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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범 님의 서재입니다.

이방인은 이세계에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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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범
작품등록일 :
2022.10.26 13:12
최근연재일 :
2023.01.17 08:30
연재수 :
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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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5
추천수 :
717
글자수 :
402,771

작성
22.11.0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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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0화

DUMMY

꽤 긴 시간이 흘렀다.

낮과 밤을 밖에서 고된 시간이 흐르며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부친 상황이 되었다.

로안은 땅기는 허리를 쫙 펴며 말했다.


“이번 마을에 들러서 식량을 사고 조금 쉬었다 가는 게 어때요?”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안 그래도 지도상으로 얼마멀지 않은 곳에 마을이 있다고 표시되어 있어요.”

“좋아요 그러면 조금 더 힘내서 가볼까요?”


들었던 말 중에서 가장 좋은 소식이었다.

노숙을 하게 되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괜히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었다.

진짜 개고생이다.

로안은 드디어 그 개고생의 끝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뭔가 으스스하네요···”


로안이 중얼거렸다.


희한하게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희끄무레한 안개가 잔뜩 끼어있었다.

그 모습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상당히 부자연스러웠다.

사진에 억지로 안개를 끼워 넣은 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원래 이런 마을이 아닐텐 데요···”“그러게요.

“이곳을 알고 있어요?”

“예전에 수행기사 시절에 들렸던 기억이 있거든요. 그때는 활기차고 이런 안개도 없었던 걸로 기억해요.”


엘레니아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녀의 기억 속에 있는 모습은 이제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삭막함만 남은 자리에 그녀는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엘레니아가 걸음을 멈추었다.


“이곳은 제가 수행 기사 시절에 신세를 졌던 아주머니 집인데 아직 저를 기억하시려나 모르겠네요. 일단 문을 두들겨 볼까요?”


엘레니아가 문을 가볍게 두들기자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바토리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저 몇 년 전에 이곳에 잘 곳이 없어서 묵었던 엘레니아라고 해요. 혹시 저를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바토리라 불린 그녀는 기억이 날듯 말듯 한 아리송한 얼굴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곧 기억이 떠오른 듯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엘리! 그간 잘 지내고 있었니? 이게 얼마 만이야! 정말 몰라볼 뻔했잖니.”


바토리는 엘레니아를 안아주었다.

마치 멀리 떨어진 가족과 재회라도 하는 듯 상당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녀의 시선이 곧 옆에 있던 로안을 보았다.


“엘리? 혹시 남편감이야···”

“그, 그런 거 아니에요. 여행을 같이하게 된 동료예요! 아주머니···”

“정말? 다행이구나 엘리! 너의 남편감으로서는 매우 부족하지 않을까 싶었거든!”


사람 상처받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바토리를 보며 로안은 쓰게 웃었다.


‘맞는 말이기도 하니까.’


반박을 못 한다는 게 더 슬픈 일이다.

저 아주머니의 말이 틀리진 않았으니까.


로안은 큼큼거리며 목을 풀었다.


“크흠 엘레니아와 이번에 아르바토스 공국까지 같이 모험을 하게 된 로안이라고 합니다.”

“나는 바토리라고 해요. 옆에 있는 엘리와는 몇 년 전 인연이 닿아 우리 집에서 지내기도 했지. 그러지 말고 둘 다 얼른 들어와.”


바토리는 로안과 엘레니아를 집에 들이고 따듯한 차와 다과를 내주었다.

이곳까지 오는 길에 비도 조금 내린 터라 따듯한 차는 일품이었다.

차를 끝까지 다 마신 엘레니아가 물었다.


“그보다 바토리, 마을에 낀 안개는 뭐예요? 비가 와서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그전에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마을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그러게 말이다. 우리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으면 좀 좋으련··· 벌써 마을에 안개가 끼기 시작한지 3개월이 넘어간단다. 언젠가는 사라지겠지··· 사라지겠지··· 마을에서는 그냥 그렇게 넘겨버리고 있고.”

“모험가 길드에 의뢰는 해보셨어요?”

“안 해본 게 없지. 모험가 길드는 또 의뢰 비용을 너무 높게 잡으니까. 완벽하게 해결해 줄 수 있냐 물어도 돌아오는 건 애매한 답변뿐이어서 사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란다.”


넋두리를 늘어놓는 바토리는 고민이 깊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렇군요···”


엘레니아의 얼굴에 좋지 않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괜찮다. 시간이 지나면 언젠간 괜찮아지겠지. 일시적인 거라 다들 믿고 있으니까. 조금만 더 지켜보면 될 거야.”


바토리가 애써 웃는 것이 보였다. 엘레니아의 굳은 얼굴을 풀어주기 위해 억지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이 티가 난다.


“그렇다면 그 의뢰를 저희에게 맡겨 주시는 건 어떤가요?”


가만히 옆에 있던 로안이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자네한테?”

“네, 모험가가 된 지 얼마 안 됐지만, 엘레니아와 함께 조사해보도록 할게요.”


바토리의 시선이 못 미더워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모험가 길드에 당한 것을 생각하면 속이 쓰렸다.

그래서 이번 일을 의뢰하는 것도 마을에서 망설인 것이다.


“의뢰 비용은 오늘 차려주신 밥 한 그릇으로 충분합니다. 어차피 저희도 마을에 꽤 머물 예정이니 그냥 한 번 지켜봐 주세요.”


그런 사정을 알 리가 없는 로안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직도 바토리의 마음은 갈피를 정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믿어봐요.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정말 저희는 따듯한 차 한잔으로 충분하니까요.”


바토리의 양손을 꼭 잡은 엘레니아가 말했다.


“후우··· 그렇구나. 엘리의 친구인데 그럴 수가 없지. 믿지 못해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충분히그럴 수 있죠.”


*


“엘리라고 불렸나봐요?”

“엘레니아보단 엘리가 입에 감겨서 그렇게 부르신 거 같아요.”

“엘리라는 이름이 이쁘네요. 책에서 보던 물의 정령의 이름이기도 하잖아요.”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로안도 책을 많이 읽으셨나봐요.”


로안은 성에 있을 때 이 세계를 조금 더 깊게 알아보기 위해 적당한 책들은 모두 읽었다.

그중에서 정령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는데, 지금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제가 있었던 세계에서는 보통 운디네라고 부르는 게 거의 전통과도 비슷했는데 막상 정령의 이름이 엘리라니까. 뭔가 색다르네요.”

“운디네라··· 굉장히 물의 정령일 것 같은 이름이네요. 로안 그보다 처음 의뢰를 진행하는데 모험가와 의뢰자의 계약에 대해서는 숙지하고 있나요?”


엘레니아는 계약에 관해 물었다.


“모험가와 의뢰자의 계약?”

“맞아요. 처음 의뢰를 진행하는 거라 로안은 아직 미숙할 거예요. 길드에서 안 알려줬나 보군요?”

“맞아요. 알려줄 분위기가 아니기도 했죠. 워낙 쌀쌀맞으니까.”


그녀가 빙그레 웃었다.


“그랬었죠.”


로안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제가 알려줄 테니 잘 들어요. 계약은 모험자와 의뢰자가 계약의 신에 의해 계약서를 작성하게 될 거예요. 자 이걸 보세요.”


로안의 손목에 잠들었던 모험자의 증명패가 황금빛으로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계약의 신의 힘이 모험가와 의뢰자의 사이를 증명하기 위해 두 개로 나누어졌다.


“꺄악-!”


짧은 바토리의 비명이 들렸다.

그녀는 로안과 엘레니아가 목욕할 수 있게 목욕물을 받아놓고 그들에게 말해주려고 들어왔다가 이상한 걸 봐버렸다.


“이, 이게 뭐야?”

“바토리 씨와 계약할 계약서예요.”


인간은 처음 보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건 로안 또한 마찬가지다.


“계약하겠다는 의지를 표출하세요 그러면 계약이 자동으로 이루어질 거예요.”


엘레니아의 말에 둘은 그 말 그대로 따르자 황금빛이 더욱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빛은 한순간 짧게 빛나며 사그라들었다. 로안이 중얼거렸다.


“······끝난 건가?”

“계약이 이루어졌네요!”


엘레니아가 잘 됐다는 듯 손뼉을 쳤다.


그 박수 소리에 정신을 차린 바토리가 말했다.


“목욕물 받아놨으니까. 좀 씻으렴.”


그들은 상당한 기간 동안 씻지 못했다.

씻긴 했어도 가끔 보이는 계곡물에 잠깐 몸을 씻고 나온 터라 온 몸에 찌든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 상태로 밥도 먹고 계약도 하고 할 건 다했다.


“그럼 저 먼저 씻을까요?”

“네, 그러세요. 저는 조금 나중에 씻어야겠어요.”


로안은 그녀가 씻는 동안 안개가 잔뜩 낀 마을을 보았다.


‘참, 멋들어진 마을이군.’


판타지 소설에나 볼법한 일들이 로안의 기대감을 잔뜩 충족시켜 주었다.


*


“로안?”


어느새 다 씻고 나온 엘레니아가 뜨거운 김을 풀풀 풍기며 뒤에서 나타났다.


“아, 엘레니아 다 씻었나요?”

“그럼요. 여기서 뭐 하는 중이었어요?”

“그냥 냄새도 나고 집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하하···”

“그런가요? 아무래도 우리가 조금 많이 더럽긴 한 거 같더라구요. 얼른 들어가서 씻고 와요.”


로안은 뜨근한 물에 몸을 담갔다.

그동안 고생했던 일들이 떠오르며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오우거에 의해 목숨을 잃을 뻔했지만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어떻게 죽였는지도 기억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치열한 전투였던 것이 틀림없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넬리의 집으로 옮겨진 지 오래였다.


‘내가 이렇게 변할 줄이야···’


로안은 그렇게 생각하며 씻는 것을 마무리했다.


“오랜만에 시원한 것 같네요. 바토리 아주머니는요?”


로안은 젖은 머리를 탈탈 털며 기다리고 있던 엘레니아를 향해 말했다.


“먼저 들어가서 주무신다고 하셨어요. 아무래도 피곤하신 것 같아 보이네요.”

“그렇군요. 저희 방은 어떻게 쓰죠?”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같이 써야 할 것 같아요.”


로안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래도 오래 같이 생활하여 그렇게 부끄럽지는 않았다.


‘남자라면 오히려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닌가?’


로안은 이상한 생각에 자기 혼자 깜짝 놀라며 머리를 흔들었다.


“왜 그래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색하게 웃는 로안을 보고 엘레니아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 이건 뭔가요?”


그렇게 말하며 로안은 포도처럼 생긴 과일을 입에 넣었다.


“왜그래요? 레비스 맛이 좀 이상한가요?”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익숙한 맛이 나서 조금 깜짝 놀랐다고 할까요?”

“로안이 살던 곳에서 레비스 같은 과일이 있나 보군요.”

“네 맞아요. 포도라고 하는데 정말 똑같이 생겼네요.”


생각보다 맛이 괜찮은지 계속 입에 털어 넣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내일은 아무래도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탐문수사를 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탐문수사, 괜찮은 방법이군요.”

“일단 마을에 이상한 점은 없었는지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접근하는 걸로 하죠.”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 로안은 손목을 들어 신의 힘이 담긴 증명패를 소환했다.


“많이 신기하신가보네요?”


엘레니아는 신기해하는 로안을 바라보고 덧붙여 설명했다.


“로안의 손목에 들어있는 마법은 로안이 모험가를 그만둘 때까진 계속 유지되고 있을 거예요. 다른 보통의 모험가들도 이 손목의 증명패로 자신의 실적을 증명하죠.”


실적을 증명한다는 소리에 사뭇 긴장감이 맴돌았다.


“어려운 길이 될 거예요. 로안, 불합리한 선택을 강요받기도 하고 그 선택에 따라 다른 사람이 불행해질 수도 있어요. 옳은 길을 걷는다 생각해도 뒤를 돌아보면 그 길이 옳은 길이 아닐 때가 많을 거예요.”


맞는 말이었다.

선택을 강요받는다는 말이 로안의 가슴을 찔렀다.

그전에 있던 넬리의 일에도 로안은 선택을 강요받았다. 그게 큰 선택이든 작은 선택이든.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건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로안은 잘 해낼 거라 믿어요.”


다른 곳에 시선이 머물던 그녀의 눈이 로안을 정면으로 마주 보며 웃음 지었다.


“그럼요. 당연하죠.”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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