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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님의 서재입니다.

나 혼자 100층 회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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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12.12 09:23
최근연재일 :
2023.01.28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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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5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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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라헬 스트로디아

DUMMY

37.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 촛불 하나를 켜고 적진으로 달려드는 기분을 아는가.


스거억!


끝도 없이 밀려드는 몬스터의 수해를 뚫고 단 하나의 목표로 달려든 경험이 있는가.


스거어억!


고든의 단검을 몇 번이고 던지고 회수하길 반복하며 차도윤은 쓰게 웃었다.


‘옛날 생각나네.’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와 비슷한 순간은 수없이 겪어봤다고 자부한다.

아니, 지금보다 안 좋은 상황을 더 나쁜 조건으로 공략해본 적도 많았다.

적어도 82층부터는 세상 전부가 그를 말려 죽이려는 데에서 혼자 살아남아야 했으니까.

몬스터의 수해를 뚫는 건 오로지 그의 몫이었고 그에게 할당된 일이었다.

근데 지금은 어떤가.


“앞에 제대로 막아!”

“······막고 있어요!”

“전열을 유지해! 난쟁이를 쫓아!”

“뒤처지면 죽는다! 아무도 못 구해줘!”


정신없이 소리치며 각자의 무기를 휘두르는 헌터들이 그의 양쪽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라! 오라! 양껏 들어오라!

-아주 신나셨군. 교양 없게.

-하여간 귀쟁이, 입이 귀에 걸린 주제에 솔직하지 못해.

-그, 그건······!


오크와 엘프가 티격태격하면서도 손발을 맞추었다. 난쟁이가 거인 기준의 촛불을 일으켰고 그 옆으로 매드릭이 달려들었다.


-외성이 보입니다!


힘겹게 난쟁이의 어깨에 올라탄 참새가 날카로운 소리로 경고를 해왔다.

차도윤은 어두컴컴한 배경과 영 어울리지 않은 하얀 외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에 존재하면 안 될 것처럼 너무나도 이질적인 색감이라 더욱 눈에 띄었다.


미로의 틈, 심층부.


하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려면 넘어야 하는 산은 몇 개 더 남아 있었다.


-저건 내 몫이겠군.


엘프가 활을 꺼내들며 가공할 만한 마력을 바깥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저건 내꺼다!


마찬가지로 그 옆으로 나선 오크가 온몸의 근육을 꿈틀거리며 도끼를 움켜쥐었다.


-따라하지 마라.

-누가 할 소리!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던 오크와 엘프는 이내 정면을 향해 내달렸다.

그곳엔 그들을 닮았지만 거무튀튀한 색감을 가진 분신이 포효하고 있었다.


-이참에 승부를 가르면 되겠군.

-딴 말 하기 없다!


큰 목소리를 낸 둘은 그대로 정면의 분신과 맞부딪쳐 전투를 시작하였다.

오크는 엘프의 분신을.

엘프는 오크의 분신을.

재밌는 건 티격태격하면서도 둘의 움직임은 짜서 맞춘 것처럼 합이 착착 맞는다는 거다.


“우린 바로 넘어가죠.”

“······안 도와주고요?”


누가 우위라고 할 수 없는 전투가 펼쳐지고 있었다. 분위기만 봐서는 오크와 엘프의 승리는 장담할 수 없었다.

하물며 분신 중 한 놈이라도 오크나 엘프를 흡수해버리면 상황은 역전된다.

꽤나 부담이 큰 싸움이다.

하지만 차도윤은 확신이 있었다.


“이겨요. 망령이 되었다고 무작정 약해지는 건 또 아니니까.”

“네?”

“오히려 약해졌기에 강해질 수 있는 겁니다. 저 둘은 그걸 실현해냈고요.”


영문을 몰라하는 사람들을 일별하고 차도윤은 매드릭이 부순 성문 안쪽으로 들어섰다.

뒤편에서 전투의 소음이 계속해서 들려왔지만 더 이상 신경도 쓰질 않았다.

말했듯 둘은 이길 것이다.


‘여태 망령들이 제 분신을 찾고자 움직이지 않은 건 이기지 못해서가 아니니까.’


난쟁이와 다르게 본질이 호전적인 저 둘은 망령이 된 이후로도 수련을 멈추지 않았으니까.


‘문제는······ 그놈.’


차도윤은 내성으로 향하는 길목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 성의 보스 몬스터다.’


정면으로 달려드는 매드릭과 참새의 분신을 보며 차도윤은 단검을 움켜쥐었다.


“빠르게 정리하고 넘어가죠.”


*


이후로도 공략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제 힘을 되찾은 난쟁이는 그 큰 주먹으로 연신 성을 부수며 난동을 부렸다.

매드릭과 참새의 분신도 대단히 어려운 고생을 하지 않아도 이겨낼 수 있었다.

아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쉬웠는지도 모르겠다.


‘뭐······ 당연한 거겠지.’


차도윤의 시선엔 생각보다 더 많은 활약을 보여주는 헌터들이 보였다.

김태하부터 김희우, 안유리도 그렇고 전혀 도움이 안 될 것 같던 이들조차도 큰 활약을 펼쳤다.

전투는 수월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아무렴 2회 차야.’


처음 보는 던전이라고 해도 전생보다 수준이 높아진 그들에겐 무난한 난이도다.

애초에 미로의 틈이 어려운 건 오감을 망가트리는 빌어먹을 시스템 탓이다.

모종의 기법으로 대처하질 않는다면 몹시 곤란했고, 연신 마력을 운용하느라 싸우기도 전에 체력도 힘이 다 빠지는 던전.

미로의 틈은 그래서 어렵다.

하지만 난쟁이의 부적을 가지고 있는 한 빌어먹을 시스템은 간단히 무용지물이 된다.

헌터들의 제약은 사라진다.

이제 여긴 하드 난이도가 아니다.


“보스 룸입니다.”


우려했던 것보다 무난하게 보스 룸을 앞에 둔 일행은 침을 꼴깍 삼켰다.

고즈넉하고 묵직한 기운이 풍겨나는 문 너머로 가공할 만한 마력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끼이익.


가까이 다가가자 손을 대지도 않고 열리는 문은 마치 유령의 집 같았다.


-외지인인가.


고풍스러운 식탁을 앞에 두고 얼굴이 허여멀건한 청년은 찻잔을 드리우고 있었다.

핏기 하나도 보이질 않는 창백한 피부와 입 밖으로 툭 튀어나온 날카로운 어금니.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놈이 어떤 종류의 몬스터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놀라는 건 지금부터였다.


-그러지 말고 들어와서 앉지.


느긋한 어조를 내뱉자마자 순식간에 주변의 풍경이 바뀌고야 만 것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일행 전부가 테이블 위에 앉아서 찻잔을 드리우고 있었다.

개 취급을 당했는지 매드릭만은 홀로 바닥에서 밥그릇을 핥고 있었다.


-이, 이 무슨······!


당황스러운 일행을 향해 녀석이 씨익 웃고 있었다.

그들의 옷차림이 아주 흡족스럽다는 듯.

녀석은 박수까지 쳐대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제야 볼만 하겠어.


주변을 둘러보니 헌터들의 복장은 하나같이 중세풍의 예복을 갖추어 입고 있었다.

한 순간에 중세의 귀족이 된 일행은 각자의 옷차림을 둘러보며 황망한 눈을 떴다.

특히.


“난 왜 여자옷이야?”


꽉 막히는 코르셋에 미간을 구긴 김태하는 성난 목소리를 내며 보스 놈을 노려봤다.


-마음에 안 드는가?


한 순간 분위기가 반전하며 중세 풍의 풍경은 눈앞에서 지워지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으로 나타난 풍경을 본 헌터들은 하나같이 기함을 지르고야 말았다.

어찌 안 놀랄 수 있겠는가?


“여, 여긴······?”


베이스 음이 둥둥 거리고 번쩍이는 조명이 다양한 색감으로 내부를 비추었다.

춤추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취기가 올라 어깨를 들썩이는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


“클럽이 왜 나와?”


어느덧 일행의 손에 쥐어진 건 찻잔이 아닌 술병 째로 들린 샴페인이었다.

쫙 달라붙는 옷차림을 한 안유리는 헛헛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여기 어딘지 알아요. 여기 분명······.”


그녀는 말하던 중 옆 테이블에 앉은 누군가를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양세희?”


하지만 그녀의 말에도 양세희란 사람은 이쪽을 돌아보지도, 아예 대꾸조차 안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냥 배경입니다.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못해요.”

“······네?”

“그나저나 아는 사람인가보죠?”


안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다마다요. 쟤 죽는 걸 두 번이나 봤어요.”


모르긴 몰라도 2회 차에 이르고서도 결국 살아남지 못해 죽어버린 사람인 모양이다.

안유리는 말없이 샴페인을 내려다보다 다시 차도윤에게 시선을 돌리고 물었다.


“대체 여기 뭐죠? 뭔데 이런······.”

“그거야 놈이 말해주겠죠.”


언제 스테이지에 올랐는지 한껏 춤을 추던 녀석은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 앞엔 어설프게 정장 조끼를 걸쳐 놓은 매드릭이 이를 으르렁대고 있었다.

보스 놈이 중얼거렸다.


-이것도 마음에 안 드는가?


다시 눈을 깜빡이자 일행은 처음 고풍스럽던 보스 룸의 정경으로 돌아왔다.


-취향을 말해주게. 맞춰주지.


이후로 주변의 풍경은 파노라마가 돌아가듯 여러 가지의 형태로 변하였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오션뷰 카페, 고즈넉한 산세가 어우러진 어느 이름 모를 산장.

치열한 분위기가 감도는 고등학교의 수험장이나 잔뜩 긴장한 얼굴이 가득한 논산 훈련소도 나왔다.

곧 웬 평범한 아파트의 한 가정집도 눈앞에 나타났고.


“어, 엄마?”


황망히 중얼거리는 김희우의 어깨를 꾹 누르며 차도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배경입니다.”

“하지만 저기 엄마가······.”

“정신 차려요. 그러다 당신의 모든 걸 내줄 셈입니까?”


차도윤은 김희우를 안유리에게 맡긴 채 서서히 시선을 돌려 보스를 바라보았다.

이대로 두면 김희우가 자아를 잃고 그대로 분해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슬슬 장난은 그만두지?”


모름지기 미로의 틈 심층부엔 누구나 알 법한 생김새의 몬스터가 자리를 잡고 있다.

허여멀건 얼굴과 툭 튀어나온 어금니··· 고풍스러운 복장에 금방이라도 박쥐로 변할 것만 같은 녀석.


“뱀파이어 라헬.”


우리들의 상식과 조금 다른 점은 눈앞의 뱀파이어가 빨아먹는 건 피가 아니라는 거겠지.


-음······?


차도윤은 태연자약한 태도로 찻잔을 드리웠다. 호록, 한 모금 마시니 꽤 잘 끓여진 달큰한 맛이 혀끝에 느껴졌다.


“그러지 말고 내 기억도 한 번 음미해보는 건 어때?”


그는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재밌을 거야.”


들려오는 대답도 없이 주변의 풍경은 금세 뭉개지고 새로운 형상을 갖추었다.

반쯤 넋이 나간 김희우의 뒤편으로는 이곳과 꽤 닮았지만 미묘하게 다른 방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흐음.


온몸이 토막이 난 한 마리의 뱀파이어가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쿠우웅!


토막이 난 뱀파이어는 박쥐로 변하더니 죽을힘을 다해 달아나고 있었다.

그 뒤를 쫓아 얼굴이 흐릿한 사내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걸이를 내보였다.

사내가 칼을 한 번 휘둘렀다.


스거어억!


사내의 앞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은 공평하게 수평으로 잘려나가고 있었다.

그게 가당키나 한 풍경인가.

저도 모르게 목을 매만지던 라헬은 볼품사납게 바닥을 뒹굴던 배경의 자신을 바라보았다.

사내는 박쥐의 앞에 서서 천천히 검을 빼어들고 사나운 눈초리로······.


팟!


결말을 채 확인하기도 전에 눈아프이 풍경은 처음의 보스 룸으로 바뀌었다.

차도윤은 이죽이며 말했다.


“어때? 볼만 하지?”


시선을 마주한 라헬의 얼굴엔 처음의 여유는 씻은 듯이 사라져 없었다.

경악, 공포, 충격, 당황······.

온갖 감정이 휘몰아치고 마지막으로 남은 건 이 순간에 대한 지독한 부정이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어. 어찌 인간 따위가 나를······ 감히 나를?


하지만 한 걸음을 내딛자 녀석의 한쪽 무릎은 절로 바닥으로 굽혀졌다.


-으읏!


또 한 걸음을 내딛으니 다른 무릎도 볼품사납게 바닥에 딱 붙고 말았다.


-으으읏!


당황한 놈이 반항하듯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난리를 쳤지만 전부 소용이 없었다.


“라헬······ 아니, 라헬 스트로디아.”


아예 온몸이 바닥에 딱 붙어 엎드려버린 녀석은 겨우 고개만 위로 들었다.


“그래. 그 정도가 딱이다.”

-크앗!

“너에게 내려다볼 권리는 없거든.”


녀석의 얼굴엔 이젠 배경 속 공포에 젖어들었던 라헬만큼이나 짙은 당혹감이 묻어났다.


“잊지 마라. 내가 널 살려둔 이유를.”

-!

“잊지 마라. 내가 널 죽이고자 했던 이유를.”


이윽고 표독스러운 눈깔을 뜬 놈에게 차도윤은 더욱 강제하듯 말했다.


“잊지 마라. 너의 주인을.”


눈앞의 메시지는 애써 무시한 채.


[하급 마족 ‘라헬 스트로디아’가 당신의 명을 불복종합니다.]

[하급 마족 ‘라헬 스트로디아’가 당신의 명을 불복종합니다.]

······(중략)······.

[하급 마족 ‘라헬 스트로디아’에게 영혼 계약의 족쇄가 발동합니다.]


둘 사이로 치열한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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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그냥 받아들이세요. 무엇이든 23.01.10 1,940 55 12쪽
31 증명해보이면 되겠지? 23.01.09 1,955 57 12쪽
30 그때랑 지금은 시세가 다르지 +1 23.01.08 2,011 57 13쪽
29 줄래야 줄 것도 없어 23.01.07 2,058 5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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