


“저건 뭘까요? 드레이씨”

“모, 몰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놓은 거겠지!”

“드레이씨 더 이상 거짓말하면 재미없어 지금까지 사람이 출입했던 흔적들이 다분하단 말이야. 그리고 당신의 팔을 꺾은 엘레니아는 거짓말하는 사람을 아주 싫어해. 목숨을 온전히 보전하고 싶다면 솔직하게 털어놓는 게 좋을 거야.”


로안은 협박에 가까운 수준으로 드레이를 절벽 끝까지 밀어붙였다.

모든 걸 들키고 말아버린 드레이의 몸에 힘이 쫙 빠졌다.


“몇 달 전. 검은 후드를 쓴, 알 수 없는 자가 나에게 돈을 주고는 저 밑에 보관한 장치를 은밀한 곳에 숨겨달라고 했어. 잘 숨겨주기만 한다면 돈을 더욱 얹어주겠다고 했지.”


그가 모든 걸 실토하기 시작했다.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 봐요.”

“나, 나도 자세하게는 잘 몰라 그냥 저 기계를 숨겨달라는 말을 했고, 나는 그걸로 돈을 받은 거란 말이야. 그리고 내일이 그 마법사한테서 돈을 받는 날이라고...!”


드레이의 말을 들은 로안의 표정이 긍정적으로 변했다.


“좋아요. 드레이 우리에게 협력하면 그 협력한 것으로 제가 잘 말해드리도록 하죠. 내키지 않으시면 그냥 감옥에 들어가도 좋죠.”

“······.”


드레이는 두려운 듯 로안을 올려봤다. 그는 태연한 눈빛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엘레니아는 입을 꾹 다문 상태로 드레이를 무섭게 노려보는 중이었다.


로안이 빙그레 웃었다.


“잘 선택하세요. 당신의 선택으로 형량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

“그건 간단해요. 내일 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러 가면 되는 거죠. 어렵지 않죠?”


드레이가 지금까지 자잘한 범죄를 저질러도 살아남았던 이유는 바로 빠른 눈치였다.

로안의 말을 대충 이해한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허튼 생각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걱정하지 말라고 나도 눈치는 있다고. 너와 저 사람은 강하니까···”


드레이는 억울했지만, 그렇다고 배신할 용기까지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


“로안 그 기계를 해체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만약 그 기계를 해체한다면 드레이가 말한 마법사를 잡을 수 없을 거예요.”

“하지만 바토리 씨의 의뢰는 마을에 뿌려진 운무를 없애달라는 거였어요.”

“음···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만약 그 마법사를 잡지 못한다면. 이 마을과 똑같은 마을이 있을 게 분명해요.”


로안은 문제의 근원을 바로잡지 않으면 똑같은 일이 벌어지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맞는 말이네요.”

“엘레니아가 말했잖아요. 모험가는 선택을 강요받을 거라고 아무리 불합리한 선택이더라도 말이에요. 엘레니아 제 선택에 후회는 없어요.”


로안의 흔들림 없는 태도에 그녀는 어째선지 안심이 되었다.


“대단한 결심이군요. 로안.”


*


다음 날.


로안은 자연스럽게 앞으로 걷는 드레이를 따라 미행했다.

어제 그들이 따라붙었다는 걸 눈치챈 드레이는 한숨을 푹 쉬었다.


‘도망쳤다간 죽게 생겼네···’


‘도망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접어야 할 것 같다.


드레이는 뒤를 힐끔 돌아보고는 주머니에서 돌을 꺼내어 주문을 외웠다.

검은 후드를 쓴 마법사가 알려준 주문이다. 이 주문을 외우면 어디선가 신비스럽게 마법사가 등장하였다.


“······.”


아무런 반응이 없자 드레이가 당혹스러운 듯 돌멩이를 흔들었다.


“이봐! 마법사 이봐!”


드레이가 아무리 큰소리로 떠들어 봐야 메아리만 돌아올 뿐이었다.


그 순간.

드레이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당황한 그는 다리를 버둥거리며 소리쳤다.


“뭐, 뭐야! 살려줘! 이봐 거기서 지켜만 보지 말고 살려달란 말이야!”


드레이는 로안이 숨어있는 쪽을 바라보며 간절하게 외쳤다.


“잔챙이를 달고 왔구나. 쓸모없는 놈.”


갑자기 아래에서 홀로 나타난 마법사는 드레이가 일정 높이까지 떠오르자 그대로 마법을 풀어버렸다.


“···이, 이봐! 날···”


쩌억-


로안은 바라보던 고개를 돌렸다.


기괴하게 꺾인 그의 허리가 힘없이 스르륵 옆으로 쓰러졌다.


“그만 나오지.”


마법사의 부름에 로안과 엘레니아는 몸을 숨기던 나무 뒤에서 모습을 등장시켰다.


“당신이로군 안개의 범인이.”

“정확해 녀석을 노리고 이곳을 찾아올 줄은 몰랐군. 꽤 쓸만한 놈이었는데 말이야. 아쉽게 됐어. 괜히 너희 때문에 죽여버렸잖아. 쩝···.”


그는 진심으로 아쉬운 표정으로 혀를 찼다.


“왜 그랬지? 저 안개는 도대체 뭐고.”

“어리석은 놈 네놈이 묻는다고 해도 내가 대답해야 할 이유는 없을 텐데.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주는 줄 아는 멍청한 놈으로 알고 있군.”


그가 로안을 향해 조소를 보냈다. 그는 곧 웃음을 그치고 말했다.


“네놈들이 와도 이제 상관없다. 어차피 모일 마력은 모였으니 말이야.”

“마력이 모여?”


의미심장한 소리에 로안이 되물었다.


“그래! 이제 마력은 모였다. 네놈들에게 보여주어야겠군! 바로 마신님의 강림을 말이야!”


그의 웃음과 동시에 하늘이 어두워졌다.

로안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잔뜩 먹이 낀 하늘뿐이었다.

곧 강력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그 마력에 피부의 털이 바짝 설 정도다.


“이게 뭘까요···”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거예요. 로안 조심하세요.”


가라앉은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이미 검을 빼놓은 상태였다.


“버러지 같은 것들! 감히 신의 힘에 대적하려 하다니! 죽어라!”


하늘이 개벽한다.

로안은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말 그대로 개벽이다.

허공에 갑자기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그 균열의 틈이 더욱 벌어지기 시작했다.


‘마, 말도 안 된다.’


아무리 이세계라고 하지만 상식을 뛰어넘는 일이 벌어지니 믿기지 않았다.


“로, 로안···”


엘레니아 역시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는 이상 현상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균열의 틈에서 무언가 보기 역한 것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 껄끄러울 정도로 혐오스러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감상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그들의 속도는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속도였으니 말이다.


“엘레니아!”


엘레니아의 검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날카로운 발톱을 저지했다.


“로안! 저들을 상대해야 합니다.”


순간 검이 번뜩인 엘레니아의 검이 정체불명의 괴물을 반으로 갈랐다.

초록색의 찐득한 피를 검신에 묻힌 그녀의 검이 소리 없이 휘둘러졌다.


“마계다! 마신의 힘을 나는 반드시 얻을 것이다! 마신 데히야스여 당신의 힘을 내게 넘겨라! 나는 대마법사···”


마법사는 그 발악하는 모습에 더욱 미친 듯이 웃었다. 그들을 비웃으며 하는 다음 말은 영원히 이을 수 없게 되었다.


균열의 중심에서 날아온 보랏빛의 사악한 창이 그의 몸을 꿰뚫었다.

그는 창이 자신을 꿰뚫은 줄도 모른 채 웃던 표정 그대로 갔다.


‘저, 저건···’


로안은 마법사를 죽여서 균열이 닫히지 않는 것이 절망 그 자체였다.


“엘레니아 저 마법진을 닫아야 해요.”

“알고 있어요.”


비교적 로안보다 움직임이 자유로운 엘레니아는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나 혼자 해야 해.’


서로를 지켜주기란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선 자신을 믿고 가차 없이 검을 휘두르는 것이 생존의 확률을 높였다.


‘생각하지 마라.’


그러면서도 살기 위해 발악하며 생각하는 로안은 웃음이 났다.

검을 쥔 것이 어색했다.

그 어색함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꼴이 되어 버렸다.


‘검이 무겁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처음으로 검이 무겁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을 막아서고 공격하는 몬스터들을 베어 넘기며 로안은 분명 전진하고 있었다.


“엘레니아!”


그녀가 위험했다.

뒤가 비어버린 그녀의 모습에 로안이 외쳤다.

찰나의 순간 그녀의 오른팔이 움직였다.

괴물보다 배는 더 빠른 속도였다.

허리가 반으로 갈라진 괴물은 그대로 힘없이 철퍼덕 쓰러졌다.


“괜찮아요. 로안?”

“네, 저는 괜찮아요. 이거 정말 큰 일인데요···”


그 순간 강력한 마력이 느껴졌다.

아까보다 더 털이 곤두설 정도의 마력이었다.

그걸 바라본 엘레니아의 표정이 끝까지 가보겠다는 표정으로 돌연 변했다.

‘이건 정면으로 받으면 죽는다···’


로안은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있는 힘껏 뒤로 당겼다.


“무, 무슨 짓이에···”


말할 시간도 대답할 시간도 없었다.

그대로 강력한 마력이 로안을 향해 쏘아졌다.


‘네가 그렇게 신비스러운 검이라면··· 한 번 막아보란 말이다!’


초강수를 뒀다.

이게 로안의 뜻대로 될지 안 될지는 도박이었다.

그 짧은 순간, 검신에 미약한 빛이 흘렀다.


‘그래, 한 번 해보자.’


검과 함께 빛난 로안의 검이 세상을 갈라버릴 듯이 휘둘러졌다.


작가의말

항상 봐주시는 독자님에게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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