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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님의 서재입니다.

나 혼자 100층 회귀자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12.12 09:23
최근연재일 :
2023.01.28 21:15
연재수 :
5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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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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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83,832

작성
23.01.09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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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글자
12쪽

증명해보이면 되겠지?

DUMMY

31.


‘어디 보자.’


차분하게 호흡을 가다듬으며 눈을 껌뻑였다.

차가운 공기가 흐르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온기가 풍겨나고 있었다.

냄새는 시큼한 주제에 단내가 섞여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간간이 땅이 흔들렸는데 정작 주변에 보이는 것엔 그 어떤 흔들림이 없어 고요했다.

분명 어두웠지만 눈앞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흐릿하게 밝았고, 모래가 바람에 쓸리는 소리는 굉장히 크게 들려왔다.

아니지, 바람에 나무가 쓸리는 소리라고 해야 하나.

어떻게 들으면 고요한 것도 같은 게 자신의 감각 자체를 확신할 수 없었다.

도통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제대로 찾아왔네.’


차도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눈앞에 벌어지는 모든 현상을 납득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그곳이라면 지금처럼 감각에 이상이 생겨나는 건 당연했으니까.


‘미로의 틈.’


탑에 오르면 반드시 들러야한다고 정해놨던 첫 번째 테마의 숨겨진 던전이었으니까.


‘물론 지금 올 곳은 아니었지.’


미로의 틈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그 수준이 굉장히 높은 던전에 속한다.

제아무리 지구에서 히든 피스를 독식해온 차도윤일지라도 공략하기가 난해했다.

기왕이면 지금보다 고층에 올랐을 무렵······ 혹은 다른 히든 피스를 더 얻은 뒤에야 들어오려고 마음먹었던 곳이다.

하지만 뭘 어쩌겠는가.


‘코인을 뜯길 생각은 없었고 약화된 몸으론 싸우기가 영 마땅치 않았으니.’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 선택 또한 그다지 나쁘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이 세계의 지독한 규칙에 의하면······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은 기회가 된다.

안 그래도 어려운 던전을 한껏 약화된 상태로 공략하게 된 것이 아니던가.

돌아오는 보상은 자연히 커진다.


‘살아남는다면 말이지.’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지 김태하는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이쪽을 돌아보았다.


“정말 살아남을 방법이 있는 거겠지?”

“···속고만 살았나.”


몇 번이고 같은 질문을 하는 김태하의 얼굴을 마주봤다.

그리고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다.

겁에 질린 양처럼 옹기종기 모여 잔뜩 긴장한 헌터들.

하기야 1회 차에선 쉽게 겪어보기 힘든 곳이다.

2회 차에 이르러 자신만만하던 이들에겐 더더욱 청천벽력과도 같은 상황이겠지.

차도윤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증명해보이면 되겠지?”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효과적이다.

차도윤은 겁도 없이 스마트폰의 플래시를 밝혔다.


*


“무, 무슨······!”


종전에 다른 이의 스마트폰을 내던졌던 김태하는 화들짝 놀라며 노인을 노려보았다.

강력하게 주의를 주고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경고까지 남긴 게 방금 전이거늘!

정신 나간 노인네는 이곳에 있는 모든 인간들을 죽이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당장 그만두지 못해? 그러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말하던 중 소름이 오소소 돋는 걸 느꼈다.

빛을 발견하고 어둠 속에서 꾸물꾸물 무언가가 밀려오고 있었다.

속도는 어찌나 빠른지··· 해일이 밀어닥치는 것만 같았다.

김태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돌겠네.’


그리고 별 수 없이 검을 움켜쥐며 다가오는 물질을 경계했다.

이런 곳에서 허무하게 죽을 생각은 없었으니까.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고, 죽지 않으려면 발악을 해야만 한다.

김태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어떻게?’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그는 이곳이 어디인지, 또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었다.

상층에선 저층에 대해서 문헌을 찾아보려고 하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었으니까.

아니, 굳이 찾아보려고 하질 않아도 제멋대로 떠도는 소문을 모른 체 할 수는 없었다.

첫 번째 테마에서 죽어버린 사람의 숫자는 수백, 수천 만 명에 이르렀고.


‘그 원인이 여기였으니까.’


당장 밀려오는 움직이는 어둠은 통칭 ‘쉐도우’라 불리는 몬스터였다.

미로의 틈에 숨어 살며 간간이 방심한 인간을 잡아먹길 즐긴다는 비열한 괴물.

녀석에 대한 특징이 떠올랐다.


‘물리 공격은 안 통해. 약점도 딱히 드러난 게 없어. 저건······ 공략할 수 없는 몬스터라고.’


단 하나 알려진 건 유독 빛에 굉장히 민감하다는 다소 사소한 정보였다.

즉 어둠이 짙게 내리깔린 이 방대한 미로의 틈에서 한 점의 빛은 바로 놈들을 소환하는 주문이었다.


“김태하라고 했나?”


문득 노인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감각이 이상해져 멀리 있는 것 같으면서도 가까운 목소리였다.

빌어먹게도 스마트폰의 불빛은 꺼트리질 않았다.


“쉐도우는 시각 정보에 속으면 절대 사냥할 수 없어. 워낙 감각이 뒤섞인 공간이라 놈의 본체를 찾을 수 없거든.”


코앞까지 밀려온 쉐도우를 앞에 두고도 노인은 전혀 떨리는 기색이 아니었다.

정말 방법을 아는 건가?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의 손이 어울리지 않게 빠른 속도로 어둠을 갈랐다.


“적의 위치를 파악하려면 오감을 제대로 통제해야만 해. 제어만 잘 해낸다면 이런 것도······.”


그리고 화려한 빛 무리와 함께 놀랍게도 노인의 검은 쉐도우를 갈랐다.

한 마리, 두 마리······ 운이 좋게도 적을 찔렀으리란 생각은 이미 접었다.

노인은 정확하게 한 번의 칼질을 이을 때마다 불가해의 몬스터를 썰어버리고 있었다.


“당신······.”


그리고 거기까지 보고도 모를 수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이곳의 위치를 알고 진입방법까지 알고 있는 놈이다.

비록 노인이라고 해도 그가 어떤 존재인지 바로 깨닫는다.


“······대체 몇 층에서 회귀한 거냐?”


놀란 눈을 뜬 김태하를 향해 노인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내가 몇 층에서 돌아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당장 네 녀석이 걱정해야 할 건 강의료를 지불할 수 있냐는 거겠지.”

“······내가 벌집을 건드렸군.”


쉐도우를 썰어버리고 태연하게 이쪽을 바라보는 노인을 향해 김태하는 길게 한숨을 뱉었다.

어쩐지 운수가 좋더라니만.


‘내가 너무 방심했어.’


2회 차에 이르러 모든 것들이 쉽게만 느껴졌다.

지구에서 튀어나온 몬스터 중 그를 어찌할 놈은 없었다.

종종 히든 피스까지 먹어가며 성장한 그는 과거와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생존 땅따먹기에선 나름의 성적을 거뒀고, 코인 상점에서 카탈로그도 탈탈 털었다.

적어도 자신이 죽었던 곳까지는 일사천리로 올라갈 생각이었기에 걱정할 건 없을 줄 알았다.

그게 문제였다.


“적어도 노인이나 아이들은 조심했어야 했는데······.”


지구였으면 모를까. 탑에 오른 이상 운이 좋아서 여기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없다.

특히 혼자 힘으로 살아남기 힘든 노인이나 아이들은 이런 빌어먹을 지옥 속에서 살아남기가 남들보다 더 어렵다.

즉 조금만 고민해 봐도 안다.


‘상층 회귀자가 아니고서야.’


모르긴 몰라도 눈앞의 노인은 자신에 준하거나 그보다 높은 상층에서 회귀했다.


“어쩔 수 없군.”


김태하는 주머니에서 꾸깃꾸깃 모아놨던 10만 코인을 아낌없이 노인에게 건넸다.

그가 가진 재산의 거의 전부에 달하는 돈이었지만 망설임이란 없었다.

죽으면 끝이다. 살아남을 수만 있으면 전 재산을 가져다 바쳐도 아깝지 않다.


“진심이야?”


20층 회귀자라고 했던 이대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김태하를 보았다.


“그렇게 순순히 10만 코인을 낸다고?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지? 어?”

“······.”

“김태하 씨, 정신 차려요. 저런 미친 노인네의 말에 현혹될 이유는 없다고요!”


김태하는 말없이 이대영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거대화 한 그가 다가오는 쉐도우를 뻥뻥 차대고 있었다.

그가 걷어찰 때마다 쉐도우는 너무나도 속절없이 흩어졌다.

하운드보다도 사냥하기 쉬워보였고 빅독보다도 위협적이질 못했다.

이대영은 이쪽을 돌아보더니 말했다.


“생소한 곳이지만 고작 1층입니다. 조금 어지럽긴 해도 공략할 만 하다고요!”


이대영은 말을 멈추질 않았다.


“그러지 말고 나랑 가시죠. 저런 노인네한테 속지 마시라고요.”


그리고 새삼스럽지도 않게 이대영이 자신에게 무슨 개수작을 부리는 지 알 수 있었다.


‘이 새끼가······.’


모르긴 몰라도 ‘미로의 틈’은 인간의 오감을 정신없이 뒤흔드는 곳이다.

어두운 것 같으면서도 밝고, 냄새는 지독하면서도 좋고, 가끔 중력이 뒤집어진 것처럼 멀미가 솟구쳤다.

어지간한 사람은 이런 공간에 대한 대비가 하나도 되어있질 않은 것이다.

실제로 다른 헌터들도 정상적인 판단을 내릴 정도의 몸 상태가 아니었다.

그런 상황을 빌려 녀석은 자신에게 한 가지 스킬을 걸고 있는 것이다.


[이대영 님이 스킬 ‘세뇌’를 발동했습니다.]

[스킬 ‘해병대 정신’을 발동합니다.]

[수준 이하의 상태이상에 저항합니다.]


김태하는 그저 눈살을 찌푸리며 이대영의 세뇌를 튕겨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대영은 뻔뻔하게도 말을 이어갔다.


“······난 따로 행동할 겁니다. 미친 노인네한테 휘둘릴 이유는 없어요.”


그는 거칠게 쉐도우를 갈라버리며 큰 목소리를 냈다.

거기다 녀석이 세뇌를 건 건 자신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대영의 곁으론 다수의 헌터들이 서있었다.

종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말을 곧잘 따라주었던 파티원들도 대다수 그곳에 있었다.


“그러니 노인네, 돈은 네가 내는 게 좋을 거야. 살고 싶다면······.”


이대영이 빠른 속도로 노인에게 접근했다.

해서 김태하도 거두절미하고 그 중간에 서서 검을 맞대었다.

커다란 충격이 터지면서 잠시간의 대치가 이어졌다.

김태하가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갈 거면 조용히 떠나라. 자꾸 물 흐리지 말고.”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


이대영은 이를 악물고 몇 번이나 공격을 퍼부었지만 소용은 없었다.

잠시 분기가 솟구쳐 이대영을 공격할까 고민도 했지만 이내 접었다.

이곳이 어딘지 알고 있기에 간단히 내릴 수 있는 현명한 판단이었다.

괜히 더 골치만 아파질 터.


“······흐, 흥이 식었어.”


몇 번이고 부딪쳐도 성과를 거두질 못한 이대영은 결국 꼬리를 내려야 했다.

애초에 승부가 될 수 없는 싸움이다.

미로의 틈에 대해서 1도 모르는 녀석을 상대로 자신이 질 리가 없질 않은가.


‘정작 쉐도우를 쓰러트리지 못하고 화만 돋웠다는 것도 모르는 놈인데.’


오히려 녀석의 행보가 일행의 앞날에 폭탄이 되어줄 수 있었으니 지금 이 변화는 반가웠다.


“그만하고 가라.”


결국 이대영은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도 무얼 더 할 수는 없었다.


“노인네, 두고 보는 게 좋을 거야!”


삼류 악당이나 읊을 만한 대사를 꺼내들고는 멀어질 뿐이었다.

그런 그를 약 열두 명의 헌터가 따라붙었다.

세뇌 스킬이 기가 막히게 잘 적용된 모양이었다.

하지만 김태하는 그들을 붙잡을 생각조차 하질 않았다.


‘내 코가 석자야.’


당장 노인이 가만히 있는데 자신이 나서서 그들을 구하고자 뭘 더 하진 않아도 된다.

누가 이기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김태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기적이지 않고서야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다. 멸망 이후의 세계는 그렇게 단조롭다.


“······그래서 살아남는 방법이 뭔데?”


김태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멀어지는 이대영을 일별했다.

10만 코인이나 지불한 대가를 되돌려 받을 차례였다.

과연 이 빌어먹을 지옥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무엇인가.

노인이 이죽이면서 답했다.


“우리가 가장 잘하는 걸 해야지.”

“뭐?”

“그전에······.”


노인의 시선이 다른 헌터들에게 향했다.


“여러분들도 강의 비용은 지불하셔야죠.”

“······그, 그건.”


이대영이 세뇌해서 데려가지 않을 정도로 약한 헌터들이 렉이 걸린 것처럼 버벅였다.

노인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인당 1,000코인입니다.”


그 말에 어이가 없어져 그를 보고 있으려니 노인은 당돌하게도 김태하와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뭐 어쩔 거냐는 듯한 눈으로.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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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라헬 스트로디아 +2 23.01.15 1,537 5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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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음식은 멀쩡하다니까 +5 23.01.12 1,765 54 12쪽
33 돈값은 해줄 테니까 23.01.11 1,887 5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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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명해보이면 되겠지? 23.01.09 1,955 5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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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줄래야 줄 것도 없어 23.01.07 2,058 50 13쪽
28 주변을 둘러보는 눈을 기르래도 +1 23.01.06 2,115 5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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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저들이 너희들의 원수다! 23.01.02 2,348 58 12쪽
23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23.01.01 2,586 57 12쪽
22 난 여기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 22.12.31 2,780 6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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