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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범 님의 서재입니다.

이방인은 이세계에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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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범
작품등록일 :
2022.10.26 13:12
최근연재일 :
2023.01.17 08:30
연재수 :
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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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2
추천수 :
717
글자수 :
402,771

작성
22.11.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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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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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8화

DUMMY

델릭은 마차를 몰고 두 사람을 마을까지 데려다주는 중이었다. 죽을 맛이었다. 그 많은 날 중에 하필이면 오늘 가서 모든 걸 죽 쒀서 개 준 날이 되어버렸다.


“···도착했습니다.”


억지 미소를 지어보며 엘레니아와 로안에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그렇게 억지 미소 짓지 않아도 돼, 엿같은 마음 잘 알아 하필이면 오늘 그 많은 날 중에 오늘을 선택해서 말이지. 맞지?”

“그, 그럴 리가요 당치도 않습니다. 사실 제가 나쁜 짓을 한 게 맞으니까요. 하하···”


델릭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그녀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엘레니아는 가식적인 모습에 같잖다는 듯이 흘겼다. 그녀는 도도한 걸음으로 델릭의 옆을 스쳐 지났다.


“전당포에서 기다려 일을 마치고 너희 전당포로 찾아갈 테니까. 도망갈 생각은 하지도 마. 찾아가서 없애 버릴 테니까.”

“명심하고 있겠습니다.”


델릭이 허리를 바짝 숙였다. 로안은 그를 안쓰러운 듯 한 번 쳐다봐 주고는 엘레니아의 뒤를 쫓았다.


“오우거의 머리를 들고 우리는 모험가 길드를 찾아갈 거예요. 그리고 오늘 로안의 모험가 증명패까지 발급받을 거에요. 운이 좋아 다행히 오우거의 머리 덕분에 일정을 앞당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가요? 그보다 엘레니아 보기보다 무서운 면이 있네요.”

“약한 사람을 위협하는 사람에게서 지키는 것이 바로 제가 할 일이니까요.”


엘레니아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모험가 길드에 도착하였다. 작은 길드였는데 엘레니아는 대부분 이런 건물일 거라면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무로 된 바닥에 발을 딛자 끼이익- 불안한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바닥이 꺼지거나 그런 불상사는 없었다. 그녀는 접수원이 있는 곳까지 다가갔다.


“어서와.”


길드 접수원으로 보이는 아줌마 건들건들 대충 눈을 흘기더니 인사했다.


“모험가 증명패를 발급받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누구? 아가씨? 아니면 저 옆에 있는 도련님의 증명패를 발급받으러 오셨나?”

“제 옆에 있는 사람입니다.”


엘레니아가 최대한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흠··· 기본 증명패를 가지고 있나?”

“그렇습니다.”


로안은 품에서 기본 증명패를 접수원에게 건네주었다. 접수원 아주머니는 로안의 증명패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모험가 증명패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시험에 통과해야 해. 저 문을 열고 나가면 시험 담당관이 케이지가 있을 테니까 가서 성적서를 가져오도록 해.”


그녀는 대충 쓴 종이를 로안에게 건네주더니 이내 볼 일 다 끝났으면 가보라는 투로 말을 끝냈다.


“감사합니다”


로안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접수원이 가리킨 대로 문을 열고 나가니 뒤뜰이 나왔다. 아무것도 없이 어떻게 시험을 치른다는 건지 의문이 들 정도로 텅 빈 곳이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모험가 시험을 보러 온 로안이라 합니다.”

“아, 난 케이지다. 이곳에 모험가 시험을 보러오는 사람도 참 오랜만이구만.”

“그런가요?”

“그렇지. 모험가는 이제 딱히 선호하는 직업이 아니니까. 잠도 편히 못 자 매일 위험에 빠질지 알 수가 없어, 그리고 수입은 수입대로 짜지. 누가 하고 싶겠나. 기피 대상 중에 하나지 하나야.”


케이지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보다 자네 모험가 시험을 치르고 싶다고? 대충했다고 하고 그냥 가.”

“그래도 되는 겁니까?”

“안되고 자시고가 어딨어, 내가 감독관인데 어차피 하루에 저번 달을 시작으로 모험가 시험을 보러 온 사람이 딱 너 하나다.”


케이지는 한 숨을 푹 쉬더니 로안은 처량한 눈으로 보았다.


“너도 모험가 같은 거 하지 말고 적당히 실적 좀 쌓다가 나처럼 길드에 몸 담그면서 좀 편하게 살던지 그렇게 해. 모험가 진짜 할 거 못 된다···”


케이지는 아직 애송이처럼 보이는 로안을 위아래로 훑었다.

검을 두 개나 찬 모습을 보고 기가 차 웃음도 나오질 않았다.

원래 없는 놈들이 유난 떠는 법이라 생각하는 그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머지않아 한 명 또 가게 생겼습니다.’


로안은 그 표정을 보고 살짝 기분이 나빠지려 했다.


“아 저 그리고 오우거를 토벌해서 머리를 가져왔는데 혹시 심사에 영향을 끼칠까요?”


로안이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지만, 케이지의 반응은 그렇지 않았다.


“뭐? 오우거를 잡아?”


로안은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똘똘 말아 가져온 오우거의 머리를 꺼내 보였다. 엘레니아가 그 상태 그대로 마을로 가져간다면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거란 말에 헝겊으로 감싼 것이다.


케이지는 침을 꿀꺽 삼키며 깔끔하게 잘린 오우거의 머리를 유심히 보았다. 두 손으로 길이를 재는 시늉도 해보며 감긴 눈을 열어보기도 했다.


“정말 오우거로군···”


그가 오우거의 어금니를 확인하고 말했다.


“이걸 자네 혼자서 잡았나?”

“그렇습니다.”


케이지의 눈이 좁아졌다. 정말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런 애송이처럼 보이는 녀석이 오우거를 잡는다니 말이 되질 않았다.

하지만 어렸을 적부터 마나의 깨달음을 얻은 기사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설마 기사인가?’


그런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었다.

케이지가 로안을 보는 눈빛이 대번에 달라졌다.


“그렇군 시험을 치르도록 함세.”

“시험은 안 하신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나요?”

“제대로 된 싹이 나왔는데 제대로 된 시험을 치르지 않으면 되겠나. 난 또 자네가 어디서 굴러먹다 들어온 그런 놈인 줄 알고 있었네.”


케이지가 말을 너무 대놓고 하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로안은 한숨을 내쉬고 어떤 시험이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케이지는 큼지막한 바위를 가리키더니 이내 바위 쪽으로 다가가 손바닥으로 바위를 툭툭 쳤다.


“이걸 가르면 동장 1급 모험가로 인정해 주겠네. 그리고 예비 은장패까지 얻을 수 있도록 힘을 써주겠네.”

“그래도 되는 건가요?”

“나는 진정한 모험가한테는 지원을 아끼지 않아. 그리고 자네가 그 오우거의 목을 쳤다는 것을 완전히 믿을 수 없어서 말이야. 이 바위도 반으로 쪼개지 못한다면, 자네의 말은 거짓이 되는 거겠지.”


케이지의 그럴듯한 말에 로안은 검을 뽑았다. 오우거를 벴던 그 검이었다. 푸른 빛을 머금은 로안의 검은 그대로 바위를 반으로 갈랐다.


“됐습니까?”

“됐네, 자네는 기사 출신인가? 어째서 모험가가 되려고 하는 게지? 그보다 그 실력으로 귀족 양반의 기사로 들어가는 게 더 손해 보지 않고 살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알고 보니 케이지는 수다쟁이였다.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비록 그게 다른 누군가가 기피하는 모험가 일지라도요. 세상의 모든 것을 제 두 눈에 담고 싶다고나 할까요?”

“낭만이로구만. 그런 눈빛을 가진 자한테 내가 너무 예의가 없었던 것 같네.”


대충하기만 했던 케이지의 눈동자에 생동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자네는 앞으로 대성할 모험가로구만. 로안··· 이라고 했지? 자네의 활약을 기대해 보도록 하겠네, 왠지 자네라면 터무니없는 일을 해낼 것 같은 기분이야.”


케이지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엄지손가락을 척 내밀었다.


그는 생각했다.


‘잘 못 걸렸으면 좆될 뻔했다···’


이럴 때일수록 그냥 웃고 보내버리는 게 제격이었다.

로안은 그걸 보고 피식 웃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로안이 안으로 들어와 접수원에게 성적서를 건네주었다.

성적서를 받아 본 그녀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로안을 쳐다봤다. 성적서에 나온 등급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뜻이 담긴 눈빛이었다.


“무슨 문제있나요?”

“문제는 없는데···”


그녀는 찜찜함을 감추지 못하고 무언가 이상하다는 티를 팍팍 냈다.


‘동장 1등급 이게 말이야?’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결국 동장 1등급의 증명패를 받은 로안이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엘레니아와 밖으로 나왔다.


“드디어 증명패를 받았군요?”

“그러게요.”


모험패를 받으니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엘레니아는 붉게 상기된 로안이 귀엽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증명패에 대한 한 가지 비밀 아닌 비밀을 알려 주었다.


“로안 그거 알고 있나요?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는 증명패에 숨겨진 마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요?”

“그런 게 있어요?”


그녀는 직접 말로 하기보다는 보여주는 것을 선택했다. 그녀가 손을 내밀자 그녀의 손목에 새겨진 문자들이 밝은 빛을 내면서 증명패가 그녀의 손에 생성되었다.


“특수한 증명패들은 모두 마법으로 처리되어 있어 이런 게 가능해요. 직접 들고 다닐 수도 있긴 하지만 모험하면서 그러기에는 너무 번거롭잖아요.”

“이런 걸 보면 제가 살던 시대보다 기술력이 더 뛰어난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마법이라는 것은 정말 대단하네요···”

“로안도 가능할 거예요. 손을 내밀어 보세요. 제가 도와줄 게요.”


엘레니아가 로안의 손목을 잡고 뭔가를 만지작거리자 이내 증명패가 사라지더니 손바닥만 한 빛을 뿜는 구체가 만들어졌다. 그 구체는 곧바로 로안의 손목으로 향하여 스며들었다.


“이걸 연동 마법이라고 해요. 대단하죠?”

“진짜 대단하네요.”


로안은 마법이 신기한 것인지 증명패를 소환과 해제를 반복했다.


“로안 그러면 델릭의 가게로 가보도록 할까요? 증명서도 받아야 하니까요.”

“그러네요 아직 일이 마무리가 된 것은 아니니까요.”


로안은 소환한 증명패를 다시 해제하고 엘레니아와 함께 델릭의 전당포로 향했다.


문을 열고 두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한 델릭은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어, 어서 오십시오.”

“증명서를 받기 위해 왔다.”


엘레니아가 좀 전과는 전혀다른 모습으로 델릭에게 말했다.


“예 미리 준비 해놓은 게 있습니다. 제가 잡고 있는 저당을 완전히 포기하겠다는 각서입니다. 절대 그 가족들의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겠습니다. 기사님···”


델릭이 건넨 각서를 받은 엘레니아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것으로 더는 책임을 묻진 않겠네, 하지만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시에는 자네 이종의 사촌의 머리까지 잡아내어 처형할 것이야. 내 기사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도록 하겠네.”


로안은 책에서 본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다. 기사의 말은 그 능력이 있고 효력이 있었다. 게다가 기사가 말로 맹세한다는 것은 그게 죽을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이행하겠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었다.


그래서 기사들은 함부로 맹세하지 않는다. 그런 엘레니아가 맹세의 약속을 하는 것을 보아 상당히 지켜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아, 알겠습니다···”


이 시대 기사라는 이름의 무게는 결코 적지 않다. 자신이 알던 중세 시대의 기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들이었다. 마나라는 자연의 물질을 다루고 그들은 그것을 이용해 육체를 초월하는 힘을 가졌다.


“좋아. 그럼 돌아갈까요 로안?”

“좋아요. 가는 길에 부모님게 지어드릴 약을 사는 건 잊지 않았겠죠?”

“아, 그랬었죠. 완전히 깜빡 잊고 있었어요··· 로안이 아니었더라면 그냥 갔을 거예요.”


그녀의 대답을 들은 로안은 작게 미 소지었다. 기사다운 모습도 좋았지만, 이런 맹한 구석이 있는 엘레니아의 모습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얼른 사서 돌아가도록 하죠. 넬리가 목이 빠지라 기다리고 있겠어요.”


작가의말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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